114화 흑호대장군
흑풍채에 새로 가입한 흑호대장군이 검은 머리에 윤기 좌르르 흐르는 흑호를 타고 몇몇 강호인들과 맞붙고 있었다.
강대력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강대력이 서사 산채를 제압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적이 찾아와서 행패를 부린다는 말인가?
흑호가 포효하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흑호에 올라탄 흑호대장군이 네 명의 도객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혈전을 펼쳤다.
칼 소리, 호랑이 울음소리가 울려퍼지며 많은 플레이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때, 검은 망토를 걸친 강대력이 한순간에 달려갔다. 우람한 체격의 강대력을 발견한 플레이어들이 양쪽으로 비켜섰다.
흑호대장군과 혈전을 치르던 도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중 구레나룻이 가득한 사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진가채(秦家寨)의 객경 장로다. 이건 우리 진가채의 집안일이니 다른 사람들은 관여하지 마라!”
사내는 강대력을 보며 외치면서도, 손에 든 칼은 멈추지 않았다. 온갖 도법을 시전하며 흑호대장군을 밀어붙였다.
네 사람의 협공에 흑호대장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흑호의 몸에도 수많은 상처가 생겨났다.
흑호대장군의 실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네 사람의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들 중 두 명은 외기경 고수였고, 남은 두 명도 내기경 강자였다. 도법은 거칠고 거침없었는데 강호에 소문난 오호절문도였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플레이어들도 갑작스러운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은주 진가채라는 세력의 이름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 산채를 찾아온 도객이 이렇게 강할 줄은 누가 알았으랴. 심지어 겁도 없이 흑풍채에 갓 입성한 흑호대장군을 공격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강대력에게 쏠렸다. 이들은 강대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잔뜩 기대했다.
강대력은 팔짱을 끼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도객들을 바라보며 싸움이 벌어진 곳으로 향했다.
“운주 진가채라. 조상 대대로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가 내려온다는 그 산채로군. 그러나 다섯 수가 실전되어 범가의 팔십일로오호도(八十一路五虎刀)에도 못 미친다는 소문이 있더군.”
흑호대장군과 맞붙은 도객들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강대력이 이렇게 무례하게 그들의 체면을 구길 줄은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진가채의 집안일에 끼어들다니.
구레나룻 사나이가 다시 경고를 보냈다.
“흑풍채 채주! 이건 우리 집안 사정일세. 자네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야. 이놈은 우리 진가채를 배반한 놈일세. 자네가 이 녀석을 받아들인 건 우리 진가채에 대한 도전이야.”
강대력은 앞으로 걸어가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전이라면 또 어쩔 건데? 흑호는 이미 우리 흑풍채의 사람이야. 내 부하를 건드리는 사람은 절대 가만두지 않아. 당신네 채주가 와도 똑같아.”
잠자코 있던 흑호대장군이 외쳤다.
“채주님!”
진가채의 도객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흑호대장군을 향해 훨씬 막강한 공세를 퍼부었다.
“흑풍채 채주! 억지를 부려도 유분수일세!”
강대력의 눈에서 살기가 터져 나왔다. 강렬한 살기에 순간 공기의 흐름까지 멈추는 듯했다.
“내가 멈추라고 했을 텐데. 내 말 안 들리나?”
강대력이 벽호유장공을 시전했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흑호대장군과 상처로 가득한 흑호의 앞에 나타났다.
강대력이 양손을 내밀었다.
진가채의 도객들이 화들짝 놀라며 방어 태세로 전환했다.
강대력이 흑호대장군과 흑호를 번쩍 들어 올렸다.
혹호 대장군과 흑호가 화들짝 놀랐다.
‘왜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강대력은 팔을 휘두르며 말했다.
“물러나 있어라.”
강대력의 팔뚝 근육이 부풀어 오르더니, 이들을 집어 던졌다. 흑호대장군과 흑호는 괴성을 지으며 뒤로 밀려났다.
‘맙소사!’
‘사람과 호랑이를 번쩍 들어 올린다고? 저런 괴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진가채의 도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강대력의 폭발적인 힘에 할 말을 잃었다.
구레나룻 사나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흑풍채 채주. 우린 당신한테 아무 악감정이 없다네. 그러나 우리 진가채를 배반한 놈은 반드시 데려가야겠어.”
말을 마친 사내는 갑자기 도를 들고 달려들었다. 남은 세 사람도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공세를 펼쳤다.
진가채의 도객들은 혈기왕성하였다. 기와가 되어 완전히 살아남느니 차라리 옥이 되어 부서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오호단문도를 수련할 수 있었고, 강대력 앞에서도 기세를 떨칠 수 있었다.
강대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도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니지. 오호단문도의 도의를 깨닫지 못했군.”
강대력의 온몸이 청금색으로 변하더니 피막이 부풀이 시작했다. 온몸의 근육이 구렁이처럼 얽히자 마치 사람의 몸이 아니라 단단하고 탄력 있는 쇠붙이 같았다.
강대력이 괴성을 질렀다.
“하아앗!”
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강렬한 기운이 퍼졌다.
진가채의 도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강대력의 손끝에 막강한 위압이 실렸다. 그의 손끝에서 용맹하고 사나운 도의가 터져 나왔다.
진가채의 도객 네 명이 일제히 두려움에 떨었다.
“도의야!”
도객에게 도의는 매우 중요했다. 도의를 깨달은 순간 도법은 질적인 향상을 이루었다.
사나운 도기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네 도객의 검이 강대력의 공세와 부딪혔다.
펑 펑 펑펑.
진가채의 도객 네 명이 비명을 지르며 내동댕이쳐졌다.
어떤 사람은 뼈가 부러졌고 또 어떤 사람은 심한 내상을 입고 새빨간 피를 토해냈다.
단 한 번의 공격이었다.
강대력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네 명의 도객에 중상을 입혔다.
진가채의 도객들이 공포에 떨었다. 이 순간만큼은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강대력은 이들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록 이들 중에는 외기경 강자 두 명도 포함됐지만, 강대력과는 비교조차 안 되었다.
강대력의 호살금환도는 오호단문도를 5경이나 6경까지 수련한 검객들보다 훨씬 막강했다.
강대력이 뒷짐을 지고 말했다.
“흑호야!”
뒤에 서 있던 흑호대장군이 황급히 달려왔다. 그리고는 공손하게 말했다.
“네, 채주님!”
강대력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직접 처리해라. 죽이든지 살리든지 알아서 해.”
흑호대장군이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
“채주님…… 저는…….”
강대력이 말했다.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나한테 보고할 필요 없다. 네가 우리 흑풍채에 가입한 이상 나는 너를 도울 뿐이다. 내가 시키는 일만 잘하면 돼. 나 빼고 그 누구의 말도 들을 필요 없다.”
강대력이 말을 이었다.
“저놈들을 처리하면 너는 서사 산채에 남아 주변의 자원을 개발하거라. 그리고 네 이름은 말이다, 앞으로 대장군은 빼고 흑호로 해. 사람이 겸손해야지.”
흑호대장군은 순간적으로 몸에서 피가 펄펄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기쁨에 겨워 절을 하며 말했다.
“네, 채주님.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장유아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강대력의 비호를 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감과 행복을 느꼈다.
이렇게 막강한 우두머리가 있으니 강호 어디를 가도 두렵지 않았다.
흑호대장군이 누군가? 장유아와 마찬가지로 흑풍채에 새로 가입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가입하자마자 강대력의 중용을 받다니. 강대력이 사람을 쓰는 법이 남다르고 보통이 아니게 느껴졌다.
장유아는 흑호의 신세가 부러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투하는 건 아니었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생겼다.
“역시 흑풍채 채주님은 뭔가 달라. 회주 녹림을 통일할 사람은 우리 채주님 뿐이야. 마음가짐을 바꿔야겠어, 하하하.”
***
강대력은 흑호의 일을 처리한 후, 서사산에 올라 잠깐 쉬고 있었다.
산채 부하들이 서사산의 자원을 집계하여 보고했다.
그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명운정 십여 개와 약산이었다.
강대력은 탁자 위에 놓인 명운정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서사 산채가 중히 여겨질 만 했군. 쌍룡을 보낸 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 명운정이 열 개가 넘게 있다니. 허허, 참. 내가 서사 산채를 제압한 이상 주변의 다른 세력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할 거야. 쌍룡이 다시 오지 않는 이상 평범한 놈들은 흑호의 상대가 안 되지.”
흑호도 겨우 외기경에 불과했다.
그러나 강대력과 마찬가지로 무학에 진심이었다.
그중 오호단문도는 거의 7경에 이르렀다.
흑호는 한때 마적의 우두머리였다. 비록 지금은 보잘것없는 신세가 됐지만, 여전히 부하 여럿을 거느리고 다니는 보스급 NPC였다. 혈기가 많고 흑호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외기경 강자 두 명이 달려들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의 실력은 갓 외기경을 돌파한 무운홍보다 훨씬 막강했다. 그러나 폭기경에 지계 절학을 수련한 무열에는 못 미쳤다.
강대력은 기억을 더듬었다. 전생에 흑호가 무슨 기연을 만났던 걸까? 전생에서 흑호는 잘 나가는 보스였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의 눈에 띄어 공회가 토벌에 나섰고 결국 흑호는 피살되었다. 그러나 그 기연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강대력이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쓸만한 수하들이 너무 적어. 마응이 돌아오면 일월신교로 가야겠어. 삼시뇌신단의 조제법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그때, 친위대 플레이어가 들어와 물건을 건넸다. 그들은 이것이 흑호가 강대력에게 표하는 충성의 마음이라고 했다.
“뭐?”
강대력은 그 물건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호단문도의 비급이었다.
내용을 훑어 본 강대력은 혀를 찼다.
“역시나 온전한 비급은 아니었어.”
전생에 진가채에 가입했던 플레이어들이 말하기를 오호단문도가 절학인 건 맞지만, 다섯 수나 사라져 그 가치는 형편없이 떨어졌다고 했었다.
비록 일부 초식이 사라졌지만 오호단문도의 장점은 도법의 기세와 도의였다.
이 비급은 강대력에게도 참고가 될 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스스로 깨닫고 수련하면 자신만의 도법을 만들 수도 있었다.
흑호가 강대력에게 오호단문도를 바친 이유 중 하나는 강대력이 도의까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강대력은 비급을 펼쳐보았다. 도법의 초식이 광포하고 날카로웠지만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단기간에 깨닫기는 어렵고 수련도 동반해야 했다.
강대력이 스테이터스를 열어보니 수위점 12,332점과 잠재점 14,830점이 있었다.
강대력은 수위점과 잠재점을 소모하지 않았다.
강대력의 구양가의신공은 4경에 머물러 있었다. 만약 수위점과 잠재점을 소모하여 5경에 이른다면 그의 실력은 지금과 또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일 터.
신공의 5경이라면 또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까? 자하신공 등 지계 절학 9경과 맞먹을지 몰랐다.
바로 그때, 마응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친위대 플레이어 소소월야가 들어와 보고했다.
“채주님, 마응이 돌아왔습니다.”
강대력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가 하늘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