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예상치 못한 습격자들
강대력도 진롱기국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이 기국을 깨야만 소성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지만, 이를 깨는 일이 쉬운 일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강대력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모습을 본 또 다른 영감이 말했다.
“의술이 뛰어나고, 찾기 쉽고, 쉽게 도움을 주는 신의는 소성하 뿐이다.”
육소봉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일단 동방불패의 몸속에 있는 독소가 무슨 독인지부터 물어보는 게 어때? 누구를 찾아가야 그 독소를 배출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거지.”
강대력이 머리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어.”
강대력은 최대한 힘을 뺀 후, 은을 던지고 독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몸 안에 있는 독소가 뭔지 알고 싶다고? 그럼 피 한 방울이 필요해. 일단 어떤 증상인지부터 말해 봐.”
동방불패는 곧바로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냈다. 이후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핏방울이 허공을 날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동방불패는 자신의 증상을 읊었다.
잠시 후, 동굴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피에서는 여야홍(女儿红)의 냄새가 나는군. 그리고 칠교화골산(七巧化骨散)의 냄새도 나……. 여아홍은 일종의 독균으로 겉보기에는 매우 아름답고 음습한 곳에서 자라지. 그러나 이 균만으로는 불러준 증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아.”
목소리는 자세한 지식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칠교화골산이 중독의 원인인 모양이다. 칠교화골산은 몹시 독한 독약이지. 반 시진 안에 살가죽을 썩히고 뼈까지 녹여버릴 수 있다. 소요후의 소공자(小公子)가 이 약을 자주 쓴다. 이 독을 해독하려면 소공자를 찾아가 봐. 아니면 소성하, 정춘추에게도 방법이 있을 거다. 다른 신의들은 안 돼. 그리고 전설 속의 무극선단이나 망고주합을 찾아도 해독할 수 있다. 무극선단은 강호에 열두 알뿐이다. 효웅 연광도의 손에 있을 거다. 그가 네 알을 먹었고 이심주를 중히 여겨 그에게 두 알을 주었고 박소가 한 알을 먹었다.”
강대력은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자세한 정보를 전해 듣고 크게 놀랐다.
동굴 안에 있는 대지와 대통은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강호의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 할 만했다.
증상에 대해 듣고 피를 조금 맛본 것만으로 동방불패에게 걸린 독극물에 대해 알아내다니. 무극선단이라는 보물에 대해서는 전생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강대력은 이 두 영감을 흑풍채로 데려가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은을 건네면 그만이잖은가.
강대력은 이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확인한 후 소공자, 소성하 또는 정춘추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망고주합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는 대지와 대통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무극선단은 모든 독소를 해독하고 공력을 높여줄 정도로 신묘했지만 보유자들이 하나같이 상대하기 쉬운 인물이 아니었다.
만약 동방불패가 건재하다면 무극선단을 빼앗으려 들었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의 전력으로는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강대력은 한 번 더 은을 주고 소공자와 정춘추의 행방을 물어본 후 길을 떠났다.
육소봉이 강대력에게 물었다.
“먼저 소공자를 찾아갈 거야 아니면 정춘추를 찾아갈 건가?”
“왜? 나랑 같이 가서 도와주려고?”
강대력이 묻자 육소봉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꿈 깨. 대지대통에게 데리고 온 것만으로도 도움은 충분히 주었네. 자네 나한테 빚진 거야! 잊지 마!”
강대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물론 신세를 졌으니 빚은 갚아야지. 허나 빚을 갚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군.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
육소봉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한가한 소리 말게. 강 채주, 이번에 큰 사고 쳤잖은가. 모용복이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육소봉은 멀지 않은 곳에서 흐느끼고 있는 왕어언을 보더니 수염을 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여자의 눈물은 정말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군.”
강대력이 웃으며 말했다.
“여자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방법은 많네. 내게 그중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있지.”
“뭐? 자네도 여자를 어르고 달랠 줄 아는가?”
육소봉이 놀라서 물었다. 하지만 강대력은 주먹을 내밀며 말했다.
“어르고 달래기는 무슨. 난 그저 기절시키려는 것뿐이야. 정신을 잃으면 울지도 않겠지.”
“…….”
육소봉은 할 말을 잃었다.
강대력은 실제로 자신의 방법을 시도하기 위해 왕어언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 순간, 강대력의 귀가 쫑긋거리더니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재빨리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강대력의 손바닥에서 소용돌이가 일더니 황금빛 용이 나타나 거칠게 울부짖었다.
“대금용수(大擒龍手)!”
파바밧.
강대력을 향해 날아오던 암기들이 강력한 흡기에 빨려들었다. 암기들은 원래의 궤적을 벗어나 강대력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왼쪽 산 위에서 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대금용수라……. 대단하군. 당신은 여색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왕 아가씨를 구할 줄은 꿈에도 몰랐군.”
“아니면, 흑풍채 채주는 여색을 싫어하지만 모용복은 두려워하는 걸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저 계집을 죽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야. 하하하, 모용복의 보복이 그렇게나 두려웠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몇몇 그림자가 모습을 더 드러냈다. 이 그림자들은 곧바로 강대력 등을 포위했다. 하나같이 눈빛이 싸늘했다.
강대력은 이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동방불패를 찾아온 건가? 아니면 나한테 혼이 나고 싶어서 찾아온 건가?”
이중 한 남자는 보라색 옷을 입고 검을 들고 있었다. 나이는 어려 보이나 눈빛이 이상했다. 외모는 준수했지만 분위기가 음산했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남자답지 못했다.
“산적 주제에 허세가 대단하구나.”
강대력의 눈이 번쩍였다.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남자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강대력이 웃으면서 말했다.
“누군지 알 것 같군. 스승을 속이고 가문을 욕되게 한 것도 모자라 사제까지 버린 임평지구나. 그런데 겨우 너 정도의 실력으로 동방불패의 규화보전을 빼앗으려고 드는 거냐?”
임평지의 안색이 싸늘해졌다. 그는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강대력을 바라보았다. 임평지는 그의 옆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저 녀석은 내게 맡겨. 저 짐승 같은 녀석의 살을 갈기갈기 썰어서 강물에 뿌릴 거야.”
세 사람은 잠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중 검푸른 피부에 주름이 가득한 중년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럼 나는 동방불패를 상대하면 되겠군. 독으로 약해진 동방불패도 나를 침 하나로 죽일 수 있을지 두고 보지.”
육소봉은 그 중년 남성을 보며 말했다.
“자네 진주언가(辰州言家)의 사람인가? 진주언가의 강시권(僵尸拳)이 몹시도 기괴하다던데. 이처럼 산 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보일 때까지 수련한 사람은 내 생전 처음 보네.”
중년이 웃으면서 말했다.
“허허허, 과연 눈썰미가 대단하군. 그래, 나는 언가의 사람이다. 이전의 이름은 잊었다. 지금은 사시(死尸)라고 불린다. 지금은 간시파(赶尸派)에 속해 있지. 간시파에 들어선 후 내 실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내 강시권은 이제 상당한 경지에 들어섰지.”
육소봉은 놀라 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상서 간시파 말인가?”
“하하하! 육소봉, 우리가 누군지도 알고 있나?”
자신을 사시라고 소개한 인물 옆에 서 있던 두 사람이 기이한 표정으로 웃으며 물었다. 한 사람은 뚱뚱하고 키가 컸고 다른 한 사람들은 마르고 키가 작았다.
강대력이 두 사람 보며 경멸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하나는 뚱뚱한 데다 키가 크고, 마른 데다 키가 작으며, 하나같이 추하기 그지없는 걸 보니 신룡도(神龍島)의 반두타(胖头陀)와 수두타(瘦头陀) 아닌가? 왜? 신룡 교주도 일월신교 교주의 규화보전에 관심이 있다고 하나?”
두 사람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우리 교주님께서는 말이야, 규화보전이 원래 어느 왕실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 이렇게 귀한 물건에는 당연히 관심을 가지시지.”
암기에 맞아 죽을 뻔했던 왕어언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규화보전은 한 권밖에 없잖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어. 어떻게 나눌 생각이야?”
강시처럼 생긴 간시파의 남자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규화보전만 손에 넣으면 다 함께 볼 생각이다.”
“하하하하! 규화보전이 정말 저잣거리 노리개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구나.”
그 말을 들은 동방불패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대력도 코웃음 쳤다. 그러나 속으로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강대력과 육소봉, 그리고 실력의 십 분의 일밖에 쓰지 못하는 동방불패. 물론 이 세 사람의 실력은 대단하긴 했다.
그러나 강대력 등의 앞길을 막은 이들도 자신들이 활동하는 지역에서는 크게 명성을 날린 인물들이었다. 이곳까지 대지대통을 찾아온 것을 보면 이들은 정보력도 뛰어나고 행동력도 보통이 아닌 듯했다.
사실 이들만으로 이렇게 빠르게 행동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막강한 실력의 고수가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 점을 가장 경계했다.
강대력은 눈앞에 있는 존재들은 그리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몰래 훔쳐보는 이에게 등에 칼을 꽂힐 수 있다면 하나하나 행동을 조심해야했다.
강대력이 신중히 주변을 탐색하자, 임평지가 나지막이 말했다.
“죽어라.”
임평지의 허리에 찬 검을 뽑고 번개 같이 달려들었다. 검은 곧바로 강대력의 머리와 가슴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다른 이들도 마치 깨진 병의 물이 쏟아지듯 단숨에 칼을 뽑아 들고 돌진했다.
그 순간, 간시파의 고수 사시가 비명을 질렀다. 달려들자마자 동방불패의 침에 일격을 당한 것이다. 그는 잠시 주춤거리며 강철 같은 몸을 가누다가 강대력 못지않은 횡련을 펼쳤다.
동방불패의 침은 사시의 옷과 피부 표면만 찔렀을 뿐 그의 심장을 꿰뚫지는 못했다.
사시가 몸을 훌쩍 날리더니 마치 강시처럼 상당히 먼 거리를 뛰어넘었다. 그는 동방불패를 향해 시커먼 손가락을 내밀며 기세를 올렸다.
그리고 동방불패가 대처하기도 전에 입을 쩍 벌리며 암기 두 개를 뱉어냈다. 다시 한 번 입을 닫았다 벌리자 이번에도 암기 두 개가 터져 나왔다.
샤샤샥.
암기 네 개가 서로 부딪히지도 않고 빠르게 날아갔다.
암살 무기 두 개는 동방불패의 가슴팍과 얼굴을 향했다. 남은 두 개는 강대력과 왕어언을 향했다.
입에서 암기를 날리는 암살 기교였다.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임평지의 검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에 암기가 날아오자 강대력도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다.
또 다른 암기는 무공을 못 쓰는 왕어언을 향했다. 왕어언은 강대력의 포로였고 그의 전리품이었다.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육소봉 역시 갑자기 달려든 반두타와 뒤엉켜 있어 도움을 주기 어려워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