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숭산파
지금 그가 지닌 내기라면 확실히 소림사후공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만약 이렇게 폭넓은 공격 범위를 지닌 음공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면 다양한 이점이 생긴다.
이를 테면 이 무공이라면 마응의 등에서도 공격이 가능했다. 앞으로 플레이어들을 상대하게 되면 성황전 근처에서 흥얼거리기만 해도 모조리 죽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면 굳이 힘을 빼며 쫓아다닐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강대력은 소성하가 답례를 줄 눈치이기에 ‘북명신공’이나 ‘소무상공’과 같은 소요파의 무학을 내놓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설마 소림 절학을 건넬 줄이야.
과거 무애자와 이추수가 천하의 온갖 무학을 거둬들였기 때문에 소성하가 소림사후공을 지닌 것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북명신공과 소무상공 등을 기대한 것은 지나친 욕망이었다. 이러 절학들은 소요파의 장문인들만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대력은 이미 흡성대법을 익혔기 때문에 북명신공에 집착하지 않았다.
강대력은 이전에 임아행이 구결을 읊는 것을 몰래 엿들었기 때문에 흡성대법의 일부를 습득할 수 있었다. 이후 동방불패를 데리고 흑목애를 떠나기 전, 강대력은 임아행의 시체를 더듬다가 온전한 흡성대법을 얻었다.
소성하가 말했다.
“이건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소요소환단이네. 이건 소림사의 소환단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지. 아쉽게도 효과는 소림사의 소환단보다 못하네. 하지만 한 알만 먹어도 내상과 독상에 큰 효과가 있을 거야.”
“그렇습니까?”
강대력은 놀라서 약병을 흔들었다.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것을 봐서 한 알만 들어있는 게 아닌 듯했다.
“이 소요소환단이 내상과 해독에 효과적이라면 이걸로도 동방불패의 독을 해독할 수 있습니까?”
소성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만약 중독되자마자 먹었더라면 해독할 수 있었을 거야. 그러나 지금은 어렵네. 내가 직접 동방불패의 피부를 가르고 독소를 배출해야 하지. 이 과정에서 출혈이 상당할 터이니 자칫하면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어.”
“그렇군요.”
강대력은 그 약병을 품에 넣었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몰랐지만, 내상과 독극물을 치료하는 데 유용하다고 하니 엄청난 보물인 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서려는데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종이 울리는 것처럼 시끄러운 소리에 귀청이 찢어질 듯했다.
“동방불패, 목숨을 구걸하러 농아문까지 올 줄은 몰랐구나! 허허허, 귀머거리한테 빌어서 목숨을 구하려고? 어디까지 추해지려는 거냐? 차라리 나한테 목숨을 내놓도록 해라. 우리 숭산파가 무고한 인간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돕는 거지.”
강대력이 미간을 찌푸렸다.
“숭산파(嵩山派)? 좌냉선까지 왔나?”
“어디 숭산파뿐이겠어? 소림도 왔어.”
가느다란 목소리가 지붕을 스치며 강대력에게 대꾸했다. 어렴풋이 작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강대력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쥐새끼 같은 놈들. 당장 나와라!”
불끈.
강대력이 오른손을 불쑥 내밀자 팔뚝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이내 그의 손가락 끝에서 막강한 내기가 터져 나왔다. 다섯 손가락을 구부린 모습이 마치 용이 입을 쩍 벌린 듯했다.
강대력의 다섯 손가락에서 강력한 흡수력이 발휘되었다.
끄드득.
강대력의 손이 지붕의 기와들을 빨아들였다. 그 사이로 쥐처럼 작은 체형에 옹졸한 모습의 그림자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강대력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왔다.
강대력은 그림자의 목덜미를 꽉 잡았다. 목덜미를 붙잡힌 자가 비명을 질렀다. 얼굴에 경련이 일고 몸을 부르르 떨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혈관이 툭 튀어나왔으며 체내의 내기가 모두 빠져나갔다.
이 모습을 본 소성하는 경악했다.
‘설마, 북명신공인가?’
잠시 후, 그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북명신공은 아닌 것 같군. 설마, 일월신교의 흡성대법인가? 그것과도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소성하가 고민에 빠진 동안, 강대력은 손에 들고 있던 사람을 완전히 제압한 후, 적당히 바닥에 내던졌다.
강대력의 몸에서 위압적인 기세가 감돌았다. 특히 오른손이 기이할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핏줄이 쇠사슬처럼 얽혀 있었다. 그 팔에 폭발적인 힘이 담겨 있음은 누가 봐도 명확했다.
소성하가 헛바람을 삼켰다.
방금 강대력이 시전한 공법이 흡성대법이 아니라는 것은 확신했다. 분명 흡공의 흔적은 보이지만 그뿐이었다. 대체 무슨 공법인지 알 수 없었다. 소성하도 처음 보는 공법이었다.
강대력이 소성하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북명신공이 아니라 제가 흡성대법에 기초하여 새롭게 만든 흡공입니다.”
강대력은 오른쪽 팔뚝의 경맥 사이로 전해오는 막강한 힘을 느끼며 만족했다.
흡성대법은 임아행이 수련한 ‘융공(融功)’ 법문과 합쳐야만 끌어온 내기를 경맥으로 분산시키고 온전히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강대력이 흡성대법과 대금용수를 결합하여 만든 무공은 항룡입팔장의 취세(聚势) 기교를 배합한 것이었다.
철포삼 횡련 공법을 근간으로 한 무공이었기에 끌어온 내기를 자신의 근육에 담아낼 수 있었다. 이 상태에서는 근육의 크기가 굉장히 커졌다.
이렇게 근육에 스며든 내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취세로도 모두 다스리기란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한바탕 전투를 치르는 데는 아무 문제없었다.
또한 이 무공을 사용하다보면 나중에는 근육의 세포 하나하나에 내기가 스며들어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그때가 되면 강대력의 몸에 내기가 넘쳐흘러 모공에서까지 기가 터져 나올 수 있었다.
소성하는 강대력의 광포한 기운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강 채주가 진정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구나. 과연 대단한 인물이야.’
소성하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사람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자의 외견이 제법 특수하군. 경공술이 보통이 아니었겠어. 아마 지서문(地鼠門)의 사람 같아 보이는데, 이들은 뛰어난 경공술과 축골공, 청력으로 상대를 추적하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좌냉선의 기세등등한 웃음소리와 함께 중간중간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적지 않은 병력이 몰려온 모양이었다.
소성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숭산파와 소림이 모였군. 이번 기회에 동방불패를 제거하려는 모양이네.”
강대력이 망토를 벗으며 평온하게 말했다.
“좌냉선 쯤이야 제가 막을 수 있습니다. 소 선생, 동방불패를 치료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소성하가 대답했다.
“내가 사력을 다해도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하루가 걸릴 거야. 또한 독을 제거했다고 해서 바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네. 무공을 시전해도 안 되고, 푹 쉬어야 하지.”
“알겠습니다. 소 선생, 그러면 동방불패부터 구해주십시오. 제가 숭산파와 소림 놈들을 막아보겠습니다.”
이 말에 소성하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저자들의 머릿수가 너무 많아. 강 채주 혼자만의 두 주먹으로 감당이 되겠나? 음…… 그렇다면 어찌 됐든 나는 동방불패부터 구할 테니까 이쪽은 신경 쓰지 말게.”
“하하하, 그럼 저는 숭산파와 소림의 기세를 꺾으러 가보겠습니다.”
강대력은 호탕하게 웃으며 발을 번쩍 들고 땅바닥을 내리찍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광포한 기의 파문이 퍼져 나갔다. 지서문 사람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강대력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겸사겸사 주변에 있던 술 항아리도 빨아들였다.
강대력은 지서문의 사람의 시체와 술 항아리를 들고 농아문의 입구로 향했다.
***
농아문의 문이 활짝 열렸다.
문 주위에서는 농아문 소속의 몇몇 플레이어들이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붉은색 복장을 한 숭산파의 사람들이 흉악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비빈, 육백 등 숭산파의 고수들이 맨 앞에 서서 위세를 떨쳤고, 그 뒤를 숭산파에 가입한 플레이어들을 포함한 이들이 따라왔다.
숭산파 플레이어들은 비빈의 뒤에 서서 으스댔다.
“하하하, 속이 다 후련하군! 우리 숭산파보다 강한 세력이 있을까보냐? 흑풍채 채주와 동방불패를 죽여 버리자!”
“좌맹주 만세! 숭산 만세!”
숭산파의 플레이어들은 강대력이 자신들의 장문 좌냉선의 손에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좌냉선을 따라온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구경이나 하면서 적당히 보상이나 챙기려는 속셈이었다.
그때, 농아문 안에서 웅장한 기세가 솟구치더니 우람한 체격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건물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농아문을 쳐들어오던 숭산파의 사람들이 걸음을 멈췄다.
“흑풍채 채주……!”
터벅 터벅.
강대력은 당당한 걸음으로 숭산파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호탕하게 웃더니 팔을 휘둘렀다.
“이거나 받아라!”
슈욱!
깡마른 그림자가 포탄처럼 내던져져 숭산파의 사람들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비빈이 고함을 질렀다.
“막아!”
숭산파의 제자 십여 명이 일제히 달려 나와서 검을 빼 들었다. 검이 반짝이더니 포탄처럼 날아오는 깡마른 체구를 막아냈다.
“그래, 잘하는구나! 숭산파의 쥐새끼들아, 그럼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강대력은 웅장한 몸으로 살기를 뿜어냈다. 그가 양팔을 휘젓자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그에게 빨려 들어갔다.
특히 보기만 해도 위협적으로 보이는 오른팔에 무시무시한 기운이 모여들었다.
문밖 가마 속에서 태평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좌냉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몹시 강력한 장력이다!”
상황을 파악한 비빈이 큰소리로 외쳤다.
“다들 물러서! 억지로 막을 필요 없어!”
“이미 늦었어!”
강대력이 사납게 외치며 공격을 퍼부었다. 금강불배 같기도 하고 거령솔비 같기도 한 일격이 쏟아져 나왔다. 광포한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우우웅!
비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강대력의 말처럼 때는 이미 늦었다.
“으아아악!”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한 표정이던 플레이어들은 순식간에 백색광이 되어 사라졌다.
“감히!”
문밖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장내에 광포한 바람이 불었다.
“죽어랏! 이 도둑놈아!”
좌냉선이 번개같이 날아와 강대력의 정수리를 향해 장력을 내리꽂았다. 좌냉선의 장력이 터져 나오자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한빙신장(寒冰神掌)이군! 그래, 잘 왔다!”
강대력은 좌냉선의 강력한 공격에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광포한 웃음으로 일관했다. 강대력이 기이하게 부풀은 오른쪽 팔을 휘두르자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히 내 장력과 맞붙으려고? 주제도 모르는군!”
좌냉선은 한껏 비아냥거리면서 자신의 한빙 진기를 마음껏 쏟아냈다.
폭음과 함께 삽시간에 땅바닥에 얼음 결정이 형성되었다.
주변에 있던 숭산파의 제자들은 거센 바람에 밀려났다. 이들은 추워서 몸을 덜덜 떨며 땅바닥에서 뒹굴었다.
하지만 좌냉선은 자신이 날린 장력이 언제나처럼 순식간에 상대를 쓸어버리는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 번개 같은 뜨거운 기운이 마주 날아와 냉기를 밀어낸 것이다.
“뭐야?”
좌냉선은 자신의 장력에도 고작 한 걸음 정도만 밀려난 강대력을 보며 경악했다.
강대력의 팔뚝은 좌냉선의 한빙 진기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