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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불괴 대채주-191화 (191/218)

191화 단예

이청라는 강대력이 말을 걸자 굳은 표정으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왕어언을 바라보았다.

단예는 밖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강대력의 낮은 목소리에 전전긍긍했다. 당장 쳐들어가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강대력의 실력을 이미 질리도록 본 뒤였다. 일격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실력자였기에, 감히 반대하지 못하고 뜨거운 가마 속의 개미처럼 허둥대기만 했다.

“……2년. 2년이라…….”

이청라가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왕어언에게 물었다.

“어언아, 네 생각은 어떠냐?”

왕어언은 이청라가 마음속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눈치채고 있었다. 비록 원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만약 그 제안을 거절할 경우 강대력은 자신의 어머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강대력의 제안을 거절한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걸 또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해보았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저 눈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왕어언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짧게 대답했다.

“……네. 강 채주의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청라는 그런 왕어언의 대답이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미안하구나.”

이청라는 이어서 강대력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청라의 눈빛에는 미안함과 불안감보다는 여러 해 동안 짓눌린 갈증이 해소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젖어있었다.

“당신이 말한 그 일. 정말 해줄 수 있는 건가?”

강대력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왕 부인, 당신과 딸이 처한 상황을 잘 생각해 보시오. 왕 부인이 나를 위해 일을 잘 처리해주면, 그때 가서 내가 생각해 보겠다고 하지 않았소. 반드시 하겠다고는 말하지 않았소. 우리 산채에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니, 그 일에만 몰두할 수 없소.”

이청라가 웃음을 거두고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강 채주의 말에 일리가 있어. 나는 그 배신자 놈한테 어떤 사심도 없네. 강 채주가 그놈을 잡아 오면 내 한을 풀 생각뿐이지.”

강대력은 여러 해 동안 사랑에 목마른 이청라의 말을 귓등으로만 들었다. 그리고는 손을 쭉 내밀어 격산타우의 수법으로 밖에서 몰래 엿듣고 있던 단예를 날려 보냈다.

“왕 부인은 이제 부하들을 데리고 하산해도 좋소. 단, 미리 이야기한 대로 만타산장에는 우리 흑풍채의 깃발을 꽂아두시오. 앞으로 만타산장은 흑풍채의 염탐꾼을 키우는 곳이 될 것이오. 향후의 전략이나 방향성에 대해선, 다시 사람을 보낼 테니 그때 다시 상의하도록 하겠소.”

강대력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하자, 이청라는 속으로 다시 손익을 계산했다.

‘강 채주가 나를 위해 단랑(段郎)을 잡아주고, 또 이미 제압한 것이나 다름없는 나까지 풀어주는 조건으로 만타산장이 흑풍채의 부속 세력이 되는 거래라……. 흑풍채의 기세가 심상치 않고, 강 채주의 실력은 이미 검증되었으니 크게 나쁠 건 없을 거야. 든든한 배후가 있는 셈 쳐야겠지.’

이청라는 고개를 끄덕인 후, 일어서서 왕어언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강 채주의 말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너도 이미 알다시피 강 채주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 네 오빠보다 훨씬 강할 듯하구나. 네가 흑풍채에 남아 흑풍채주를 위해 일을 하는 것도 가치가 있는 일이 될 수 있겠지.”

“어머니……. 저는…….”

왕어언은 입을 벌리고 반박하려 했다. 그러나 할 말을 찾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강대력이라는 남자는 확실히 악랄하고 야심이 컸다. 그리고 그 야심만큼이나 몸도 근육도 튼튼했으며 무엇보다 무공 실력이 뛰어났다.

이름 없는 보잘것없던 산적 세력이던 흑풍채가 날로 강성해지고 있다. 강자가 득실대는 강호에 새롭게 이름을 알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흑풍채는 빠르게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왕어언은 강대력을 악인이라고 단정 지었다. 물론 그는 산적이고 사람을 쉽게 죽였다. 하지만 과연 이 사실만으로 강호에 떠오르는 인물인 강대력을 평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왕어언은 다른 평가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강대력은 이청라와 나눈 이야기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왕어언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악감정이든 좋은 감정이든 상관없었다. 어쨌든 무관심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했다.

강대력은 두 모녀를 데리고 문을 나섰다. 단예가 허둥지둥 달려와 화를 내며 말했다.

“강 채주, 이렇게 두 모녀를 위협하고 윽박지르다니. 당신은 영웅이잖은가. 이래서야 영웅의 기질에도 맞지 않고 군자의 이치에도 어긋나.”

강대력이 팔짱을 낀 채 단예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영웅 같은 소리 하네. 나는 어떤 것에도 속박 받지 않는다. 그런 것들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내가 하는 일에 상관 마라. 하물며 왕 부인과 왕 아가씨도 동의한 일이다. 어디서 너 따위가 이래라 저래라야.”

“안 돼! 절대 그렇겐 안 돼!”

단예가 기합을 내지르며 손바닥으로 강대력의 몸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안간힘을 다해 흡기공을 펼쳤다.

강대력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코웃음치며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강대력은 몸속의 단전 속의 내기를 하나는 시계 방향으로, 다른 하나는 역방향으로 돌리며 서로 견제하고 잡아주며 조화를 이루었다.

이렇게 조화를 이루며 내기를 회전시키자, 단예의 흡기공으로는 강대력의 내기를 조금도 흡수할 수 없었다.

“당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단예가 크게 당황하며 놀랐다. 강대력은 그저 냉소를 지으며 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온몸의 근육이 불끈 솟아오르더니 단예를 냅다 튕겨내버렸다.

단예가 뒤로 날아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강대력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단예를 보더니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겨우 그 정도의 공력으로 내 진기를 끌어가겠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단예가 익힌 북명신공은 대단한 무공이었다. 그러나 강대력도 아는 무공이었다. 여기에 다양한 신공까지 익혀두었으니 그의 진기는 단예보다 훨씬 강력했다.

단예가 강대력의 진기를 흡수하는 건 마치 모기가 코뿔소의 피를 빨아먹으려는 것과 같았다.

강대력과 단예의 기본적인 실력 차이는 그보다 더 심했기에 말할 것도 없었다.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단예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두 손바닥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일어섰다. 삽시간에 번개 같은 기운이 솟아오르며 강대력을 향해 날아갔다.

“육맥신검?”

강렬한 기운이 터지며 파공성이 일었다. 매서운 기운이 바람을 갈랐다.

강대력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강대력도 똑같이 손가락을 내밀며 방어에 나섰다.

파바밧.

한 줄기 날카로운 지법이 하늘을 갈랐다. 마치 태양이 솟아오르는 듯한 강렬한 지법이 눈부신 빛줄기처럼 날아오는 지법과마주쳤다.

쾅!

두 사람의 기운이 맞붙었다. 강대력의 일양지가 순식간에 깨지고, 반대로 단예의 기운은 다소 약화되었을 뿐이었다. 단예의 육맥신검은 강대력의 몸에 떨어졌다. 강대력은 바늘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엄청난 무공이로군.”

강대력은 나지막이 감탄했다.

단예가 괴성을 지르며 번개 같은 검기를 쏘아댔다. 단예가 기를 쏘아낼 때마다 강대력도 지법을 날리며 대응했다. 기운과 기운이 거듭해서 부딪쳤다.

단예가 뿜어내는 지법은 하나하나가 매서운 검기처럼 응집되어 있었다. 강대력의 일양지를 뚫은 후에도 여력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아마 처음 일격에 당해 피를 토하며 죽어버렸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단예가 상대하는 사람은 강대력이었다. 횡련 공법이 뛰어나고 대력신공의 진기 호체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치명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단예의 육맥신검이 강대력의 몸을 후려쳤지만, 위축시키거나 물리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흥분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강대력의 강인한 신체에 붉은 자국을 남기긴 했지만, 피부를 뚫고 중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강대력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녀석, 보통이 아니군. 구마지가 단예의 육맥신검을 욕심내는 이유가 있었어. 이 육맥신검은 확실히 예사롭지 않은 무공이야. 내 일양지를 능가하고 있어. 확실히 일양지를 9경까지 수련해야 5, 6경의 육맥신검을 상대할 수 있겠군. 지법의 힘을 폭발시키는 기교가 비결인 듯하군. 그리고 기……. 왜 지법을 검기라고 하는 걸까?’

강대력은 약간의 고통과 함께 떨어지는 자신의 혈기를 보며 묘한 흥분을 느꼈다. 강대력은 단예와 대결을 계속 이어 나가며 그 과정에서 불사인법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보려 했다.

하지만 강대력은 단예의 기가 약해진 느낌을 받았다. 단예의 무공은 점차 강대력의 지법에 밀리고 무너졌다.

강대력은 숨을 헐떡이는 단예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멍청한 놈. 내 공력을 흡수하지도 못하더니, 육맥신검으로 나를 쓰러뜨리지도 못하는군. 겨우 이 정도의 실력으로 내 일에 간섭하려고 했나? 어림없지.”

“당신…….”

단예가 눈에 불을 켜고 강대력을 노려보았다. 강대력을 향해 신공을 이어서 펼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팔을 들어 올리려 하면 경맥이 욱신거렸고 몸속에는 내기가 조금도 남지 않았다. 마치 강대력이 전부 뽑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예가 울분을 금치 못했다.

‘이런 멍청이! 신공을 배워봐야, 전력을 다해도 산적 우두머리 하나 제압하지 못 하는데 이게 무슨 소용인가? 만약 형님 같은 막강한 실력이 있었다면, 그래도 사랑하는 여자를 지킬 수 없었을까?’

단예가 괴로워하는 모습에 왕어언이 참지 못하고 그를 말렸다. 왕어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단 공자, 당신의 호의는 감사해요.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나도 알아요. 그러나 지금은…… 나 때문에 무리할 필요 없어요. 당신이 다치는 걸 나도 원치 않아요. 그러니 단 공자. 여기까지만 하고 돌아가요.”

왕어언이 단예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과거 왕어언은 오직 모용복 한 사람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모용복의 마음이 그녀를 떠나갔다고 해서, 그 마음을 단예에게 기댈 수는 없었다.

단예는 왕어언을 사랑했지만, 그녀에겐 이 사랑을 감당할 만한 자신이 없었다. 왕어언은 무의식중에 지금의 단예는 강대력을 절대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왕 아가씨!”

단예가 비통한 마음으로 왕어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강대력은 단예의 앞을 가로막고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만 됐다. 우리 산채에서 사적으로 정을 통하지 마라. 단예, 내가 구마지를 막아 주었지만, 그 이유는 다 네 조상님 덕분인 줄 알아라. 더욱이 네 큰형 교봉의 체면을 생각해줘서 도와주는 것이다. 왕어언을 데리고 가고 싶은 네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 실력으론 어림없다. 왕 아가씨를 만나고 싶으면 실력을 키워서 다시 와라. 그전에는 어림도 없다.”

“크윽…….”

단예는 분한 마음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무언가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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