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이향방과 조우하다
강대력이 굳이 화방에 오른 이유는 플레이어들의 말에 자극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언가 특수한 임무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당나라 공주가 만든 화방에 어떤 고수가 숨어 있고,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아보려 했다. 혹시라도 당나라 공주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훗날 흑풍채의 발전에 큰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산좌천음이 기세등등하게 날뛰었지만, 강대력은 얌전히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껏 강호를 거닐면서 강대력은 자진해서 양보한 적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이 먼저 양보하게 만들었다.
강대력의 냉랭한 태도를 본 산좌천음의 표정이 굳었다.
“흥, 당신 같은 성질머리를 지닌 이가 쉽게 내릴 리 없지. 그저 당신 체면을 생각해서 먼저 선택할 기회를 주었을 뿐이야. 원한다면 본때를 보여주겠어.”
강대력은 입꼬리를 올리며 산좌천음을 비웃었다. 그는 건장한 팔을 휘휘 돌리며 입을 열었다.
“잔말이 많군. 덤벼.”
강대력이 다섯 손가락을 펼치자 팔뚝의 힘줄이 부풀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광포한 흡수력이 발휘되었다.
‘운룡탐조.’
산좌천음은 몸을 훌쩍 날려 옆으로 피하며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쫙 펼쳤다.
파바밧.
강대력이 펼친 막강한 흡기공에 화방 갑판 위에 깔린 널빤지와 양탄자가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산좌천음은 신묘한 신법을 펼치더니 흡력이 가장 강력한 중심부를 이리저리 피하며 가장자리에서 부채를 휘둘렀다. 삽시간에 머리카락 같은 가느다란 은색 실이 소리 없이 날아와 강대력의 온몸을 휘감으려 했다.
“웃기지도 않은 재주로군.”
강대력이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자 운룡의 발톱이 마치 참매처럼 변하며 내리꽂혔다.
광포한 기운은 순식간에 금종으로 변하더니 강대력의 손아귀에서부터 부피가 점점 커졌다. 이윽고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은실이 튕겨 나갔다.
인간 의자를 만들었던 여자들은 맹렬한 전투의 여파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강대력이 대처하는 사이에 산좌천음은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신법으로 코앞까지 달려왔다. 그는 양손을 교차하며 공포의 장력과 진기를 마구 쏟아냈다. 이번 공격은 몹시 빠르고 기이했다.
강대력은 커다란 장법의 기운이 자신의 앞가슴을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도 함께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산좌천음은 장법에 암기를 숨겨둔 것이 분명했다.
강대력은 당황하지 않고 손바닥을 홱 돌렸다. 황금빛 기운이 강대력의 손바닥에서 피어오르며 삽시간에 금종호체로 변해버렸다. 산좌천음의 공격이 강대력의 금종에 부딪치자, 강렬한 반탄음이 연거푸 울려 퍼졌다.
금종호체는 단단한 철옹성 같아서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호체 신공이군!’
산좌천음은 자세를 바꿔가며 다시 장력을 쏟아냈다. 그의 손바닥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검고 음흉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제법이군.”
강대력도 으르렁대며 손바닥을 내밀어 몸속의 뜨거운 기운을 뿜어냈다.
금종호체가 활활 타오르더니 아홉 줄기의 적염룡(赤炎龍) 형태의 기운이 되어, 사납게 울부짖으며 쏟아져 나왔다.
거대한 용 한 마리가 포효하며 산좌천음의 장력과 맞붙었다.
콰쾅!
세찬 강풍이 불고 호수가 출렁거렸다. 호수에 이는 파도로 인해 화방이 심하게 흔들려 당장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았다.
산좌천음은 뒤로 밀려났다. 온몸이 펄펄 끓는 가마솥으로 내리친 것처럼 뜨거웠다. 화상을 입은 듯한 느낌에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내려다보니 피부가 빨갛게 부어있었다.
“엄청난 진기로군.”
산좌천음이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강대력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 같은 음양인을 상대할 때는 강렬한 양기로 상대하는 게 효과가 좋군. 좋아, 어디 계속 덤벼 봐! 이번에는 음기로 상대해주지!”
강대력이 두 손바닥을 빙빙 돌리자 삽시간에 차가운 한빙 진기가 터져 나왔다. 음기는 곧바로 산좌천음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천룡칠식—쌍룡희주(雙龍戲珠).’
강대력의 무공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다. 조금 전까지의 뜨거운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이번에는 얼음보다 차가운 한빙 진기가 공기를 심하게 진동시키며 산좌천음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강대력의 일격이 아직 가까이 오기도 전부터, 산좌천음은 마치 차가운 거미줄에 얽혀 버린 느낌을 받았다. 도망가려고 발버둥 칠수록 점점 조여들 것만 같았다.
산좌천음의 안색이 굳었다.
“……젠장!”
산좌천음은 괴성을 내지르며 억지로 몸속 진기를 폭발시켰다. 그는 왼쪽으로 몸을 날려 위치를 잡은 후 전광석화처럼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더니, 강대력의 일격에 자수를 놓듯이 3차례 검격을 날렸다. 그 반격은 섬세하고 정확했다.
파바밧!
산좌천음의 검이 연거푸 한빙 진기에 부딪혔다. 어느새 칼끝에는 서리가 맺혀 있었다. 안간힘을 다해 고생한 보람이 있어, 강대력이 뿜어낸 진기도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산좌천음이 숨을 돌릴 새도 없이, 갑자기 바닥이 요동치는가 싶더니 웅장한 몸체가 흉악한 기세로 달려왔다.
순간적으로 다가오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남자가 커다란 손바닥을 번쩍 들어 올리자 숨 막힐 듯한 광풍이 펼쳐졌다.
“자, 간다!”
강대력이 양기를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강맹한 기운이 산좌천음을 덮쳤다.
“이런 야만인 같으니라고!”
산좌천음은 손에 든 검으로 강대력의 팔뚝을 힘껏 내리쳤다. 하지만 강대력의 팔뚝이 푸른빛을 띈 핏줄이 터져 나올 듯 부풀어 오르자, 두꺼운 나무조차 단숨에 베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운 검도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튕겨 나왔다.
“세상에, 무슨 놈의 횡련 공법이 이렇게나 단단해?”
산좌천음이 비명 같은 신음을 흘렸다. 왼쪽 팔뼈가 부서지고 손바닥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게다가 경맥이 불에 타는 듯한 고통까지 더해져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산좌천음은 뒤로 물러나며 칼을 거뒀다. 하지만 강대력이 빠르게 따라붙으며 숨을 헐떡이는 산좌천음의 앞가슴을 강타했다.
“커헉…….”
산좌천음은 폐가 타들어 가며 피가 역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새빨간 핏물을 토해내면서도,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것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닌 도망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산좌천음은 소매에서 단단한 밧줄을 꺼내더니 곧바로 높은 대들보에 휘감고 몸을 날려 호수 위로 향했다.
강대력이 그 모습을 보고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도망가려고? 어림없지!”
강대력의 몸에서 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천룡칠식을 펼치며 산좌천음을 빠르게 쫓아갔다.
하지만 그때, 화방의 병풍 뒤에서 암기가 날아들었다. 허공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간 암기는 산좌천음의 허리춤을 정확하게 찔렀다.
산좌천음은 몸이 뻣뻣해진 채 아래로 추락했다. 하지만 그는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호수 위를 밟으며 미친 듯이 달렸다. 어찌어찌 맞은편 기슭에 다다른 산좌천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쳤다.
산좌천음의 허리를 찔렀던 암기는 호수 위에 가볍게 떨어졌다. 황갈색의 공처럼 생긴 무언가가 빙빙 도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복숭아씨였다.
강대력은 호수 위로 올라온 복숭아씨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뼈를 뚫고 경혈을 치는 수법이 예사롭지 않아.”
조금 전 산좌천음은 이것으로 경혈을 맞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경공술을 펼치지 못하고 하마터면 물에 빠질 뻔한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산좌천음은 이혈환위(移穴換位)의 수법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기를 써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향행화방 내에는 고수가 숨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그 고수가 당나라의 공주 이향방이 맞는지 아직 확인할 수는 없었다.
화방의 2층에서 여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 채주께서 내미신 도움의 손길에 감사를 전합니다. 강 채주께서 괜찮으시다면 보답의 의미로 연주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강대력은 그 말에 가볍게 웃었다.
“이건 딱히 도움의 손길이 아니오. 색마 한 명이 주제도 모르고 날뛰었기 때문에 혼쭐을 내준 것뿐이지. 그의 주인인 쾌활왕(快活王)이 왔다면 나 역시 뒤로 물러서야 할 수도 있었겠지만, 고작 색사(色使) 한 놈이 내 앞에서 잘난 척하는 꼴을 참을 이유는 없지.”
차분히 대화를 이어가는 강대력에게 새로운 임무창이 나타났다. 당나라 공주와 연계될지도 모르는 임무가 생기자, 강대력은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화방 2층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 채주께서도 오해하지 마시지요. 우린 화방은 항상 귀빈들에게 예의를 지키며 정중하게 대우합니다. 다만 마음이 음흉하여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을 뿐입니다.”
강대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팔짱을 끼고 말했다.
“보아하니 당신도 산좌천음의 속내를 알고 있었나 보군. 산좌천음이 쾌활왕을 위해 미녀들을 물색한다는 소문은 있으나,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지.”
강대력은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안내창을 확인했다.
[호감도 취득]
이향방의 호감도 +200
- 산좌천음을 물리치며 향행화방의 주인 이향방의 호감을 얻었습니다.
- 이향방의 호감도가 「우호」에 도달했습니다.
[임무 - 이향방과 조우]
- 상세 : 향행화방은 당나라 공주 이향방이 지루한 궁중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만든 것으로, 천하제일의 취생몽사(醉生夢死) 불꽃놀이 장소로 떠올랐습니다. 화방 안으로 들어가서 이향방을 만나십시오.
- 보상 : 불명. 더 자세한 보상을 알기 위해선 이향방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강대력은 생각에 잠겼다.
‘임무 보상이 뭔지도 모르는데 이향방을 만나라고?’
강대력은 남녀 간의 애틋한 정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당나라의 공주였다. 만약 이와 같은 권세가와 관계를 맺으면, 산채에도 조정의 사람이 생기는 셈이니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내 시중을 바라는 걸까? 설마 발 씻던 물까지 마시라고 한다던지? 그런 건 절대 안 하겠지만,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라도 들어보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소문을 듣고 강가로 한걸음에 달려와 있었다. 강대력은 그들을 주시하다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강대력은 금배대환도를 등에 메고 머리를 쳐든 채 기세등등한 걸음걸이로 화방 안으로 걸어갔다.
각기 다른 기품을 지닌 여자들이 일렬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녀들의 손은 일제히 계단으로 향했다.
“어르신, 이쪽으로 오시지요.”
강대력은 그 모습과 계단을 보고선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창의력이 넘치는 화방이야. 황당하군.”
어여쁜 미녀들이 가로로 누워서 만든 계단이었다. 그 여인들은 지극히 고상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건 그야말로 금시초문이었다. 매사에 대범한 강대력도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다. 다른 남자들 같으면 미녀들이 다치기라도 할까 봐 조심조심 걸었을 테지만, 강대력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강대력의 발밑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부장적인 남자였다면 아마 인생의 절정에 이르렀다는 정복감을 느낄지도 몰랐다.
“흥, 조금 힘드니 요령을 피우는구나.”
하지만 강대력은 말랑말랑한 여자들의 몸을 덤덤하게 밟으며 지나갔다. 처음에는 약간 당혹감이 묻어났으나, 일곱 걸음이 지나자 그의 걸음은 언제나처럼 야성적이었다. 강대력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화방 2층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