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세력 구도를 고찰하다
강대력은 하주로 향하면서 강호 교류방과 세력 관련 정보를 꾸준히 확인하며 흑풍채의 발전 상황을 살폈다.
흑풍채는 회주 전체의 녹림을 평정한 후, 7류 세력으로 거듭나면서 종무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흑풍채는 쌍룡방과 낙양의 분타까지 합치면 약 20개의 분타가 있었다.
흑풍채가 끌어들인 플레이어만 해도 칠천여 명에 달했다. 거기에 산적 NPC까지 합치면 무려 2만 명에 육박하는 거대 세력이었다.
“지금 산채의 구성원을 보면 내 손에 꽉 잡힌 현명이로와 쌍룡의 실력이 절정 고수 수준에 이르렀고, 그 다음에는 무열의 실력이 그나마 봐줄 만해. 나머지 만인랑, 흑호, 장유아, 무운홍, 화절기 등이 내 무공을 전수 받긴 했지만, 아직 큰 세력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하지만 이정도 인물들이라면 분타를 관리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지.”
지금의 흑풍채는 초기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다.
그때 강대력은 도대금을 상대하기 위해서 다양한 잔꾀를 부려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의 흑풍채에는 도대금에 버금가는 인물이 흑호, 화절기, 만인랑 등으로 적지 않았다. 이들은 작은 마을이나 세력을 제패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 밖에 칠천여 명의 플레이어 중 내기경에 이른 플레이어가 삼백 명이나 되었고, 실력이 만인랑에 버금가는 NPC도 6명이나 있었다.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내기경에 도달하고 내가 간소화해서 보급한 절학까지 더해지면, 앞으로 강호를 돌아다니는 데에 큰 불편함은 없겠지. 슬슬 적절한 실력을 갖춘 플레이어에게 내 기억 속의 장소에 가서 자원을 탐색하는 임무를 배포해도 될 것 같군.”
강대력은 실력이 있는 플레이어들을 이용하여 더 많은 정보와 자원을 얻을 계획이 있었다.
강대력에게는 종무 세계의 미래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이 중에는 아직 이 세계에서 발견되지 않은 좋은 지역과 물건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강대력이 마응을 타고 다닌다고 해도 혼자의 힘으로는 찾아 나설 시간과 여력이 없었다.
그렇다면 부하들을 동원하는 것이 가장 효율 좋은 방법이 될 터였다.
“그러려면 산채의 플레이어들을 잘 키워야겠지.”
흑풍채에 실력이 외기경에 달한 플레이어는 총 여섯 명이 있었다. 그중에는 고색이인, 중원묘인봉과 화개견홍이 포함되어 있었다.
화개견홍은 천하회의 작은 대장이 되어 있었다. 천하회에 잘 녹아들어 플레이어와 NPC들의 신망을 얻었으며, 지금은 문추추의 수하가 되어 일하고 있다고 했다.
중원묘인봉은 이미 묘인봉으로부터 배움을 마쳤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묘인봉(苗人鳳)과 호일도(胡一刀)의 비무에 참여하고 있었다.
강대력은 사람을 시켜 중원묘인봉에게 좋은 장비와 단약을 보냈다. 그중에는 당문의 암기와 소차차에게서 빼앗은 쉬독주(淬毒珠)도 있었다.
중원묘인봉에게 눈치껏 행동하고 전귀농(田歸農) 등을 경계하라고 조언하는 한편, 묘가검법(苗家劍法)과 호가도법(胡家刀法)을 배운 후 산채로 돌아와 힘을 보탤 것을 당부했다.
고색이인은 한빙진기와 혈전십식을 익힌 후 정의를 데리고 천하를 떠돌아다녔다. 고색이인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마적(馬賊)이 되었다.
고색이인은 흑풍채의 명성을 앞세운 덕분에 적지 않은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초기의 기틀만 갖췄을 뿐 완전히 자리 잡지는 못했다.
이 세 명 외에도 외기경을 돌파한 플레이어가 세 명 더 있었다. 이들과 같은 시기에 들어온 이검봉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아직 외기경에 들어서지 못했지만, 명성과 전력은 이들 여섯 명에 밀리지 않는 플레이어도 하나 있었다. 흑풍채의 친위대의 일원인 녕숙이었다.
녕숙은 대량의 수위점과 잠재점을 모아서, 주로 추우검법과 경공술 안행공, 벽호유장공 등의 공법을 수련하는 데 사용하였다.
녕숙은 산채의 플레이어 중에서 경공술이 가장 뛰어났다. 추우검법은 이미 6경의 경지에 들어섰으며, 조금만 더 성장한다면 검의를 수련할 수 있었다.
비록 녕숙의 경지는 아직 내기경에 머물러 있었지만, 전력으로만 따지면 이검봉 등 외기경 고수들도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녕숙의 실력이 워낙 뛰어난 탓에 흑풍채의 일부 플레이어들이 비방하기도 했다. 녕숙이 겉으로는 도도한 척하지만, 암암리에는 흑풍채주의 연습 상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잠재점과 수위점을 축적할 수 있었고, 나아가 무학의 경지를 끌어올렸다는 식의 비방이었다.
하지만 강대력은 이번 비방에 대해 코웃음 쳤다. 녕숙이 무공을 익히는 데 얼마나 진심이고 집중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녕숙도 강대력처럼 무공 바보였다. 무공을 위해서는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하고 근면 성실했다. 벌써 추우검법을 6경으로 끌어올린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은가.
그래서 경지가 앞선 외기경의 여섯 명 이상으로 녕숙에게 거는 기대감이 컸다.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이라면 강대력의 도움 없이도 흑풍채 최강의 플레이어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강대력은 마응의 등에 앉아 손가락을 두드리며 사색에 잠겼다.
“녕숙과 이검봉 같은 핵심 부하들에게 흑풍성양공의 완전판을 전수해야겠군. 그 후에 실전 경험까지 갖추면 빠르게 실력이 향상될 수 있을 거야.”
강대력은 양가죽으로 된 지도 한 장을 펼쳤다. 성조의 30여 개 주(州)가 새겨진 지도였다. 완전한 지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얼핏 봐도 광활한 국토를 자랑했다. 이 가운데 회주는 면적이 굉장히 작은 주에 속했다.
강대력이 회주와 운주, 강남을 짚으며 사색에 잠겼다.
흑풍채가 7류 세력으로 발전한 지금, 더 큰 성장을 거두려면 회주를 넘어서야 했다. 다른 커다란 주로 쭉쭉 세력을 뻗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대력은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회주 일대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동안 다른 거대 세력들이 눈독을 들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흑풍채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건라산성의 건라도 마찬가지였다. 강대력이 회주의 녹림을 통일한 이후에야 사람을 보내 회주를 탐색했다.
강대력이 흑풍채를 일궈 회주의 녹림을 통일한 데는 이러한 운도 한몫했다.
강대력은 조만간 송나라의 관료들이 자신을 찾아올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었다.
지금의 흑풍채를 생각한다면 강대력은 웬만해서는 그들과의 충돌을 피하려 했다.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송나라일지라도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무력을 동원해야 할 때가 온다면 강대력도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성조에는 수많은 제후국이 있었으나, 그중에 국정이 혼란스럽지 않은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모든 제후국에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의 입지를 다지는 문벌과 도적들이 수없이 많았다.
심지어 어떤 제후국은 문벌과 도적들의 힘을 이용해 주변 나라의 국력을 약화시키기도 했다.
제후국들끼리 서로 견제하는 것은 당연하다시피 하였으며, 자원과 이익을 놓고 심하게 충돌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벌들은 적극적으로 제후국의 앞잡이가 되어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강대력은 이러한 국면이 나타난 원인이 성조에 있다고 여겼다.
성조의 인황(人皇)이 천하를 통일하고 있었다. 정도(正道)와 마도(魔道)의 강자들이 힘을 합쳐도 천자신권을 감당하지 못하고 제압당했다. 하지만 성조가 이들을 완전히 흡수하여 통일하지 않고 제후로 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강대력은 이 모든 것이, 성조의 인황이 무언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조의 인황은 천하를 통일한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폐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을 오랫동안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한 걸음 물러서는 방식을 택했다. 그것이 바로 제후를 봉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조의 의도는 명확했지만, 그에 맞서려는 세력은 단 하나도 없었다. 성조에 맞서면 그 결과는 박살이 나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성조가 주는 것을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받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주변의 제후국들에게 먹힐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제후국들 사이에는 늘 전쟁의 마찰이 있었고, 각 국내에서는 문벌이 수없이 일어났다.
이렇게 해서 지금의 구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강대력이 보기에 이것은 성조 인황이 이루고자 했던 목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제후국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준 후, 자기들끼리 물고 뜯고 싸우게 하는 것. 그러면 인황은 자연스레 뒤로 물러나고, 제후국들은 조공을 바치며 성조를 봉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황은 성조가 당초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리라. 그렇게 힘을 길러서 언젠가는 진정으로 천하 통일을 이루고 모든 제후국을 분쇄한 후에 강호 무림을 탄압할 것이다.
“내 생각이 정말 맞는지는 알 수 없지. 하지만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으니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야. 제후국이 안정적이지 못하고 서로 물고 뜯는 구도가 시종 깨지지 않고 있어. 성조가 너무 강한 것도 있겠지만, 물러서려는 제후국이 없기 때문이야. 물러서는 순간 잡아먹힐 테니까. 이런 국면을 깨려면 변수가 필요하겠지. 제후국과 성조의 관계를 깨버릴 수 있는 변수. 과연 누가 그 변수가 될 수 있을까?”
강대력은 멀리 하주를 바라보며 야심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전생에는 4대 세가가 그 변수가 되었지만, 지금은…….”
***
하주의 일월신교 거점 흑목애에 마응의 울음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강대력은 우람한 몸을 허공으로 훌쩍 날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려앉은 강대력은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한 건물을 눈여겨보았다.
그 건물은 마치 그림 같았다. 고요하면서도 시적인 느낌을 주었고, 강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묘한 유유적한 인상이 담겨 있었다.
스스슥.
바람에 잡초가 흩날리는 듯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대력은 귀를 쫑긋 세웠다. 어디선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강대력의 옆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강대력은 쌍검을 차고 나막신을 신은 남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상비(草上飛)인가? 경공술이 대단하군.”
그 남자가 고개를 숙이더니 서툰 말투로 말했다.
“원비일월(猿飛日月)이 흑풍채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교주님께서 내각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강대력은 조금 놀라며 대답했다.
“원비일월이라고? 동영(東瀛, 일본) 사람인가?”
강대력은 이전에 위주 지역에서 원화비라는 일월신교의 분타주를 격살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원화비라는 사람은 눈앞의 원비일월과 인연이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알아서 동방불패를 만나러 갈 테니, 먼저 내려가시오.”
강대력은 손을 흔들며 말하고는 몸을 돌려 맞은편 건물로 향했다.
“네!”
원비일월이 고개를 들어 멀어져가는 강대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검은 망토를 흩날리며 동방불패의 거처로 향하는 강대력의 거대한 몸집에 약간 놀란 눈치였다.
원비일월은 그렇게 잠시 강대력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초상비를 시전하며 빠르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