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25화 – 우리 아들이 저렇게 생겼었나?
버스킹 당일이 되었다.
동하는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밖에는 차를 타고 온 지아가 기다리는 중이었다.
오늘은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날씨가 영 안 좋네요.”
“눈 오는 날 사람들이 많이 올까요?”
“글쎄요. 어쩌면 취소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싸라기눈도 아니고 느릿느릿 내리는 함박눈이었다.
벌써 세상은 하얗게 물들어, 자동차의 통행까지 방해하는 중이었다.
동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런 날, 모여준 사람들을 위해 더 좋은 노래를 불러줘야 하지 않을까 하고.
툭툭, 기타 케이스에 묻은 눈을 털어내고 차 트렁크에 밀어 넣었다.
오늘이야말로 정말 세상이 단조로워졌다.
하얗게 내리는 눈은 낭만적이기도 했지만, 세상을 근심·걱정으로 묻어버리는 것이기도 했으니.
곤경에 처한 수많은 사람이 생기겠지.
그러니, 오늘 같은 날 더 잘해야 할 것이다.
어려운 발걸음을 해 주신 소중한 사람들일 테니까.
“동하씨! 얼른 타요! 어후, 진짜 많이 내리네요!”
“얼른 가시죠.”
“으으, 오늘 같은 날은 야외에 있으면 메이크업도 전부 무너지고, 헤어도 무너지고, 음향 장비에도 안 좋은데 말이에요.”
당연한 이야기였다.
기본적으로 물은 기계에 안 좋았으니까.
뿐만 아니라 과한 습기는 기타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나무가 죄다 뒤틀릴 테지.
그럼에도 동하는 오늘 있을 무대를 포기하기 싫었다.
모자란다고 욕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고 지적해도 마찬가지.
약속을 했으면 지킬 것이고, 보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최선을 다해 노래할 것이다.
미련하지만 우직했던 동하의 신념이기도 했다.
지아는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는 동하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컨디션은 어때요?”
“······아주 좋아요.”
“오늘, 그 노래 들을 수 있는 거죠?”
“네.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지아는 가볍게 웃고는 조심스레 차를 몰았다.
다행히 일기예보는 맞아떨어졌고, 지아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체인을 감고 왔다.
거기다 체인 스프레인가 뭔가 하는 것도 한 통을 다 썼다.
동하가 진심이었으니, 자신 역시 진심으로 해야 했으니까.
두 사람은 일정대로 청담에 있는 샵으로 향했다.
이제는 제법 친해진 디자이너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녀 역시 오늘 버스킹을 보러오기로 했는데, 벌써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
“어휴,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취소하는 게 어때요?”
“그럴 수 없죠.”
“그래요, 원래 악조건에서도 잘하는 게 진짜 프로거든요.”
열심히 붓을 놀리며 말하는 선생님.
그녀 역시 동하의 욕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언가에 미쳐있다 보면, 남들이 말려도 강행하는 경우는 제법 흔한 일이었으니.
굳이 말려봐야 소용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 동하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으니, 욕심 낼만 하지.
조금 유명해진 이들이 나태해지는 건 정말 많이 일어난다.
조건이 조금만 안 좋아져도 핑계 대며 안주하는 이들이 정말 수도 없이 많았다.
비단 연예계뿐만 아니라, 사람이란 족속이 전부 그랬다.
적어도 디자이너가 본 사람들은 그랬다.
반면, 동하는 이런 날일수록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정말 좋은 자세니까, 나중에도 지금처럼 해 줘요.”
“그럴 생각입니다.”
“좋아요. 자, 다 됐다. 무너지지 않도록 픽서도 듬뿍 뿌렸어요. 메이크업 지울 때도 제가 해드릴게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디자이너 선생님이 웃었다.
그녀가 왜 청담에서 일류가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내 고객인데, 끝까지 책임져야죠. 우리 동하씨 피부 상하면 안 되니까.”
“노래 열심히 부를게요.”
“알았어요, 지아씨. 끝났습니다.”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업무를 보고 있던 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했다.
함박눈이 내리는 바람에,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꽤 걸린 것.
그래서 지아는 특단의 조처를 하기로 했다.
“동하씨. 차 타고 가기엔 좀 늦을 것 같은데 전철로 이동해도 될까요? 하······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빨리 올 걸 그랬어요.”
“새벽 네 시부터 일어나셨잖아요. 전 괜찮아요. 선생님은요?”
“저야 익숙한 일이예요. 가시죠.”
그렇게 해서, 세 사람은 각종 장비를 덕지덕지 가지고 전철에 올랐다.
혹시 몰라 동하에겐 마스크를 쓰게 했고, 수정 화장 준비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착한 홍대.
지아는 열심히 관련된 사람들과 톡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체크했다.
음향 장비는 삼성역으로부터 오니, 자신들보단 상황이 낫겠지.
세 사람이 밖으로 나서자, 수많은 사람이 우산을 쥐고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제아무리 함박눈이 내려도 홍대에서 거니는 젊음의 열기는 막을 수 없나 보다.
“이런 날씨인데도 사람은 많네요.”
“다행이에요. 관객은 많겠어요.”
“얼른 가죠. 앞에 예약해두었던 사람은 취소했대요.”
“그러면 일찍 시작할 수 있나요?”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련된 사안은 엔터 쪽에서 미리 허가를 맡아 둔 상황.
동하가 메이크업을 받고 있을 때, 열심히 통화한 이유이기도 했다.
“얼른 가요.”
세 사람은 펑펑 내리는 눈을 밟으며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 * *
“저기, 천막 쳐!”
“엠프 문제 없지?”
“네. 괜찮아요.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틸 겁니다.”
수많은 사람이 현장에 나와 고생하는 중이었다.
동하는 그 모습을 보며 얼른 몸을 돌렸다.
코가 찡할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이런 날에도 나와 고생하는데, 작게라도 보답하는 게 맞겠지.
편의점 온장고에서 음료들을 모조리 꺼냈다.
배를 채울 간식과 간단히 먹을 주전부리들도 가득 담았다.
그리고 계산대 앞에 있는 핫팩까지 전부 추가했다.
마침 바구니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거, 전부 계산해 주세요.”
“네.”
삑삑, 바코드 찍는 소리가 길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동하는 한쪽에 꽂혀있는 우산까지 모조리 꺼냈다.
머리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 이제는 백발처럼 보이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고집부린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우산을 와르르 올려놓으니, 직원이 당황한 것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이것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
“아······네.”
“여기, 이걸로 해 주시고 영수증은 버려 주셔도 돼요. 잠시만 바구니 빌리겠습니다.”
“저, 혹시 박동하님······맞으시죠?”
“아, 네 맞습니다.”
편의점 직원은 아예 우산 비닐을 먼저 벗기고 바코드만 쏙쏙 골라 찍었다.
동하는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는 빠르게 우산을 들고 나갔다.
그가 어딜 갔는지 찾고 있던 지아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한 아름 들고 있던 우산을 받아든 그녀가 황급히 물었다.
“이게 다 뭐예요?”
“저분들 고생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기가 좀 그래서요. 혹시 우산 없이 노래를 듣고 있을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샀어요.”
“이야······우리 동하씨, 완전 천사네요. 금방 다녀올게요!”
“부탁드릴게요.”
지아는 얼른 우산을 펴서 작업하고 있는 이들에게 나눠주었다.
2인 1조로 나누어 우산을 들고 작업할 수 있었으니까.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간 동하는 바구니까지 통째로 빌려 따듯한 음료와 핫팩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작업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일일이 인사하며 음료와 핫팩을 나눠주었다.
자신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이런 건 원래 전문가들이 하는 거라며 말렸던 이들.
자신의 고집 때문에 눈을 맞아가며 고생하는 이들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아유, 감사합니다. 이런 게 저희가 할 일인데요, 뭐.”
“이 정도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폭우 내릴 때도 많이 해봤어요. 하하!”
밝은 얼굴로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
동하는 더욱 마음을 굳게 잡았다.
이렇게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노래를 들려줄 순 없었으니까.
그렇게 한 바퀴 순회공연을 하고나니, 준비가 얼추 끝났다.
시계를 보니, 오후 네 시 반.
지금부터 음향 체크와 함께 본격적인 준비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이전 공연이 취소되어서 참 다행이랄까.
동하는 커다란 파라솔 아래로 들어갔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마이크 테스트와 음향 체크가 시작되는 사이, 관중들이 속속 모였다.
지아는 이런 눈을 대비하지 못한 이들을 향해 우산을 건네주며 열심히 매니저의 소임을 다했다.
그러다 그녀는 SS엔터 식구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하은과 함께 몇몇 연습생이 보였다.
성민 역시 눈이 오는 날임에도 동하의 노래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한 것.
동하는 제일 앞으로 다가오는 이들을 눈에 담으며 미소를 지었다.
작게 손을 흔드는 하은과 연습생들.
“어우 추워.”
“여기, 핫팩 좀 챙겨요. 동하씨가 다 샀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꼭 들어보라고 하셨거든요.”
“싫다는 거 억지로 끌고 오느라 어휴······.”
성민이 장난을 담아 말했고 연습생들은 경악했다.
그들이 지아를 바라보며 완강하게 부인했다.
“아녜요! 언제 그랬어요!?”
“맞아! 오히려 가고 싶다고 그랬는데!”
“저희 동하 선생님 팬이거든요!?”
성민이 씨익 웃으며 아이들에게 말로 얻어맞았다.
추운 날씨에도 꼭꼭 차려입고 천진난만하게 찾아온 아이들.
지아는 그들을 바라보며 눈처럼 새하얀 미소를 지었다.
엔터의 소중한 식구들이기도 하니, 따스한 음료 하나씩 챙겨주는 건 덤이었다.
그렇게, 한창 준비 중인 동하의 버스킹.
지아는 카메라를 꺼내, 라이브 방송까지 준비했다.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그녀에게 향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네? 무슨 일이시죠?”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웬 삼인방이 등장했다.
정말 덩치 큰 남자 한 명.
묘하게 동하를 닮은 여자 한 명, 그리고 옆에서 웃고 있는 여자 한 명.
동하를 닮은 여인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동하 공연하는 곳인가요?”
“아 네, 맞아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음료랑 핫팩 있어요.”
“감사합니다. 아들, 이거 받아.”
“난 안 추워. 엄마 써.”
모자지간인가?
지아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핫팩을 건네준 뒤 물었다.
“혹시, 동하씨 지인이신가요?”
“아, 엄마입니다.”
부드럽게 웃으며 답한 동하 어머니, 지서.
답을 들은 지아의 눈과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리고는 꾸벅, 폴더 인사를 드렸다.
“앗! 아, 안녕하십니까! 동하씨 매니저 이지아라고 합니다!”
“아, 매니저 분이시군요. 부족한 아들 좀 잘 부탁드려요.”
“부족하다뇨! 아닙니다. 이쪽으로 모실게요.”
가족이라면, 응당 좋은 자리를 내어드려야 하는 법.
우산을 쓰지 않고도 눈을 피할 수 있는 곳.
그리고 동하의 노래가 잘 들리면서도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길을 걸어가던 중, 지서의 가게 주인 미경이 동하를 바라보곤 수군댔다.
“이야, 언니. 아들 진짜 잘생겼다. 연예인 해도 되겠는데?”
“아유, 아니에요. 동하 걔가 얼마나······.”
지서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동하를 바라보며 말문이 턱 막혔다.
아니······우리 아들이 저렇게 생겼었나?
손을 흔들며 미소짓고 있는 동하의 모습은, 영락없는 연예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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