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70화 - 정식 발표, 그리고 신드롬
이유와 동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뒤풀이까지 가지게 되어, 이유가 재미 삼아 신청했다가 당첨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술잔을 기울이며 유쾌하게 말했다.
동하의 팬 미팅은 무척 재밌었다.
모르긴 몰라도 자신 말고도 재미 삼아 신청해 본 이들은 꽤 있을 테니까.
이유는 그런 말을 해 주었다.
“내가 운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벌써 SNS도 난리 났네요.”
“설마 당첨될 줄 몰랐어요?”
“당연하죠. 경쟁률이 얼만데. 그때 컵라면 먹고 있었는데, 다 엎어 버릴 뻔했어요.”
“오…… 여가수도 컵라면 먹는구나.”
“고기도 좋아하고 치킨도 잘 먹거든요?!”
동하는 한솔과 하은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사람은 지금 몸도 만들고 무대 활동을 위해 식이 조절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것에 비하면, 이유는 제법 자유롭게 먹는 것 같았다.
자신의 말로는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나?
“이거, 정말 잘 들을게요. 평생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아, 소장용으로 하나 더 드릴까요?”
“오, 정말요?!”
동하는 앨범 하나를 더 내밀었다.
비닐도 뜯지 않은, 완전한 새것이었다.
이유는 냉큼 앨범을 받아 들고 밝게 웃었다.
그러고는 동하에게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그녀도 받은 만큼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이제는 이유가 동하에게 떡밥을 줄 차례였다.
무척 바쁘고 고된 일정이 기다리고 있을 터다.
그러니, 잠시만이라도 쉬는 일정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마침 그녀가 제안받은 예능이 있으니, 그곳에 출연한다면 어떨까.
“제가 예능 하나를 나가는데요, 어떤 콘셉트냐면 힐링? 휴식? 그런 거예요.”
“좋겠네요. 시골에서?”
“네. 거기 유명한 선배님들도 종종 놀러 오시는데, 시간 나시면 출연해 보실래요? 며칠 휴가 온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흠…….”
옆 테이블에서 듣고 있던 지아가 냉큼 나섰다.
다양한 연예인들과의 인맥, 그리고 재충전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느꼈으니까.
“그거 혹시, 민박집이죠?”
“네, 맞아요. 효인 선배님이 하시는 거.”
“동하 씨, 무조건 참여하세요. 얻는 게 아주 많을걸요?”
“오…… 그 정도예요?”
“그럼요! 1세대 전설인 분이신데.”
화끈한 성격에 아름다운 외모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연예인.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연예인.
지금은 TV에 간간히 얼굴을 비치고 있는 것이 다지만, 그녀가 나왔다 하면 유행이 바뀔 정도로 대단한 영향력을 지녔다.
전설.
지금 동하도 충분히 그런 길을 걷고 있지만, 이미 완성된 전설과 비교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판이 커졌고 체계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힘든 것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그 영향력이란, 존재 자체만으로 그 시대를 이끌 수 있는 것.
효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연예계가 지금보다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갈 때 홀로 전설을 만들어 낸 사람.
그 당시 활동했던 이들 중 오롯이 연예계, 그것도 가수로 남아 있는 이들은 드물었다.
효인은 얼마 전 앨범까지 발표했을 정도로 현역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네! 동하 씨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요. 휴가 겸 쉬다 오세요.”
“그럼 PD님에게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어차피 당분간 활동은 한국에서 할 테니까, 괜찮을 거예요.”
“좋아요. 그럼 PD님이 연락드릴 거예요. 어…… 팀장님한테?”
지아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무조건 이 계약을 성사시킬 의무가 있었다.
왜냐고?
‘나도 휴가 가고 싶어! 나도 이효인 님 보고 싶어!’
그건 아주 작은, 아니 조금 커다란 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동하의 첫 팬 미팅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당연히 온갖 기사와 후기가 쏟아진 건 두말할 것 없는 사실이었고.
* * *
“으아아아아-! 끝났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일차 컨펌 보내겠습니다.”
“그래.”
이창식 감독은 몇 날 며칠을 밤새워 일하는 타입이었다.
한번 꽂히면 완성할 때까지 쉬지 않는, 전형적인 폭주 기관차 타입.
덕분에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죽어 나갔지만, 다들 불만은 없었다.
언제나 최고의 결과로 보여 주었고, 무엇보다 받는 돈이 짭짤했으니까.
거기다 자기 혼자 밤을 새우고 있으면 옆에서 도와주는 것뿐이지, 철야와 야근을 강제하진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팀워크는 그 어떤 회사보다 끈끈하다고 자부했다.
완성된 작품 역시 항상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했고.
지금, 그 결실이 눈앞에 보였다.
“메일 보냈습니다.”
“좋아, 다인 씨는 일 처리가 기가 막히게 빠르니까, 바로 답장이 올 거야.”
“잘됐으면 좋겠네요.”
“잘될 거다. 안 될 수가 없는 작품이잖아.”
팀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하, 그리고 자신들의 작품.
안 되는 게 더 이상한 뮤비였다.
약 5분 정도가 지나자 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귀사의 노고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수정 없이 최종본으로 채택하겠습니다.]
[다음 의뢰도 잘 부탁드립니다.]
“와아! 왔어요! 한 번에 통과!”
“크으, 역시 SS 엔터는 시원시원하다니까?”
보통 소속사에서 쓰는 제작팀도 있었지만, SS 엔터와 이창식 감독과는 인연이 제법 깊었다.
하청과 동업, 그 어딘가에 속해 있달까.
다인이 프로듀싱을 했을 때부터 직접 연을 튼 사이였다.
끈끈한 전우 같은 느낌이겠지.
그녀도, 그도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
회사가 끼어 있고, 이제는 구두로 승낙하기엔 너무 위치가 올라가 버려 형식을 갖추는 것뿐.
어쨌든, 다인 역시 만족한 것 같으니 이제 앨범의 최종 마무리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나저나, 앨런이라는 가수가 같은 시기에 앨범을 발표한다고 했었지?
“어떻게 되려나.”
이창식 감독은 침대에 널브러진 뒤에 흐느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앨런 역시 홍보와 사람 모으기에 힘쓰고 있는 것 같던데…… 재미있는 매치가 되겠다 싶었다.
* * *
북미에서 앨런의 영향력은 정말 컸다.
그는 기타의 천재, 그리고 라이브 공연마저 완벽하게 소화하는 가수로 알려져 있었다.
착실하게 쌓아 온 인지도는 곧, 탄탄한 팬층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앨런 역시 우습게 보지 못할 사람이 바로 동하였다.
오늘, 그는 한 영상을 접할 수 있었다.
항상 챙겨 보던 유튜버.
이제는 한 시즌 동안 경쟁자가 되어야 할 동하의 영상이었다.
딱히 긴 영상도 아니었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걸음.
칙칙한 잿빛 세상.
그 위로 흘러나오는 음악.
[The Salvation]
[구원救援]
“와 씨, 이걸 어떻게 이기지?!”
“앨런. 그냥 지금이라도 연기하는 게 어때?”
“아아아니! 그럴 수 없지. 남자가 못 먹어도 승부는 봐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2등도 잘하는 거거든?”
“그렇긴 한데…….”
혹시 몰라, 또 같은 장르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함께 인기를 얻게 될지.
아니면 구원의 티저만큼 본 노래가 별로일 수도 있겠지.
앨런은 희망을 품으려 마지막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동하는 처음엔 한국에서 활동한다고 했으니,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것이다.
* * *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드디어 앨범 발매일이 다가왔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 된 석환은 새벽부터 나가, 앨범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친구들이 왜 남자 가수 앨범을 사려고 하느냐며 반쯤 장난으로 놀렸지만, 그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
26살.
이제 막 돈을 모으기 시작한 그는 큰 사기를 당했다.
그것도 자신이 아닌,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요즘 큰 이슈였던 가상 화폐 시장에 뛰어들었고, 큰 재미를 보셨다.
그렇게 모은 자산이 수백억.
하지만, 그 모든 돈이 날아간 것은 딱 일주일만이었다.
아버지는 실의에 빠져 매일 술만 마시며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깟 숫자가 뭐라고, 그렇게 달려들었던 것인지.
‘웃긴 건, 그 계좌에 있던 돈들은 우리가 만져 보지도 못했다는 거야.’
허황된 꿈이었을까.
아니, 아버지는 분명 다 잘되려고 했던 거겠지.
세상에 실패하고 싶은 이가 어디 있을까.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후 준비를 위해, 사업의 번창을 위해, 개인의 안녕을 위해 투자했다.
누구는 말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꺼냈지만, 아버지는 몇 번이고 투자를 감행했고 성공했었다.
그런 수완을 가지신 분이, 단 한 번의 실패로 모든 열정을 잃었다.
그럴 때 나타난 것이 바로 동하의 노래.
티저를 보자마자, 그는 꼭 아버지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옛날, CD가 들어가는 자동차를 타시는 아버지를 위해서 꼭 사드리고 싶었다.
‘4월인데 새벽은 아직도 춥네.’
카디건을 챙겨 온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이겨 내며 매장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슬슬 다리가 아파 왔지만, 괜찮았다.
조금 앉아 있으면 될 일이었으니까.
그때, 작은 승합차가 근처에 도착해, 사람들이 내렸다.
SS 엔터, 그리고 팬클럽과 동하가 준비한 봉사 활동의 일환.
그들은 앨범을 사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따듯한 음료를 건네주었다.
“이거 받으세요. 동하 팬클럽에서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남자 손님분은 엄청 드문데, 저희 오빠 앨범을 구매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께 선물로 드릴 거라서요.”
팬클럽에서 나왔다는 이들은 근처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주변을 정리했다.
쓰레기를 줍고 크게 떠드는 이들에게 자중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동하는 또다시 선행을 쌓아 가고 있었다.
사실 이건 동하가 제안한 것이 아닌, 팬클럽 회장인 영서가 제안한 것이었다.
‘동하 님. 앨범 발매일에 맞춰서 따듯한 음료랑 간단한 인터뷰를 하는 건 어떨까요? 아마 새벽부터 나와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네. 그러시죠.’
영서가 제안했고 동하는 간단하게 승낙했다.
그렇게 투입된 이들.
이들은 페이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나선 이들로, 훗날 동하가 콘서트를 할 때 초청해 줄 사람들이기도 했다.
물론, 이건 사전에 합의된 내용이 아니긴 하지만.
그렇게, 해가 뜨고 매장의 문이 열렸다.
한 사람당 최대 구매 개수는 두 장.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양이 팔려나갈 것을 우려한 음반 매장은 재고를 넉넉하게 쌓아 두기로 했다.
“결제되셨습니다. 여기, 브로마이드랑 굿즈도 받아 가세요.”
“감사합니다.”
여동생이 동하를 좋아하니 브로마이드는 선물로 주면 되겠지.
하나는 그냥 소장용으로 놔둘 생각이었다.
구원.
이 노래가 진짜 아버지를 일으켜 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석환은 뭐라도 할 생각이었다.
이대로 무너지기엔 아버지가 이뤄 놓은 것들이 아직 많았으니까.
이제 곧 환갑.
인생의 절반을 살았지만, 아직 남은 절반이 있지 않은가.
‘나, 그리고 온 가족이 힘내면 반드시 재기할 수 있을 거야.’
그는 앨범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 매장이 있어, 곧바로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피곤했지만 괜찮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이곳에도 빨간딱지들이 붙겠지.
‘그래도 아직은 아니야.’
집 안은 고요했으며 엉망이었다.
하지만, 아직 아버지의 보물 1호인 CD 플레이어는 남아 있었다.
오래전에 사셨지만, 아직도 음질이 빵빵한 고급 플레이어.
석환은 앨범을 조심스럽게 뜯어, CD를 집어넣고 노래를 재생했다.
[구원]
그 타이틀이 적힌 앨범 재킷을 하염없이 쳐다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