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74화 - 왜 항상 그들인가?
동아시아엔 크게 세 개의 국가가 있다.
가장 큰 중국, 섬나라인 일본, 그리고 한국.
이 세 국가는 가까이 있었기 때문일까, 정서적으로 뒤죽박죽 섞인 것이 특징.
특히 중국은 주변에 적이 많은 국가 중 하나였다.
오늘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만 해도 그랬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어느 유튜버가 제작한 동영상.
그리고 포털 사이트의 기사.
한국에 있는 팬들이 분노하기에 충분한 기삿거리였다.
<중국계 미국인 샹원, ‘박동하는 선동꾼’>
<빌보드 1위도 한순간, 중국계 미국인의 비판>
당연히 사람들은 분개해서 해당 기사에 댓글을 달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샹원의 별스타까지 찾아가, 온갖 욕설을 적어 놓곤 했다.
감히 대한민국의 한류 스타를 건드리다니, 질투하는 거라는 등의 이야기.
그 모든 것을 바라보던 지아는 에휴, 한숨을 쉬었다.
왜 항상 문제는 그들이 일으키는 걸까.
요즘 외교 문제도 안 좋다고 하는데, 꼭 이렇게 분위기 파악도 못 하는 이가 있단 말이지.
반면, 동하는 오늘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었다.
“자, 그럼 노래를 안 들어 볼 수 없겠죠. 박동하의 구원입니다.”
누군가의 비판으로 시작된 동하의 실력 검증.
그것은 전 미국으로 확산되어, 라이브 후기를 올리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버렸다.
동하는 이상한 반응, 자기를 물어뜯으려는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주어진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다.
마이크에서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환상적.
그의 노래가 끝나고 나면, 기립박수가 안 나오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뒤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던 지아는 항상 들어도 언제나 소름이 돋는 동하의 힘을 신기해했다.
“지저스! 정말 엄청난 노래입니다!”
“누가 그에게 그런 발언을 했죠? 누가 그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날렸습니까? 저런 가창력에 저런 실력이라면, 전 선동당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동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난을 실력으로 없애 버렸다.
그의 노래를 한 번이라도 들은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동하를 찬양하기 바빴다.
그 소식은 샹원의 귀까지 들어갔다.
“하, 진짜 미개한 나라에서 저러니 꼴 보기가 싫네.”
“어떻게 할 건데?”
“몰라. 꼬투리 잡힐 만한 행동이라도 기다려야지.”
지금은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가 술과 마약, 여자에 빠져 사는 것도 아니었으니.
유일하게 공격할 수 있는 것은 동하의 팬들이 아주 극성이라는 것.
덕분에 샹원의 별스타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딱히 동하를 트집 잡을 수도 없는 게, 동하 본인이 잘못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
그래서 그는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사람을 추락시키는 덴 역시 약과 여자만 한 것이 없었으니.
“일단 조금 기다려 보자고. 기회는 반드시 올 테니까.”
생각보다 연예계는 더욱 더러운 곳이었고, 쉽게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생태계를 가졌다.
샹원은 일단 그쪽 판에 끌어들이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들은 쭉쭉 치고 올라가는 별을 끌어내리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동하는 오늘도 빠듯한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기저기 이동해야 하는 특성상 항상 호텔에서 묵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잠깐의 휴식, 몇 시간 있다가 다른 곳에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만큼 지금의 휴식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틈틈이 유튜브와 한국 인터넷을 확인하며 정세를 살폈다.
미국에서 여론이 반으로 갈렸다는 건 동하 역시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인식이 뒤바뀌고 있으니, 그 부분은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이 사람은 좀 거슬리네.”
그는 샹원이라는 사람의 인터뷰를 읽어 보며 짧은 감상을 말했다.
그리고 눈에 띈 댓글 하나.
실제 총격이 난무하는 곳에서의 이야기를 인상 깊게 읽었다.
그래, 사실 진짜 위험이 있는 곳에 가 보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이것 역시 행동으로 증명하면 될 터다.
사람들에게 직접 목소리를 전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것만이 노래를 들려주는 방법은 아니었으니까.
마음을 정리하고 있을 때 조셀론에게 문자가 왔다.
그녀는 동하의 행보를 꾸준하게 시청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하 씨! 방송 잘 봤어요. 보고 싶어요 ㅠㅠ]
[이번엔 약속 지키겠습니다.]
[좋아요. 파파라치한테 찍혀도 상관없으니까 마음껏 놀아 보자고요.]
[언제쯤이 좋을까요?]
[어차피 영화 일로 할리우드에 한 번 오셔야 하잖아요? 그때 날 잡아 볼게요.]
[좋습니다.]
언제나 좋은 영향력을 주어서 감사하다는 그녀의 말을 끝으로, 동하는 느긋하게 휴식을 즐겼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노래, 구원은 어디선가 재생되고 있을 테고, 듣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주겠지.
자신은 겁쟁이가 아니니, 가까운 시일 내에 위험한 곳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할 테지만.
* * *
이른 아침.
넝마가 되어 돌아온 조나단은 다 찢어진 재킷을 벗어 던졌다.
운이 안 좋았다.
친구 둘을 잃었고 수많은 이들이 요단강을 건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찰은 나서지 않았다.
이곳은 완벽한 무법지대.
무정한 폭력만이 지배하는 거리였으니까.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일단 따스한 물로 씻어 내려 했다.
그렇게 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 오랜만에 들어 보는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조나단, 뭐 하다 이제 왔냐.”
“……아빠?”
“이 상처는 또 뭐고. 수프 해 놨으니까 그것 좀 먹어라.”
“아빠, 괜찮아?”
그의 아버지.
항상 약에 빠져,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던 이.
청소도 하지 않은 탓에 항상 악취가 흘러나왔던 방과 그의 몸.
조나단은 눈을 비비며 아버지를 바라봤다.
거실에는 한 가지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구원.
동하의 노래였다.
은은하게 퍼지는 노래는 조나단의 심정을 자극했다.
“일단 씻고 올게. 몸이 엉망이라.”
“그래라.”
조나단은 욕실로 들어가면서 슬쩍 아버지의 방을 살펴봤다.
밤새 치워 둔 듯, 깔끔하게 정돈된 방이 보였다.
여기저기 뒹굴고 있던 주사기도 없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젠장, 알다가도 모르겠네.”
믿을 수 없는 일에 그는 F자가 들어가는 욕을 내뱉으며 욕실로 향했다.
그렇게 씻고 나오니 여전히 은은하게 흐르는 곡이 귓가를 간질였다.
‘에이…… 설마.’
조나단은 미국에서 가장 큰 종교인 기독교도 믿지 않았다.
신이 있다면 자신과 구원받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들을 그냥 둘 리가 없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괴로워야 하나.
조나단은 항상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아버지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닭고기 수프를 한 입 떠먹으며, 그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모르겠다. 저 노래를 듣고 있으면 뭔가 해야지 싶던데.”
“……그게 정말이라고?”
아버지는 부산하게 움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던 그가 집 안을 깔끔하게 청소하고 있었다.
진짜 유령이라도 쓰인 것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조나단은 마저 수프를 들이켰다.
오랜만에 가족이 해 준 음식을 먹었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
그의 시선은 우두커니 동하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스피커에 못 박혀 있었다.
* * *
한편 동하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바로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불러야 하는 곳에 초청을 받은 것.
그의 노래뿐만 아니라 다른 노래도 들어 보고 싶다는 방송국의 요청 때문이었다.
거기서 가왕에 오른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거머쥘 수 있다고 판단한 것.
동하는 지아와 상담하기로 했다.
나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평소와 같이 평범하게 활동하는 것이 좋을까.
“지아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시간이 맞으면 나가는 게 좋죠. 지금 시청률도 잘 나오고 이미지도 완전히 다르게 쌓을 수도 있고요.”
“흠…….”
“그거 말고 경연 프로그램도 초청 왔었죠? 둘 중의 하나를 고민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경연은 옛날에 방영했던 <나가수>와 비슷한 프로그램이었다.
얼굴도 공개되고 인지도도 무시할 수 없는 프로그램.
반면 ‘블라인드 싱어’는 완벽하게 모습을 속일 수 있어, 편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주된 차이점이었다.
재미있긴 하겠는데…… 그래.
동하는 요새 말이 많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박동하는 템포가 빠르거나 저음과 고음을 넘나드는 노래는 잘 못할걸?
-진짜 사나이는 락도 할 줄 알아야지.
-장르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지친다고.
사실 아니다.
콘셉트를 잡으면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이 이미지 구축에도 좋다.
노래의 다양성은 어차피 다른 가수들이 있기에 그쪽에서 충족하면 그만이었다.
어떤 장르의 아이콘이 되기 위해선, 틀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얘기가 달랐다.
‘할 수 없어서 못 하는 것’과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은 완벽하게 차이가 있으니.
일정에 문제가 없으면 나가도 되겠지.
동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이들에게 증명하고자 했다.
“그럼 블라인드 쪽으로 나가 보죠.”
“좋아요. 어차피 활동 막바지니까, 재밌게 즐겨 보자고요.”
동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비행기를 타고 할리우드로 떠나는 날이었다.
드디어 조셀론과 만날 수 있게 되었고, 닥터 나이트의 OST를 녹음하기 위해 일정을 잡았다.
극비리에 가편집본을 받아 볼 테고, 그 이후 OST 작업에 들어가는 것.
토드 감독과 조셀론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동하는 웃으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영화사에서 보낸 전용기는 무척 안락했고 없는 게 없었다.
이제부터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니, 휴식은 충분히 취해 두라는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유튜브에 하나의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는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건 자신이 ‘동하의 노래에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이의 동영상이었다.
“안녕, 난 조나단이야. 어디 있고 어디 사는지는 말하지 않을게. 그냥 지옥 같은 곳에서 사는 중이라고만 알아 둬.”
타아앙-!
마이크에 저 멀리서 잡히는 총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비추고 있어, 위치는 특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상당히 어려운 동네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총, 마약, 살인…… 우리에겐 그게 익숙했고 그런 생활만 해 왔지. 아버지는 그 피해자 중 한 명이었어. 싸구려 마약에 찌들어 사시는 분. 경제 활동? 어머니가 공장에서 돌아올 때 총 안 맞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다행히 조나단의 동네는 여인을 건들진 않는 모양.
어쨌든, 상당히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동하는 영상을 집중해서 보았다.
“난 박동하의 노래를 믿지 않았어. 신도 아닌데 어떻게 기적을 일으켜?”
“그런데 있지, 아버지가 일어나서 방 청소를 하고 씻고 일을 찾아보려 해. 항상 마약에 절어 있던 아버지가 말이야.”
“동하, 당신은 우리의 구원자야. 우리 집에는 항상 당신의 노래가 흐르고 있을 거야.”
“그러니, 앞으로도 좋은 노래 들려주길 바랄게.”
영상은 그게 끝이었다.
동하는 진심으로 웃었다.
그래도 자신의 노력이 헛되진 않은 것 같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