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81화 - 그를 꼭 만나 보고 싶다
제이즈.
벌써 4집이나 발표한 래퍼이자 언더그라운드에선 알아주는 실력자.
그의 앨범은 마니아층이 탄탄했다.
고정적으로 사 주는 팬들이 늘어 가고 있어,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지옥과 같은 곳에서 살았던 경험, 어려운 시절에 어떤 마음으로 버텼는지.
그런 경험들을 노래로 쓰자, 많은 이들이 공감해 주었다.
그는 아담과의 통화 뒤, 박동하라는 이를 찾아봤다.
활동 기간 중에는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겠지.
아마 직접 찾아가는 것도 힘들 것이다.
“대단한 사람이네. 아담은 왜 이자를 만나려고 하는 거야?”
“왜, 고향에서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담 알지? 내 친구. 걔가 박동하, 이 사람을 보고 싶다네.”
그의 매니저가 박동하의 이름을 듣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일 터다.
사적으로 만나기엔 도저히 불가능한 일정 속에 살고 있겠지.
개인적으로 만나려면 일단 일정이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터다.
아마도 한두 달 후가 되겠지.
매니저는 곰곰이 생각하다 그렇게 말했다.
“지금 약속을 잡아도 한 달은 걸리지 않을까? 아담이 그걸 기다릴 수 있겠어?”
“글쎄. 그래도 참을성 있는 놈이니 기다리지 않을까?”
“음……. 일단 내가 에이전트 쪽으로 연락해 볼게.”
“알았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박동하를 만나고 싶다 한 것일까.
일단 저 멀리 있는 동하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매니저는 바로 통화를 건넸지만, 정확한 일정을 답변드릴 수 없다는 얘기만 듣고 왔다.
아마도 그쪽이랑 직접 통화한 후에 얘기하려는 거겠지.
제이즈는 동하의 공식 스케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조만간 타임스퀘어에서 매인 가수로 공연이 잡혀 있었다.
게다가 NBA에서도 미국 국가를 부를 수 있는 영광까지 주어졌다.
그야말로 박 터지는 일정들.
“으음…… 나라도 일단 가 볼까?”
그래도 연예인이고 아는 사람이 많았으니, 몇 마디 나누는 것 정도는 가능할 터다.
제이즈는 바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뉴욕에 사는 지인 중에 관계자들은 넘치고 넘쳤으니까.
특유의 위트 있고 친절한 성격인 제이즈는 연예계의 마당발이라고도 불렸다.
거친 할렘에 비해서 양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착하고 친절했으니.
자연스럽게 그도 마음에 여유를 갖고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요 브로, 잘 지내나? 부탁 하나만 하자.]
그의 메시지를 시작으로, 동하 만나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 * *
미국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동하는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쏟아지는 제의, 여기저기서 노래 좀 불러 달라는 곳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동하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무대에 서는 것은 연기도 포함이라는 말이 있듯, 그의 무대 퍼포먼스는 나날이 늘어 갔다.
내일은 그 유명한 타임스퀘어에서 공연하는 날.
벌써부터 주변 숙소가 완전 만원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아는 호텔 라운지에서 야경을 바라보다 물었다.
“동하 씨. 근데 우리도 여기에 집 좀 얻어 두는 건 어때요?”
“괜찮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긴 하겠네요. 그런데 관리는 누가 하죠?”
“그거야……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면 되지 않을까요?”
동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쉼터의 의미만 지닌다면, 사람을 고용해서 관리하게 하면 되겠지.
소속사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지.
앞으로 많은 시간을 미국에서 보낼 것 같으니, 집이나 한 채 구해 두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은 여유롭게 와인과 다과를 먹으며 휴식을 즐겼다.
내일 있을 공연에는 국회의원도 참여한다고 했던가.
정말 중요한 날이니만큼, 충분한 휴식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지아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 받았습니다. 한지아입니다.”
“아, 지아 매니저님. 여긴 SS 엔터 미국 지사입니다. 매니저님께 전해 드릴 이야기가 있어 전화드렸어요.”
“네, 말씀하세요.”
“래퍼 제이즈가 내일 공연이 끝나고 잠시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5분 정도만 시간을 사고 싶다는데…… 어떠신가요?”
“어, 그건 제가 직접 물어보고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SS 엔터 지사는 그렇게 하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지아는 동하를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5분이라.
누가 보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으니.
“동하 씨. 래퍼 제이즈가 만나고 싶대요. 다음 일정이 없긴 한데, 어떻게 하실래요?”
“만나죠 뭐. 위험한 사람은 아니겠죠?”
“네. 제이즈는 저도 알고 있는 래퍼예요. 인성 좋기로 소문났으니까,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그럼 만나자고 하죠. 래퍼도 궁금하긴 했어요.”
동하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지아는 그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다시금 전화를 걸었다.
새로운 인맥, 그것도 연예계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었으니.
* * *
다음 날.
아담은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다.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가 차에 타서 공항으로 향하는 모습을 누군가가 포착했다.
그는 아담이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동시에 이 할렘에 짙은 어둠을 드리우는 눈길이기도 했다.
그는 조용히 새벽의 잿빛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도착한 곳은 잡동사니가 나뒹굴고 있는 폐차장이었다.
남자가 속해 있는 갱단의 본거지이며, 누구보다 아담을 증오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있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잘 아는 자들.
그래서, 이곳의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
이곳 폐차장은 그런 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변화를 싫어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이들의 아지트.
“딜런. 내가 뭘 보고 왔게?”
“엉? 갑자기 뭔 개소리야?”
“오늘 아담이 자릴 비웠어. 그것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그래서?”
“그래서는 뭔 그래서야! 지금 당장 쉘터를 쳐야지! 아담이 없는 그 새끼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딜런이 턱을 쓰다듬었다.
쉘터는 분명 강한 집단이었다.
하지만, 아담이 없는 쉘터는 그 전력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가 무서운 것은 거구가 아니라, 기민한 대처와 적재적소에 인원을 배치하는 능력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없는 시간에 적을 공격한다면?
딜런은 조용히 생각하다가 한 가지 묘수를 떠올렸다.
지금 할렘에는 쉘터를 견제하는 갱단이 두세 개 있었다.
그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것도 있어, 친목은 없었지만.
“그럼 이건 어때. 폴에게 찾아가서 작전을 같이하자는 거야.”
“폴? 그 미친놈이 우리 얘기를 들어 줄까?”
“멍청한 놈아. 걔도 아담에게 당한 게 많아. 쉘터는 공동의 적이라고.”
“흠…… 걔가 우리 뒤통수를 치지 않는다는 보장은?”
그거야 확신할 수 없지.
그러지 않도록 보험을 깔아 두는 것 또한 조직을 지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딜런은 교활한 방법으로 여태까지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적들이 어떤 방식으로 배신해 올지 너무도 잘 보였다.
그는 남자에게 다시 말했다.
어서 폴에게 전달해, 습격을 준비하라고.
“그래. 그럼 일단 만나는 볼게.”
“잘 말하고 와. 안 그럼 네가 돌아올 자린 없을 테니까.”
“알았다고.”
남자가 다시 떠난 뒤, 딜런은 얼마 전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조나단, 그리고 그 패거리가 습격해 중요한 물건을 털어 갔었지.
따지고 보면 딜런이 원흉이었지만, 그래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사람 다섯이 죽고 일곱이 다쳤다.
경찰은 분명 총소리를 들었음에도 오지 않았다.
아마 아담이 매수한 거겠지.
그는 그럴 만한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사람의 마음은 굉장히 이기적인 것이라, 자신의 손해엔 굉장히 엄격해지는 성향이 있었다.
딜런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고.
“기대해라. 아담.”
그가 한쪽에 있는 작은 무덤들을 바라보며 뇌까렸다.
* * *
오늘은 드디어 타임스퀘어에서 공연하는 날이었다.
동하는 밖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을 보러 온 이들은 하나같이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지금 안 되는 일들이 잘되기를.
동하의 라이브가 최고라는 것을 꼭 증명할 수 있기를.
그 밖에 다양한 기도를 품고 동하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소한 것들이었다.
삶에서 순간순간마다 원하는 것들.
그런 소망이 이뤄진다고 믿는 것일까.
‘그나저나…… 얼마 전엔 또 총격전이 벌어졌나 보네.’
동하는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리며 생각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니, 미국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잘 알아야겠지.
불과 며칠 전, 제법 큰 총격전이 일어났다고 들었다.
그곳은 바로 동하가 공연하고 싶은 곳, 필라델피아였다.
할렘에서 총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고.
경찰 역시 쉬쉬하는 곳이라, 접근이 어렵다고 그랬나.
확실히 저곳에서 공연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한 번쯤은 하고 싶은데.’
굳이 얼굴을 보여 주는 공연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 생생한 목소리만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도 기적이 일어나리라.
“동하 씨. 가시죠.”
“네.”
그는 핸드폰을 지아에게 맡기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착잡한 기사와는 달리,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밝은 얼굴이었다.
게다가 국회의원까지 참여하는 공연이라니, 뭔가 상징적인 의미가 강한 것 같았다.
무대 위로 올라가자 뉴욕 상원의원이 직접 동하를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박동하 씨. 상원의원 에드민 주니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당신 덕분에 많은 이들이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저와 제 가족 역시 매일매일이 행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가수로 거듭나고 있는 당신에게 표창장을 수여할 겁니다.”
“과분한데요. 저는 그저 노래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주의원의 표창장이라니.
그런 건 예정에 없었는데?
동하는 정말로 당황해, 에드민 의원을 바라봤다.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유를 설명했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노래를 듣고 간증하듯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범죄율이 줄었고, 직장인들의 스트레스가 줄고 있다는 보고도 있답니다. 이게 사회적 공헌이 아니면 뭡니까?”
“저 말고 정말 필요한 분들에게도 표창장이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뉴욕주 의원은 꽤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잡담과 포토 타임이 끝났다.
이젠 본격적으로 공연에 임할 시간이었다.
오늘 부를 곡은 딱 두 곡.
하지만, 그 어떤 시간보다 밀도 있는 10분이 될 것이다.
구원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노랠 들으며 저마다 두 손을 모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하는 것이 이뤄지길 바라는 모양새였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동하는 짧은 시간이지만 결코 대충 부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부름에 있어, 그 어떤 순간도 의미 없이 지나가지 않길.
그리고 뜻하는 바가 모두 이뤄지길 바라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문득, 그 누구보다 간절함을 품고 있는 사람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 사람은 유독 크고 거칠어 보이는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