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별 후 월드스타-113화 (113/165)

제113화

113화 – 노력은 보여야 할 수 있는 거다

드디어 심사가 시작되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이곳에서 살아남은들, 진정 빛을 보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요즘은 아이돌 아니면 관심도 없다던데…….

윤태는 어중이떠중이로 살다가 누군가의 동영상들을 보고 노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멋있어 보여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서.

그렇게 시작한 노래가 지금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날고 기는 이들이 많았다.

노래하면서, 세상에 천재들은 많다는 걸 느꼈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조그마한 연습실을 빌려 하루 종일 발성 연습과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뿐.

지금 무언가가 완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기본부터 철저히 다져놓으려 연습했다.

그의 다짐은 하나뿐이었다.

나도 노래를 엄청 잘하고 싶다.

그 순수한 열망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았다.

친구들은 이제 광기라며, 잘해보라고 했다.

그때, 처음 들어갔던 참가자가 나왔다.

“……X발.”

반반하게 생긴 얼굴, 대기실에서 봤던 그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통과하지 못한 듯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데 저런 말을 막 해도 되는 거야?

윤태는 조용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대체, 얼마나 빡세면 저렇게 잘하는 애들까지 떨어뜨리는 건데?

그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그렇다면, 왜 떨어진 것일까.

사건은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 * *

“안녕하세요~.”

참으로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마치, 자신은 이미 합격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하지만, 동하는 그를 바라보면서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실력을 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지만 그의 빛은 어딘가 모르게 비틀려 있었으니까.

순수하게 환한 빛을 발하는 이가 있다.

그들은 대부분 순수하게 노력하거나 밝은 미래를 그리고 있거나, 확신에 비전을 보는 이들이었다.

반면, 마치 꿈에서 보는 환각처럼, 왜곡되고 비틀린 빛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딘가 망가져 있는 사람, 혹은 비틀린 욕망을 지닌 이들이었다.

자만하거나 누군가를 이용하려 하거나 방법이 잘못되어 아예 잘못된 길로 빠져버린 이들.

‘어떤 사람일까.’

이 빛에 대한 데이터는 지금까지 100%였다.

사람이 품은 본질, 그 자체를 나타내는 빛이기에 틀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빛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기엔 인간군상이 많을 뿐이었지.

당장 이 사람이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기용할 가치는 충분했다.

때로는 비틀린 욕망을 가진 이가 대중의 선택을 받을 때도 있으니까.

“그래요 한오상 씨. 노래 시작하세요.”

진영이 능숙하게 진행했다.

그는 기타까지 가지고 왔는데, 휘리릭 돌리더니 멋지게 폼을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심사위원들은 본능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겉멋은 이해할 수 있는데 실력은 어떤지 보자.

현란한 기타 연주와 함께 시작된 노래.

동하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의 노래는 언뜻 듣기에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노래를 그냥저냥 듣는 이들이 듣기에만 그랬다.

“됐습니다.”

듣다 못 한 동하가 먼저 노래를 끊었다.

그리고는 물어봤다.

“혹시, 따로 노래를 배운 적이 있나요?”

“네? 아, 네.”

“얼마나 배웠죠?”

“어…… 한 3년 정도 배웠습니다.”

3년이라.

동하는 싱긋 웃으면서 팩트를 때렸다.

“기타 연주 중에 다섯 번이 코드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버징이 일어났고…… 플랫으로 떨어진 음정이 일곱 번. 박자를 밀고 당기는 것이 아닌 맞추지 못한 것도 세 번. 호흡이 모자라 발음을 제대로 내뱉지 못한 음이 두 번.”

“…….”

충격받은 표정으로 서 있는 참가자.

동하는 한 마디를 더 던졌다.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것. 아주 좋아요. 처음 노래를 시작하는 동기는 대부분 그것이겠죠. 하지만 지금 노래를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한다고 해서 평생 그러는 건 아닙니다.”

“네…….”

“훗날 고음도 내고 싶죠? 화려한 애드리브도 하고 싶을 겁니다. 그것들이 전부 대중들 귀에 쏙 꽂히기 위해서는 정확한 능력이 중요해요.”

참가자는 마이크를 잡은 손을 어떻게 할 줄 모르며 안절부절못했다.

동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던졌다.

“기본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이곳에 나가셔서는 그렇게 연습해 보세요. 그럼 훨씬 나아질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합격을 드릴 수 없어요.”

불합격 표시가 눌리자, 참가자의 고개가 떨어졌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진영은 더욱 신랄한 비판을 늘어놓았다.

“동하 씨 말이 맞아요. 음정도 불안하고, 연주가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기타를 놓고 노래에 전념했다면, 그나마 나았겠죠. 겉멋이 지금 너무 들었어요.”

대학교 축제에서 노래를 부를 정도로 뛰어난 가창력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진짜 프로들 앞에서 평가받으니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존재였나?

그런 생각이 마구 들었다.

“냉정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워딩을 쓰는 거예요. 자극받으라고. 꼭 고치라고. 기본기를 충분히 갖추면, 다양한 시도를 해보세요. 가능성은 있지만, 서바이벌에 적합하진 않아요. 저도 불합격 드리겠습니다.”

불합격 확정에, 참가자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어서 에코 역시 똑같은 판단을 했다.

우리 가수들이 아무렇게나 막 부르는 것처럼 보여도, 고음을 내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기본기는 철저히 연습한다는 말.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말.

그런 말을 들은 참가자는 결국, 고개를 푹 숙이며 말없이 떠났다.

동하는 씁쓸한 마음에 쩝, 입맛을 다셨다.

진영이 그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을 이었다.

“많이 힘들지? 쓴소리하는 게 쉬운 게 아니거든.”

“생각보다 심력이 필요하네요.”

“많이 하다 보면 익숙해져. 그리고 진짜 잘하는 사람 보면 힐링도 되고, 얻는 것도 많고.”

동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쁜 이들이 있으면 좋은 이들도 있는 것이 이치 아니겠는가.

그들은 그렇게, 다음 참가자를 기다렸다.

* * *

“임윤태 참가자님, 들어가시면 됩니다.”

“넵!”

드디어 자신 차례가 왔다.

윤태는 떨리는 마음으로 일어섰다.

수많은 이들이 떨어지고, 압도적으로 적은 수가 붙었다.

과연, 자신은 붙을 수 있을까?

그는 조용히 일어서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처참한 심사평을 듣고 있었다.

이번에도 떨어지겠구나.

윤태의 예상대로, 참가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방을 나섰다.

“이제 들어가시면 됩니다.”

“예.”

윤태는 떨리는 마음가짐으로 심사위원 앞에 섰다.

박동하, 이진영, 그리고 리에코.

지금 한국 음악을 이끌어가는 세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네, 윤임태 씨. 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도 많이 참여하셨네요?”

“네.”

“유의미한 성적은 거두셨을까요?”

심사위원의 질문에, 윤태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쓴웃음과 함께, 그는 예의 바르게 답했다.

“아니요. 심사위원들 얼굴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많이 부족했던 탓이겠죠.”

“그래도 이번에는 올라오셨네요.”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하는 보았다.

비록 작지만, 촛불처럼 주변을 비추고 있는 빛을.

그 빛은 너무도 단단해, 마치 보석같이 보였다.

처음 들어왔을 때 그 빛을 보지 못했었지만, 잿빛 속에 유일하게 빛나는 걸 인지했다.

단단한 마음.

음악을 향한, 아니면 그 어떤 무언가를 향한 단단한 마음 같았다.

그래서 동하는 그가 무얼 위해 저 마음을 간직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일단, 노래부터 들어보죠.”

여기서 원석을 발굴한다면, 중간에 떨어지더라도 키워볼 생각이 있었다.

한…… 두 명에서 세 명 정도?

긴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잔잔한 피아노 반주를 들었다.

그에 맞춰서 천천히 노래를 부르는 윤태.

부드러운 미성, 테너 중에서도 살짝 낮은 톤의 목소리가 첫 소절을 내뱉었다.

심사위원들의 표정에, 처음으로 화색이 돌았다.

기교는 없었다.

그저, 호흡을 내뱉으며 가사를 전달하고 본인의 목소리에 충실한 노래였다.

그 흔한 바이브레이션(비브라토)도 없었지만, 그런 부분은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심사위원은 성장하는 캐릭터를 원했다.

지금 윤태가 딱 그 모양새를 갖췄고.

“…….”

세 명의 심사위원은 그렇게, 노래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윤태의 노래를 감상했다.

그가 마지막 소절을 끝내고 덤덤히 숨을 내뱉었다.

그 한숨 안에, 긴장감과 후련함이 묻어나왔다.

제일 먼저 마이크를 든 것은 에코였다.

그는 잠깐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그간 왜 탈락하셨다고 생각했나요?”

“음…… 아무래도 기본기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 마음이, 지금 윤태 씨를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아주 탄탄하고, 완벽한 기본기를 지녔네요.”

“가, 감사합니다.”

윤태는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에코는 당연히 합격을 눌렀고, 첫 번째 고비를 넘긴 윤태는 남몰래 떨리는 한숨을 쉬었다.

다음은 동하였다.

그 역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잘 들었습니다. 너무 좋은 노래였어요. 지금까지 음악을 놓지 않았던 마음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본은 탄탄하니, 이제 심사위원들과 다양한 선생님들을 통해서 많은 기술을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네.”

동하 역시 합격이었다.

그가 합격을 누르자마자, 윤태 안에 있는 빛이 조금 더 커졌다.

희망을 본 거겠지.

확실히, 그의 노래는 뛰어났다.

숨을 조절하고 발성을 하는 방법은 어지간해서 다 익힌 것 같았으니, 마치 빛나는 원석과도 같은 상태였다.

동하는 기분 좋게 웃었다.

마지막, 진영의 심사평까지 끝난 뒤, 윤태는 기분 좋게 나갈 수 있었다.

“후…… 진짜 제대로 된 참가자네.”

“그죠. 저도 깜짝 놀랐다니까요.”

“완성형도 좋지만, 저렇게 키우는 맛이 있는 사람도 좋거든.”

세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는 계속 이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떨어지고, 또 수많은 이들이 붙었다.

위로 올라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 * *

“으아! 겨우 끝났네!”

“다들 고생했어. 저녁 다 같이 먹을까?”

“좋습니다.”

해가 다 지고, 밤 9시가 넘어서야 하루치 심사가 끝났다.

워낙 이상한 사람도 많았고, 잘하는 사람도,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개중에 이런 사람이 어떻게 올라왔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동하는 성심성의껏 심사했다.

제대로 노래를 불러보려는 이들에게는 아낌없는 조언을 해 주었고, 그게 아닌 사람에게는 냉철한 말을 쏟아냈다.

물론 상처받은 이들도 있겠지.

그렇지만 마냥 좋은 이미지를 가져가려 애쓰지 않으려 했다.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았으니까.

물론, 음악을 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심사위원이라고 비꼬는 이들도 있겠지.

그러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그래서, 당신은 음악을 통해 무얼 이루었는가.

‘치트키 쓰고 이긴 기분이긴 한데, 어쩌겠어.’

합법적인 치트키라면, 안 쓰는 쪽이 바보 아닐까?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동하는 참가자 중, 이상하리만치 윤태라는 이가 신경 쓰였다.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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