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152화 – 공격적인 마케팅, 그리고 일본
월트사.
회장을 비롯한 이사진들이 쭉 모여 있는 회의실에, 적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그 어떤 회사보다 상상력이 뛰어나며 창의력과 활기가 넘친다고 했던 월트사였지만, 회의 분위기마저 그런 곳은 아니었다.
동심을 자극하는 애니메이션과 영화.
대형 IP를 만드는 것 역시, 결국 어른들의 잇속을 챙기려는 것 때문이었으니.
월트사는 요즘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심각한 위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주가는 폭등했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IP나 이미 성장한 회사를 사들이는 것만으로도 이득을 취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몸집을 불린다고 해서 이미지가 개선되는 건 아니었다.
결국 꾸준한 사랑이 있어야 회사 역시 유지할 수 있는 법.
상품을 아무리 열심히 내놓아봤자, 구매할 사람이 떠나가면 부질없는 짓 아니겠는가.
“그래서, 구독자 회복 방안은 생각해 왔나?”
“다시 마케팅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광고 노출이 적고 다양한 SNS나 유튜브에서 노출되는 횟수가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흠……. 또?”
회장은 그럴듯한 말에 눈을 번뜩였다.
마케팅.
그래, 요즘은 마케팅의 시대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다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제 대놓고 특정 사상이나 정치적 이념을 집어넣는 건 지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유는?”
“표현의 자유라고 하지만…… 노골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들을 집어넣을 필요는 없죠. 어디까지나 노골적으로 집어넣지 않았으면 한다는 겁니다만.”
“감독과 배우들이 말을 들어 먹겠나?”
“그러면 시장 논리에 따라 말 잘 듣는 이들로 채우면 됩니다.”
회장은 말을 아꼈다.
대신, 이것저것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이미 돈 때문에 한번 신의를 갈아치운 적이 있다.
슬슬 대중들에게 잊히고 있었지만, 혹시 또 모르지.
논란은 언제나 불쑥 고개를 드는 법이었으니.
어쨌든, 논란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감독과 작가의 사상검증은 도리어 거센 반발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곳은 자유의 나라, 미국이었으니까.
‘이것저것 생각을 해봐야겠군. 아니면…….’
둘 다 하면 되겠지.
회장은 이사들에게 입을 열었다.
“운용 가능한 자금은 충분하겠지?”
“예.”
“그렇다면 인플루언서나 유튜버, 그리고 평론가들에게 용돈 좀 줘야겠군.”
“좋은 생각입니다.”
구독자 수가 1년 만에 30% 이상 줄었다.
이 말은, 1년 사이에 더 구독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말과도 같았다.
아직 내놓을 작품도 많았고 틈틈이 광고도 했지만, 전성기 시절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
불과 몇 년 전에 어마어마한 성적을 냈던 월트사였지만, 추락은 한순간이었다.
“지침은 내가 정해서 공지하지. 이만 나가보게.”
“알겠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고, 회사는 비서를 불렀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두 사람.
실상 두 사람이 월트사를 이렇게 키워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본래는 사수와 부사수로 만났지만, 세월이 흘러 회장과 비서실장이 되었다.
“감독들에게 촬영할 때 노골적인 장면은 피하라고 전하게. 작가들이나 배우들이 반발하면 교묘하게 편집으로 넘기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리뷰어나 평론가들에게 적당히 돈 좀 쥐여주고.”
“예.”
회장은 그 밖에도 조항 몇 개를 넣으라고 지시했다.
이미지 개선을 위한 작업이지만, 이건 족쇄를 채우는 행동이기도 했다.
돈은 사람을 얽맨다.
돈으로 묶인 관계는 생각보다 더 끈끈하고, 질척이는 법이었으니까.
유튜브 뒷광고 사태를 보라.
돈을 위해서 뭐든지 하는 게 인간이다.
처음은 좋아서, 단순히 취미생활로, 신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겠지.
하지만, 돈이 통장에 들어오고 삶이 윤택해지고 주변이 바뀌는 순간, 저들은 결국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페이를 좀 세 개 부르자고.”
“하달하겠습니다.”
회장은 조용히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촬영이 끝났다던가.
적을 죽이는데도 마케팅만큼 효과적인 건 없겠지.
저들이 얼마나 돈을 쏟아붓든, 월트사의 자본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 * *
월트사에서 출발한 이들이 각국으로 퍼졌다.
미국 전역뿐 아니라, 세계에서 영화나 드라마 리뷰 좀 한다는 이들은 모두 월트사의 직원을 만나야 했다.
아니면 연락이라도 받던가.
그들만 마케팅의 대상이 된 건 아니었다.
셀럽이나 연예인 역시 광고의 대상을 피해 갈 순 없었다.
그들의 SNS는 웬만한 광고보다 효과가 높았으니까.
“아…… 구독 인증하고 즐기면 되는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구독 코드를 따로 드릴 텐데, 그걸로 해주시면 됩니다.”
“오, 마침 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잘됐네요.”
“하하. 즐겁게 이용해주시고, 피드만 잘 작성해 주시면…….”
모 연예인은 즐겁게 웃으며 광고 계약서에 사인을 휘갈겼다.
손해 볼 것 없는 광고였으니까.
물론 광고라는 건 숨겨야겠지만.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예. 고생하세요.”
역시 대형 회사라 그런지, 입금은 바로 되었다.
꽤 거금이라, 승낙할 수밖에 없는 광고.
집으로 돌아가는 연예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비슷한 시각, 유명한 리뷰어이자 유튜버인 [참치]에게도 광고 제안이 들어왔다.
그는 카페에서 계약서를 훑어보는 중이었다.
매니저와 함께 왔는데, 그 역시 딱히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긍정적인 분위기였다.
[참치의 리뷰]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구독자 100만을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유튜버였다.
때로는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지만, 전공을 살려 평론가로 활동한 경력 덕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기저에는 성실함과 정직함이 있어서겠지.
“이 조항 말입니다만…….”
“어떤 조항이죠?”
참치는 거슬렸던 조항을 가리켰다.
해당 조항은 [특정 사상이나 정치적 성향을 절대 나타내지 않는다는 걸 명시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강조 표시가 된 것으로 보아, 반드시 광고 멘트에 넣어야 한다는 건데…….
요즘 월트사의 이미지가 조금 안 좋긴 하지.
참치는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 조항 말입니다만, 꼭 넣어야 하는 거죠?”
“네. 본사 방침이라……. 그래서 계약금도 넉넉히 드린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실제 작품을 안 보고 말하는 건 리스크가 조금 크긴 한데…….”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그거야 어찌어찌 넘기는 방법을 쓰면 되니까.
100만 유튜버가 되기까지, 그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넘겼다.
교묘한 발언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 정도야,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이 해봤다.
일단은 그 정도만 할까.
“뭐, 나쁘지 않은 조건이네요. 광고니까.”
“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잘 말씀드려주시면 됩니다.”
“여기다 사인하면 되죠?”
“네.”
대형 유튜버인 그 역시 광고에 동참했다.
월트사의 구독자 수는 빠르게 늘 것인가.
그건 아직 알 수 없었다.
참치는 마지막으로 광고 날짜를 보고 조금 놀랐다.
“기한이 아직 많이 남았네요?”
“하하, 그렇습니다.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여유롭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계약금이 바로 입금된 것을 확인한 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카페를 떠나갔다.
그 광고 날짜가 동하의 OTT 플랫폼 런칭 시기와 비슷하다는 건, 아직은 인지하지 못한 사안이었다.
* * *
오늘은 일본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공식적인 스케줄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조그맣게 팻말을 들고 있는 팬들이 보였다.
동하는 그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어준 뒤, 탑승구로 향했다.
저렇게 지극정성으로 가수를 챙기는 팬클럽이라니, 적잖이 감동받았다.
“잘 다녀와.”
“역시, 네가 데려온 거구나?”
“흐흐, 그럼. 오빠 친위대들인데.”
“너희도 비행기 타고 오는 거 아니야?”
“……어, 아닐걸?”
다 들켰다 이놈들아.
동하는 피식 웃고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인원 체크해서 보내놔라~.”
“…….”
이유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저 손을 흔들 뿐이었다.
와, 언제 저렇게 눈치가 빨라졌지?
그녀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눈치가.”
“장난 아니네요. 그쵸.”
“여러분, 근데 시간 많아요? 저야 돌아다니면서 도움도 주고 곡도 쓴다고 하지만…….”
“네. 저 돈이랑 시간 많아요. 제 할아버지가 XX건설 회장님이시라…….”
“어우.”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동하 팬카페의 간부들이었다.
일명 친위대라고 불리는 이들.
이유는 그들의 빵빵한 재력에 꽤 놀랐다.
팬클럽 회장은 거의 재벌 3세나 4세가 한다던데, 그 말이 정말인 모양.
이유는 내심 감탄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쪽 세계는 완전히 문외한이라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
“와…… 같이 세계 여행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특별히 허락도 받았답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재밌게 다녀요. 우리.”
“좋아요!”
이유는 다른 인연을 만들 수 있어 좋고, 다른 이들 역시 이유라는 연예인과 친분을 만들 수 있어서 좋고.
이들은 동하를 따라 월드 투어에 참여하기로 했다.
팬들을 위한 사진과 여행기, 그리고 동영상 같은 걸 찍기 위해서.
이유는 간간이 동하의 무대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싶어 따라가기로 한 것.
이미 지아와는 얘기가 끝난 상태였다.
“그럼, 배웅도 끝났으니 밥 먹으러 갈까요?”
“좋아요. 기사님이 도착하셨다고 하니까, 제가 모실게요.”
그렇게, 동하의 일본 배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 * *
며칠이 지났다.
동하는 오늘, 오사카의 거리에서 버스킹을 위해 몰래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오사카는 한국인이 정말 많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이었다.
간판만 일본어로 되어 있는 서울 같달까.
그래도 여기서 버스킹을 한다면, 홍보 효과는 톡톡히 보겠지.
일본인 특성상 격한 호응은 하지 않을 테니, 조용히 얼굴도장을 찍을 생각이었다.
콘티 역시 따라부르기 어렵고, 감상 위주로 들을 수 있는 고난도의 곡 위주로 짰다.
실력으로 찍어 누를 셈이라는 것.
“이쯤이 좋겠는데요.”
“예. 저희는 경호 대형으로 움직이겠습니다.”
“네. 혹시 이상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까, 주의해 주세요.”
“예.”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라는 나라 아래, 동맹국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감정이 좋은 나라는 아니었다.
과거도 있고, 여러 요인도 있었으니까.
한류라고 하지만, 그래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동하는 조용히 자리를 펴고 앉았다.
그의 시그니처인 깁슨 허밍버드가 유려한 자태를 드러냈다.
사람들은 그의 준비를 보고는 본능적으로 짐작했다.
“오, 버스킹 하려나 봐.”
“구경이나 하러 갈까?”
“이번에 동하 님이 콘서트 전에 버스킹 했다던데, 그거랑 비슷한 거 아니야?”
“그러게-.”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모였다.
동하의 마이크 테스트가 이뤄지는 동안, 누군가 그를 알아보고는 다가왔다.
다만 직접 말을 걸진 않았는데, 그 역시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기타, 예쁘네.’
동하는 묵묵하게 기타를 쳤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서 있던 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건, 자신의 노래였으니까.
동시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정말이지, 공교로운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