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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 후 월드스타-159화 (159/165)

제159화

159화 –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단 말야?

호주는 워낙에 땅이 넓지만, 실제 인구 밀도는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다.

대부분 사막 지형에, 자연이 워낙 드세서 인간이 자리 잡기 어려운 동네랄까.

그런 곳이 많은 대륙이었으니.

이따금 SNS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 대한민국에 사는 동물이 참 아기자기하고 귀엽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궁금하면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으리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시드니의 하루는 오늘도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동하는 일단 이곳의 지리와 문화를 익히는 것부터 나아가기로 했다.

‘혼자 산책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

강찬과 같은 경호원은 조용히 뒤를 따를 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수상한 사람들이 있나 없나 스캔하고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으니.

이따금 동하와 함께 운동하는 강찬은 이미 동하의 어마어마한 실력을 알았다.

무엇보다 기술이 엄청 뛰어났지.

“걱정, 안 해도 되겠죠?”

“그럴 거다. 총으로 저격하는 게 아닌 이상, 직접 노리는 건 불가능할걸?”

“그 정도예요?”

“응. 웬만한 격투기 선수보다 나아.”

믿을 수 없는 강찬의 말에, 경호원들은 의아함을 드러냈다.

하긴, 동하가 직접 손쓸 일이 뭐가 있겠는가.

옛날에는 서양인 보디가드를 직접 제압했다고도 했었지.

그게 진짜인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사주 경계 잘하고. 알았지?”

“예. VVIP니까요. 옥상이나 건물도 모두 체크하는 중입니다.”

“그래.”

그들은 영화에서 나오는 특수 요원들처럼, 동하의 동선에서 위협이 될 만한 곳을 전부 체크했다.

동원된 인원만 50명이 훌쩍 넘어가니, 의외로 경계망은 촘촘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경호의 허점은 대놓고 위험한 곳에서 벌어지지 않는 법이다.

동하는 시드니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산책을 즐겼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더라도, 동양인 특유의 분위기가 흘러나왔을까.

흘끔흘끔 쳐다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이따금 느꼈다.

모든 사람이 그러는 건 아니고, 정말 가끔가다가 보내는 시선들에서 칼날과 같은 적개감이 느껴졌다.

‘아직도 이런 이들이 있긴 있군.’

본래, 오스트레일리아는 다문화,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심하진 않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경찰이나 정부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진짜 총을 가지고 있어도 심각하게 판단하지 않듯, 호주도 그런 느낌이었다.

전반적으로 호주 사람들은 느긋한 경향을 보였다.

한인들도 제법 많이 살고 있다지?

“버스킹할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시드니 최고의 관광지인 하버 브리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어떻게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혹시, 길을 잃었나요?”

“아뇨. 하버 브리지로 향하는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가요? 제가 간단하게 알려드릴게요.”

동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핸드폰 화면을 보기 위해서라면, 제법 가까이 붙어야 했으니까.

행인의 안내는 제법 친절했다.

자세한 안내에, 동하는 이곳의 지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이제 행인의 손버릇이 너무 나빠서 문제랄까.

은밀하게 다가오는 모습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소매치기를 한다 이거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건 뭘까요?”

“아…….”

“설명은 잘하시는데…… 손버릇은 좀 고쳐야겠군요.”

“젠장…….”

어느새 꽉 잡혀 있는 손목.

힘을 주어 빼내려고 해도 동하의 주머니에 들어간 손은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황한 소매치기범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동하는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이는 걸로, 의사 표현을 확실히 했다.

“주변에 친구들이 있다고 해도 부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저도 친구들이 꽤 많거든요.”

“…….”

“자, 조용히 손 떼고 가는 걸로. 오케이?”

소매치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 없이 몸을 돌려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동하는 사라진 그를 눈으로 쫓으며 주변을 함께 둘러봤다.

다행히 자신을 노리는 이는, 이제 없어 보였다.

“흠…… 아무래도 이번 버스킹은 조금 조심해야겠는데?”

동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번 호주 공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 * *

“한 번 떠봤는데, 보통이 아니던데?”

“각이 하나도 안 나온다고?”

“이봐. 그렇게 접근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아무래도 쉽지 않겠어. 이번 건은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어때?”

“……그럴 수는 없어.”

소매치기범은 누구와 통화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냥 덩치 좋은 일반인인 줄 알았다.

가수가 그런 분위기를 어떻게 풍겨내는지, 그것도 신기했다.

일반적인 사람이 저런 분위기를 풍겨내는 것,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어디서 전문적인 훈련이라도 받고 왔나?

그런 의심마저 들 정도로 완벽한 대처였다.

소매치기범, 로베르트는 동하에게 잡혔던 팔을 바라봤다.

붉게 물들어 있는 자신의 손목.

“나는 냉정하게 건들지 않는 걸 추천하지. 보통 놈이 아니었으니까.”

“경호 체계가 그렇게 허술하다는 건, 미국에서는 승산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 목숨이 아깝지 않은 놈으로 섭외해야 할 거야.”

“그 건은 맡기겠다. 돈은 충분하니까.”

로베르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의뢰한 이가 마음을 돌리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 같았다.

그렇다면 어쩌겠는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의뢰를 완수해야겠지.

“그래. 여기는 어려워도, 미국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하지.”

“부탁하지. 이번 건 역시 보수는 넣어 두겠어.”

“고맙군. 절반만 넣어 둬. 실패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로베르트는 자존심에 살짝 금이 갔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이대로 돈을 받는 것도 염치가 없는 짓이지.

그렇게, 동하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가 시작되려 했다.

* * *

크리스는 통화를 마친 뒤에 한숨을 내쉬었다.

박동하.

그 녀석이 생각보다 무술 실력도 뛰어나다고?

그런 점은 의외였다.

범생이처럼 생겼는데, 은근히 몸이 좋았구나 싶어서.

또한 엄청난 실력을 가진 암살자 로베르트가 그런 말을 하다니.

이건 정말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한다…….”

사실 그의 목숨을 가지고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조용히 그를 납치해 천천히 세뇌하려는 뜻이었지.

그런데 그것마저 불가하다면…….

“일단, 뜻을 하나로 모아야겠어.”

크리스는 조금 돌아가기로 했다.

자신을 따르는 이들은 아직 많았으니, 천천히 공을 들여 작업한다면,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는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 *

월트사.

크리스가 나간 뒤, 이곳도 제법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방금, 익숙한 번호로 메시지를 받은 참이었다.

[회사를 하나 설립할 생각이야. 생각 있으면 와.]

[우리만의 뜻을 펼쳐 보자고.]

‘크리스.’

그 메시지를 크리스에게서 온 것.

지금 월트사에서는 그를 따르는 작가진들의 입지가 많이 좁아졌다.

이대로는 평생 시다바리나 하면서 지내야겠지.

퇴행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괴로운 건 없지 않은가.

주변을 둘러보자, 비슷한 메시지를 받았는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몇 보였다.

그래.

여기서는 더 이상 뜻을 펼칠 수 없을 거다.

그러니, 새 터전을 찾아 떠나는 것이 맞겠지.

“역시, 이걸 내야겠네.”

직장인이라면 서랍 속에 사직서 하나쯤은 품고 산다지.

오늘, 바로 그 사직서를 꺼낼 때라고 생각했다.

그는 조용히 서랍을 열어, 사직서를 꺼냈다.

진짜 쓸 줄은 몰랐는데…….

뚜벅뚜벅, 어디론가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본 동료들이 하나둘씩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썩은 부위를 도려내면 새 살이 돋아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월트사 역시, 비슷한 절차를 밟겠지.

우르르 몰려 나가는 이들을 보며, 다들 비슷한 생각에 도달했다.

“후우……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러게. 다들 편견이 가득한 그때로 돌아간다니…….”

“크리스가 뭘 하려는 걸까?”

“일단 찾아가 보면 알지 않을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짐을 대충 정리한 뒤, 그 길로 퇴사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사람들은 크리스가 남긴 메시지를 보며, 다 같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과연, 크리스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까.

“가자. 여기서 멀지도 않은 곳인데.”

“좋아요.”

“이제 우리를 받아주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고.”

그들은 결의를 다지고 새로운 터전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당연히 기사로 다뤄졌다.

* * *

<월트사,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내분? 월트사. 작가진 대거 퇴사! 변화의 신호탄일까, 파국의 신호탄일까!>

<작가진 대거 퇴사.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기사들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이건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었다.

거대한 기업에서 위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던 이들이 대거 사라졌으니까.

기사에서는 조심스럽게 다뤘지만, 이미 알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 쪽이 쫓겨난 거임?

-거기 크리스라는 작가가 총괄이었는데, 극한의 사상충이었음.

-아 ㄹㅇ? 그러면 월트사 기대 좀 해봐도 되겠는데?

-ㄹㅇ ㅋㅋ

반응은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월트사의 주가는 당연히 우상향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기사들을 전부 읽은 동하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달가운 소식은 아니었으니까.

드디어 월트사가 정신 차렸는가.

그런 것이라면, 이제 동하 쪽도 정신 바짝 차리고 퀄리티에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진짜 조용히 힘을 키우고 진짜 실력을 보여야, 거성을 무너뜨릴 수 있겠지.

‘이건 지아 씨에게 얘기해줘야겠는걸.’

지아도 이 소식을 듣고 노선을 정하겠지.

현명한 그녀라면, 잘 판단할 것이다.

이제 후 편집만 남아 진행하고 있다던가?

토드 감독 역시 바짝 긴장하고 작업하겠지.

‘아니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겠는걸.’

지금까지는 월트사가 모든 문화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든 영화, 모든 게임, 모든 영상이 그들을 모티브 삼아 따라가려고 노력했지.

하지만, 이제 판이 뒤집혔다.

월트사가 따라오는 OTT.

월트사가 벤치마킹하는 영상과 스토리.

그것이 바로 자신들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멸제검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으니까.

자신 역시, 3집 준비를 서둘러야겠지.

부산은 열정을, 일본은 품위를 느끼게 해 주었다.

인도네시아는 자유를, 중국은 오만함과 불쾌함을 느꼈지.

”3집 발표하고, 한동안 푹 쉴까.“

월드 투어를 성황리에 마친다면, 3집 발표 후에 긴 휴식기를 가지고 싶었다.

글을 배워서 극본가나 웹소설 작가가 되는 것도 좋겠지.

동하는 쉼 없이 달려왔던 코스의 결승점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아마, 멀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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