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별 후 월드스타-162화 (162/165)

제162화

162화 –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동하가 미국에 도착한 직후, 수많은 이들이 그의 입국 소식을 접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전 세계를 돈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손꼽아 기다렸던가.

자신들이 머무는 나라에 나타나는 월드 스타라니.

이때를 위해 차곡차곡 돈을 모은 이들이 동하의 인터뷰만을 기다렸다.

철통같은 보안 속에 동하의 숙소가 정해졌다.

그 누구도 이곳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주의원까지 나서 경찰 인력을 투입해 주었을 정도.

동하는 미국의 영웅이었으며, 살아있는 히어로라고 불리기도 했다.

갱단이 전쟁하는 곳 한가운데서 공연했던 사람이었으니, 이 정도 처우는 과분한 게 아니라는 말이 지배적이었다.

“편히 쉬십쇼. 다른 이들은 신경 쓰지 마시고.”

“감사합니다. 의원님.”

“고마운 마음이 가시기 전에, 사진 한 장 어떻습니까. 아들내미가 부탁해서…….”

“저야 좋죠.”

국회의원이 먼저 사진을 찍자고 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로 유명해야 하는가.

더러는 자신의 딸을 만나보지 않겠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으니, 미국 내에서 동하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작은 팬서비스를 마치고 그는, 오랜만에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라 핸드폰을 들었다.

지금쯤 할리우드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이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영상 통화라는, 아주 좋은 기능을 사용한 동하.

그의 전화를 받는 영광스러운 인물은 바로 주원이었다.

“여보세요, 선생님!”

“잘 있었어?”

“네. 요즘 곡 쓰느라 바쁩니다! 하하!”

“요- 브로! 미국엔 잘 도착했나?”

타지에서도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주원은 기특하게도 현지 사람들과 완벽히 동화되었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패션을 소화하기도 하고, SNS에서도 팔로워를 많이 끌어모으는 등, 나름대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그가 부른 멸제검의 주제곡은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중이었다.

동하가 참여한 노래라면 무조건 찾아 듣는 이들이 있으니, 당연히 수요 역시 어느 정도 보장된 상태.

그런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주원은 오늘도 밝게 살아가는 중이었다.

밝은 얼굴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동하.

“제이즈. 주원이 잘 돌봐주고 있지?”

“돌봐줄 게 뭐 있나. 이 친구 미국인이 다 됐는데.”

“선생님. 다음엔 LA에서 공연할 거죠?”

“응. 뉴욕에서 한 번 하고, LA에서 한 번 할 거야.”

주원은 LA 공연 때 꼭 가겠노라고 말했다.

그렇게 잡담을 이어가던 도중, 제이즈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아, 브로. 혹시 아담에게 연락 온 거 있나?”

“아담? 아니. 연락 없었는데, 왜?”

“흠…… 그래? 알았어. 심각한 얼굴로 사라지길래 너랑 관련 있는 줄 알았는데, 다시 좀 알아봐야겠군.”

“아담이? 음…….”

동하도 아담의 과거를 알고 있는 만큼, 불안한 마음이 싹텄다.

그가 굳이 일을 벌이진 않겠지만, 아직 그를 노리는 자가 완전히 없어졌다곤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미국 땅은 넓고, 사람은 더욱 많았다.

아담의 성격상 그들을 일일이 쫓아가 사과하진 않았을 테고…….

동하 역시 아담과 연락을 주고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쉘터의 관리를 맡은 조나단에게 연락해도 되겠지.

잘 지내려나?

“일단 알았어. 너희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알았지?”

“여기 있으면 총 맞을 걱정은 없지. 너야말로 조심하라고.”

“그래. 여기는 미사일이라도 떨어뜨리지 않으면 안 될걸?”

“하하!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

통화는 무거운 주제를 들추며 끝났다.

아담.

그가 또 위험한 일에 휘말리게 만들 수는 없지.

동하는 짐을 풀면서 아담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통화음이 가긴 했지만, 아담이 받진 않았다.

동하는 그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내고선 조나단에게도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 역시 받지 않는 걸 확인한 동하.

무사하다면 연락을 보내올 것이다.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미국은 범죄가 죽이는 것과 절도로 나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금만 잘못해도 죽어 나가는 건 다반사였으니, 애초에 사건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공연 준비 덕에 신경 쓰지 못하겠지만, 부디 아무 일 없기를 바랐다.

* * *

아담은 어둑한 골목을 지나, 번화가로 나왔다.

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한 건지…….

눈앞엔 초록색 동그란 간판이 특징인 커피숍이 있었다.

눈에 뜨이지 않으려면 사람들 사이에서 만나는 것이 제일이지.

부재중 전화가 왔지만, 지금은 핸드폰을 볼 시간이 없었다.

동하와 쉘터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마지막 한 번.

딱 한 번만 움직이면, 이제 이쪽 일엔 완전히 손 뗄 예정이기도 했고.

카페 안쪽으로 들어서자, 멀끔히 차려입은 남자가 보였다.

뒤 세계에서는 꽤 유명한 남자, 로베르트였다.

“이렇게 대놓고 움직여도 되는 거냐?”

“왔나? 뭐 마실래?”

“……돌체 라테.”

“생각보다 스윗한 남자였군. 하하.”

인상을 팍 찌푸린 아담을 뒤로하고, 로베르트는 능숙하게 주문을 마쳤다.

사이렌 오더라고 하지?

요즘엔 참 편리하다니까.

로베르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담에게 본격적인 주제를 꺼냈다.

“크리스라고, 혹시 알고 있나?”

“처음 듣는 이름인데. 왜, 그가 동하를 노리고 있나?”

“그래. 정확히는 나 같은 사람을 고용해서 그를 암살하려 했지.”

“……심각하군.”

왜?

아담의 머릿속에는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대체 왜 동하를 죽이려 하는 걸까.

돈이 많아서?

아니면, 단순히 시기와 질투?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베르트까지 고용할 정도라면 그 집념은 대단한 수준이겠지.

로베르트가 그 사실을 어찌 알았는지부터 추궁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너는 어째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거냐.”

“그가 고용한 사람이 본래 나였으니까.”

“……거절한 이유는?”

아담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제대로 답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로베르트를 죽여버리겠다는 의지가 뿜어졌다.

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로베르트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지녔어도 아담을 상대하긴 불가능했다.

로베르트는 의연하게 아담의 눈총을 받아내며 입을 열었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과정이었으니, 아담에게 말하지 못할 것도 없지.

모든 것을 듣고 나면 아담도 납득하리라.

“나야 가수 하나 처리할 일이 어렵지 않으니, 가볍게 승낙했지. 그런데…….”

로베르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처음 동하를 만났던 이야기, 그가 생각보다 더 고수였다는 것.

거기에, 크리스라는 자가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어서 임무를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모은 이야기를 들은 아담은 침음성을 흘렸다.

과연, 크리스라는 인물이 위험하다는 건 알았다.

어지간히 신념이 뚜렷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원하는 건 뭐지?”

“딱히 원하는 건 없어. 그냥 위험한 일이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뿐이지.”

“새로운 무언가를 고용한다고 했나?”

“그래.”

“그러면…… 우리가 먼저 선수 쳐야겠군.”

로베르트는 피식 웃었다.

이것 때문에 아담을 부른 것이다.

그는 동하를 위하여 꽤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었고, 그만한 실행력과 재력,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나름 합리적인 이유로 아담을 찾았다는 로베르트의 판단.

그 판단은 아주 유효했다.

아담이 살벌한 기운을 거두고 흥미로운 눈빛을 보냈으니까.

“그래서 나를 찾아온 거다…… 좋은 판단이긴 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어떻게 하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로베르트는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러면 될 일이지.

동하에게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 거잖아?

아담은 조용히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선택해야겠군. 로베르트.”

“무슨 선택?”

“나와 함께 할 건지, 아니면 여기서 나가 쉘터의 적이 될 건지.”

“하…… 여기나 저기나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담은 작게 웃으며 설명했다.

크리스와 자신이 명백하게 다른 이유를.

“우린 먼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 쉘터는 항상 그랬다.”

“아…… 그러셔?”

“그래. 하지만, 위협이 되는 이들은 명백하게 배제한다. 이게 쉘터가 살아가는 방식이었어.”

“실은 나도 목숨을 위협받고 있어서 말이지. 일단은 협력하는 것으로 하자고.”

로베르트가 아담의 두꺼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함께 크리스의 작전을 무마시키기로 결정했다.

최고의 갱스터와 최고의 청부업자.

두 조합이 새로운 위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 * *

크리스는 새롭게 합류한 작가진을 바라보고는 작게 웃었다.

이들이 바로 자신의 새로운 지원군이 되어 줄 터이니, 확실하게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기대감에 들뜬 얼굴을 하고 크리스를 바라봤다.

자, 이제 무얼 하면 될까!

크리스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힘차게 말했다.

일단 동하와 월트사의 자존심을 살살 긁는 것부터 해야겠지.

“이제 우리는 누군가를 저격할 거다. 물론, 대놓고 하면 안 되겠지만, 시대를 역행시키는 누군가를 까 내릴 거야.”

“그게 누구죠?”

“박동하. 그리고 월트사.”

“박동하…….”

사람들은 박동하라는 이름을 듣고 슬쩍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금 그가 가진 위상을 생각하면, 아성에 도전하는 일개 병사들과 다를 바 없었으니.

크리스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당연히 어렵고 힘든 일이겠지. 하지만, 박동하는 지금 그릇된 사상을 강요하고 있어. 월드 투어와 새로운 OTT. 그 영향력을 바탕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문화를 통제하려 하고 있지.”

“그건…… 맞아요.”

“아직도 구시대적인 틀에 맞춰 콘텐츠를 만들다니. 그건 안 될 말이지.”

크리스는 항상 그래왔듯, 여기 있는 이들을 이용해 세상에게 가스라이팅을 시전할 생각이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었으니까.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이뤄지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그런데 어떤 사람들 아니, 대부분 사람들은 미화된 것을 원하고 보기 좋은 것만 찾는다.

누구는 그것을 본능이라고 말하지만, 아니, 그건 그저 오랫동안 내려져 온 편견일 뿐이다.

크리스는 그렇게 생각했고, 여기 있는 이들 모두 그의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새롭게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전쟁이나 마찬가지지.”

“그래요. 우리 한번 해 봅시다!”

“대기업의 횡포를 멈춰야 한다고요!”

팀원들은 세뇌라도 당한 듯, 목소리를 드높여 외쳤다.

이게 진짜 되는군.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 크리스.

그는 환한 웃음 속에 음흉한 생각을 담고 팀원들에게 임무를 나눠주었다.

이제 막 시작한 일이었지만, 음해 세력을 만드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VPN과 각종 장비를 통해 우회하여 게시글을 올리고 딥웹에 데이터베이스를 만든다면, 추적자들의 눈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아 계획은 완벽하니…… 이제 일할 사람만 구하면 되겠군.”

문제는 일할 사람이 누구인가에 관한 것.

로베르트가 돌아섰다면, 웬만한 이로는 안 될 테니까.

그의 극단적인 선택은 변하지 않았다.

똑똑-.

그때, 정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점잖고 묵직했다.

“사람을 찾고 있다고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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