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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김학효는 실상 기록원 중에도 드물게 선수 출신이었다.
동산고 시절에는 준족과, 야구 감각이 뛰어난 2루수로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선수 생활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신장이었는데, 결국 대학 진학은 무리였다.
“다만 김학효 선수의 성실함과, 야구 열정은 그 누구보다 뛰어났죠. 강대진이 그분에
게 기록원 자리를 제안했고, 기록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너무 기록비가 작은 것에 실망하고 결국 동산중 코치로 부임했다. 다만 그런 중에 다시 기록의 세계에 돌아왔다.
“바로 한국 프로야구의 출범 때문이었죠. 이 때 이분은 고민을 많이 했죠. 당신만 해도 전문적인 야구 기록원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김학효씨는 결국 한국 야구 위원회 사무실에서 당시 공개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쭉 이어지는 내용은 꽤 장황했다.
마치 한국 프로야구에 해박한 달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달달 외웠다.
“.......”
박호진 팀장도 다소 질린 기색을 한 채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이 가끔은 성질이 뭐 같은 이민혁 대리를 힐끗 쳐다보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 대리, 알았어. 그만 해라. 내가 어쩌면 되겠나?”
“한국 야구 정보 시스템 측에 가서 이 프로야구 서비스에 대해서 한 번 논의를 해볼 생각입니다. 아마 로열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관객에게 보다 선수들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을 원할 테니까요.”
“알겠네. 한 번 알아보게.”
“넵.”
다만 그도 돌아서는 이민혁 대리를 다시 한 번 불렀다.
“경은씨는 반드시 데리고 가!”
“경은씨요? 하지만 야구는 별로인 것 같던데요?”
“휴우, 이봐, 이민혁 대리, 많이 먹었잖아. 이젠 좀 나눠주고 그래. 도대체 혼자 그 많은 것을 왜 다하려는 거야?”
“말을 또 그렇게 하시네요.”
“너 삐딱하게 계속 나올 거야?”
이민혁 대리는 일축했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아니 보고서를 이주 전에 올렸는데, 꼭 제가 이렇게 찾아와서 확인을 해야 합니까? 아무리 일이 바쁘셔도 그런 일을 좀 빨리 처리를 해주셔야죠.”
“너 또 잔소리하는 거야?”
“네.”
“알았다. 앞으로 조심할 테니, 경은씨나 좀 잘 도와줘라.”
“그러죠.”
“이 대리 너도 참 고집 세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누가 보면 너가 부장이고, 내가 대리인줄 알겠다.”
“후후후.”
그는 가볍게 웃고는 그제야 돌아섰다.
***
임경은은 처음 시골에 출장 나간 이례로 오랜 만에 밖으로 나온 것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휘파람까지 불면서 여유를 만끽했다.
다만 한 사람 눈치는 봐야 했다.
“저기 이 대리님, 그러니까, 지금 하는 일이 한국 프로야구 기록을 정리해서 서비스하는 일이란 말이죠?”
“응.”
그녀도 이미 자신이 조사한 일부분을 떠올렸다.
“그 김학효란 분이 그렇게 대단했습니까?”
“대단했지. 1월 한 겨울에 대회가 없던 시기도 있었어. 이럴 때면 연습 경기가 열리는 곳을 일일이 다 찾아 다녔어. 인하대에서 연습이 열릴 때는 밑에 8명을 같이 데리고 다녔는데, 감독이나 코치조차 추워서 난로에서 몸을 녹였지만 이 분은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면서 기록 연습을 했으니까.”
“프로야구 출범하던 시절이었군요.”
“응. 그는 82년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기록원으로 임명 되었지. 당시만 해도 전환두 대통령이 시구를 했걸랑. 들어올 때부터 검문검색이 엄청났어. 청와대 경호원이 일일이 다 감시를 했으니까.”
당시만 해도 아나운서 코멘트에도 민감하던 시절이었다.
분위기는 딱딱하고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꼼짝없이 화장실에도 못가고 기록만 해야 했다.
이게 바로 한국 프로야구 기록사의 시작이었다.
임경은도 묵묵히 듣다가 혀를 내둘렀다.
“꼭 그렇게까지 알아야 해요?”
“그런 노력이 네티즌의 감성을 자극하니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야.”
임경은도 반박하려다가 결국에는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가자미눈을 한 채 계속 단아한 이민혁 대리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이 얼음덩어리(?)!’
***
김학효에게는 실상 이 개막전이 어떻게 보면 기록원 인생의 시작이었다.
서울, 인천 찍고, 대구, 광주를 돌아서, 부산 대전까지 계속해서 쫓아다녔다.
시합이 끝나면 홀로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연봉 480만원, 숙박비는 겨우 1만원에 불과했다.
이 열악한 환경 때문인지 사건 사고는 계속해서 터졌다.
정길만은 술자리에 나갔다가 기록지를 통계원에 전달하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결국 1개월 정직 조치를 당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없고, TV중계도 적어서 기록지에 의존해야만 했다.
83년에 국가 대표 투수 출신 박호성이 공식기록원으로 들어왔고, 85년에는 이천규가 다시 새롭게 합류했으며, 87년에는 김권재가 들어왔다. 하지만 기록원의 위상은 별로였다. 아직까지는 안타, 도루, 평균 자책에 대한 결과만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런 중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타자가 3루인 경우에 패스트볼이 나와서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 비자책점이 된다. 패스트볼 자체가 투수 자책점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게 일본식인데, 흥미로운 것은 타자가 홈런을 쳐도 3루나간 주자 득점은 비자책점이 된다. 하지만 미국은 이 홈런으로 3루 주자의 득점도 자책점이 된다.
이런 점이 생각보다는 많다.
야구 정신에 맞는 지에 대한 부분에 대한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상 80년대만 해도 이런 혼란은 많았다.
“84년에 해태와, OB 밀약은 대표적이지. 후기 1위를 목표로 한 OB가 해태에 지는 조건으로, OB는 김권일 도루를 묵인했어. 김권인은 2연전에서 도루를 8개나 추가하면서, 홍종문을 제치고 도루왕이 되었어.”
“그건 기록 조작이잖아요?”
“그런 셈이지. 오성 김덕영 감독이 롯대와 2연전에서 주전을 다 빼면서 져주기까지 나왔어. 웃기는 것은 오성 후보 선수들이 열 받아서 당시 롯대를 이길 뻔한 적도 있었지.”
“참 재미있는 기록이네요.”
“의외로 이런 거 많아. 세이브 충족 조건이 세 가지인데, 뭔지 알아?”
임경은 혀를 살짝 내밀었다.
“당연히 모르죠.”
이민혁 대리는 툴툴거리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자기 팀이 3점 이하로 리드할 때 최저 1이닝 투구하는 경우, 루에 주자가 득점하면 동점이 되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경우, 3이닝 이상 확실한 투구를 했을 때지.”
“복잡하네요.”
“실제로 두 가지만 알고 3번째는 모르는 경우도 있지. 그래서 피칭하다가 결과가 세이브가 안 되었을 때 막 항의하는 투수도 있어. 나중에 진실을 알고 나면 질려버리지.”
“왜 그렇게 복잡한 거에요?”
“글세.”
그는 KBIS에 도착하자 곧 입을 다물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임경은 총총 걸음으로 뒤를 바짝 쫓은 채 계속 참새처럼 쫑알거렸다.
“이 대리님, 그냥 들어가면 어떻게 해요, 이야기를 마저 해주셔야죠!”
“후후후.”
***
기록원도 마냥 이렇게 복잡하고, 규정이 까다로운 것은 아니었다. 기록원이 점점 늘어나면서 업무 형태도 많이 바뀌었다.
82년에 혼자서 수기로 시작했지만 97년에는 바로 컴퓨터를 이용한 방식이 새로 도입되었다. 경기당 공식기록원도 2명으로 늘어났다.
메인 기록원에 기록을 적으면서 그 기록지를 KBO에 전송하는 방식은 중간에 여전히 유지 되었다.
이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 바로 IMF였다.
99년 기록원이 1인 체제가 되었는데, 바로 예산이 문제였다.
김학효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그도 정리해고의 칼날은 피해가지 못했다.
“구단이 KBO 에산을 줄이라는 압박이 심해졌지. 결국 기록원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되었어. 김학효씨는 계속 항의했지만 먹히지 않았어. 다만 KBO 인사 말만 믿고 KBO를 떠났지.”
“헤에, 정말 안 됬네요.”
“그렇지. 김학효씨는 물론 이 부당함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정리해고 무효소송을 냈어. 복직명령이 떨어졌지만 법정싸움은 이렇게 시작된 거야.”
김학효는 재판에서 이길 수 있었다. 불행히 KBO 인사에게 다시 뒤통수를 맞고는 기록원에서 영원히 떠나야 했다.
묵묵히 자기 평생을 다 받쳐서 야구사를 기록한 사관 김학효.
제대로 뒤통수를 맞고는 펜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와 더불어서 한국 프로야구 기록을 집대성한 박기철 역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박기철씨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지. 제일 먼저 한 것이 통계회사를 차린 거야. 한국야구정보시스템을 차리고 이 통계를 활용한 수익 창출을 고민했어.”
시작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회의실 책상에 컴퓨터 두 대를 올려놓은 채 일을 시작했다. 사장은 동료 이원우, 박기철은 이사였는데, 프로그래머 한 사람 뿐이었다.
통로 뒤쪽에서 꾀죄죄한 얼굴을 한 사람이 힐끗 두 사람을 지나치면서 이민혁 대리를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다.
“자네는 어떻게 나보다 더 내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아?”
이민혁 대리는 따스한 눈빛으로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메이버의 이민혁 대리라고 합니다. 이 쪽은 제 동료인 임경은씨고요.”
“어, 그래? 가, 가만 메이버라고? 혹시 자네가 전화 건 그 친구군.”
“박기철 이사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제가 그 이민혁 대리입니다.”
간단한 소개.
하지만 굳이 더 말은 필요가 없었다.
박기철 이사는 다소 좀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 자신의 인생 프로필을 줄줄 다 꿰고 있는 사람을 보자 얼굴이 괴상했다.
그건 뒤늦게 나타난 다른 한 사람 역시 다르지 않았다.
흰머리가 가득한 김학효였다.
야구계를 떠난 이후에도 기록원에 대한 감정을 잊지 않았다.
“내 이야기도 아는 가?”
이민혁 대리는 방긋 미소 지었다.
“제가 김학효씨에 대해서 모른다면 이곳에 오지 말아야 하겠죠. 두 분은 최고의 베테랑 기록원이자, 야구사 사관이시죠.”
“으음, 이것 참, 얼굴이 너무 뜨거워지니, 그렇군. 자자 안으로 들어가지. 커피는 밀크로 할까? 좋아, 거기 아가씨는? 같은 거로.”
***
김학효는 기록원을 그만 후에 상실감 때문에 집을 거의 나가지 않았었다.
다만 이곳에는 박기철 때문에 잠깐 왔는데, 그 덕분에 다시 활력이 살아 나 있엇다.
이민혁 대리는 쭉 풀어놓은 보따리를 들으면서 웃을 때도 있었고, 꿀꿀한 표정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선수 시절이 아직도 기억이 나. 기록원으로 일할 때는 매일 꿈을 꾸었어. 나는 야구를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꿈만 봐서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
어느 듯 충혈된 눈.
습기가 조금씩 비치고 있었다.
임경은은 세 사람 이야기하는 것을 그저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그녀도 중간에 계약 이야기를 하지 않나 싶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이보다는 오히려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박기철 이사는 특히 한 가지 점을 지적했다.
“돈은 많이 못 벌었지. 하지만 야구를 하는 동안은 행복했어.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기분 좋은 경험이었어. 그래, 자네가 원하는 것이 우리 기록원 내용 맞지?”
이민혁 대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대신에 두 분이 이제까지 한 이력에 대해서는 저희 회사에서 따로 란을 만들겠습니다. 아마 그것을 통해서 이쪽 사이트에 대한 홍보가 진행될 겁니다. 그 내용 업데이트는 여기 임경은씨 통해서 하시면 될 겁니다. 추후 사람이 배정되면, 전문적으로 따로 관리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별 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다고 계약에 대한 돈도 원하지 않았다.
이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한 가지 얻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광고라.......이민혁, 이 친구라면.......’
다른 사람이었다면 계약 내용이 좀 달라졌을 것이다.
그들의 평생 삶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민혁 대리라면 굳이 그럴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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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1. 재미있다.
2. 재미없다.
3. 애매하다.
4. 쿠폰 소박이라도 좀 주고 싶다. ㅠ.ㅠ;(2연참인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