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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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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상속녀에 대한 환상은 실상 일반인이라면 예외가 없다.
간혹 이들이 운영하는 클럽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비슷하다.
돈이 남아도니, 이자 따위는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아무래도 클럽 운영이 방만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더 손님이 많아진다.
현실에서 부족함이 없으니, 그들의 성격은 일반인과는 많이 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이 없으니, 남위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마 이지민이 그런 삶을 살았다면 다른 재벌 상속녀와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일반적인 재벌 상속녀와는 경우가 다르다.
아버지가 홀로 어머니를 데리고 나가버리면서 호적에도 오르지 못했다.
더욱이 갑자기 아버지가 죽어버리자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시기에 끼어든 것이 바로 지금의 오성 그룹 회장이다.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막내아들이 죽고 난 후에는 갑자기 행동을 바꾸었다.
그녀 어머니는 호적에 올라가고, 그녀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 다음은 미국 스탠포드 행이었다. 따로 지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남들이 꿈에도 바라는 세계 최고의 대학을 갈 수가 있었다.
이지민은 당시만 해도 아버지가 돌아가고 난 후에 정신 차릴 겨를이 없었다.
그녀가 그 당시에 할 수 있었던 것은 스탠포드 대학 공부다.
묵묵히 학업에만 빠져 들어갔다.
석사 과정은 MIT다.
나름 그녀의 재능이 있는 것인지 이 과정 자체는 무사히 끝낼 수가 있었다. 아마도 할아버지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면 미국에 계속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지병 이슈가 터지면서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오성 전자 지분이 생긴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이지민 그녀 자신이 특별하게 행동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집안에서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몇 년이 흐르고 난 다음이었다.
재벌 상속녀라면 흔히 하는 경험 따위를 거칠 과정이 없었다.
그저 자고 일어나니, 로또를 맞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지민은 그 이후 일이 오히려 더 적응하기 쉽지가 않았다.
모든 사람의 행동은 다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오성 전자 팀원 역시 다르지 않다.
처음 그녀 신분을 몰랐을 때는 그저 해외에서 잘 나가는 인재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가 재벌 후예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달랐다.
다들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크게 세 가지 부류가 있다.
한 부류는 일방적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녀가 출근해서 복도를 지날 때면 다들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인 채 눈치만 살핀다.
다른 부류라면 옆으로 달려와서 아부를 하는 이들이었다.
“이 수석님, 좋은 아침입니다.”
“네, 김 부장님.”
마지막 부류라면 사사건건 건수를 살피는 이들이었다.
틈만 생기면 아부를 서슴지 않은 부류다.
솔직히 오성 전자 지분 가치만 해도 어마어마한 돈이다.
직접적인 경영 간섭은 어렵다고 해도 그 정도라면 마땅히 오성 전자 상무 자리를 얻을 수가 있다.
이지민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도 보게 된 주변 환경이다.
그건 메이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진해 사장을 위시해서 메이버 임원진 역시 연장선이었다.
그들은 마치 자신을 전제왕권 시대의 공주인양 대우한다.
그녀도 처음에는 이게 이질적이었지만 이제는 그런가 한다.
바로 오성 전자의 힘 때문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지분의 힘이라면 쉽지는 않겠지만 어지간한 작은 대기업 경영권도 공중분해 시킬 수가 있다.
당장에 잘려서 실직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예외인 사람은 표가 확 나게 마련이다.
‘이민혁 차장이라........’
사실 발표 내용만 본다면 좀 뜬금없다.
하는 행동만 본다면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물과 기름은 섞일 수가 없다. 이민혁이 한 행동이 아무리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그 본질 자체를 속일 수는 없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마침 비서로 늘 옆을 수행하는 김현지가 메이버 보고 자료와, 엔비 소프트 관련 지분 현황을 가져 와서 내놓았다.
“어때?”
“네? 아, 이 엔비 소프트요? 꽤나 특이한 회사죠. 하지만 평균 회사 순이익이라고 해봐야 겨우 60억 정도에 불과합니다. 특히 최근 엔비 컨소시엄 관련 이익은 급격히 떨어져서 3억 정도에 불과합니다. 아무래도 아직은 신설 법인이라서 그렇게 안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신랄하기 짝이 없는 평가다.
하지만 실제로 엔비 소프트 로열티 수익은 들쭉날쭉 한다.
많이 벌 때는 130억 까지 버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바닥을 칠 때는 이게 50억 까지 추락해 버린다.
엔비 컨소시엄이 그 좋은 경우다.
이번 스티븐의 반격 이후에 로열티 수익이 3억까지 폭락해버렸다.
하지만 이런 매출 변화는 단순히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관련 다른 콘텐츠 업종에도 영향을 준다. 물론 일본이나, 미국 엔비 소프트 지사를 통해서 꾸준하게 들어오는 이익도 있다.
하이브리드 솔루션을 비롯해서 엔비 코덱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쪽 역시 좋지 않기는 매 한 가지였다.
특히 애풀이 내놓은 2세대 제품이 문제였다.
하드 디스크를 이용해서 대용량의 MP3를 저장할 수가 있다.
한국처럼 불법 MP3 다운로드가 심한 나라에서는 아무래도 엔비 컨소시엄 판매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해외는 5대 메이저 음반사의 교묘한 알력 때문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야말로 설상가상으로 엮여지면서 매출이 격감하는 형태였다.
그나마 매니아 매출이 있었고, 다른 메이버와의 콘텐츠를 통한 수익 역시 있다. 여기에 엔비 소프트 신사옥 건물 임대 수익이나, 보증금 이자 수익이 있다.
하지만 이지민 생각은 좀 달랐다.
“최근 런칭한 엔비 디토이, 푸니는 무시하기 어려워. 이쪽 로봇 장난감 분야 쪽은 향후 그 가능성이 특히 높아.”
“하지만 그 쪽은 일본 소니와 같은 기업을 상대해야 합니다. 엔비 소프트같은 기업으로는 많은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자본력을 갖춘다면 어떨까?”
“자본력요? 지금 엔비 소프트 신사옥 말씀 하시는 거에요? 그래봐야 고작 650억 남짓에 불과할 뿐입니다. 아가씨는 지금 너무 사소한 것에 신경 쓰시는 것 같습니다.”
이지민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현지야, 너무 오버하는 것 아냐? 내가 가진 지분은 할아버지에게 받은 것일 뿐이야. 너 혼자 힘으로 이런 기업 설립할 수 있겠어? 엔비 소프트는 시작할 때부터 다른 이들의 전혀 도움을 받지 않았어. 불과 1년 사이에 한 해 매출만 1,200억을 바라 볼 정도의 회사로 성장했어. 이게 무시할 정도야?!”
“하, 하지만........”
“정말 실망이다.”
핀잔이었다.
김현지 비서의 얼굴이 살짝 변했다. 하지만 그녀도 이지민 구박을 듣고 나서는 좀 생각을 바꾸었다. 비교 대상이 오성 전자여서 우습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황이 많이 다르다.
“확실히 좀 대단하네요.”
“그렇지? 잘 봐. 그렇게 놓고 보면 이 이민혁 차장이란 사람도 이상하기 짝이 없지. 엔비 소프트 매출 분기점에는 꼭 이 사람이 관여했으니까.”
실제로 그녀가 마크한 엔비 소프트 매출과, 메이버 매출 분기점에는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이민혁이 관여해 있었다.
회사 보고 내용과, 매출 이력, 프로젝트 현황을 하나 둘씩 맞춰보면 이민혁의 영향력은 실상 그 누구보다 엄청났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환산하면 지금 메이버 매출 태반은 이민혁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더 이상하네요. 이 보고 내용만 봐서는 전혀 그런 내용이 보이지 않잖아요? 만약 메이버 현실, 미래 지표를 설명하려면 다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확실히 뭔가 이상하지? 그러면 이 이민혁 차장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몰라서라고? 그건 절대로 아냐. 의도성이 다분하지.”
“의도성이라.......확실히 이상한 구석이 많네요.”
“그렇지?”
그녀는 손뼉을 치면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건 마치 딱 자기 입맛에 맞는 펫을 찾은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김현지 표정은 좋지가 않았다.
그녀가 아는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려고 그러세요?”
“일단 엔비 소프트를 확인해봐야지. 그 다음에는 이 이민혁 차장이란 남자를 다시 만나 봐야겠어.”
“엔비 소프트는 이해가 되지만 꼭 이 이민혁 차장을 볼 필요가 있어요?”
“당연하지. 지금 내가 진행하는 이 완구 프로젝트에 없어서는 안 될 콘텐츠가 바로 이 엔비 소프트야. 특히 인공 지능 관련 기술은 반드시 얻어야 해.”
“그거야 엔비 소프트 측과 적당히 계약하면 되지 않아요?”
“그렇게 쉽게 된다면 상관이 없지. 하지만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거야.”
“헐, 아가씨, 진짜 오버에요. 그놈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아가씨 제안을 무시할 수 있겠어요?”
“좋아, 그러면 한 번 해 봐.”
“아가씨는 너무 생각이 많아서 큰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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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는 다음 날에 곧 엔비 소프트 본사를 직접 찾아갔다.
하지만 나온 대답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아직까지는 다른 업체 측과 제휴하는 것은 계획에 없습니다.”
“저희가 오성 전자에서 나왔다는 것은 아시죠? 그런데도 그런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하지만 토토빌테크는 저희 자회사나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오성 전자 측에 관련 컨텐츠 계약을 한다면 경쟁 업체를 도와주는 꼴이 됩니다.”
일방적인 거절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합리적인 설명에 따른 결과였다.
다만 그녀도 이런 결과는 예상치 못한 터라 놀람을 감추기 어려웠다.
결국 이지민과 동행해서 다시 엔비 소프트를 찾았다.
그 결과는 여전히 다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다만 상대하는 강호정 행동과, 태도에는 변화가 좀 있었다. 특히 이지민을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기 짝이 없었다.
이지민도 아쉬운 표정을 한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쉽네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고 연락을 줬으면 하네요. 그 쪽 역시 요즘 애풀의 신제품 때문에 큰 타격을 받고 있잖아요? 애풀의 영업력은 저희 오성도 무시하기 어려워요.”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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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냐?”
“네.”
이민혁 표정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가 예상한 것과는 너무 달랐다. 이지민이 이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 지는 예상 못했기 때문이다.
그건 강호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말 이런 식으로 이지민양을 처리해도 됩니까? 나중에 문제가 안 될까요?”
“자식아, 우리 오성하고 무슨 관계라도 있냐? 그 쪽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지분 문제는 그렇다고 하지만 메이버를 통해서 손을 쓸지 모르잖아요?”
“그렇지는 않아. 설사 그렇다고 해도 내가 가장 먼저 알게 될 테니, 신경 쓸 것은 없다.”
“참 형이 메이버 직원이었죠. 요즘은 깜빡깜빡 한다니까요.”
강호정도 툴툴거리다가 이민혁 눈치를 보더니 불쑥 한 마디 던졌다.
“이지민양 외모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거기에 오성 상속녀 아닙니까? 솔직히 지금 형수님도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아무래도 뭐? 너 설마 지금 나보고 고무신 거꾸로 신으란 말이야?!”
“솔직히 좀 그렇잖아요. 오성 전자 그 지분이면, 돈이 얼마입니까?”
“야아, 꿈 깨라.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냐?”
“저같은 평범남이야 그렇죠. 하지만 민혁 형이라면 좀 다를 것 같아서요. 민혁 형이 뭐가 아쉬운 것이 있겠어요? 불과 1년 만에 매출 1,500억 엔비 소프트를 설립했죠. 지금이야 회사 매출이 들쭉날쭉 하지만 3-4년이면 년 매출 1조 기업으로도 키우고 남습니다.”
이민혁은 그렇지 않아도 ‘조강지처’ 때문에 골이 아팠다. 거기에 애풀도 우려한 대로 흘러가는 터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쓸데없는 소리 마!”
“쳇, 다 형 좋으라고 한 건데, 솔직히 누이좋고, 매부 좋잖아요? 형이 잘 되면.......아, 알았다니까요.”
그는 이민혁이 책을 들고 던질 기세를 하자 허겁지겁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민혁도 씁쓸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다. 최근 갑자기 그의 앞에 갑툭튀로 튀어나온 이지민. 바로 그녀 때문이었다.
‘갑툭튀는 아니겠지. 오성 전자 역시 바보는 아니잖아. 미래 먹거리 산업 관련해서 지능형 로봇은 빼놓을 수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오성도 지금까지는 이 수익 모델을 만들지는 못했어. 그러니 엔비 소프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
회귀 전의 미래와는 전혀 이질적인 변화라써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그의 심사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