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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이민혁-469화 (469/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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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9장 맞선(?)

환절기 때문에 밤이 다가오면 기온은 뚝 떨어져버린다.

이지민도 자기 잘못 때문에 이민혁이 문제가 되자 막상 메이버 사옥 바로 앞에 까지 왔지만 아무래도 심난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나온 최현지와의 노이즈 마케팅 기사가 새삼 떠올랐다.

그녀가 딱히 이 일을 가지고 이민혁에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도 마음이 울적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대놓고 마음을 준 것은 아니지만 나름 은근히 서로 시선을 주고받은 처지의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관심이 있으니, 질투도 났다.

그녀는 회사 일과, 최현지 일이 서로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히자 심사가 더욱 더 복잡했다.

그런 중에 차창 밖으로 본 것은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던 연인을 만나서 서로 포옹하는 장면이었다.

남자는 자기 연인이 추위에 떠는 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는 지 목도리와, 상의까지 벗어주었다.

여인은 연신 싫다고 하면서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별 것 아닌 일 같아도 그녀에게는 거리가 먼 장면이었다.

지금 차만 해도 그렇고, 차량 운전사만 해도 그렇다.

옆에 앉아서 계속 떠들고 있는 비서 김현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가씨, 도대체 어쩔 생각으로 이 일에 태클을 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용재님이 지금 기획팀 이사로 내정된 것은 잘 알지 않습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섰고, 경영지원 총괄 내의 미래 전략 그룹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지민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용재 오빠가 기획팀 이사라니?”

“어? 모르셨어요? 이 쪽이 신규 산업이나, 인수 합병 업무 쪽을 주로 진행합니다. 물론 주주총회 결의가 필요한 등기 이사가 아니라, 비등기 이사입니다만 그게 또 안 그렇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박사 과정 중인 이용재가 오성 그룹 후계자로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진행한 것은 이미 꽤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녀도 애초에 그룹 승계 구도 쪽에는 아예 관심을 끊은 지라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 그러면 지금 메이버 인수 합병도 용재 오빠가 담당한다는 말이야?”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사장단 회의까지 올라간 안건이니, 이미 내사를 했을 겁니다. 더욱이 아가씨와도 관련이 있으니, 보는 관점이 많이 다를 겁니다.”

“하아.”

그녀도 머리가 띵한 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용재 처지도 사실 마냥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 말아먹은 회사도 꽤 있었다.

이제 나이도 삼십대 초반이니, 그나마 많이 좋아져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 이게 더 안 좋을 수도 있다. 그 역시 경영 승계 과정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주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실적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지민은 순간 자기 주변의 복잡한 역학 관계를 떠올리자 가슴이 턱하니, 막힐 수밖에 없어서 곧 차량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운전사가 곧 바로 튀어나와서 그녀를 경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손을 들어서 그들을 막았다.

“지금 혼자 있고 싶습니다.”

“그건 절대로 안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그녀가 안쓰러운 표정을 보이자 경호원도 주춤 뒤로 물러났다.

김현지가 슬쩍 옆에서 허락을 해주자 그는 곧 다시 차량에 타야 했다.

이민혁이 전화기를 들고 건물에서 나타난 것은 딱 그 시기였다. 그는 핸드폰을 걸기가 무섭게 가까운 거리에서 벨이 울리자 힐끗 시선을 돌렸다가 마침 이지민을 발견했다.

“아, 지민씨, 마침 전화하려고 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꾸벅 허리를 숙이는 그녀. 단순히 남녀 간의 인사 때문이 아니라, 도의적인 책임감이 그대로 드러난 행동이었다.

그는 당연히 당황해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죠. 이곳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으니까.”

“네.”

김현지는 눈치껏 뒤로 빠졌고, 차량 역시 두 사람과 거리를 둔 채 계속 따랐다.

이민혁도 그걸 느꼈지만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역시 이지민을 만나면서 새삼 그녀가 자기 눈치를 본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재벌 상속녀의 느낌과는 너무 달랐다. 물론 같이 있을 때 그 거부감은 여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남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박 실장님 말씀은 맞을 수도 있겠어.’

***

이민혁이 아무리 재벌 상속녀라는 느낌이나, 이전 선입견이 있다고 해도 여자에게 함부로 대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도 박호진 실장 조언을 생각해서 이지민에게 좀 더 친절하게 해주려고 했다.

“지민씨, 제발 그런 표정 좀 마시고요. 편하게 이야기를 해보세요.”

“고마워요.”

“아, 또 그런다.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제가 지민씨 잡아먹는 괴물은 아니잖아요?”

“킥.”

그녀도 결국에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정서적으로 이미 이민혁에게 좋은 감정이 있으니, 아무래도 쉽게 긴장이 풀렸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풀려가면서 나온 것은 역시 최근 오성 전자 내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였다.

“펜티엄 266MHz가 탑재된 아이꼬마가 나왔던데, 그게 자율이동이나, 음성 인식까지 한다면서요? 특히 가족을 인식하고 이야기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봐야 단점이 더욱 더 많아요. 막상 이야기를 해도 제대로 인식도 안 됩니다. 푸니에 비할 수조차 없습니다.”

“푸니도 문제 많습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 보세요. 아주 저희 메이버 담당 직원을 삶아서 먹으려고 하는 분위기니까요. 전 이보다 앤토같은 모델이 더 탐납니다.”

앤토는 키가 35cm, 무게가 2kg 정도로 20개의 관절이 있다. 인간과 거의 흡사한 동작을 보일 수 있는 토이 로봇이다.

리모컨으로 수동 조정이 가능하고, PC 프로그램 통하는 방법도 있다.

오성 전자에서 이 로봇 개발을 계기로 상품화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다만 판매 자체는 버그 이슈 때문에 내년 상반기 정도에 출시할 예정이다.

문제는 역시 가격대인데, 이게 수백만원을 넘어간다.

바로 소니 아이보에 대한 대용으로 나온 제품이라고 보면 된다.

이지민은 귀여운 개구쟁이 같은 눈빛을 한 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면 뭐해요? 아이보도 푸니에게 박살났잖아요. 그것 때문에 앤토 판매는 무기한 연기되거나, 접을 지도 모릅니다.”

“서, 설마요?”

이민혁도 화들짝 놀라서 정색했다. 그도 잘은 모르지만 ‘앤토’ 모델이 나온 것은 회귀 전의 역사 흐름을 따랐다.

이게 판매조차 되지 않은 채, 접는다면 미래 역사가 또 바뀌게 된다.

그도 이미 많은 미래를 바뀌기는 했지만 오성 전자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에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오성 전자와 만약 본격적으로 척을 진다면 상황은 아주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킥킥, 너무 걱정 마세요. 민혁씨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니까요.”

“그게 아닙니다. 제 말뜻은........”

이지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다가 곧 자신의 용건을 떠올리고는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군요.”

“그, 그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한 번 말씀해보세요.”

이지민은 뜻밖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리를 반복해서 숙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민혁은 생뚱맞은 표정으로 그녀를 잡아서 앉히고는 안색을 굳혔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저와 관련된 일이면 솔직하게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실은........”

그녀도 더듬거리다가 결국 최근 일어난 일에 대해서 하나 둘씩 털어놓았다. 앞부분은 그다지 이민혁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다만 오성 사장단 회의에 보고 된 것과, 기획팀 이사로 이용제가 된 내용은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최악이구나.’

이지민은 이민혁 표정 변화를 보더니 다시 일어나서는 허리를 반복해서 숙였다. 재벌 상속녀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너무 자기중심적이라서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행동이지만 실상 그녀의 심성이 잘 드러난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재벌 상속녀가 된 이후로 점점 변화를 거듭하면서 행동이 오락가락한 것이다.

이민혁도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결국에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게 사과 안하셔도 됩니다.”

“네? 하, 하지만 저 때문에.......”

“지민씨 때문이 아닙니다. 언제 일어나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일 뿐입니다. 지민씨가 아니고, 이용제가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이 했을 겁니다. 우리 사장님도 그런 부분을 염두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성SDS 지분 10%를 엔비 소프트 측으로 넘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녀도 꽤 위안이 된 얼굴이었다.

“고맙습니다.”

“아뇨, 제가 오히려 더 고맙습니다. 사전에 이렇게 알려주신 덕분에 저희 회사 내에서도 어느 정도 대안을 마련할 수 있으니까요.”

그도 따스한 시선으로 이지민 안색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재벌 상속녀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지금까지는 솔직히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녀의 지금 모습은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메이버 때문에 일이 꼬여서 만나게 되기는 했지만 참 세상 일은 모르겠구나. 이 만남 역시 지연이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두 사람 대화는 한결 편해지면서 즐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한 쪽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는 김현지는 복잡한 표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괜찮을지 모르겠네. 당장 사모님만 해도 난리를 칠거고, 거기에 회장님도 알게 모르게 다 지켜볼 텐데,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

최유비도 따지고 보면 남자를 잘 만나서 팔자를 피려고 했지만 오성 회장이 아예 두 사람 결혼을 외면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녀가 당시 가진 실의와, 절망감, 모멸감은 생각보다는 꽤 깊은 앙금으로 남았다.

이런 경험 자체가 그녀의 성정에 영향을 주고도 남았다.

다만 당시에는 오성 회장이 남편 경영권을 다 박탈하면서 여건이 좋지가 않았다.

그런 차에 일어난 그녀 아버지 회사의 풍지박살이 겹쳤다.

그녀도 이런 부분은 한으로 여길 정도였다. 당시 오성이 도와줬다면 그녀 집안이 그렇게 박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여전히 오성 회장이 외면했다면 그렇게 힘들게 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갑자기 오성 회장이 직접 손을 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오성 일가 며느리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여건만큼은 어느 재벌 못지않을 수가 있었다.

최유비가 사치를 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과거와도 관련이 있다.

그녀는 자기의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돈으로 해결하려했다.

심지어 이지민 때문에 대궐같은 집도 얻게 되자 딸이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일종의 투자 상품 정도로 봤다.

재벌이라면 하는 정략결혼에 눈에 뜬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민혁 프로필 조사를 맡긴 것 역시 같은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이민혁 프로필 내용을 확인하고는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로 한 사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녀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

한창 젊은 시절에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한 길로 묵묵히 걸어간 이다. 단 두 주먹으로 기업을 일구고, 건실한 실업가로 평가 받은 그 부친이었다.

“이건 좀 놀랍네.”

그녀 비서 역시 꽤나 흥분한 표정이었다.

“저도 조사를 하면서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보통 월급쟁이라면 조직의 부품일 뿐입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그 부속의 영역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민혁 이 친구는 전혀 다릅니다. 스스로의 업무 영역을 키우면서 메이버 조직 자체의 구조 변화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보고 내용에는 이민혁이 메이버에 있으면서 한 실적과, 대우에 대한 것도 상세하게 다 적혀 있었다.

이민혁이 한 역량과, 결과는 메이버를 혼자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속에서도 묵묵히 일만 하면서 다른 이들의 신뢰를 얻은 모습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하물면 스톡옵션 20만주라니.

그녀 역시 사업가 부모를 든 투라,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 않았다.

“애가 참 날 닮아서 그런 지 남자 보는 눈은 그래도 있다니까.”

“네? 사, 사모님?”

“아 됐어. 그냥 한 소리이니까. 신경 쓰지 마.”

그녀는 다시 프로필을 꼼꼼하게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역시 엔비 소프트와 관련된 부분도 있었다.

추측으로 관련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엔비 소프트에 자주 드나드는 사진과 같이 나와 있는 부분만 봐도 단순히 협력 업체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민혁 역량이면 엔비 소프트를 어느 정도 관리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알고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것 봐라. 가만 1년도 채 안 되었잖아. 애 정말 보통 내기가 아니잖아.’

그녀는 잠깐 고심을 거듭하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이민혁 이 친구를 잠깐 보자가 연락을 한 번 해봐.”

“지, 직접 만나실 생각입니까?”

“그러면? 날 보고 어쩌라고? 전화로 처리하란 말이야?”

“그건 아니지만 지민양도.......”

“지민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마. 알았어?!”

“아, 알겠습니다.”

최유비도 처음과는 달리 이민혁 프로필을 통해서 남편과, 돌아가신 아버지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자 심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민혁은 마치 두 사람의 장점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았다. 아니 그 역량은 두 사람과 비교조차 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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