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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1장 의혹
최민근에 대해서는 이민혁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SH 텔레콤과 관련이 있고, 정확히는 SH 그룹 내부의 인물이라는 정도다.
실제로 일을 처리한 것은 최민근이 아니라, 그 밑에 이들인 탓이다.
다만 그가 아는 바로는 최민근이 SH 그룹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정도다.
워낙에 SH 그룹 내부 정보가 폐쇄적인 터라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결론적으로 애길하면 최민근에 대한 평판은 나쁘지 않았다.
고려대 법학과를 나와서 미국 유학 후에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보통 재벌 2세가 경험하는 초일류 코스를 밞았다는 정도다.
다만 그도 귀동냥으로 최민근 행동 대장을 통해서 들은 내용이라면 직원과의 평판 정도다. 평소 일반 직원과 구내식당을 이용하면서 사내 직원 안부를 일일이 다 체크한다.
심지어 평소에는 격의 없는 농담도 하면서 해외출장 가는 임직원도 챙겨준다.
겉으로 봐서는 꽤나 보스 기질이 강하고, 리더쉽이 있는 이처럼 보인다. 더욱이 인상도 좋아서 악랄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민혁이 그로 인해서 경험한 기억은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그러니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미래가 바뀐 것일까? 아니면 형태가 새롭게 달라진 것일까? 최지연과의 관계도 어떤 형태로던지 서로 엮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녀와 관계가 끝이 나도 결국에는 다시 엮인다는 의미인가?’
이민혁 심사는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안건은 대수롭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만약 그가 어떤 형태로던지 최민근이 노리는 것이 있다면.
‘설마 인공지능은 아니겠지?’
오성SDS를 그만뒀을 때 그 역시 꿈과 희망이 있었다.
그 자신의 탁월한 능력도 그 능력이지만, 박호진 실장을 통해서 배우고 경험한 것이 실상 그 희망의 근원이라고 해야 했다.
바로 인공지능.
하지만 이런 꿈을 꿔 보기도 전에 살벌한 현실부터 먼저 마주해야 했다.
그 희망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저 입에 풀칠하는 것이 다였다.
그런 중에도 이민혁은 포기하지 않고, 틈날 때마다 이 연구를 거듭했다. 실제로 그 자신이 있었던 회사 사장과 코드가 맞아서 일부 적용시킨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상업적인 결과는 좋지 않았다.
IMF 이후 서민 경제의 침체는 늪처럼 지속되었고, 판로 자체가 막혀 버렸다.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대기업 판로라도 어떻게 해서던지 잡아야 했다. 그게 바로 SH 텔레콤 계열사에 납품이었다.
여기서 부터는 이민혁도 제대로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는 당시 중소기업의 엔지니어였고, 자기 개인적인 일 때문에 하던 일조차 가까스로 풀어가는 상황인 터였다.
실상 이민혁도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멍에였다.
지금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그 당사자에게 복수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하지만 만약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상황이 좀 다르다.
그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과거 SH 텔레콤과 같은 상황을 직면한다면 어떻게 될지 확실치가 않았다. 실제로 회사 내에 전문 경호 집단 구축을 시작한 것도 지난 전생의 아픔 경험과 관련이 있으니까.
‘아르 안정화 작업을 서둘러야겠어.’
***
기존에 엔비 소프트에서 진행하고 있고, 지금 따로 작업 중인 엔비 인공 지능은 아르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첫 번째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드웨어 제한과 관련된 부분이다.
인공 지능 자체가 근본적인 이 한계를 못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유전자 알고리즘 적용을 비롯해서 다양한 알고리즘을 채용했다고 해도 이 테투리 선에서 머물러 있게 된다.
그나마 기존 AI와는 차별화되는 요소라면 경험을 통한 학습 능력이다.
베르단디가 지능을 가지는 과정 자체도 이것과 동일하다.
다만 중간에 중간 값 자체를 알 수가 없고, 이런 이슈로 인해서 오버 로드가 걸리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이것 외에 기존에 진행되는 모든 엔비 콘텐츠 수정도 필요하다.
다만 그걸 진행하기 전에는 필히 이 아르의 기능과, 한계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 했다.
이민혁이 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이게 생각처럼 간단한 이슈는 아니었다.
라그하임에서 사용한 NPC가 비록 기능적인 제한과, 한계가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 갖춘 기능이 꽤 들어가 있었다.
단말 기호나, 함수, 적합도, 파라메타와 같은 부분이었다.
이런 부분은 그들 기술의 한계로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으니, 경험적인 값을 넣어서 절름발이 형식으로 만들어놓았다.
이민혁은 이 코드를 전부 다 도려내고, 아르1-3D-LAHM을 다 집어넣었다.
홍진석 수석은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요. 그거 알고 하시는 겁니까?”
“여기 그쪽 회사 인공지능 모듈 부분 아닙니까? 이건 시나리오 알고리즘이고, 아 태스트 베드군요. 어쨌든 상관 없잖아요?”
“하, 하지만 그게 제대로 동작한다는 것은 아직 확인도.......”
“그러니까요. 그걸 지금 확인하려고 포팅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그게 말이 안되죠. 저희 쪽 게임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
“라그하임? 제가 그쪽 게임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게임 전반 프로세스는 그 쪽에서 다 총괄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우리 회사 제품이 어떻게 동작하는 지 아셔야죠. 혹시 베르단디같은 형태라고 해도 중간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듈이 다 알아서 시나리오를 관리합니다. 필요한 경험치와 데이터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 쪽에서 이미 밸런싱을 규정해놓았죠? 그 안에서 크게 이슈가 없을 겁니다.”
“하, 하지만.......”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노가다를 무수히 반복해서 왔는데, 그 과정 자체가 갑자기 사라지자 허무해진 것이었다.
더욱 난감해한 것은 이민혁의 저돌적인 일처리다.
중간에 엔지니어들이 모여서 일 처리를 진행하는 중에 끼어든 후로는 그냥 막 밀어붙이고 있었다.
옆에서 보면서 새삼 그의 능력을 느끼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몇 년에 걸친 작업인 터라 염려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이민혁은 그런 그를 무시한 채 곧 바로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고는 컴파일해버렸다.
그야말로 일사천리.
‘정말 빠르네.’
단순한 알고리즘 정도는 지금 이민혁 수준에서 굳이 다 알 필요도 없고, 그냥 보는 것만으로 흐름을 유추할 수 있다.
그가 이민혁의 진정한 실력을 알았다면 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
화면은 곧 컴파일 작업 창이 뜨면서 쭉 올라가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에러가 좀 나오기는 했지만 그건 구조체 몇 가지와, 링크가 제대로 처리가 되지 않은 것뿐이다. 그 부분 수정이 몇 번 되자 곧 컴파일 작업은 끝이 났다.
곧 이어서 게임 실행이 이어졌다.
화면은 예상대로 3D였다.
전생에서 고화질 3D를 경험해본 이민혁은 다소 실망했지만 지금 기술 기준으로 본다면 딱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작 화면은 의외로 던전이었다. 원래라는 게임에 대한 소개와 같은 환경이 있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홍진석 수석은 의아한 표정을 한 채 쳐다보는 이민혁 시선을 읽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MMORPG 게임에서 중요한 것이 손맛이잖아요? 그래서 격투를 우선적으로 테스트 베드를 진행했습니다.”
“호오, 그래요?”
이민혁도 그제야 상황 파악하고는 다시 모니터 화면에 집중했다.
회의실 한 쪽 프로젝트에는 이 화면이 나와 있었는데, 관련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호기심을 감추기 어려웠다.
***
요즘 엔비 소프트 해외 쪽을 뻔질나게 뛰어다니면서 막 회사에 돌아온 강호정은 이 분위기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진훈아, 이게 다 뭐야?”
최진훈 역시 질문을 받고는 대답하려다가 그 과정을 떠올리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중에 애길해줄께요. 일단 보세요. 지금 테스트 중이니까.”
그도 당장 떠오르는 것은 익숙한 ‘베르단디’였다.
“테스트? 베르단디를 다른 프로그램에 포팅하는 작업이야?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을 텐데, 다른 것을 떠나서 부하가 너무 많이 걸려.”
“아뇨, 베르단디 아닙니다. 일단 지켜보세요.”
둘은 별 것 아닌 걸로 투닥투닥 거렸다. 엔비 소프트 2인자로 자리매김한 강호정은 당연히 궁금한 것이 많은 터라 둘의 말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때 마침 던전에서 새로운 NPC가 나오자 탄성 소리가 이어졌다.
두 사람 시선은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
라그하임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3D 게임이다.
하지만 보기가 좋다고 해서 상업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경쟁자는 엄연히 MMORPG의 절대강자인 리니지다.
여기에 후발주자인 디아블로2 역시 빼놓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블리자드를 비롯한 많은 외국계 회사들조차 이 영역으로 관심을 넓히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에 비해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게임 그 자체 충실도도 꽤 중요하다.
결국 테스트 베드 자체는 스토리보다는 이런 전투 환경에 좀 더 집중되어 있었다. 당연히 몹과 싸우는 장면이 시작이었다.
바로 꿀몹인 늑대와, 갑옷쥐다.
이 몹들을 잡게 되면 아이템이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는 숏소드와, 롱소드, 강철 방패와 같은 저렙용 방어구가 있다.
아이템은 당연히 무게 기준으로 맞추어야 진행이 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몹들은 어디까지나 초보자를 위해서 만들어 것이다.
쉽게 잡아야 한다.
홍진석이 역시 시범타로 나서서 익숙한 솜씨로 마우스를 조작해서 늑대 한 마리에게 칼질을 시작했다. 당연히 늑대는 아이템을 떨어트리고, 죽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늑대는 놀랍게도 뒤로 물러서 버렸다.
“어?”
홍진석은 전혀 예상도 못한 결과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는 힐끗 밑에 있는 이 NPC 관련 담당자에게 입을 열었다.
“야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피해서 물러나는 기능도 있어?”
담당자 역시 귀신에 홀린 표정이었다.
늑대는 애초에 저런 식으로 살아있는 늑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일정 반경 안에 들어온 유저를 무조건 공격해서 아이템 드랍 대용일 뿐이니까.
이민혁이 중간에 입을 열었다.
“아마도 아르1-3D-LAHM이 시나리오에 맞추어서 지시를 내렸을 겁니다.”
“지시오? 헐, 아니 그런 프로그램은 전혀 없는데, 무슨 명령을 내립니까?”
그도 혀를 끌끌 찼다.
“지시한 대로 움직일 거 같으면 인공지능이라고 안 그러죠.”
“하, 하지만 제가 알기로 베르단디의 지능 역시 이런 식은 아닌 것으로 아는데요?”
“그 베르단디는 지금 이 아르와는 구조 자체가 많이 다릅니다. 어떻게 보면 아르가 보다 상위의 개념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상위라는 게 무슨 말.......”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늑대가 다시 잽싸게 공격을 시작했다. 치고 빠지기를 교묘하게 하면서 캐릭터 사방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목적은 물론 유저 제거.
시나리오 자체적으로 보면 늑대와, 라다 갑옷쥐는 분명히 유저를 공격하는 것이 맞다. 다만 그게 수동적인 형태의 결과일 뿐이다.
지금처럼 전략과 전술을.
‘아 맞아. 시나리오에 이와 관련된 부분이 들어가 있기는 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플로우일 뿐이잖아. 설마 인공지능이 그걸 이해하고, 응용한다는 말이야?’
그도 의문이 들자 곧 바로 늑대와의 싸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싸움은 초기 테스트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얼마나 빠르고, 타이밍이 예리한 지 작은 타격을 줄 수 있어도, 치명타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가 늑대를 잡은 것은 무려 한 시간 동안 흉험한 결투를 끝내고 난 다음이었다.
“자, 잡았다!”
하지만 캐릭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
상태 전반적으로 반 이상 다운되어서 헤롱헤롱 거리는 상황이었다.
뒤에서 보고 있던 라그하임 관련자들은 다들 입을 살짝 벌린 채 당황한 듯 보였다.
“저, 저기 저런 식으로 밸런싱을 맞춰 두면 유저가 싫어하지 않을까요?”
“그거야 줄이면 될 거야.”
“하지만 지금 늑대 밸런싱도 마냥 높은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바다전갈이나, 디노, 모크, 헬코브라 같은 것도 비슷한 수준이라면 어떻게 공략합니까?”
“그건.......”
그도 고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유저들이 좋아할 수준의 캐릭터 밸런싱이 되어야 한다. 실감나서 좋기는 하지만 저렇게 똑똑하면 게임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민혁 생각은 좀 달랐다.
“그 쪽 회사에서는 일할 생각이 없는 겁니까? NPC 지능으로 인해서 능력이 강화된다면, 캐릭터 밸런싱, 즉 스킬, 힘, 파워 쪽을 좀 더 밀어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더욱이 저희는 이 아르1-3D-LAHM 지능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어디 기준으로 맞춰야 할지.......”
“그게 재미 아닐까요? 누구나 다 아는 해답이라면 결국 유저도 쉽게 질리죠. 하지만 할 때 마다 조금씩 NPC가 달라진다면 그 중독성이 꽤 매력이 있을 텐데요?”
“그건 그렇지만.......”
그도 쉽게 대답하지는 못하다가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추가적인 테스트와, 이를 토대로 해서 밸런싱 조정에 대해서는 회사 내부적으로 이야기를 해봐야 합니다. 전반적인 수정과,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쪽에서 검토해보고, 바로 연락을 주세요.”
이민혁이 간단하게 끝을 내자 라그하임 쪽 담당자도 다소 흥분을 감추지 않은 채 호기심을 느꼈는지 곧 바로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엔비 소프트 임직원은 다들 우르르 이민혁에게 몰려왔다.
“저기 민혁 형, 그 게임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아요?”
“저건 테스트 베드일 뿐이야. 정식 게임이.......”
“아뇨, 저거면 충분해요. 정말 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그래? 뭐 어려운 부탁도 아니지. 어차피 테스트는 우리들도 진행해야 하니까.”
이민혁은 초롱초롱한 임직원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승낙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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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시원한 2연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