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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다들 바쁘지 않으십니까?”
“아뇨. 지금은 이 아르 설명이 더 중요해서 말입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데, 제대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미 대충 아시잖아요?”
“저희도 원리는 잘 모릅니다.”
“그건 말해줄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이 아르는 용도 자체가 이런 게 아니었습니다. 회사 내부적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는데, 분위기가 바뀌면서 공개가 된 겁니다.”
“아, 그래요?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만 놀란 것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LH 화학 연구원 태반이 비슷했다. 그들 역시 아르 매트릭스의 놀라운 효과를 경험했다.
만약 이 녀석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그 결과는 평소보다 10배 이상이 된다.
그런 가치를 생각한다면 이민혁 이야기가 새삼 무겁게 느껴졌다.
이민혁은 마무리 작업을 끝낸 후에 몸을 일으키면서 다소 오만하게 입을 열었다.
“애초에 LH 화학을 포함한 기업 쪽에는 서비스할 생각자체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와서 처리해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자꾸 불필요하게 이것저것 요청할 바에는 그냥 기존대로 하시고요, 정말 이 아르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면 이 아르 사용법에 여러분 사칙을 바꾸어야 할 겁니다!”
딱 이게 다였다.
그는 시간당 무려 천 만원을 청구했는데, 이곳에 출발할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작업한 7시간 분량으로 무려 7천만원 청구서를 내놓았다.
“........”
다들 그 청구서를 보면서 심사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불만을 제시하는 이들은 없었다. 아쉬운 것은 이민혁이 아니라, 그들이었다. 7천 아니라, 10억을 달라고 해도 줘야 할 입장이었다.
결국 한 연구원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정말 돈 쉽게 버는 회사입니다.”
“그러게.”
이민혁이 와선 한 거라고는 컴퓨터에 프로그램 하나 설치한 게 다였다. 혹시라도 필요한 옵션이나 이런 거 조작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아니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더 심했다. 봉이 김선달이 울고 갈 정도의 놀라운 상술이었다.
***
겉으로 드러난 아르 매트릭스 가치는 생각보다 무서웠다.
하지만 실상 이렇게 장밋빛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아르 매트릭스 자체가 딱히 정형화된 형태가 아니라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이들은 그림에 떡에 불과했다.
더욱이 태반은 이 아르 매트릭스를 활용한 단순 서비스 형태여서 지속적인 반향을 계속 일으킬 수준은 아니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애매한 분위기가 이민혁이 정말 원한 방향인 터라, 굳이 더 손을 쓸 이유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다.
정작 이 아르 매트릭스를 최대한 활용하는 이는 역시 김승현이다.
그는 늘 데리고 다니는 NPC 엘리를 바로 이 아르 매트릭스에 로딩하는 데 성공했다. 아니 성공했다기 보다는 실상 라그하임 데이터 중에 엘리 NPC를 가져온 것이라서 그저 옮겼다는 것이 보다 정확했다.
“우와, 엘리야!”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키 172cm, 체중 49kg의 환상적인 체구에, 비취색 눈빛을 한 미인은 도저히 현실에서 볼 수는 없는 환상적인 미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옷.
가슴이 거의 보이는 상의에, 하의는 허벅지가 노골적으로 다 드러난다.
특히 이 엘리의 모양은 이곳 아르 매트릭스로 넘어오면서 완전히 컨버팅 되어서 실상 현실의 인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가볍게 인사를 하는 그녀의 붉은 입술은 너무도 촉촉이 젖어 있었다. 섹시함이 듬뿍 담겨 있어서 남자의 시선을 끌고도 남는다.
“정말 예쁘다!”
김승현은 엘리를 붙잡은 채 포응도 하고, 뽀뽀도 하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그도 정말 하고 싶은 섹스까지는 할 수가 없었다.
삐삐.
시스템 창에 떠오른 경고음.
계속 몰 상식적인 행동을 하면 페널티까지 내린다는 경고까지 있었다.
“빌어먹을.”
“큭.”
상큼하게 웃는 엘리.
이 모습은 확실히 이상했다.
김승현조차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는데, 이미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내가 잘못 봤나?’
하지만 그는 곧 상념을 떨쳐 버린 채, 지금 진행하는 미션에 더 집중했다. 벌써 벌어들인 돈만 해도 한 10년은 죽으라고 일을 해도 될까 말까한 돈이다. 한 번만 대박친다면 인생 로또가 될 수도 있었다.
‘지난 번에 어디까지 했더라. 맞아, 김진우 의원 자금 추적까지 했었지. 그걸 받은 이가......여기 있군. 김병호라.......’
***
아르 매트릭스가 현실 은행의 계좌 추적까지는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최근 와서 마스터, 비자 카드가 진행하는 아르 카드 변경이다.
이 이벤트에는 다른 기존 카드 업체도 다 참여를 했다.
이 아르 카드를 사용 자체는 기본적으로 해외 업체나, 한국 업체에서 관리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도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가 있는데, 이 정보는 아르 매트릭스 내에도 다시 그 데이터가 일부 넘어가게 된다.
물론 이렇게 아르 매트릭스에 올라온 데이터는 아르에 의해서 암호화가 진행되는데, 이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코드가 아니었다.
암호화 자체라기보다는 아예 데이터 변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한 규칙이나, 패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이오 정보와 결합해서 그 때 그 때 다른 값으로 변경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이 코드를 추적하려면 아르와 비슷한 연산 능력이 있는 해커라야 가능하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구비된 정보는 각 등급에 따라서 따로 처리가 된다.
이민혁이 0등급이라서 모든 정보에 접근가능한데, 일반인은 아예 보지도, 알 수도 없다.
그 역시 따로 이걸 확인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모르는데, 다행히 아르가 친절하게 이 비정상적인 코드 패턴을 통해서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더 능력이 좋군.”
“김승현 유저는 의외로 지능지수가 높고, 판단력이 뛰어난 유저입니다. 특히 문제를 풀어가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능력은 일반 유저와는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대단해?”
“네.”
그도 다소 놀란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아르다.
그녀는 김승현 유저가 만들어 놓은 기반 데이터를 이용해서 결국 은행 계좌에 필요한 정보까지 역으로 추적한 것이었다.
이건 생각보다 간단한데, 사용자 컴퓨터에 들어가 있는 정보가 그 기반이다.
이러한 정보들이 전부 취합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은행 계좌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다.
그게 하나 둘씩 합쳐지면 김승현이 검토한 것보다 더 정교한 데이터가 만들어진다.
이민혁도 다양한 개인의 정보 내역을 확인하고는 좀 찜찜하기는 했지만 한국 미래를 생각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이 정보를 안명수 의원에게 보내.”
“알겠습니다.”
***
안명수 의원도 최근 전국 각지를 돌면서 민의를 파악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그 역시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이용호 게이트를 보면서 혀를 찼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너무 썩었어.’
대선에 돈이 많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이 대선과 관련해서 오가는 돈이 조 단위를 넘는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이니, 얼마나 이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 알 수가 있다.
제왕적인 대통령 한국 제도.
대통령만 된다면 신이 되어서 뭐든지 할 수가 있다.
인간이라면 그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결국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데, 자연스럽게 돈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또한 이런 돈 정치 분위기는 이미 관행화된 것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사람을 만날 때면 결국 돈이 쓰야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필요하다면 여론을 조작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필히 인건비 형식으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안명수 의원조차 이민혁에게 선거 자금을 받은 것도 다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 그도 곧 비선 통로(?)를 통해서 받은 정보에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정말일까?”
김봉현 보좌관 역시 안색이 침중했다.
“아마 틀림없을 겁니다.”
“도대체 그 친구가 왜 이런 정보를 나에게 보낸 걸까?”
“아마 이제는 의원님이 본격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라는 의도가 아닐까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딱 안성맞춤이니까요.”
“시선? 과연 그게 의미가 있을까?”
“아무래도 정치적인 주목을 받게 되면, 더 많은 표를 얻게 됩니다. 특히 이번 대선 비자금 관련 안건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그냥 평범한 공약으로는 시민의 관심을 끌기가 어려웠다. 어느 정도 뭔가 시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용호 게이트도 나쁜 아이템은 아니었다.
“이번 대정부 정부 질문이 좋지 않을까요? 국회에서 대놓고 터트린다면 지금 여당도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자연스럽게 의원님이 두각을 드러낼 테고, 그런 점을 잘 살리면서 기존 공약인 감세 정책을 근간으로 해서 내수 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괜찮은 듯싶습니다.”
“좋네.”
그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민초들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대를 형성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강력한 모습을 보이기 어려웠다.
지금과 같은 시국에 여당을 한 방 제대로 먹인다면 괜찮은 방편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인가?’
대선을 향한 도전.
그 위험한 길을 향한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
이용호 게이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이용호의 자금 출처다.
그가 워낙에 교묘하게 이 자금흐름을 감춘 터라, 검찰에서도 막상 수사를 해도 제대로 증거를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가장 큰 것은 역시 윗선에서 내려온 교묘한 수사 압박이다.
“자꾸 그러면 검찰에 계속 있기는 싫은 것으로 알겠어!”
결국 소극적인 검찰 수사가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언론에서는 연일 이들 검찰을 무지막지하게 까고, 또 까기 시작했다.
“이 병신 검찰들아, 죽어라!”
“그런 식으로 할 거면 검찰이라고 하지 말고, 개찰이라고 해라!”
협오스러운 여론이 점점 심해지면서 상황은 좋지가 않았다.
특히 이런 불만은 IMF 이후 경기 한파로 인해서 고통 받은 시민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기존 여당에 대한 시민들의 마음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중에 때 마침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안명석 의원이 사건 하나를 터트렸다.
“체이스벤처의 대표 김병호씨가 바로 이용호가 주도한 주가조작과, 전환사채 횡령에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아십니까?!”
“네? 전혀 모르는 사실입니다.”
정부 담당 공무원 역시 당황스러운 안색이었다.
그야말로 뜬금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안명석 의원은 바로 쾌재를 부른 채 이 사건을 조목조목 설명하기 시작했다.
김병호는 한 때는 KEP 전자와, 대우금속의 대주주였는데, 이미 99년 주가 조작에서도 깊숙이 관여한 바가 있다.
이 때 그가 이용호 펀드를 이용해서 넘긴 돈만 해도 무려 1,000억이 훌쩍 넘었다.
이것도 은행 계좌로 실제로 확인된 금액만이 그랬다.
정작 그와 같이 이 관리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한영준 대양 금고의 실소유주는 이미 해외로 출국한 지 오래였다.
“이 한영준이 현재까지 드러난 자금만 해도 2,000억이 넘습니다.”
이 막대한 돈.
이 돈으로 한 것이 바로 대우금속 인수에 따른 경영 참여였다.
이 과정에서 다시 대우금속 전환사채 발행 수법을 통해서 주가를 1,000원에서 무려 23,000원까지 강제로 끌어올렸다.
“무려 2,300%입니다. 당시 대우금속 회사 매출이나, 순이익 규모를 본다면 말도 안 되는 가격입니다. 이 때도 대우 조선과, 현한 조선에 압박을 넣는 방법을 사용한 겁니다. 이와 중에 벌어들인 주식 차액이 전부 김병호를 통해서 이용호 쪽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그 자금 중에 일부가 바로 지금 대선 비자금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김진우 의원 쪽으로도 들어갔습니다!”
곧 이어서 나온 것은 실제로 돈이 흘러간 증거와, 그들이 돈을 주고받는 증거 사진이었다.
“!!!”
늘 하는 일이라서 습관적으로 대정부 질문을 지켜보기만 하던 의원들도 다 패닉에 빠져 버렸다.
여당이나, 야당할 것 없었다.
가히 메가톤급의 폭탄인 터라, 정부 공무원 역시 대답을 못했다.
그들은 다급하게 안명수 의원이 내놓은 자료를 살펴볼 뿐이었다.
곧 그들의 안색은 새파랗게 변하고 말았다.
그 사진 중에는 김진우 의원과, 지금 한나라당 이연창 총재가 서로 술을 기울이는 장면도 있었다. 그 와중에 박카스 박스가 오갔는데, 그 사이로 보이는 것은 바로 현금 뭉치였다.
놀라운 사실은 CCTV로는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화질이었다.
============================ 작품 후기 ============================
이거 원제가 뭘까요?
1. 봉이 김선달
2. 새로운 회사
3. 새로운 혁신
4. 새로운 아몰라
5. 새로운 기타
6. 골치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