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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1장 아르고스
보통 오랜 만에 만난 동창끼리도 간간히 서로 과거 추억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면 늘 나오는 이야기가 얼마나 과거에 비해서 변했느냐 하는 점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중에 역시 재회의 감격이 되면 어느 상대 얼굴을 살피게 된다.
자연스럽게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주름이나, 피부 노화다.
이렇게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도 상대를 알아보는 것은 역시 기억 속의 얼굴이 있다.
사람마다 가진 고유한 얼굴 형태이다.
이와 같이 얼굴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생체인식 기술이다.
이 분야는 실상 멀티미디어가 급격하게 발전을 거듭하면서 점점 일상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90년에 접어들면서 IT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이 기술 역시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런 기술은 다른 관련 분야와의 연계 때문에 더 빠르게 발전했다.
비전콤도 그런 업체 중에 하나다.
조성명 사장도 처음에는 대기업에 있다가 과장 달고 나서는 고민을 많이 했다. 이대로 계속 가야 할지 아니면 그만둬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의 이런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역시 IMF였다.
회사란 조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과감하게 사람을 잘라버렸다.
그 역시 나이가 들어서 얼마든지 퇴출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기회를 보다가 퇴직하는 한 엔지니어와 손을 잡았다.
이미 회사에서는 당시 보안 카메라 관련해서 선행 개발하던 기술이 있었다. 그가 실상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회사를 그만 둔 것은 사장 낙하산과의 싸움에서 알력에 밀린 것 때문이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역시 기존에 진행하던 칩 개발을 완료하는 일이다.
다행히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와 있는 터라,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최소의 비용을 통해서 비디오 보안칩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역시 이 때 쯤에는 회사 자금이 바닥나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이 때 잡은 동아줄이 바로 정통부에서 지원하는 보안 카메라 과제였다.
이 프로젝트가 바로 얼굴 인식. 이를 통해서 상대 신원을 확인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범죄자를 잡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 결과 자체는 좋게 끝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얼굴 인식 알고리즘이다.
특히 얼굴이란 게 딱 정해진 형태의 평면만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안면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고, 그 각도나, 노이즈에 따라서 다 다르다.
심지어 CCTV 렌즈에 따라서도 그 차이가 너무도 많이 났다.
몇 가지 샘플을 인식하는 선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즉 제한된 영역에서 얼굴 인식이 가능하지만 실제 필드에서는 오류가 너무 많이 발생한다.
다행이라면 이 정통부 프로젝트는 과시적인 결과만 있으면 된다.
그 결과는 나왔기에 크게 이슈가 될 것은 없었다.
그런 차에 보게 된 것은 바로 엔비 소프트란 회사였다.
이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기술력이라면 자신이 고민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조성명 사장은 곧 바로 사람을 보내어서 엔비 소프트랑 접촉하게 했다.
다행히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이 예산한 것보다 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슈퍼 컴퓨터다.
설마 엔비 소프트에서 이 무식한 컴퓨터를 사용해서 작업을 진행할지는 몰랐다.
“아쉽구나.”
무려 수천 억 비용을 들여서 동작하는 시스템이라면 상업적으로 별로 의미가 없었다.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면 빌어서라도 그 기술을 지원받을까했는데,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사장님, 힘내십시오.”
“휴우, 김 실장은 지금 우리 회사 사정이 어떤 지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해?”
“월급 연체된 거야 나중에 다 갚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악덕 채불 사장으로 고소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사장님,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안 힘든 이들이 어디 있습니까? 일단 당분간은 직원들에게 제가 알아듣도록 이야기를 해놓았으니, 걱정 안하셔도 될 겁니다.”
“그거야 임시 편법일 뿐이야. 뭔가 다른 대안이 필요해.”
“엔비 소프트 측에서도 이미 경찰청 프로젝트를 검토한다고만 하고, 일단 스톱시켰지 않습니까? 아마 방법을 못 찾아서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 내 생각은 달라. 엔비 소프트라면 충분히 방법이 있을 거야.”
“어떻게 하실려고요?”
“일단 가지.”
그는 우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조성명 사장도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처지였다.
그나마 정통부 과제를 얻을 덕분에 버티기는 했지만 매출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그는 때문에 엔비 소프트 본사를 직접 찾아갔다.
이렇게 된 바에 아예 빌어서라도 어떻게 던지 답을 얻으려고 했다.
아름다운 비서가 안내를 한 덕분에 일단 흥분을 가라앉혔다.
곧 보게 된 이는 역시 이민혁.
그의 표정은 자신을 보자 조금은 놀란 얼굴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비전콤의 조성명 사장이라고 합니다.”
“아, 전 이민혁 이사입니다.”
“제가 이렇게 염치없게 찾아온 것은 귀사에서 이번 경찰청과 같이 진행한 그 얼굴 인식 프로그램에 대한 것을 알고 싶어서입니다.”
“아, 그거요.”
그는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단순히 그 프로젝트 때문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이 조성명 사장을 다시 보게 된 것 때문이다.
전생에서는 이 반대였다.
그가 비전콤에 잠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후에 끝이 아니었다.
다시 비전콤 대신에 선택한 회사가 망한 후에 비전콤을 찾아간 본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냉대를 당한 바 있다.
그 때 그가 했던 이야기는 생각한 것보다는 더 의미심장했다.
“민혁씨, 당신이 기술도 있고, 경험도 많은 것은 알지만 나는 솔직히 믿을 수가 없어.”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소리다.
입사를 하겠다고 하고서는 이미 회사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이주일 정도 일을 인수인계를 하나 싶더니, 뜬금없이 그만둬버렸다.
조성명 사장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는 이민혁을 믿었기에 당시 비전콤에서 개발한 모든 기술을 전부 그에게 인수인계해주도록 지시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웃기지만 부탁까지 하고 있었으니, 이민혁 심사는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민혁은 이렇게 다시 보게 된 조성명이 문득 운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그 답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었다.
모든 기술을 오픈하는 것은 무리라고 해도 부분적인 것은 좀 다르다.
더욱이 상업화를 위해서 다운드레이드는 이미 염두에 둔 상황.
“좋아요. 도와주도록 하죠.”
“네?”
화들짝 놀란 조성명 사장.
그는 아예 이곳에 텐트까지 친 채 숙식까지 하려고 했다.
상대의 반문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엔비 소프트가 갑자기 계약을 취소하면서 경찰청과 진행하던 납품 계약 역시 홀딩 되어 버렸다.
이 납품 역시 비전콤 혼자 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업체와 나눈 터라 매출 자체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아마 전국적으로 규모가 커졌다면 대박이 날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가 못했다.
다른 제품으로 납품할 수야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효과가 별로 없다.
이민혁은 피식 웃었다.
“기존에 저희가 개발한 것은 분명히 슈퍼 컴퓨터로 인해서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걸 칩화 한다면 굳이 슈퍼컴을 사용할 이유는 없습니다. 더욱이 아르티노 솔루션 자체는 경찰청과 협약을 맺어서 업체 쪽에도 공급이 가능할 겁니다. 그러니 좀 만 더 기다려 주세요.”
“가,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뇨, 일이란 어디 우리 혼자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오히려 고마워할 일이라는 것이 정확합니다.”
***
이민혁도 처음에는 아르티노 솔루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조성민 사장 제안을 받고 나서는 어느 정도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기존에 개발한 부분 중에서 렌즈 부분은 더이상 고민하지 않기로했다.
‘차라리 지금은 부정확성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이 좋을 거야.’
정확성은 일단 필드에 납품하고 나서 천천히 결정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이렇게 되자 이미 어느 정도 다듬어진 아르티노 솔루션에서 기존에 아르고를 개발하던 과정처럼 영상 인식과 관련된 부분을 빼냈다.
이렇게 해서 나온 핵심 칩.
영상 인식 관련 아르 알고리즘이 장착된 칩.
이걸 아르고스라고 정했다.
이걸 디자인하는 것은 역시 문명수 팀장이 해야 할 일이었다.
이 부분 역시 이미 벌써 몇 번째 경험이 있는 터라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이미 기존 아르고 칩 개발을 진행한 바가 있었다.
아르고스는 바로 이 아르고 부분에서 영상 인식 기능 만을 추가시킨 것이었다.
따라서 서로 연관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아르가 딥러닝을 통해서 고안한 이 아르고스 구조는 기존의 아르고 칩과 유사성이 생각보다 아주 높았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치 DNA의 진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민혁도 예상 못한 대답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DNA요?”
“네. 기존 아르고 구조와, 아르고스 구조를 한 번 잘 보세요.”
그는 단순히 그냥 문명수 팀장이 조언한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두 가지 구조를 이미지화해서 화면에 띄워보았다.
놀라운 것은 이 두 가지 형태가 대부분이 일치했는데, 그렇지 않은 부분은 10% 남짓에 불과했다.
일치하는 대부분의 구조는 메모리 구조와, 처리 구조였다.
결국 달라진 것은 이미지를 처리하는 부분이었고, 그 부분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마치 생명의 진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구조가 바뀌어 있었다.
아르가 인공지능이니, 반복되는 구조가 나올 수 있다고 해도 그 결과는 사뭇 신기했다.
문명수 팀장을 비롯해서 이번 프로젝트에 끼어든 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민혁은 아르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터라 혀를 내둘렀다.
‘맙소사, 이거 설마 아르가 자기 새끼를 낳는 것과 진배가 없잖아.’
좀 황당한 억측이다.
아르가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결과만 놓고 보면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다.
아르, 아르고, 아르고스로 이어지는 그 큰 줄기는 모든 것이 아르에서 출발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민혁은 뭔가 좀 깨름직하기는 했지만 곧 걱정을 털어버렸다.
“하하하, 다들 너무 일을 열심히 한 터라 피로해서 그런 겁니다. 그저 단순히 운에 불과할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맙시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구조적인 유사성 때문에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빨리 끝날 겁니다. 애초에 이런 설계 자체가 어려울 것이니, 당연하겠지만 말입니다.”
***
사실 새로운 칩을 개발할 때 정말 어려운 것은 역시 그 구조다.
어떤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고, 어떤 새로운 이론이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1년이 될 수도 있고, 3년이 될 수도 있다.
아르고스도 실상 저것만 붙잡고 개발을 진행한다면 지금 기술로는 적어도 3년, 아니 5년 이상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이 아르고스 구조에 접목된 특이한 영상 압축 알고리즘 때문이다.
이 알고리즘은 기존의 국제 규격과도 사뭇 달랐는데, 실상 아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민혁 역시 모르기는 매 한 가지였다.
‘이건 정말 처치 곤란이군. 국제 영상 규격이 있는데, 따로 놀아도 될지 모르겠어.’
지금 당장은 호환성 이슈가 안 나오겠지만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도 이 안건을 고민하다가 결국 아르에게 한 번 질문을 해보았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MPEG-2를 비롯한 기능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노이즈 제거 관련 기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 그래? 하지만 구조적으로 잘 보이지 않은 것 같은데? 지금 위에서 봐서는 전혀 알 수가 없잖아.”
“그건 성능 문제 때문에 일단 합쳐 놓았습니다.”
“호오, 그래?”
“이사님이 중점으로 둔 것 중에 하나가 보안 기능이었지 않습니까? 그걸 위해서 서로 믹스 디자인 형태로 변경해놓았습니다. 그걸 분리시킬까요?”
“아니 되었어. 하지만 소프트웨어적인 처리를 위해서는 설명 상에는 그렇게 표시를 해두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외부에서 응용 프로그램 짤 때는 도움이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는 새삼 아르의 합리적인 대답에 크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핏 봐서는 과거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전에 했던 지시를 마치 기억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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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가 무섭다?
1. 무섭다.
2. 아니다.
3. 다음편.
4. 아몰라.
5.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