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6====================
새로운 시작
강호정은 기가 찬 표정이었다.
“설마 코닝 주가가 9달러까지 폭락한 것도 이것 때문이었습니까?”
“그렇게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지. 대우증권에서 임의대로 행동한 것이니까. 다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게 봐야지.”
그도 뒤늦게 블랙 먼데이를 일으킨 주범이 이민혁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허탈한 표정이었다.
이민혁도 이 부분은 더 말도 꺼내기 싫어서 입을 다물었다.
결국 강호정은 한 가지를 더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면 코닝은 완전히 포기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냐. 당분간은 아마 5-7달러 내외에서 계속 횡보하게 될 거다. 이 때 다시 매입들어갈 예정이다.”
그 사태를 만들어서 주식을 폭락시키고, 또 매입을 하겠다니.
이건 아무리 봐도 주가 조작 사범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형 정말 대단하세요.”
“딱히 내가 잘못한 것은 없잖아. 겁도 없이 날 이용해서 이득보려는 월가 패거리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야. 한 번 쓴맛을 제대로 보여줘야지. 다음에 조심할 테니까.”
강호정은 더 이상 대답할 힘이 없었다. 이민혁 이야기는 생각보다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오늘 아침 회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민혁은 대놓고 이 코닝 매각 안건을 공론화시켰는데, 특히 CPU 설계 임직원을 보면서 분명히 해두었다.
“알다시피 이제는 인수합병 논리만 다진다면 우리 회사에서 ARM 인수해도 별 달리 문제가 없을 테니, 그 쪽하고 한 번 연락해서 로열티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저기 그렇지 않아도 그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도와줄 것이 있으면 돕겠다고요.”
“액면 그대로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근데 그쪽 담당자도 궁금한 게 향후 우리 쪽에서 ARM 인수 진행이 되는 지 묻더라고요. 자칫하면 구조 조정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최근 ARM 상태가 썩 좋은 것은 아니다.
향후 모바일 시장의 미래 가치를 보고, 계속 집중적인 투자를 했다.
기술은 얻었지만 그 과실을 얻기에는 시장이 너무 안 좋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지지 않은 터라, 제대로 테스팅이 진행되지 않았다.
ARM 연구소에서 엔비 소프트 측으로 먼저 연락을 해온 것도 이런 협업 관련된 부분이다.
특히 엔비 소프트의 아르 칩을 비롯한 인공 지능 기술에 대해서는 그들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두 가지 기술이 합쳐진다면 새로운 형태의 칩 개발도 가능하다.
이 기반 기술은 이미 아르 칩에서 결과를 보여준 터라, ARM에서도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경영 악화 때문에 잘리는 것이다.
이제 정상에 다 왔는데, 지금 퇴출당하는 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었다.
이민혁도 뒤늦게 분위기 파악을 하고는 쓴 웃음을 지었다.
“지분 60%면 저희 회사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우리 쪽에서는 그쪽 경영권을 인수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경영권 독립 때문입니다. 저희 쪽은 저전력 관련 기술에 집중할 여력이 안 됩니다. 문 팀장도 잘 아시죠?”
“물론입니다. 지금 기존 솔루션에 집중하는 것도 벅찬 상황입니다.”
“그러니까요. 결국 필요한 특허 협상을 통해서 경영권 보장을 진행하고, 그 기술을 그대로 적용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그 쪽에서도 그 제안을 거절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영국에 자주 가서 많이 배우기 바랍니다.”
“허.......”
다들 황당한 표정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특허 침해 때문에 고민이었다.
그런 특허를 가진 회사 지분을 그냥 통채로 매입해서 그 기술을 얻겠다는 것. 정말 기가 막힐 일이었다.
이민혁은 그런 이들의 표정에 대해서 별 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ARM, 애플이 저가일 때는 이게 가능하다.
아마 몇 년만 더 지나도, 아니 일년만 더 지나서 아이팟 시리즈가 초대박을 친 후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강호정은 물론 이보다는 다른 일 이야기를 툴툴 털어놓았다.
“한 동안 또 ARM, 애플 이야기로 시끌시끌할 것 같아요. 휴우, 기자들이 아주 날 잡아 먹으려고 할 텐데......”
***
불행 중 다행이라면 엔비 소프트의 ARM, 애플 주식 이슈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
이 두 가지 회사는 둘 다 재정 상태가 안 좋았고, 이제 겨우 숨을 쉬는 경우다.
특히 문제아 애플에 대해서는 몇 년 전부터 몰락한 전설이라는 안건으로 죽으라고 까인 경우다.
까고, 또 까서 이제 먼지만 남는 회사를 두들긴다고 해서 얻은 것은 없었다.
ARM은 애초에 한국에서는 잘 모르고, 특히 IP 중심의 회사에는 대해서는 불법 복제가 일상화된 한국에서는 주목 받기가 어려웟다.
이보다는 비록 해프닝이기는 했지만 미국 모기지론 우려가 더 주목을 받았다.
미국 주식 시장이 경기 회복 기조를 타고 다시 본격적으로 회복하고 있다는 믿음이 심각하게 뒤 흔들리기 시작했다.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을 토대로 분석을 해보면 지금 미국 주식은 무려 20% 가까이 고평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주식 기준으로 S&P500의 주당 이익이 평균적으로 70달러 기준인데, 이 가격도 불과 50달러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것은 미국 다우지수에서 흔히 언급되는 FRB 모델에 따른 결과다.
특히 갑자기 일어난 블랙 먼데이에 대해서도 우려를 털어놓았다.
“증시의 갑작스러운 변동이 얼핏 봐서는 헤지펀드 수작이라고 치부를 합니다.”
실제로 백악관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된 루머를, 실상은 조지 대통령 인맥과 연루설이 사실인데, 덮기 위해서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 이 헤지펀드다.
헤지펀드는 실제로 최근 동남아를 비롯해서 한국 IMF의 주범이라는 소리가 곧 잘 나온다.
그만큼 헤지펀드 악명이 유명했고, 미국 내에서도 견제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이런 분위기가 다행히 지금 상황가 잘 맞아들어갔다.
언론을 뒤에서 강하게 압박해서 적당히 기사를 내보내면 의외로 이야기는 술술 풀린다.
실제로 대부분 알게 모르게 영향이 있고, 과거에도 심각하게 비판이 된 부분이라서 꼭 언론 조작이라고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반발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런 증시의 급격한 변화와, 급변동성은 단순히 이들 탓만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나온 이야기는 대화 회피의 한 방법이다.
관련된 다른 주제로 슬쩍 물타기를 진행했는데, 그게 바로 미국인들이 싫어하는 일본인과 관련이 있는 일본 경제. 바로 엔론식 부실 회계와, 일본 경제 위기설이다.
“하지만 이 변동성 배후에는 수천 개의 헤지펀드가 있다는 것은 모르는 이들이 없습니다.”
이 의견 충돌은 의외로 쉽게 가라앉지가 않았다.
미국 정부에서 그렇게 드러나지 않도록 취한 미국 주택 시작 거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몇 년 간 미국 집값은 계속 5% 이상 오르면서도 주택 소유자의 자본 비율은 의외로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
바로 주택 소유자의 끔찍할 정도로 놀라운 부채의 변화 때문이었다.
이 안건은 연일 미국 언론을 통해서 계속 이야기가 나왔다.
미국 정부에서도 뒤늦게 손을 쓰려고 했지만 이제는 잘 먹히지 않았다.
그나마 주택이 안전한 투자 대상이라는 심리적인 안정감 때문에 크게 악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집을 소유하는 순간에 일단 모기지론 이자 비용이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추가로 붙는 세금이 문제다. 이 엄청난 비용을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이런 위험함을 감수하고라도 사람들이 주택을 소유하는 것은 주택 가치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 때문이었다.
“만약 집값이 폭락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는 이 불안한 질문에 대해서 누군가 답을 하거나, 아니면 대비를 해야할 상황이었다.
언론 플레이가 엉뚱하게 불편한 진실 한 자락을 들추었다.
결국 이 문제는 이민혁 전생과는 달리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이민혁도 이 미국 경제의 흐름을 보고는 관심을 가졌다.
‘이거 설마 모기지론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것 아냐?’
미래는 이미 꽤 바뀌었다.
그 큰 변화의 중심에는 엔비 소프트가 있다.
ARM, 애플 대주주가 된 것 역시 시대의 큰 변화를 송두리채 바꾸었다.
이민혁이 경영권 간섭을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는 이유다.
다행이라면 미국 모기지론 사태를 덮으려고 하는 세력이 조지 대통령 인맥이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막대한 자본과, 인맥을 이용해서 이 사태를 다시 덮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는 역시 이민혁 전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쉽게 바뀔리가 없지.’
이런 안건은 실제 한국 코스피 폭락과 관련된 터라 한국 언론에서도 연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강호정은 뜻밖에도 엔비 소프트가 애플, ARM 주식 매입 건이 그냥 달랑 기사 몇 줄로 끝난 것이 잘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만세기는 한데, 이거 정말 이상하네요. 형이 혹시 언론에 손을 쓰기라도 한 겁니까?”
이민혁은 피식 웃었다.
“넌 내가 무슨 깡패라도 되는 줄 아냐? 내가 무슨 수로 한국 언론을 압박하냐?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
“그러면 이걸 어떻게 봐야 합니까?”
“그거야 ARM에 대해서는 언론도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 영국의 칩 설계 중심 회사 특성을 알 리가 없잖아.”
“애플은요?”
“애플? 너 이 회사 지금 재정 상태가 어떤 지나 알고 하는 소리야? 구조 조정을 거쳐서 이제 겨우 정상적인 회사 상태를 회복했어. 비록 아이팟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해도 아직은 아니야.”
“아니 그러면 애플 주식은 도대체 왜 매입하신 겁니까?”
“그거야 애플 미래 가치를 믿기 때문이지.”
정확히는 스티븐 능력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민혁이 스티븐 능력과, 향후 방향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말해봐야 요즘 들어서 감각이 예리해진 강호정이 또 잔소리를 할 것이 뻔했다.
그는 당연히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애플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래. 스티븐은 누가 뭐래도 PC 업계의 선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가 가진 꿈은 결코 단순히 생각으로 끝낼 사람도 아니지.”
“형이 또 코닝처럼 뒤에서 손을 밀어준다면 다르고요?”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야. 명색이 대주주인데, 애플에도 손을 쓰야지.”
“결국 코닝처럼 또 회사 가치를 키워서 주가를 올리고, 차익만 챙기겠다는 것이군요. 설마 또 이번처럼 마구잡이로 팔 겁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코닝 경우에는 헤지펀드 애들이 배후에 있어서 가능했지만 이 두 종목은 좀 다를 거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무리하게 진행할 수는 없어.”
“정말 복잡하네요.”
“두고 보면 알거다.”
***
굳이 이민혁 말대로 지켜볼 것도 없었다.
일단 미국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에서 통화 정책 관련해서 말이 나오고 있었다.
바로 본격적인 금리 인상이다.
이미 미국 경제 지표는 회복세로 접어들었다는 지표가 그 기준이었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인플레를 염려해서라도 금리를 올려야 했다.
9.11 테러 직후에 단기 부양을 위해서 금리를 3.75%에서 3.5%로 인하했다.
과도한 통화 부양을 위해서 공격적으로 정책을 취한 것이었다.
지금 언급되고 있는 정책 금리는 확장 국면에서는 너무 낮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장기 모기지론이다.
이 금리 역시 같이 따라서 오르게 된다.
이 반등 폭에 대해서는 의견이 설왕설래해서 누구도 확신하지는 못했다.
“너무 리스크가 큽니다!”
절대적인 반대자들이 내세우는 것은 바로 부동산 침체다.
하지만 긍정적인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미국의 천문학적인 부채다.
“더 이상은 세금을 올린다고 해서 이 미국 재정 적자를 막을 상황이 아닙니다. 설마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내자는 의견이라도 있는 겁니까?”
결국 정책 금리는 혼조 상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여파다.
미국이 재치기만 해도 홍역을 앓는 한국 경제 입장에서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미국 정부가 금리를 올리면, 한국도 정책 금리를 올려야 했다.
이렇게 했을 때 그나마 IMF 여파에서 살아나기 시작한 내수 경제를 초토화시킬 수도 있었다.
한국 정부에서는 이 안건 때문에 연일 대책 회의를 해야 했다.
“어, 어떻게 하죠? 지금 금리를 올린다면 내수 경제는 완전히 죽어버릴 겁니다!”
“그렇다고 안 올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정말 심각합니다.”
이건 한국 언론에서 날이 바뀌면 나오는 이야기가 되었다.
자칫 경제 성장률마저 깎아먹게 되면 서민들의 삶은 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이민혁도 이런 변화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내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알겠어. 경기 하강 국면이니, 미국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니, 중소기업은 어려울 수밖에 없지. 내수 경제는 죽어가니, 뭘 해도 안 되었던 거야. 아직까지는 괜찮겠지만 몇 년 후에 모기지론이 시작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