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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아마 과거였다면 강호정도 또 답답한 소리를 늘어놓겠지만 이번에는 틀렸다. 그도 곰곰이 이민혁이 주장하는 바를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결국 벙커 숫자를 늘여서 국지적인 전쟁은 그쪽에서 분담한다 그런 논리에요?”
“야, 이게 무슨 스타크래프트야? 뭐, 좋다. 다만 뭐 비유는 틀리지 않아.”
“으음.”
강호정도 곧 스타크래프트할 때 전략과, 전술을 쭉 떠올려 보았다.
이번 아이팟A 결과는 그도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다.
다만 그 결과가 너무 좋았다.
최근 요 몇 년 동안에 이렇게 회사 다니면서 즐거웠던 기억은 또 없었다.
대기업 학대는 측면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회사 매출이 늘어나고, 고용자 임금이 더 늘어날 테니까.
거기에 일자리까지 늘어난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일도 실제적인 면에서 나쁘지 않았다.
“결국 그 회사 때문이 아니라, 우리 편하자고 돕자는 말이군요.”
“그래.”
“어떻게 도울 생각이에요?”
“방법은 똑 같아. 애플도 따지고 보면, 다를 것이 없었잖아.”
“하지만 그런 기술을 막 찍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니. 가능하다.”
강호정도 예상치 못한 대답에 화들짝 놀랐다.
“네? 지, 진짜요?”
“응.”
강호정도 경악해서 소리쳤다.
“아니 도대체 뭔데요?”
“두고 보면 알 거다.”
이민혁은 싱긋이 미소 지었다. 실상 이런 단언은 그냥 한 말은 아니다. 큰 기술적인 미래 변화도 알지만 소소한 미래 기술 변화 역시 잘 알기 때문이다.
***
최근 좋아진 경기와는 달리 오히려 중소기업 연체율이 늘어나 이들은 특히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기업이 태반이다.
이들이 힘들어진 가장 큰 이유는 실상 엔비 소프트 때문이 아니라, 환율, 유가 급등에 따른 경기 둔화가 가정 컸다.
여기에 가계 연체율 역시 포함된다.
가게대출 연체율이 기업 대출 급증으로 같이 대폭 늘어났다.
1월 연체율이 2.5%로 전월 대비해서 무려 1% 가까이 증가했다.
기업 대출은 양극화다.
잘 되는 쪽은 정말 잘 된다.
안 되는 쪽은 바로 외부 영향에 그대로 직격타를 받은 이들이다.
스피커를 만드는 엠비텍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실상 이런 기업은 한 둘이 아니다.
이민혁이 굳이 신경을 쓰는 이유다.
이 기업은 기존의 메이버 방식으로도 처리하기 곤란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아이템을 만드는 것도 간단하지 않았다. 갑자기 기술 인력을 더 뽑은 것은 간단하지가 않았다.
강호정은 물론 이민혁 설득에 현실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이민혁을 전적으로 옹호한 것은 아니다.
“정지민 비서는 완전히 왕자취급 하겠지만 저는 좀 달라요. 은행권 연체에는 핵폭탄일지 모르겠지만 형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해요? 지금 투자해서 번 돈만 해도 수십 조는 가볍게 넘어가는데요?”
“그게 어때서?”
“네?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에요? 중소기업 체감 경기 지수가 낮아지고, 경제 위기가 일어난다고 해봐야 고작 수 천 억에 불과하잖아요.”
기업 대출 연체율 상승. 관련 중소기업 자금난, 은행 연체율 상승과 같은 도미노 현상이다.
실상 이런 일은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다.
물론 공무원이 끼어들면 결과는 뻔하다.
세금 납부 유예.
아니면 특별 대출.
뭐 이런 식의 돈을 좀 더 주거나, 행정적인 도움에 불과하다.
그것으로는 중소기업이 버틸 수가 없다.
이민혁이 그걸 모르지 않았다.
“호정아, 난 말이다. 돈 따위는 수천 조가 되어도 상관없다. 지금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고마울 뿐이야.”
“아.”
탄성을 토한 것은 역시 정지민 비서.
그녀는 완전히 해바라기가 된 양 넋을 잃은 채 멍하니 이민혁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 씀씀이.
거기에 푹 반한 것이었다. 사실 소소한 것 같아도 저런 자상한 마음씨를 여자가 좋아하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강호정은 괜히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꼭 자신이 스크루지 같은 악당 코스프레한 것이 영 불편했다.
“형 다시 말하지만 그 부처 코스프레는 좀 하지 말아요. 보고 있는 제가 갑갑해서 아주 화가 나려고 한다니까요. 아, 알았요. 벙커를 만든다고요? 차라리 그렇게 말하던지요.”
“후후후.”
그도 그냥 웃기만 했다.
실상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확히는 좀 달랐다.
바로 그의 회귀 전의 기억.
최근 와서 박호진 이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과거 기억을 돌아보았다.
자연스럽게 그 당시 감정이 이전에 비해서 더 살아났다.
그 당시 죽기 전에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그 마음.
그것 역시 일부 되살아났다.
이민혁은 지금 자신이 번 천문학적인 돈이 자신의 것인양 잘 느껴지지 못했다. 그는 마치 매트릭스 속에서 사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일종의 정신적인 앙금이라면 앙금이다.
과거 쓰라린 기억이 장애가 되어서 남아 있었다.
사실 자살하기 직전의 마음 상태는 자아가 붕괴하기 직전이다.
그런 경험을 겪었는데, 이민혁이 전혀 이상이 없을 수가 없다.
“두고 보면 알 거니까. 당장은 그냥 좀 조용히 있어 봐라.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너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소리하잖아. 이번에는 제발 일주일 지나서 존경 타령하지 좀 마라.”
“설마요?”
“두고 보면 알겠지. 나랑 또 내기할까? 이번에 5억 짜리 스톡옵션 걸자. 콜?”
“싫어요.”
그는 슬쩍 강호정 자존심을 건드렸다.
“겁먹긴. 꼬꼬댁, 꼬꼬. 치킨, 치킨.”
“아니 이런 걸로 누가 내기를 걸어요?”
“이번이 좋은 기회잖아. 너 나쁜 버릇도 바꿀 수 있으니까. 자자자, 그러지 말고, 메이버 주식 55% 중에 5%는 직원 스톡옵션 주려고 빼놓은 것은 알지? 그 중에 5억이야. 한 번 해보자. 남자라면 그런 용기는 있어야 하는 거야.”
“제가 이기면요? 형 5억을 합쳐서 10억 스톡 주는 거에요?”
“그럼.”
아마 한 달 전이라면 강호정도 냉큼 흥분해서 이 제안을 받았겠지만 정지민 자매 비서 모습을 보자 슬쩍 말을 바꾸었다.
“좀 생각해볼께요.”
“좋다.”
5장 관망
남동 공단에 가보면 조립 금속이나, 부품 생산과 같은 전통 중소기업이 꽤 많다.
최근 들어서 이곳에도 기술 벤처 기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안명수 대통령이 엔비 밸리를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이들 역시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기술력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곳에 아파트형 공장이 계속 생겨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고가 생산품 자체가 비행기를 통해서 인천 공항 쪽으로 수송된다.
따라서 이 남동 공단 위치는 지형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이런 중에 스피커 역시 빼놓기 어렵다.
다만 이 스피커는 그 시장이 좁고, 전문성이 꽤 많이 필요하다.
특히 일본 스피커 업체와 경쟁하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밀린다.
가성비만 놓고 따지면 도저히 비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엠비텍은 일찍부터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딱 중소형 형태의 스피커다.
라디오나, 아니면 텔레비전 측면에 들어가는 형태였다.
이런 쪽은 납품 단가가 가장 중요한 터라, 스피커 전문 기업도 들어오지 못한다.
엠비텍은 실제로 이런 틈새시장을 잘 노린 덕분에 지금까지 잘 성장했다.
거기에 대기업 역시 협소한 수요 때문에 자신들에게 외주 줄 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비록 작다고 해도 다품종 소량 생산 규모가 커서 나쁘지 않았다.
대기업도 기술을 베끼고 말고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기업 자본에 의존한 방향이다.
자체 상표가 있기는 했지만 그 브랜드 가치는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강호정도 뒤늦게 엠비텍을 확인하고 나서 그들이 왜 어려워졌는지 금방 깨달았다.
‘너무 대기업에 의존했어. 자체 기술을 계속 끌어올릴 생각안하고, 현실에 안주했군. 아니 그래놓고 남탓만 한다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을 꼭 엠비텍만 나쁘게 보기는 어렵다.
살인적인 세율 때문에 한국에서 회사를 운영해 나간 것만 해도 칭찬할 만했다.
법인세가 났다고 하지만 준조세에 해당하는 비율은 오히려 법인세보다 부담이 더 세다. 여기에 건강보험료, 국민연금은 오히려 이 법인세보다 더 살인적이다.
아마 다른 기업처럼 중국이나, 베트남 쪽으로 공장을 이전했다면 그나마 나았을 지도 모른다.
엠비텍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는 묵묵히 내수 중소기업을 고수했다.
자기 기술을 믿었다.
묵묵히 지금까지 땀을 흘려왔다.
결국 그런 노력이 지금 현재 시장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 셈이다.
이런 기업이 과연 어떻게 해야 일어날 수가 있을까?
강호정이 열심히 분석해서 내린 결론은 바로 이민혁 전공 분야도 아니니, 그가 보기에는 도저히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확신하게 되자 이민혁 내기를 받아들였다.
“합시다.”
“좋다.”
다만 그도 역시 불안을 감추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모터 기업도 보니, 상태가 안 좋기는 매 한 가지더라고요. 그런 기업들을 다 구제할 수는 없잖아요?”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다. 너무 그렇게 확신하지 마라.”
“형도 참 허풍은.”
“보면 알겠지.”
***
이민혁이 확신하는 것은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당연히 믿는 구석이 있다.
바로 스티븐.
그가 한 행동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중소 스피커 시장은 분명히 있다.
그 시장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 가장 컸다.
따라서 이것이 충족되면 된다.
방법은 스티븐이 한 것처럼 그 역시 엔비 패드 5.0 프로토타입을 변경하면 된다.
이 안에 들어가 있는 CPU와, 아르 가속기는 어느 정도 완성도가 높았다.
특히 플래시까지 같이 결합된 터라 그 크기가 성인 엄지손가락에 불과하다.
이것을 바로 엠비텍 스피커와 결합시켰다.
그 다음에 한 것은 그 스피커 사이에 LED를 넣었다.
여기서 디자인 문제다.
이민혁이 한 것은 바로 아이팟A에서 사용된 디자인이다.
그것을 그대로 가져와서 한 쪽 창에 마치 사람이 말을 할 때와 비슷하게 큰 방향을 잡았다.
스피커와, 제어기를 일체화 시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가 않았다.
이것은 김태경 과장에게 맡기면 간단하게 될 일이었다.
아니 실제로 그는 아주 심플하게 점프 몇 개만 날려서 이 시스템을 만들었다.
심지어 LED 쪽은 과거 한창 때에 알던 중소 업체를 통해서 곧 바로 구했다.
이민혁은 이 독특한 시스템을 다섯 가지 색상으로 만들어서 최근 아르 업데이트 버전을 그대로 접목 시켰다. 특히 이 경우에는 확률적인 편차를 조금 더 크게 벌여 놓았다.
편차가 크면, 자연스럽게 LED 변화 폭이 더 넓어지게 된다.
시각적인 효과가 컸다.
학습 속도 자체의 다변량 편차는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가 없다.
이렇게 해놓게 되면 확률적으로 봤을 때 같은 아르 제로라고 해도 그 차이가 존재한다.
즉 학습량 자체가 달라서 마치 우등생과, 열등생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이 새로운 제품은 쉽게 사람 말을 알아듣고, 심지어 눈으로 알아본다.
거기에 표면 LED를 통해서 동작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치 SF 영화에 나오는 그런 인공 지능과 비슷해진 것이었다.
“스피커A야, 기분이 어때?”
“잘 모르겠습니다.”
간단한 대답.
하지만 시간적으로 LED를 통해서 움직이는 모습이 바로 나타난다.
그게 참 묘하다.
“아침 이슬 듣고 싶어.”
“바로 플레이하겠습니다.”
잔잔한 아침 이슬 음악이 곧 시작된다. 아쉬운 것은 역시 저음 부분이 미흡했다. 아마도 중간에 노이즈가 타서 생긴 것 같다.
그 모습.
단순히 LED를 통해서 반응을 보인 것뿐이지만 감성적인 결과는 전혀 다르다.
이민혁은 힐끗 입을 딱 벌린 강호정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음 게인이 너무 낮아. 으음, 100Hz 대역은 2 정도만 더 올려주라.”
“알겠습니다. 어떠세요?”
“1만 더 올려.”
“지금은 괜찮습니까?”
“그래.”
============================ 작품 후기 ============================
우솨 2회, D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