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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세자와 뒤주대왕-68화 (68/175)

감자세자와 뒤주대왕 68화

졸전, 그리고 평양성

양측의 숫자는 엇비슷했다. 대략 삼백 대 삼백이십가량으로, 아군에 소대 하나가 더 있는 정도.

하지만 무장에는 현격한 격차가 존재했다.

전형적인 경기병인 오스만 기병대에 비해 프로이센 기병대는 흉갑과 투구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총 맞으면 너도나도 한 방인 시대라지만 근접전에 있어 갑옷은 여전히 유용했다. 급소에 맞을 공격을 한 번은 막아주고, 방어에 비교적 신경을 덜 써도 되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부딪히기 전에 이미 결말이 정해진 싸움이었다는 소리다.

--푸슉!

“보이는 대로 죄다 족쳐라!”

“포로는 필요 없다! 손들어도 봐주지 말고 죽여!”

쐐기꼴의 대형을 이룬 카우니프 연대 1대대의 병사들은 적들의 허를 찌르는 방향에서 파고들었다.

권총으로 쏘고, 칼로 베었다. 패잔병 사냥으로 넓게 흩어진 상대가 모일 틈을 주지 않고 밀어붙였다. 햇빛을 반사해 반짝거리던 갑옷과 칼날이 피로 물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몰살도 어렵지 않았겠으나, 굳이 필요 이상의 전공을 욕심내지는 않았다. 아직 적의 보병들이 멀쩡했으니 무력화시키는 정도로 충분했다.

목표를 달성했다고 판단한 연대 지휘관은 곧바로 견제사격을 피해 숲속으로 물러났다.

지극히 모범적인 히트앤드런 전술의 표본이었다.

“후우! 아주 땀범벅이구만.”

총알이 닿지 않을 정도로 전장에서 떨어지자, 연대장 하우니프 대령은 투구를 벗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베네켄도르프 후사르 연대라는 이름을 쓰던 부대는 그가 지휘를 맡으며 그의 성씨에 따라 하우니프 퀴레시어 연대로 개명되었다.

이름과 실제가 다르던 후사르의 호칭도 덩달아 퀴레시어로 변경되었고.

“몇 명이나 잡으셨습니까, 대령님?”

“대충 여섯 명 정도? 한 놈은 총을 쐈는데 죽었는지 모르겠다.”

“아, 그놈은 제가 마무리 지었습니다.”

대답한 이는 치텐 대위였다. 1대대 1중대장을 맡은 전도유망한 소장파 장교.

평소엔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인 주제에 검술 실력은 상당해서, 이번에도 제법 전공을 올린 듯했다.

“잘됐구만. 그러고 보니까 인원 손실은 얼마나 되지?”

“1중대는 1명 사망, 두 명 중상입니다.”

“2중대는 3명 사망, 한 명 경상입니다.”

“3중대는…….”

합산해 보니 사망자는 열 명에 부상자는 그 두 배 정도였다. 경상자는 몰라도 중상자는 앞으로 전력에서 열외로 쳐야 하리라.

양측 도합 6백여 명이 맞붙어 이백여 명의 적병을 죽이고 십여 명을 잃었으니 상당한 전과였다.

“이만큼 휘저어줬으면 알아서 받아먹겠죠?”

“글쎄다. 여태껏 해온 짓거리를 봐서는 떠먹여 줘도 못 삼킬 것 같은데…….”

하지만 이 전과가 유의미하겠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하우니프가 본 오스트리아군 지휘부에는 똥별들 천지였기에. 무려 소장이나 되시는 양반이 포병의 기본적인 활용법조차 모르고 겁만 많아서는 거의 다 이긴 전투를 말아먹고 앉았다.

세상에, 전열보병을 대형도 만들지 않고 축차투입을 하다니!

자기가 병신 같은 전술로 사고를 쳐놓고는 위험하다 싶으니까 포병들을 재촉하는 건 또 무슨 해괴한 전술인가. 포격 좌표를 측정할 시간조차 없이 마구 쏘아대는데 정말로 명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까놓고 말해서, 내가 해도 저것보단 잘하겠단 말이지.”

하우니프 대령은 스스로의 한계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말 타고 칼질하는 것밖에 모르는 놈에게 연대장 이상은 무리다. 진급해 봤자 밥값이나 축내는 신세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런데 발칸으로 파견되어 보니……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저런 바보천치도 장군이랍시고 거들먹거리고 다니는데, 나 정도 되는 장교면 소장쯤은 해도 괜찮지 않을까?

“솔직히 그렇지 않냐? 나였으면 탐색전이고 뭐고 그냥 밀어붙였어. 그럼 우린 진작에 고지를 넘어서 스메데레보로 진군하고 있었겠지.”

“동감입니다. 싸울 거면 확실하게 해야지, 쓸데없이 간만 보다가 손실만 커지고.”

“그 자식 틀림없이 전술교본 몇 권 읽은 게 군사 경력의 전부일걸요. 제가 통 크게 10라이히스탈러 걸고 장담하겠습니다.”

당초 이 지역에는 적군이 얼마 없었다.

정찰병의 보고에 따르면 보병 1천에 포병 수십, 기병 몇 기가 고작. 아마도 기병은 통신용으로 배치되었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아군에는 3개 전열보병 연대와 포병 수백 명, 1개 퀴레시어 연대가 있었다. 아무리 지형이 불리해도 극복이 가능한 전력 차였다는 말이다.

빌어먹을 소장 놈은 적의 전투력을 가늠해 보겠다며 소규모 부대를 몇 번 들이밀어 보는 짓거리를 반복했다.

무슨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전선에 시찰을 나갔다가 저격당해 모자에 구멍이 뚫리기도 했고.

어지간히 무서웠는지 온갖 호들갑을 떨며 도망쳐 와서는 며칠간 자기 막사에 처박혀 있었다. 장군으로서의 직무도 내팽개치고선!

이런 쓸모없는 개짓거리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에 오스만군은 빠르게 전력을 증강했다. 후방에서 병력을 지원받아 지금은 아군보다도 많아졌다.

당장 수비 태세로 전환해서 진지를 건설하고 적의 공격을 경계해도 모자랄 판에 아직도 전력을 조금씩 깎아먹고 있으니 원.

“그래도 다른 데서는 이기고 있다니 다행이지.”

“꼭 그렇지만도 않다던데요. 머시 백작이라고 했나? 우리 총사령관님이나 발리스 원수 있는 곳은 괜찮은데, 다른 데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중이라더라고요.”

현재 오스트리아와 오스만이 맞붙은 전선은 크게 다섯 곳에 걸쳐 나뉘었다.

그중 두 곳에서 오스트리아가 확고한 우위를 점했고, 한 곳은 백중세였으며, 다른 두 곳은 오스만이 아직 버티는 중이었다. 하우니프 연대가 배치된 지역은 마지막 분류에 속했다.

순수한 병력의 숫자와 지형 조건만 보면 나름 선방한 결과였지만, 상대의 수준을 알면 그런 말이 절대 나올 수가 없었다. 전열보병이 뭔지도 모르는 미개한 이교도 놈들 상대로 어떻게 이기지를 못하지?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아, 병신이 맞긴 하겠구나. 생각해 보니 여기랑 저기가 장군들 수준이 그리 다를 거 같진 않았다.

“……얘네는 대체 어떻게 프랑스랑 스페인을 동시에 상대한 걸까?”

“우리 왕자님이랑 외젠 원수 각하 덕분이겠죠 뭐.”

100점짜리 정답이었다. 외젠이 프랑스 동부 공격에 실패했거나 이선이 나폴리에서 알박기를 못 했으면 오스트리아는 대패할 예정이었으니.

사르데냐 왕국? 걔네는 조금 성가신 정도에 불과했으니 논외다.

“대책이라도 세워야지 안 되겠어. 원군을 데려오든지 지휘부를 싹 갈아치우든지.”

“알았으니까 어서 돌아갑시다 대령님. 다친 애들 빨리 치료해야죠.”

“그래야지. 다들 승마해라! 군영으로 복귀한다!”

하우니프 연대는 부상자들을 싣고 후방으로 향했다. 직후 소장이 퇴각 명령을 내리며 이날의 전투는 막을 내렸다.

그리고 2주 뒤, 1월 18일.

보스니아에 주둔하던 프로이센군 2만5천이 세르비아 방면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 * *

1756년 3월 말.

경상도 대구.

모내기와 씨뿌리기로 농사일이 서서히 바빠지는 시기, 전국 각지의 관아 앞에 한 장의 포고문이 나붙었다.

“뭐시여?”

“뭐라고 쓰였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진사 나리,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읽어주실 수 있는지요?”

문맹인 백성들의 간곡한 부탁에, 콧수염을 기른 선비는 혀를 차면서도 부탁을 들어주었다.

“어디 보자. 청명(淸明=4월 4일)부터 평양에서 축성 노역에 자원할 백성들을 구한다. 기간은 미정이나 최소 내년까지 계속된다. 임금은 한 달에 화폐로 3냥 5전을 지급한다. 숙식을 해결할 장소 역시 제공되니 희망하는 자는 인근의 관아에 신고하고 가족과 함께 올 것……. 엥이, 쯧쯧쯧.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선비가 떠나자 백성들은 웅성이기 시작했다.

세 냥하고도 닷 전이라니. 그렇다면 광산에서 일하는 것보다 많은 수준이 아닌가? 한 사람만 일해도 능히 4인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돈을 많이 준다는 것은 그만큼 일이 고되다는 뜻일 터.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에 투입되는지는 쓰여 있질 않으니 곧바로 결정하기엔 꺼려지는 면이 있었다.

“어이 김 씨, 자네는 어찌할 텐가?”

“소작농으로 들어갈 곳도 마땅치가 않고…….”

“비좁은 갱도에 들어가서 돌을 캐기는 싫네!”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광부건 농부건 안정적인 생계 수단이 있는 자와, 무언가 먹고살 길을 찾아야만 하는 자로.

주로 화전민 출신의 백성이나 빈민들이 후자에 속했다.

광산에는 일자리가 많지만 위험하고 환경이 열악하다. 그렇다고 바다로 나아가 물고기를 잡기에는 평생 배 한번 타보지 못했다.

다시 화전민으로 돌아갔다간 보나 마나 붙잡힌다. 이미 한번 용서받은 신세니 처벌은 몇 배로 무거워지겠지.

비율로 보자면 전체의 수백분지 일도 안 되는 소수였으나, 조선의 인구가 거의 2천만에 육박하니 그 숫자도 어언 수만에 달했다.

공문에 쓰여진 대로 관아에 신고를 하고 계속 북으로 북으로 걷다 보니 비슷한 신세의 사람들이 차츰 함께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족 한둘이, 그러다 수십 명으로.

나아가선 수천 명의 대규모 유랑민 무리가 되어 평양으로 향했다.

경상도에서 출발한 김 씨네 가족이 2주에 걸친 기나긴 여정 끝에 도달한 평양은, 도시 전체가 공사판이 되어 있었다.

--쿠구궁!

“기둥들 뽑으라우! 주춧돌도 옮기고!”

“짚은 새걸로 교체할 거니 다 태우라!”

북방 사투리를 쓰는 인부들이 초가집을 해체하고 나온 자재들을 수레에 실어 옮겼다. 대가족이 전부 들어가 살 만한 집에 수십 명이 들러붙어 뚝딱거리니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분해되기까지 불과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이러한 일이 도시 전체에 걸쳐 이뤄지고 있었다.

수만의 인구가 살던 거대한 주거 구역이 몇 리 떨어진 대동강 하류로 옮겨졌다. 도시를 둘러싸던 성벽도 해체되었다. 평안감영을 비롯한 관(官)의 시설만이 원래 자리에 남아 있었다. 무슨 연유로 저리 놔둔 것일까?

김 씨네가 도착한 것은 공사가 시작되고 이틀이 지나서였지만, 작업은 놀랄 만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름이 뭔가? 가족들도 전부 말하게.”

“기, 김만동이라 합니다요. 얘는 창동이고, 얘는 말동이고…….”

감영에서 일하는 아전에게 전입신고를 하자 목패를 하나 받았다. 위에는 처음 보는 신기한 문양(천축 숫자)가 그려져 있었다. 207호라는 뜻이라나.

앞으로 1년간 김씨네 가족이 살 숙소를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숙소는 당연히 번듯한 집일 리 없었고, 그저 벌판에 놓인 천막 중 하나였다. 전부 똑같이 생겨 옆에 쓰인 문양, 아니, 숫자를 유심히 확인하지 않으면 길을 헷갈리기 십상이었다.

그래도 내부는 상당히 널찍했다. 그와 아내, 4남매가 모두 들어와도 충분히 발 뻗고 뒹굴며 잘 수 있을 만큼 컸다.

평안도는 여름에도 서늘하고 춥다고 들었다. 천막이 바람은 막아줄 테니 가지고 온 이불과 옷가지로 잘 여미고 자야겠지.

“아부지, 배고파유. 뭐 먹을 거 없어요?”

“기다려 봐라, 이것아. 주먹밥을 어디다 뒀더라…….”

짐을 풀고 나서 보존식을 넣어둔 주머니를 찾으려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오늘 들어온 사람들은 전부 모이시오! 식량도 배급해 줄 터이니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먹을 걸 준단다. 그 말에 김만동은 황급히 천막 문을 제치고 나섰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하니 아까 전의 아전이 있던 곳이었다. 단상 위에 올라선 제법 높아 보이는 분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이 먼 곳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나는 평안감사 박문수라고 하는 사람이다. 너희들은 앞으로 이곳에서 일하며…….”

뭔가 장황한 연설이 이어졌지만 김만동의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어려운 말은 잘 모를뿐더러, 그보다는 언제 식량을 줄지가 더 중요했으므로.

한 일다경쯤 시간이 지나니 연설이 대충 끝나갔다.

박문수는 단상에서 내려오기 전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희 중에 열 살 이하의 아들이 있는 집은 손을 들거라.”

김만동을 비롯해 여럿의 손이 올라갔다.

“그 아이들은 일하기엔 너무 어리니 조만간 세워질 서당에 보내야 할 것이다. 지키지 못할 자들은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거라.”

서당이라.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일도 못할 어린애들이니 뭔가 배우기라도 하면 좋지 않겠나.

나라에서 공짜로 가르쳐 주신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자, 이제부터 쌀을 배급하겠소! 한 가족당 다섯 말씩이니 줄을 서시오!”

유감스럽게도 쌀에 미친 민족에게 질서정연한 분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만동은 한 손에 포댓자루를 쥐고 조금이라도 먼저 받아 가려는 사람들의 순서싸움에 동참했다.

* * *

이로부터 며칠 전, 한양.

프리드리히에게 있어 평양성의 재건축이란, 그간 이뤄낸 성과의 집대성과도 같은 사업이었다.

규장각의 교육받은 유생들, 한창 기가 살아난 상단들, 박문수의 부패 타파 가운데 하나라도 실패했으면 시작할 엄두도 못 내고 포기해야 했으리라.

그런 만큼 만반의 준비가 기해졌다.

인력, 재원, 장비 등 모든 면에서.

사정상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쏟아부었다.

“채 당상, 유생들은 잘 출발했소? 아 참, 이젠 유생이 아니었지.”

“공조의 신임관료단은 조만간 평양에 도착한다고 하니 안심하소서.”

“그럼 다행이구려. 흑룡영으로 하여금 잘 경호하도록 하시오. 한 명이라도 잃으면 국가적 손실이니.”

규장각의 유생들 대부분이 현장 지휘 담당으로 파견되었다.

공사에 필요한 각종 측량법과 수치 계산, 그리고 비용 산정 등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전문 지식을 보유한 이들은 어디서든 유용한 인적자원으로 쓰일 수 있었다.

조폐공사에서 파견 근무를 하며 실무 경험을 쌓은 이들도 많으니 경험을 살려 일 처리도 신속할 것이다.

물론 유생의 신분으로는 보내기가 곤란했던 탓에, 공조에서 건축을 담당하는 영조사(營造司) 소속으로 꽂아 넣어야 했다.

여기서 홍인한의 관직이 유용하게 쓰였다. 이조정랑에게는 재야의 인재를 천거하는 권한이 있었으니까. 덕분에 과거 시험 같은 귀찮은 절차를 넘기고 빠르게 유생들을 조정에 입사시킬 수 있었다.

사약 그릇을 받은 이후로 제정신이 들었는지 욕심도 안 부리고 얌전해진 덕분에 일을 시키기도 편했다.

“대행수들에게 계약 내용은 잘 전달했겠지요?”

“예. 평양에서 직접 값을 치르겠다는 것까지 확실히 전했습니다.”

공사에 사용되는 물자는 세곡선이나 군선을 써서 운반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과감하게 외주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인부를 먹여 살릴 식량부터 건축자재까지, 전부 상단들과 수송 계약을 맺어 조달하는 것이다.

조선의 상업을 진흥시킬 밑천을 마련하려면 관을 대신해 민간에서 참여할 분야를 만들어줘야 한다.

말로는 사농공상을 타파하고 장사를 중시하겠다면서 정작 정책은 안 바꾸면 그야말로 코미디가 아니겠는가.

초협선을 자체 생산할 능력도 갖추었고, 광산을 운영하면서 수운 경험도 쌓였을 테니 적어도 돈을 지불하는 만큼은 일해주겠지.

“설계도와 설명서는?”

“파발을 보냈습니다. 그것도 조만간 도착하겠지요.”

마지막으로, 프리드리히는 세 가지 신기술을 공사에 활용하기로 했다.

벽돌, 기중기, 콘크리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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