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자세자와 뒤주대왕-118화 (118/175)

감자세자와 뒤주대왕 118화

조약, 그리고 교육

1743년 12월 7일.

신성로마제국 아헨.

“지금부터 조약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양측 모두 이의 없으십니까?”

“뜸 들이지 말고 어서 하시지요. 저것들 얼굴 오래 보기 싫으니.”

“누가 할 소리를!”

원래 역사에서도 전쟁을 종결한 엑스라샤펠 조약이 체결된 역사적인 장소에 각국의 대사들이 모여들었다.

영국의 전 총리 로버트 월폴 백작, 오스트리아-프로이센의 카우니츠 백작을 포함해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바이에른의 대표들까지.

오랜 외교 다툼과 협상, 조율을 거쳐 완성된 종전조약안의 내용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한 형식적인 회담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는 가운데, 중립국으로서 중재를 맡은 스웨덴의 대사가 입을 열었다.

“하나,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적절한 계승자이며 추후 누구도 이 권리에 대해 부정할 수 없다. 증거로서 프랑스와 스페인, 바이에른은 국사조칙을 승인해야 한다. 동의하십니까?”

“인정하겠습니다.”

시작은 전쟁의 발단이었던 계승권 문제부터였다.

오스트리아 입장에선 국가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사안이었기에 최우선적으로 확인 절차가 이뤄졌다.

“하나, 바이에른 공국의 영토는 셋으로 분할한다. 북부는 프로이센령이 될 것이며, 남부는 오스트리아령으로 삼는다. 이외 중부의 영역은 비텔스바흐 가문의 소유로 남긴다. 동의하십니까?”

“물론입니다.”

“……동의합니다.”

신성로마제국 내에서는 합스부르크의 영토와 하노버 공국을 제외하면 손에 꼽는 크기였던 바이에른은 갈기갈기 찢겼다.

절반에 달하는 영토와 인구가 합스부르크-호엔촐레른에게로 넘어갔다.

아무리 비텔스바흐가 발악한다 한들 앞으로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은 재기하기 어려우리라.

애초에 국운을 걸고 도박을 벌였다가 모든 걸 잃어버린 가문에게 그럴 기회가 주어질지도 미지수지만.

“하나, 비텔스바흐 가문의 선제후 자격을 박탈한다. 팔츠 선제후와 바이에른 선제후를 없애고 기존의 7개 선제후 체제로 회귀한다. 동의하십니까?”

“이 역시 물론이오.”

“이의 없음.”

금인칙서에 따라 3명의 성직제후와 4명의 세속제후에 의해 선거가 이뤄지던 시절로 회귀하겠다는 합의였다. 구성원은 살짝 바뀌게 되겠지만.

원래는 프로이센이 차지할 북바이에른에 선제후 자격을 넘기고, 팔츠의 제후직을 오스트리아 대공국으로 교체할 계획이었으나……. 너무 노골적인 요구인지라 포기했다.

9개 선거권 중에 5개를 한 가문에서 독점한다니. 사실상 황제 자리를 세습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주변국들이 납득해 줄 리가 있나.

차라리 유권자 수를 줄여 버리는 편이 나았다. 적당히 생색도 내면서, 선거에선 다른 선제후 한 명만 아군으로 포섭하면 되니 계승도 수월하게 이뤄질 테고.

“하나, 시칠리아 왕국의 소유권은 스페인의 것임을 보장한다. 북알자스 지방은 오스트리아의 소유로 하되, 남알자스는 프랑스의 영토로 존속시킨다. 동의하십니까?”

“물론이지요.”

“이하 동문.”

마리아 테레지아는 중부유럽에서 부르봉 가문의 영향력을 완전히 거세하길 원했다. 그러나 영국의 반대와 스페인의 필사적인 애원으로 인해 요구는 무산되고 만다.

보르본 왕조는 귀중한 해외 영토를 지키고 싶어 했고, 연합왕국은 오스트리아의 배 아래에 비수를 남겨두길 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추후 사이가 틀어졌을 경우 보험으로 써먹기 위해서.

유사시 침공로가 늘어나면 그만큼 병력을 분산시켜야 할 것 아닌가?

유럽에 강대국이 나타나려고만 하면 혐성질을 부리는 해적놈들다운 수작이었다.

대신 기존에 비해 많은 제약이 주어졌다.

주둔 가능한 병력의 규모는 2만을 넘을 수 없었고 주력함의 배치도 금지되었다. 심히 가혹했으나, 패자인 스페인 입장에선 그걸로도 감지덕지였다.

“하나, 상기한 영토 관련 조항 및 배상금의 일부 탕감에 대한 대가로 누에바 에스파냐와 루이지애나를 분할한다. 새로운 식민지는 합스부르크와 호엔촐레른의 소유가 될 것이다. 동의하십니까?”

“물론 동의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의 없소.”

빼앗는 측이야 그렇다 쳐도, 빼앗기는 측의 표정 역시 의외로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도리어 다행이라는 듯이 안심하는 기색까지 언뜻 비쳤다.

여기엔 뒷사정이 존재했는데, 실은 프랑스에게 있어 루이지애나는 반쯤 버려진 땅이었다. 23년 전의 거품경제 사태로 인해 신대륙 식민지에 다들 진저리를 쳤기 때문이다.

사치와 전쟁을 일삼았던 태양왕 루이 14세 사후.

일전에 여러 번 언급했듯이 프랑스는 막대한 빚더미에 시달려왔다. 대출을 했으면 갚아야겠는데 상환할 방법도 마땅치가 않았다.

왜냐고? 1685년 낭트칙령이 폐지된 이래로 신교도가 대부분이던 숙련공들이 죄다 외국으로 도망쳐 버렸으니까. 재정도 없고 경제 기반도 박살 났으니 뭘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던 섭정 루이 필리프 2세 앞에 나타난 게 바로, 스코틀랜드인 존 로였다.

‘다들 들었어? 미시시피 회사라는 게 설립됐다 하더라고!’

‘섭정 각하가 중용하는 사람이 사장이라잖아? 당연히 투자해야지!’

은행 설립과 지폐 발행을 통해 국가 파산 위기를 해결한 공로로 재무총감을 역임하던 존 로는 식민지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미시시피 회사를 설립, 대규모로 주식을 발행했다.

액면가 300리브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음에도 주식은 폭발적으로 팔려 나갔다. 구체적으로 뭘 하는 기업인지, 사업 계획은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말이다.

왕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으니 성공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에 기대어 프랑스인들은 너도나도 주식 투기에 동참했다.

그 결과 고작 1년 만에 주가는 66배나 상승, 미시시피 회사의 시총은 무려 75억 리브르에 이르는 기염을 토한다.

허나 1720년 6월, 마침내 일이 터지고야 만다.

‘어? 뭐, 뭐야. 왜 주가가…….’

‘이보쇼! 1만5천 리브르가 하루아침에 수십 분의 1로 곤두박질치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요!’

‘내 돈 내놔라 이 도둑놈들아! 내 돈 내놓으란 말이다!’

필리프 2세가 통화량의 증가를 명한 것을 계기로, 전국적인 인플레이션 사태가 발발하고 말았다.

빵과 우유의 가격이 6배, 옷가지는 3배가 올랐으며 사람들은 지폐의 사용을 꺼렸다.

경기가 지나치게 과열되면서 화폐에 대한 신용이 무너진 것이다. 지폐의 가치는 폭락했고 주가는 더더욱 폭락했다. 2만 리브르에 달하던 주가가 하루아침에 500리브르까지 떨어져 내렸다.

훗날 미시시피 거품이라 명명된 이 사태는 결국 존 로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추방당하면서 막을 내렸다.

하지만 피해가 워낙 심했던지라, 이후 미시시피와 루이지애나에 대한 투자는 거의 중단되기에 이른다.

어차피 눈에 보이는 이익도 없고 손해만 잔뜩 안겨준 땅덩어리, 버리기 아까워서 썩혀두고 있었을 뿐이다.

값어치를 넉넉하게 쳐준다면야 얼마든지 팔아넘겨도 상관없었다.

그게 프랑스 수뇌부의 인식이었다.

스페인의 경우엔 약간 달랐는데, 애초에 누에바에스퍄냐의 중심지는 북아메리카의 서부였지 동부가 아니었다.

분할안에 따르면 잃는 건 고작 플로리다 지역 아닌가?

그걸 대가로 시칠리아를 보전하고 돈도 아낄 수 있다면야 만족스러운 거래다.

신대륙에 얼마나 방대한 잠재적 가치가 숨어 있는지를 알았다면 땅을 치고 후회했겠지만, 그건 머나먼 미래의 후손들의 역할이 되겠지.

“하나, 프랑스는 영국에게 칼레를, 오스트리아에게 브레스트를 양도한다. 이는 올해 내로 실행되어야만 하며, 불응할 시 양국은 프랑스에 대한 군사적인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 동의하십니까?”

“물론.”

“……그렇게 할 것이오.”

다섯 번째 조항은 실리와 정치 모두를 충족시키는 요구였다. 영국은 백년전쟁 시절의 고토를 되찾았으니 왕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오스트리아는 대서양으로 나가는 창구가 생기고.

신대륙에서 벨기에까지 거리가 상당한 만큼 중간에 보급을 받을 기착지 하나 정도는 필요했다. 위치상 미래에 아프리카나 동방으로 확장 정책을 시행할 때도 유용할 터.

“마지막입니다. 하나,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게 전쟁 배상금으로 10억 리브르를 지불한다. 마찬가지로, 스페인은 3억 리브르를 지불한다. 이는 1750년까지 시행되어야 하며, 추후 양국 간의 합의에 따라 일정 금액은 함선으로 대체 가능하다. 동의하십니까?”

배는 비싼 물건이다. 대양함대의 주력인 크고 아름다운 전열함의 경우엔 더더욱.

탑재 포문수가 100문을 넘어가는 1급 전열함을 건조하기 위해선 현대로 치면 전략 핵잠수함과 맞먹는 비용이 들어갔다.

자국의 건함 능력 육성을 위해선 몇 척은 직접 건조해 봐야겠지만, 될 수 있으면 노획함이나 배상함을 운용하는 게 예산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어차피 어딜 가나 무기 체계는 비슷비슷하던 시대이니.

“이의가 없으시다면, 차례로 문서에 서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로써 전쟁이 끝나고 유럽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음을 선언합니다!”

전쟁을 주도했던 국가의 대표자로서 가장 먼저 서명을 마친 카우니츠는 회담장을 나섰다.

바깥에는 황제가 공원을 거닐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나?”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는 의미다.

“축하드립니다, 폐하. 이걸로 합스부르크와 호엔촐레른은 명실상부한 유럽 최고가 되었군요.”

“그래? 그러면 앞으로 10년간은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겠군.”

오스만이 고꾸라지고 프랑스가 박살 난 현재. 감히 합스부르크에게 싸움을 걸어올 국가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내정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 * *

훈장들의 능력을 나라에서 평가한다 하여 [검정고시]라 명명된 시험이 준비되기까지는 단 2주면 충분했다. 채점 방식과 문제의 종류를 포함해 시스템을 완성하고, 이를 파발을 통해 전국에 알렸다.

공부에 미쳐 버린 선비가 조정에 넘쳐 나는 조선이기에 가능한 속도였다.

제각기 이러면 좋겠다, 저러면 나을 것이다 하는 조언 한마디씩 남긴 대로만 해도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으므로.

그리고 당연하게도, 대대적인 반발이 일어났다.

“전하아아!!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선비를 길러내는 곳이 서당일진대, 어찌 이렇게 터무니없는 탄압을 가하시려 하십니까!”

가장 먼저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한성에서 상소가 올라왔다.

도성 내의 서당 삼백여 곳의 훈장들이 궁궐 앞에 모여 멍석을 깔고는, 머리를 연신 찧으면서 외쳐댔다.

제발 하던 대로 하자고, 자기들 밥그릇을 빼앗지 말아달라고.

일견 비장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모여 구경했으나, 진상을 알고는 혀를 차면서 흩어졌다.

“에라이, 더러운 놈들!”

“그렇게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 저리 지랄발광을 떨고 있다는 말이지?”

“어, 저기 저놈! 내가 잘 알아! 북순서당에 박가 놈 아니여?! 저놈 끌어내! 당장 끌어내!”

뭐 부당한 조치가 억울하여 당당히 항거하는 중이었다면 이해라도 간다. 임금이 잘못된 길로 가면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하는 게 군자라고들 하지 않는가.

하지만 실력 부족이 들통나기 싫어서 하는 시위 따위, 아무런 정당성도 당위성도 없었다. 그저 역겨운 욕심부리기에 지나지 않았다.

백성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그저 욕설 한마디 중얼거리고 침을 뱉으면 양호한 정도였고, 대놓고 쌍욕에 부모 욕까지 내지르는 작자도 한 시진에 한둘은 있었다.

심하면 훈장들 사이로 아는 사람을 발견하는 바람에, 격노해서는 두들겨 패겠답시고 달려들기도 했다. 물론 폭력 사태는 경비 중이던 흑룡영에 의해 사전에 제지되었다.

‘이보시오, 갈수록 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소이다.’

‘무시하고 견디시오. 여기서 물러나면 우린 끝장나는 거 알지 않소!’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훈장들은 꿋꿋이 견뎠다.

상소에 동참한 이들의 대부분은 그저 그런 양반가 출신이었다. 글 읽을 줄은 아는데 과거에 응시할 실력은 못 되는, 한마디로 어중간한 무능력자.

스스로의 한계를 알기에 물러서지 않으려 했다.

훈장 노릇도 못 하면 먹고살 방법이 없다. 농사라곤 씨를 뿌리는 방법조차 모르는데, 그러면 양반이 천박하게 장사 일에 종사해야 하나? 수십 년간 시장 바닥에서 잔뼈가 굵었을 것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는 있고?

그러나 이들의 절박함이 무색하게도 농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철커덕.

“모조리 잡아들이랍신다! 이들부터 시험을 치르게 할 것이다!”

독재국가에서 입영 대상자들이 반전시위를 하면 어떻게 하나? 죄다 잡아들여 군대로 끌고 가지.

비슷한 방식이다. 마침 모여 있으니 수고를 덜었다며 프리드리히는 훈장들을 모조리 궁으로 끌어왔다.

편전 앞에 죄다 꿇어 앉히고는 신하들을 시켜 본인이 보는 앞에서 한 명 한 명을 직접 검증케 했다.

‘우라질! 설마 이렇게 강경히 나오실 줄이야!’

‘예기(禮記)를 안 읽어본 지 삼 년도 넘었는데…….’

검정고시는 크게 3단계로 구성되었다.

먼저 십삼경을 비롯한 기본적인 경전에 관련된 지식을 확인했고, 다음으론 복잡한 한자를 읽고 해석하게 시켜 독해 능력을 보았으며, 마지막으론 즉석에서 짧은 시구를 짓게 해 작문 능력을 보았다.

모두 학동들을 가르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었다.

“자왈(子曰), 학이불사즉망하고(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니라(思而不學則殆). 이게 어디에 나온 문구인지 아는가?”

“그, 그것이…….”

“아니, 이런 무식한 것을 봤나? 네놈은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조차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냐! 이런 어리석은 자가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니, 어불성설이 따로 없구나!”

강제로 끌려와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훈장들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정답을 맞히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의지만큼 성적이 나왔다면 좋았겠으나…… 현실은 언제나 잔혹한 법이다.

“허허, 어떻게 생각하시오, 우상?”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처참하다고밖에 이를 말이 없나이다.”

“역시 시험을 준비하길 잘했소이다. 이렇게 엉망인 작자들이 많아서야 원.”

여섯 명.

300여 명 가운데 오직 여섯 명만이 합격점을 받았다.

1할은 마지막 단계를 통과하지 못했고, 또 1할은 2단계를 겨우 통과했다. 나머지는 1단계도 겨우 넘겼거나 그마저도 실패하고 말았다.

곤두박질치는 통과율 앞에서, 평소에 얌전한 성격으로 알려진 채제공조차도 차마 표정 관리가 곤란해 소매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저 여섯에게는 증서를 내려주도록 하라. 나머지는 당장 궐 밖으로 내쫓고.”

“예, 전하!”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울부짖는 무리를 뒤로한 채 프리드리히는 고개를 돌렸다. 한양이 이러한데 지방은 얼마나 더 심각할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물론 실력 없는 것들이 모여든지라 이렇게 통과 비율이 낮은 점도 있겠다만, 2할씩만 걸러진다 가정해도 전국적으로는 수천수만 명 아닌가.

아무래도 대대적인 교육 환경의 공백 발생이 불가피해 보이는데, 급한 대로 생원과나 진사과 합격자들을 시켜서 부족한 자리를 채워야 하나?

뭐, 교육을 중시하는 조선에 식자층은 넘쳐 났으니 해결법이야 여러 가지 있겠지.

그보다는 급선무인 업무가 따로 있었다.

“좌상, 지난번에 준비하라 명했던 책은 완성되었소?”

“물론이옵니다.”

수십 장으로 이루어진, 서책이라기보다는 책자에 가까운 얇은 종이 다발. 아라비아 숫자의 사용법을 비롯해 기초적인 사칙연산의 요령, 초중등 수준의 기하학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품질이 괜찮구려.”

“조지서(造紙署)의 장인들이 수고한 덕분이옵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선 글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수확량을 계산하고 가계 수입을 정리하는 등, 간단한 계산 능력은 농부건 어부건 간에 필수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책자는 그 소양을 길러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문외한을 대상으로 했다 보니 난이도도 최대한 쉽게 작성되었다.

한두 달만 열심히 공부하면 그럭저럭 어렵지 않게 습득이 가능하도록.

조선의 상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산수에 익숙해질 수 있게, 수학교육이 우선되어야 했다.

“여러 권을 제조해 전국에 배포하도록 하시오. 증서를 받은 훈장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가르치도록 하면 되겠지.”

“하명하신 대로 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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