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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성군-40화 (4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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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라이

002

그리스의 편에 서겠다고 주장한 아레스는 전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단순무식한 성격에 계산적인 것을 싫어한다. 가장 순수하면서도 뜨거운 전화戰火라고 할까. 적의도, 악의도 존재하지 않는 전쟁의 여신은 오로지 자신의 구미에 당기는 전쟁에만 참전했고,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고자 전쟁이라는 과정을 즐겼다. 그것에 적의도 악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레스가 무서운 것이다. 그녀는 오로지 전쟁을 오락의 범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잃다니, 진짜로 바보 녀석이잖아."

"시끄럽다!"

아레스가 투정을 부리면서 짜증을 터트렸다.

그녀는 테살리아의 올림푸스에서 하산하여 스파르타를 지원하려고 하였는데, 그 중간에 길을 잃고서 헤매이다가 이타카 섬으로까지 가버린 모양이다. 자신의 고국에 아레스가 당도한 것을 알아챈 오디세우스는 미아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주는 심정으로 다시 테살리아로 보내주었다. 오디세우스의 표정이 어떠하였을지 대충 짐작은 간다.

라에가르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미 전쟁은 끝났는데요."

"다, 다시 전쟁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 잘 생각해보거라, 아직도 트로이와 그리스가 건재하다! 진정한 의미로 하계의 왕이 되고자 한다면 패도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고, 전쟁을 반복하여 타국을 침범하고 영토를 넓히면서 인류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지금은 휴식기입니다. 전쟁은 없어요."

"으아아아아!!"

붉은 머리카락의 유녀 아가씨가 바닥을 나뒹굴면서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토록 기대하던 강대국들간의 전쟁을 놓쳐버린 그녀는 어지간히도 억울하였는지 울음을 크케 터트리면서 되도 않는 억지를 부렸다. 전쟁은 제멋대로 일어났고, 예상하지도 못한 변수를 통해서 벌어진다. 그 전쟁의 개념과 사상은 전쟁의 여신인 아레스의 성격으로 발전했고, 전쟁이라는 것이 하나의 결정화를 이루어 아레스가 태어났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전쟁의 여신이었고, 전쟁이 가진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다루기 힘들고 귀찮다.

짜증난다.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마케도니아가 요즘 들어서 또 쳐들어온다는데, 거기로 보내드려요?"

"싫다. 야만족들 따위, 싸워봤자 재미도 없고 힘만 들 뿐이다."

젠장, 이제는 안 통하네.

아레스가 앞장 서서 마케도니아 녀석들을 쓸어갈겨준 덕분에 북방 국경선을 다루기가 쉬웠는데. 아무리 바보라도 똑같은 수단으로 속이면 본능적으로라도 알아차리는 모양이다. 물론 여기서 감언이설을 적당히 해주면서 구슬려준다면 곧장 휘파람을 불면서 마케도니아를 토벌하러 떠나겠지만.

"트로이를 공격하자! 그리스가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니, 그 다음 순번은 트로이가 아니겠느냐?"

"......"

대체 이 녀석은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테베의 건국 시조였던 녀석이 그 테베를 멸망시켜버린 나에 대해서 악감정을 품지도 않는 건가. 이 녀석의 머릿속은 대체 어떻게 되어먹었는지가 궁금하다. 테베를 멸망시킨 것에 대해서 아레스가 분노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내게 친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전쟁을 유도하고 있었다.

과거의 일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건가.

태베라는 국가는 전신 아레스의 총애를 받은 카드모스가 세웠고, 전신 아레스를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수호신은 자신의 국가가 멸망하였음에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전쟁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전쟁에서 이기면 승자가 되고, 전쟁에서 패배하면 패자가 된다.

----어쩌면 아레스는 전쟁의 법칙에 따라서 결정되는 승패에 대해서만큼은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녀도 아테나와 같은 전쟁의 여신이니 전후사정에 대한 뒤끝은 없었다.

"시끄럽다, 아레스."

복도를 거닐면서 테살리아 왕궁을 돌아다니던 금박 적안의 미녀가 들어섰다.

망나니 같은 딸내미를 다그치기 위해서 올림푸스의 안방마님이 강림한 것이다. 헤라는 테살리아 왕궁에서 자주 머물렀고, 나와 자주 밀애를 가졌다. 지금도 새벽까지 섹스를 즐기고서 왕궁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였다. 아레스가 빽빽 소리를 내지르면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을 목격한 헤라는 성난 고양이처럼 눈가를 치켜올렸다.

"케헥?! 어마마마?"

"그 아비나 딸내미나 망신을 다 시키는구나. 올림푸스 주신이라는 것에 자각심을 가져라!"

"죄, 죄송합니다아아!"

어머니 헤라의 호통에 아레스가 푹하고 고개를 숙였다.

주신 제우스의 으름장에도 오히려 고집을 부릴 정도로 천방지축인 아레스는 유일하게 어려워하는 존제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헤라였다. 가정의 여신인 그녀는 가정을 수호할 필요가 있었고, 그 가정을 어지럽히는 존재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분노를 드러냈다. 고작 오락 같은 시시한 이유로 전쟁을 일으켜서 그리스 전역의 가정을 위태롭게 만드는 아레스의 행동에 헤라가 분노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레스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내던졌다.

헤라는 아레스를 번쩍 들어서 내던져버렸고, 왕궁의 내벽이 무너져내리더니 저멀리 날아가버렸다. 마치 원반 던지기를 하는 것처럼 작은 유녀가 부우웅하고 날아가버렸다. 대체 어디로까지 날아가는 걸까.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구석에 쳐박혀버리는 모습을 보자니 불쌍하다는 마음도 들었다.

대체 어느 나라에서 전해지는 교육 방법일까.

애엄마가 말 안 듣는 딸내미를 붙잡아다가 벽에 내던져버릴 줄이야. 마치 발리스터처럼 저멀리 날아가버렸다.

"딸내미가 소란을 부렸다. 미안하구나."

"그, 글쎄요. 저렇게 내던져도 멀쩡한 겁니까?"

"튼튼한 것 말고는 별다른 재주가 없는 딸아이라서 괜찮을 듯하다."

너무 가혹한 체벌은 아닌지 의문을 품었지만 곧이어 건물의 무너진 파편 속에서 멀쩡하게 걸어나오는 아레스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체벌을 당한 것을 익숙하다는 듯이 아레스가 터벅터벅 걸어나왔다. 머리를 슥슥 문지르는 것을 보아하니 머리부터 벽에 쳐박힌 모양이다. 그럼에도 멀쩡했다. 그 어디에도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마마마께서는 어쩐 일이십니까?"

아레스가 물었다.

어머니인 헤라에게는 유일하게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아레스를 이렇게까지 예의바른 아이로 만들 수 있는 것은 헤라 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 부친이라는 작자는 바람둥이라서 자식 교육조차 시키지 않은 놈팽이였으니 헤라가 아레스를 어릴 적부터 가르쳐 왔겠지.

헤라는 라에가르에게 붉은 눈동자를 힐끗 돌리더니, 곧이어 부드러운 입술을 열었다.

"그저 유희를 나왔을 뿐이다."

물론 그 유희는 지아비가 아닌 그 지아비와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와 섹스를 하는 것을 말한다.

섹스를 훌륭한 오락이다. 가정의 여신인 헤라가 인정했다. 섹스는 나쁘지 않다. 자식을 낳아야 가정을 이루고, 가정을 이루어야 구성원이 만들어진다. 국가의 기본 개념은 가정이었고, 그 가정을 수호하는 헤라는 섹스라는 남녀의 생식 활동에 대해서는 오히려 우호적이었다.

"테살리아에 자주 오시는 것 같습니다만?"

"시끄럽다. 그건 네 알 바가 아니지 않느냐."

바보인 주제에 가끔씩 예리한 발언을 하는 아레스의 말에 헤라가 인상을 찡그렸다.

인상을 찡그렸음에도 아름다운 매력이 그대로 뿜어져 나왔다. 풍만한 가슴이 부각될 정도로 팔짱을 낀 그녀는 어떻게 하면 이 사고뭉치 딸을 다시 신계로 돌려보낼 수 있을까, 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라에가르와 며칠 동안 데이트를 하기로 했고, 밤에는 자식 낳기에 힘쓰려고 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아레스가 끼어들어서는 연애 사업이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비록 라에가르에게는 헬레네가 왕비로 붙어 있었지만, 헤라가 테살리아 왕궁으로 현계하면서 라에가르의 소유권은 헤라에게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당당하게 본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낱 인간 왕비 따위에게 하계의 왕을 빼앗길 생각은 없었다. 물론 왕비에게도 후일에 하계의 왕과 동침할 수 있는 권한을 너그럽게 양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인간 왕비에게 하계의 왕을 주자니 아깝다고 생각했다.

질투심이 생겼다고 할까. 왕비가 그저 그렇게 생긴 미녀였다면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겠지만, 테살리아의 왕비는 그리스 최고의 미녀라고 불리는 헬레네였다. 헬레네에게 하계의 왕을 빼앗기긴 싫었다.

신들의 여왕은 한낱 계집아이가 품을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자각은 있다. 하지만 그를 빼앗기긴 싫다는 것 또한 진실된 마음에서 발현된 감정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라에가르의 아이를 임신한 다음에 그것을 결정하자.

우선 그와의 사이에서 사랑의 결실을 보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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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슬럼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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