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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라이
005
예상한 대로 월신 아르테미스는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여신 헤라의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이번 여행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아무리 달을 다스리는 여신이라 할지라도 신들의 여왕인 헤라에게는 이길 수 없다. 애초에 가지고 있는 신격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티탄의 딸인 레토와 제우스의 사이에서 태어난 처녀의 여신은 자신의 어머니를 위협한 헤라였지만, 지금은 과거의 앙금을 청산하고 헤라를 진심으로 섬기면서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남성에게는 표독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엘프 소녀였지만, 적어도 여성으로서 헤라를 존경하고 있는 듯하다. 가정의 여신인 헤라는 결국 자신과 모친인 레토를 올림푸스로 받아들였다. 바람을 피운 것은 어디까지나 제우스였고, 레토는 그저 바람둥이에 놀아난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헤라는 남편의 바람 상대에 한해서는 매섭지만, 어린아이에 대해서는 자비롭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보고서 관용을 베푼 것이겠지.
적어도 아르테미스는 헤라를 은인으로 여겼다.
조금 그 관계는 껄끄러웠지만 말이다. 헤라는 자신의 심부름꾼으로 무지개의 여신 아이리스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주로 부렸다.
"그런데 같은 올림푸스 주신인데 이런 식으로 부려먹어도 되는 건가?"
내 말에 펜테실레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지만, 오히려 흑발의 엘프 여성 쪽에서 크게 반발이 일어섰다.
"너까짓 인간이 뭘 알아? 나는 헤라 님에게 부려지는 심부름꾼으로도 만족해! 그 분의 곁에서 부려지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일 테니까!"
아르테미스가 말했다.
그녀는 진심인 것 같았다. 진심으로 여왕의 심부름꾼 역할에 만족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사고 방식인 거냐.
나였다면 같은 주신이니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고 거세게 반발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처녀의 여신은 신들의 여왕을 섬길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까지 말했다. 새하얀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아하니 조금 무섭다. 평생 처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같으니 설마 그 쪽에 애정을 두고 있는 건가.
그리스에서 동성애는 그다지 금지되는 일은 아니다.
어느 왕은 동정 소년으로 구성된 첩들을 차렸다고도 하고, 아폴론이라던지 올림푸스의 다른 남신들도 얼굴이 반반하고 예쁜 소년들을 특히 좋아했다. 내 아버지 제우스는 방탕한 주제에 동성애에는 관심이 없었고, 주로 하급 신들이 동성애를 즐겼다.
물론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니다. 물론 나는 동성애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바다가 예쁘네요."
펜테실레이아의 적갈색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이 거세게 흩날렸다.
테살리아 왕국의 항구에 정박된 선박들 중에서 가장 큰 배를 이용하여 에게 해를 건너고 있었다. 이대로 동쪽으로 향했다가 남쪽으로 꺾어지면 목적지인 미노스 섬에 도착한다. 미노스 섬은 과거에는 큰 영광을 간직했던 중심지였기 때문에 그 쪽으로 가는 항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적어도 트로이 출신의 뱃사공들은 능숙하게 배를 조작하면서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줄로 항해는 남자들의 전유물이다. 뱃사공들도 모두 남성이었는데, 용모가 수려하고 아름다운 펜테실레이아와 아르테미스를 힐끗 바라보았다. 특히 길쭉한 귀를 가진 흑발의 엘프 여성에 대해서는 이목이 집중되었고, 남성들의 시선에 집중된 아르테미스는 매우 불쾌하다는 오라르 흘리고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질 것만 같아서 더욱 무서웠다.
소녀와 처녀들에 한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월신이었지만, 자신을 포함해서 여성들의 적으로 규정된 남자들에게는 가혹하면서도 잔인한 형벌을 내리기로 유명했다. 죽음이라는 결과는 자비에 가깝다. 죽음이 자비로울 정도로 월신 아르테미스는 남성들에게 가혹한 징벌을 내린다.
"바다를 보는 건 처음인가?"
"그렇죠. 언제나 아마조네스의 영역에서 살았으니까요."
"여왕이 나라를 두고 나와도 되는 거냐."
"단시간이라면요."
펜테실레이아는 나와 사정이 비슷했다.
누구보다 윗자리에 올라선 왕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시간은 크게 허락되지 않는다. 왕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며, 백성의 제일가는 일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왕도王道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만약 펜테실레이아가 여왕의 자리를 포기하고 테살리아로 온다면 나는 그녀를 받아들일 자신이 있었다. 비록 무책임하게 왕위를 던졌다고 해서 나는 그것을 비판하지 않는다. 왕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감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왕은 해먹을 직업이 결코 아니다. 그 고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눈부신 왕좌를 탐내는 무지렁뱅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아르테미스, 그렇게 살기를 보내도 좋을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시끄러. 너부터 죽여버리는 수가 있어."
"그건 무서운데."
아르테미스가 마음만 먹는다면 곧바로 화살을 활시위에 얹어서 나에게 쏴버린 것이다. 그녀를 남성의 목숨에 대해서 배려심이 전혀 없다. 아폴론이 남성들을 대표한다면, 그 여동생인 아르테미스는 여성들을 대표했다. 서로 개성도 성격도 다른 남매는 가장 다루기 힘든 신들이었다.
"그리고 신시아! 신시아라고 불러!"
"그러지."
계속해서 아르테미스, 라고 불린다면 그야 수상하긴 하지.
이 세상에는 여신의 본명을 이름으로 붙여버리는 간 큰 인간은 없을 테니까. 적어도 신의 권력과 영향력이 최절정에 달해있는 신대에 있어서 그런 인간은 없다.
아르테미스의 이명인 신시아Cynthia는 킨디아라고도 불리는데 주로 신시아라고 부른다. 흔히 여성들이 주로 붙이는 이름이다. 신들은 자신의 이명이라도 한낱 인간 따위의 이름에 붙여지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아르테미스는 갓 태어난 여자아이들을 신성하게 여기기 때문에 자신의 이명인 신시아를 그 이름으로 붙이는 것을 허락했다.
이렇게 보면 자비로운 여신님처럼 보이는데 우리 남자들한테는 왜 그 모양으로 구는 건지. 물론 오빠인 아폴론이 그만큼 방탕한 미청년이기 때문이겠지만. 아르테미스가 남자를 싫어하는 데는 아폴론의 영향이 컸다. 제우스 2세라고 불리는 그 놈팽이 때문이다.
"신시아."
"어."
"좋은 이름이네."
아르테미스의 이명은 그리스의 킨토스 산에서 유래하였다고 들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알아본 것은 아니고, 헤라가 언뜻 지나가면서 했던 이야기였던 것 같다. 헤라는 나에게 무릎 베개를 해주면서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혹 해주었는데, 덕분에 신들에 대해서 유창하게 알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도움이 된 적도 많았다.
아르테미스.
제 2세대의 신이라 할 수 있는 달의 신 셀레네와 밤과 마술사 신 헤카테와도 동일시되는 전승을 가진 여신으로, 사냥과 처녀 그리고 산짐승을 수호하는 권위를 맡았기 때문에 그만큼 신격도 높다. 떠맡드는 신자들의 숫자는 적었지만, 주로 세속을 떠나서 몸을 의탁하려는 처녀들을 여신자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신앙심은 깊다. 최정예라고 할까. 물론 신들의 나라라고 불리는 테살리아에도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신전이 있다.
헤스티아 신전과는 달리 장난으로라도 넘본 적은 없다.
만약 아르테미스의 여신자들에게 해코지라도 했다간 미간에 곧바로 은화살에 꽂혀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르테미스가 화를 내면 무섭다. 테살리아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그녀의 징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고,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르테미스가 가장 어려워하는 헤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밖에는 없겠지.
그런데 과연 헤라는 어째서 나에게 아르테미스를 보낸 걸까.
그것이 궁금해진다. 남자라면 치를 떠는 처녀의 여신께서는 분명 나에게 크게 조력해주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도우미가 되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는 중립이다. 아니, 내가 그토록 미워하는 남성이니 중립도 아니겠지. 부정적일 확률이 높다.
최악의 동행가가 아닐까.
대체 우리 여왕님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시느라 이 골치 아픈 여신님을 나에게 보낸 것이려나. 만약 헤라를 언제 한 번 만난다면 물어봐야겠다. 물론 다시 재회하는 것은 미노스 섬에서 볼일이 끝난 다음이겠지만 말이다.
그 때까지는 알아서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자.
되도록 아르테미스에게는 까불거리지 말고, 몸을 사리면서 여행을 끝마쳐야 할 것 같았다. 여신에게 화살밥이 되는 건 사양이다. 제아무리 나라고 할지라도 날카로운 은화살만큼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를 쏘아내는 궁수가 아르테미스였으니 무사할 리가 없었다.
까불지 말고 조용히 있자.
목숨이 아깝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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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직접 성교육 대상을 보내주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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