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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성군-45화 (45/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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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라이

007

모이라이 세 여신들 중에서 맏이를 맡고 있는 클로토가 말했다.

"이히히히.... 왔다, 왔어. 정말로 왔어. 이히히히히!"

그리고 둘째인 라케시스가 연달아 말을 놓았다.

"맞지, 맞지? 정말로 올 거라고 했지?"

마지막으로 셋째 아트로포스가 말을 끝냈다.

"올 줄 알았어, 운명이 그렇게 말했거든. 아니,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나?"

세 자매들은 모두 늙은 노파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는 미노스 섬의 어느 해안가 숲에서 지내고 있었다.

무엇을 먹고 마시면서 사는 지는 알 수 없다. 이미 미노스 문명은 몰락할 대로 몰락하여 식수를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우물은 모두 막혀버렸고, 산짐승은 많았지만 늙은 노구를 가진 그녀들이 짐승을 사냥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지도 않았다.

기괴하다.

세 노파들을 보고서 내가 내린 느낌이다. 아르테미스와 펜테실레이아도 그녀들을 보고서는 멈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늙은 노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들은 모두 눈을 잃은 장님이었는데, 셋째 아트로포스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사람의 눈깔을 올려놓고서 세상을 접하고 있었다. 눈깔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가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눈깔이 자유의지를 가지고서 움직인다는 것부터가 꺼림직하게 느껴진다.

"왕이구나. 하계의 왕. 우리들이 운명을 내린 하계의 왕. 언젠가 하계 전체를 다스리게 될 위대한 왕이시여."

장녀 클로토가 말했다.

그녀는 무엇이 그리도 웃겼는지 낄낄거리면서 웃음소리를 자아내고 있었다. 치아조차 성하지 못한 입을 우물우물거리면서 웃는 모습이 기괴하다. 주름으로 가득한 노파는 허리를 벅벅 긁으면서 몸을 들썩였다.

"역시 헤스티아가 우리에게 데려올 줄 알았어. 그녀도 예언을 점칠 줄 알거든. 아폴론만큼은 아니겠지만."

모이라이 세 자매들은 밤의 여신 닉스가 낳은 딸들이다.

닉스는 밤과 어둠의 여신으로, 세상이 창조한 혼돈(카오스)가 스스로 낳은 자식이다. 당연히 닉스는 어둠을 상징하는 개념으로서 올림푸스 주신들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창조의 존재였다. 물론 숭배의 대상까지는 아니고 그저 개념을 지칭하는 대상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위대한 창조주 닉스의 딸이라는 점에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닉스는 어둠 속에서 잠에 빠진 몽환가에 가깝기 때문에 자신이 낳은 자식들에 대해서는 방치하다시피 두고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모이라이 세 자매들을 죽여버린다고 할지라도 내게 해코지를 할 일은 없었다. 애초에 닉스는 수많은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그다지 애착도 없다.

라케시스가 말했다.

"우리들을 죽인다고 해서 무언가 변할 사안도 아니지, 이히히히히. 운명은 바꿀 수 없어. 바꿀 수 없지. 제아무리 위대한 하계의 왕이라도 운명은 이기지 못 해. 아니, 신도 이길 수 없지. 그래서 운명은 가장 위대한 거야."

마치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듯한 말이다.

운명을 결정하는 모이라이의 세 자매.

한 명이 그 실을 자으면 다른 한 명은 이를 감고 나머지 한 명은 인간의 목숨이 다하면 그 실을 끊는다고 한다.  클로토가 실을 잣고, 라케시스가 실을 감으며, 아트로포스가 실을 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클로토가 운명의 실을 자아올렸고, 라케시스가 실을 감았으며 아트로포스가 실을 가위로 잘라냈다. 운명의 실을 잘라낸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생명에 그 운명을 다하고 죽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인간일수도 있고, 신일수도 있다. 신은 수명이 다해서 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한 불멸은 아니다. 어느 약점이 노려진다면 죽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신은 무식하게 강한 티탄 같은 괴물들보다도 오히려 영악하고 꾀가 많은 인간들을 두려워하고 경계했다. 자신을 죽일 지도 모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조금 안정이 되었는지 흑발의 엘프 여성이 모이라이 세 자매들에게 다가섰다.

늘씬한 다리를 가진 미녀가 다가서자 세 자매들은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내비쳤다.

"레토가 낳은 암컷이 우리들에게 다가오다니. 썩 물러가라, 월신."

"우리들은 젊고 탱탱한 남자들을 좋아하거든. 히히히히!"

"암컷의 발정난 냄새가 나는구나."

아무래도 세 자매들은 여성에 대해서는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자매들끼리 이런 협소한 곳에서 한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러한 감정이 들 수도 있겠지. 그리고 유일하게 눈깔을 가지고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아트로포스는 아르테미스의 눈부시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서 감미로움보다는 오히려 배척감을 나타냈다. 태어날 때부터 허리가 굽어진 노파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자신들에게 있어 눈부신 미녀는 혐오의 대상이다. 질투라는 감정에 가깝다.

세 자매들이 원성을 내지르며 경고하자, 어깨에 매여진 활대를 매만지던 아르테미스가 뒤로 물러섰다.

간신히 참았다.

만약 아르테미스가 여신 헤라의 명령으로 이 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무례를 범한 이 세 자매들을 당장에 쏴죽였을 것이다. 처녀의 여신은 자존심이 강하고 스스로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그 자존심과 자긍심을 무너뜨린 세 자매들에 대해서 살의를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추악한 모습만큼이나 추악한 성향을 가진 세 자매들은 은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실타래를 꺼내들었다. 그 운명의 실이 뜻하는 것은 보통 인간이 아니겠지. 보통 인간은 그저 아무런 특색도 없는 일반 실타래였을 뿐이다. 지금 꺼내든 은색의 실은 분명 대단한 지고의 존재를 뜻하는 것이리라.

그것이 무엇인지 대충 알아챈 나는 은색의 실타래를 자아내려는 클로토의 손목을 낚아챘다.

"어디서 수작이야. 손가락 날아가고 싶냐. 펜테실레이아, 어서 가서 오함마를...."

"오, 오함마요?!"

내가 실타래를 자아내는 것을 저지하자, 클로토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입술을 달싹이더니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드러내면서 낄낄 웃었다.

"역시, 역시나 하계의 왕. 눈치가 빨라. 아주 재빨라."

"그래. 이건 월신 아르테미스의 운명실. 우리들은 제우스에게 올림푸스 주신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조작을 금지 받았지만.... 그렇다고 강제적인 것은 아니지."

"우리의 목숨을 노린다면 우리도 대처할 수밖에."

역시 그런가.

방금 클로토가 꺼낸 운명의 실타래는 월신 아르테미스의 것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은색을 보고서 달빛이 떠올랐고, 달을 다스리는 월신이 아르테미스였다는 것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나를 부른 목적은?"

화제를 돌리고자 그렇게 물었다.

방금 것은 장난이었다는 듯이 클로토는 은색의 실타래를 다시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라케시스는 셋째에게 넘기려는 듯이 입을 다물었고, 눈깔을 가지고서 나를 지긋히 바라보던 아트로포스가 그에 대한 대답을 시작했다.

"간단하지. 진정한 하계의 왕이 되기 위한 시련.... 아니, 운명을 가르쳐주기 위함이지. 강철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 두드려지고 더욱 두드려져야 탄생하지. 두드리지 않은 철은 구리만도 못해. 시련이야, 시련. 너에게 시련을 내리기 위함이야."

"시련이라. 지금의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충분히 시련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인간의 사정에서 비롯된 시련이지. 하계의 왕, 너는 신조차도 감복을 마다하지 않을 위업을 달성해야 한다."

"거부한다면?"

그에 대해서는 클로토가 곧장 말했다.

마치 감질나게 거부의 뜻을 밝힐 것이라고 예견하였는지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인간은 계속해서 싸울 것이고, 하계는 진정되지 않겠지. 하계가 통일되지 못했기 때문에 신들은 더욱 가혹하게 인간들에게 형벌을 내릴 것이고, 인간들도 그런 신들에데 대항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이 하계는 지옥의 불모지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건 운명이야, 거부할 수 없지."

"자, 어서 받아들여라."

모이라이 세 자매들이 번갈아가면서 말했다.

한 명이 모든 내용을 브리핑하면 될 것을 굳이 세 자매들이 돌아가면서 앵앵거리는 통에 그 내용의 정리가 쉽지 않다. 다시 말해서 내가 운명의 시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계가 엉망이 될 것이고, 신과 인간의 대립이 절정화를 이룰 것이라는 거로군. 운명의 시련이라. 테세우스나 헤라클래스, 이아손 등이 시련의 신탁을 받았다고는 들은 바가 있다.

그들의 무용담을 들었을 때는 그저 그렇다고 여겼는데, 직접 그 시련의 신탁을 들어버리니 기분이 매우 좆같다. 빌어먹을 운명. 빌어쳐먹을 자매들.

막내 아르토포스에게서 눈깔을 빼앗았다.

빼앗는 것은 쉬웠다. 그저 한낱 노파. 늙은 노구의 몸에서 물건을 낚아채고 훔치는 일은 간편하다. 물론 그 물건이 살아 움직이는 눈깔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꺼림직하게 느껴졌지만.

훔친 눈깔을 세 자매들에게 보여주며, 위협하는 것처럼 외쳤다.

"씨발. 이 눈깔을 바다에 던져버릴 테다. 소금에 절여진 바닷물에 허우적거리는 눈깔을 찾아보시지. 물고기들이 눈깔을 쪼아먹는 것은 물론 바닷물의 염기에 계속 눈이 따가워질 거다."

이 눈깔은 세 자매들과 그 신경이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눈깔을 매개체로 하여 세상을 본다는 것 자체가 통용될 리가 없었다. 물론 과거에 헤라클래스가 이러한 방법으로 모이라이 세 자매들을 농락하였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으므로, 나는 계속해서 세 자매들이 애지중지하고 있던 눈깔을 빼앗을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만둬! 바닷물에 쳐넣는다니.... 그건 개백정 헤라클래스도 생각하지 못한 악행이야!"

"이제 내가 사용할 차례란 말이야. 자그마치 1년을 기다렸다고!"

"대체 너는 어느 놈팽이가 낳은 후레자식.... 젠장! 제우스의 자식이었지!"

세 자매들이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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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눈깔을 바지에 넣고 딸쳐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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