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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성군-67화 (67/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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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대립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마찬가지로 태양신 아폴론 또한 자신을 수호신으로 섬기는 트로이 왕국으로 건너가 ‘전쟁’을 본격적으로 주장했다.

태양신의 뜬금없는 제의에 트로이의 국왕 프리아모스가 당황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원만한 국교를 맺고 있는 테살리아를 공격하라니?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연합하여 그리스 남부 국가들을 공격함으로써 친분을 과시하지 않았던가.

프리아모스는 지모가 뛰어나기로 유명한 자신의 아들 헬레노스의 간언을 받아들여서 테살리아와 동맹을 맺으면서 그리스를 견제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훌륭한 계책이었다.

테살리아는 그리스와는 별개로 떨어진 독립국이었고, 덕분에 그리스를 견제하는 방파제로서는 탁월했다. 소아시아 일대에 위치한 트로이로서는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이다. 그런 편리한 동맹 관계를 철회하고서 테살리아를 무리하게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아폴론 님, 테살리아를 공격해야 하는 영문을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테살리아의 왕이 나의 여동생을 건든 걸로도 모자라서, 내가 사랑했던 헤스티아까지 건드렸다고. 여신들의 순결을 빼앗은 그 모욕과 대죄, 죽음으로 갚아도 모자랄 거다!”

“아, 예…….”

프리아모스는 자신의 고모라고 할 수 있는 헤스티아를 마치 연인처럼 여기는 아폴론의 극심한 변태성에 치를 떨었다.

신이라는 족속들은 죄다 저런 괴짜들만 모아놓은 건가. 아폴론을 수호신으로 섬기고 있는 것에 대해서 회의감까지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딸인 공주 카산드라에게 구애를 하더니, 이제는 그 공주의 아비 앞에서 헤스티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들고 있었다. 트로이를 호구로 본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무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폴론 님, 만약 트로이가 테살리아를 공격한다면 어떤 도움을 주실 겁니까?”

그때 야심이 깊기로 유명한 데이포보스가 치고 들어왔다.

트로이의 유명한 맹장인 데이포보스는 프리아모스 왕의 아들이었는데, 항상 동생인 헬레노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자 이번 기회에 공을 세울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의 최강국으로 알려진 테살리아를 공격하여 멸망시킨다면 그 공훈과 명예는 자신의 차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차기 국왕의 자리를 넘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동생 헬레노스보다는 앞서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어디서 끼어드느냐! 썩 물러가거라!”

트로이의 국왕이 진노하여 외쳤다.

평소 온화하고 정중한 어조로 말하던 아버지가 크게 경을 치자 데이포보스는 강대한 체격이었음에도 어깨를 움츠리며 뒤로 물러났다. 아버지가 이토록 화를 내는 경우는 잘 없다. 아마도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겠지.

적어도 트로이 왕실은 화목하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데이포보스는 아버지에게 노여움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에게 심려를 끼친 것 같아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데이포보스가 뒤로 물러나고, 이번에는 헬레노스가 다가와 아폴론에게 물었다.

“현재 트로이의 전력으로도 결코 테살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아폴론 님. 그리고 예언에 의하면 하계의 왕은 테살리아의 군주입니다. 하계의 모든 영역이 그의 영토가 될 것인데, 운명에 거스르는 행동으로 자국의 파멸을 자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헬레노스.”

헬레노스는 그 이름만큼이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남자였다. 카산드라와 쌍둥이 남매였으며, 아폴론에게서 예언의 능력도 받았다.

과거 소년 시절에는 아폴론의 시중을 드는 역할도 자청하였기 때문에 아폴론은 그를 총애하고 있었다. 동성애 기질이 강한 아폴론은 미소년과 동침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헬레노스와도 관계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렇게 총애하던 왕자가 도리어 되묻자, 아폴론은 우선 화를 삭이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하계의 왕으로 내정된 것은 라에가르였다. 하지만 그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대죄를 범했다. 올림포스 산이 위치한 테살리아 왕국을 다스리면서 신계의 질서를 어지럽혔고, 많은 여신들과 불명예스러운 불륜을 범했지. 심지어 남편이 있는 여신과도 동침하였을뿐더러 신을 섬기는 여사제들과도 관계를 가졌다고 하더군.”

헬레노스는 그 말을 듣고서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제우스의 아들이다.

어떻게 사람의 허리가 그토록 가벼울 수가 있단 말인가. 오로지 번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인간인 것 같았다.

영웅이 원래 호색하기로 유명하다지만 여신들로 하여금 대가족을 차려버릴 줄은 몰랐다. 3대 처녀신들이 모두 그를 지아비로 선택한 것을 듣고서 경악하지 않았던가.

헬레노스는 그런 생각들을 두루두루 하면서도 아폴론을 보면서 ‘너도 마찬가지잖아, 이 빌어먹을 놈팡이야!’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누이인 카산드라에게 치근덕거린 것으로 모자라, 자신에게는 동성애를 강요하였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아름답기만 하다면 곧바로 침대로 맞이하는 태양신에게 그런 추잡스러운 말을 듣고 싶진 않았다.

“전쟁이라니요… 트로이는 전쟁을 원하지 않아요.”

왕 프리아모스만큼이나 유약한 성정을 가진 왕비 헤카베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폴론이 테살리아와의 전쟁을 서두로 꺼내들 때부터 왕비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과거 헤라클레스가 48명에 달하는 트로이 왕족을 찢어 죽였을 당시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지금의 프리아모스 왕이었고, 그 왕의 아내였던 헤카베는 언제나 전쟁을 두려워하면서 야만스러운 그리스 남성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스가 본국으로 쳐들어온 것도 아닌데 굳이 그리스를, 그것도 최강대국 테살리아를 공격할 이유가 없다. 트로이는 과거의 피해를 복구하고서 지금의 번창된 도시국가를 일구어냈다. 살육을 당해버린 트로이 왕실이었지만, 왕과 왕비의 사이에서는 수많은 자식들을 보았기 때문에 왕족이 다시 풍족해졌다.

만약 전쟁을 수행한다면 자신의 딸인 헥토르와 아들인 데이포보스, 헬레노스를 테살리아로 보내야 할 것인데, 먼 타국으로 전쟁을 위해서 자식들을 보내야 하는 어미의 입장에서는 반대하는 것도 당연했다. 방어가 아닌 공격으로 자식에게 피해를 전가시키고 싶지 않았다. 설령 트로이에 어떤 국익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왕비여, 테살리아를 멸망시킨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영토와 이권들을 넘길 것을 약속하지. 번영이 영원히 지속될 영토를 너희들이 가지는 것이고, 프리아모스는 하계의 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광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 영광, 필요 없어요. 자식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어요!”

“…이런.”

아폴론이 혀를 내둘렀다.

감언이설로 꼬드겼음에도 왕비 헤카베는 결코 넘어오지 않았다. 과연 자식들을 생각하는 어미를 이길 수는 없다는 건가.

올림포스 주신들 중에서 박식하기로 유명한 아폴론조차도 자식 사랑에 빠진 부모를 이길 수는 없었다. 특히 프리아모스와 헤카베 부부는 자식들을 끔찍이도 사랑하였으므로 전쟁에 크게 반대했다.

물론 표면적으로 크게 반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에는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그들은 결코 전쟁을 바라지 않으니까.

트로이는 평온했고, 어느 때보다 정숙된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히타이트와 그리스 각지를 연결하는 무역망을 형성하여 그 중간 무역권을 독점하고 있었으니, 타국과의 전쟁을 수행하지 않더라도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있었다.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아쉬운 구석이 없다.

비록 수호신이라 할지라도 트로이를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왕과 왕비에게 까여버린 아폴론은 마지막으로 트로이의 왕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빨간 눈동자. 마치 토끼처럼 보이는 인상의 알비노 소녀는 그저 묵묵히 아폴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왕녀 헥토르. 훗날 트로이의 왕이 될 운명을 가진 왕세녀는 무언으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 또한 전쟁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트로이 왕실은 결과적으로 전쟁에 반대.

결국 수호신 아폴론만 무안하게 되어버렸다.

물론 프리아모스 왕은 수호신의 노여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왕실에서 관리하던 물소 1백여 마리를 공물로 바쳤다. 아폴론은 물소를 관장하는 주신이기도 하였으므로, 분명 공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아폴론은 1백 마리의 물소들을 보자마자 황금의 활을 치켜들었다.

그를 보고서 헥토르가 성검 듀란달을 뽑아 들었는데, 그녀가 나서기도 전에 아폴론은 활시위에 금화살을 싣고서 그것을 쏘아냈다. 금화살은 여러 갈래로 나뉘면서 수백 발에 달하는 화살비로 발전했고, 프리아모스가 방금 바친 물소들에게 적중했다.

단 한 자루의 빗나감도 없이 모두 명중. 1백 마리의 물소를 단번에 쏴 죽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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