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전초전
전쟁에서는 다소의 로맨스가 필요한 법이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테살리아에 빼앗긴 헬레네를 되찾겠다는 명분을 세우면서 전쟁에 나섰다. 그리스 남부 동맹을 기점으로 이미 전쟁 준비는 끝났다.
지금의 그리스는 거대한 화약고와 같았다. 작은 불씨 역할을 할 마찰만 벌어진다면 곧바로 전쟁에 돌입하겠지. 바다 건너에 위치한 트로이는 숨을 죽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성들의 전유물인 전쟁이라는 과정에 남녀의 로맨스를 섞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그리스인들의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한 여자를 되찾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다.
그 명분은 그리스인들을 자극시켰다. 전쟁에 참전하는 병사들이 흥미롭게 여기는 것도 당연했고, 적어도 전쟁의 명분으로 훌륭하게 작용했다.
“죄송해요.”
대뜸 헬레네가 라에가르에게 사과했다. 그 모습에 라에가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건가. 테살리아의 고결한 왕비님이라 불리는 헬레네는 그 아리따움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다. 변태 같은 성향을 가진 테살리아인들이 특히 좋아했다.
여신들조차도 질투할 정도의 미모를 가진 왕비님.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는 충분했다.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라는 것은 테살리아인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스파르타 왕국을 빼앗아 왕위를 찬탈한 메넬라오스 따위가 테살리아의 왕비를 노린다는 것을 들은 테살리아인들은 크게 분노했다. 당장 그 오만방자한 어린놈을 잡아 죽이자는 의견이 팽배해졌다.
“뭐가?”
“제가 없었더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글쎄. 이건 복합적인 요소들이 뭉치고 뭉치면서 일어나는 전쟁이야. 네가 설령 그 원인 중의 하나로 작용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전쟁이 너 때문에 일어났다고 탓하는 사람은 없어.”
“그래도, 제가 원인이 된 것은 맞잖아요.”
헬레네의 말에 라에가르는 흐음, 하고 대답을 주저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스파르타의 찬탈왕 메넬라오스는 헬레네에 대해서 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테살리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헬레네를 포기해야 했던 구혼자들도 그리스 남부 동맹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전쟁을 계기로 헬레네를 또다시 위협할지도 모른다.
고작 여성 한 명을 차지하겠답시고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수십 개의 폴리스 국가들이 연합을 결성했다. 테살리아 왕국으로 시집간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서.
평범한 여인이었다면 결코 전쟁이 일어나진 않았겠지만, 그 여성이 그리스 최고의 미녀 헬레네였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스 최고의 미녀와 혼인을 한 시점에서 이미 각오한 일이야. 최고의 미녀를 아내로 들였다는 것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과 같지. 질투에 미친 남자들을 몰아내고 아내를 지킨다.”
“저, 저는 그렇게 예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없고…….”
헬레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 아름다운 용모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부류였다. 스파르타 왕국에 구혼자들이 몰려오기 이전부터 헬레네를 노리는 남자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 때문에 다툼이 벌어졌고, 전쟁이 일어났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까지 헬레네의 미모를 탐냈으며, 메넬라오스도 헬레네를 차지하고 싶어 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남성들을 꾀어내는 매력과 아름다움은 언제나 다툼을 불러왔고, 전쟁을 일으켰다. 여신보다도 아름다운 그 용모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어차피 이기면 되잖아.”
“그렇게 쉽게 말씀하실 문제가 아니잖아요. 무수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되잖아요.”
“전쟁은 원래부터 일방적인 일이야.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그렇다면 이겨야지. 어차피 벌어질 전쟁이라면 이기는 것만 신경 쓰면 돼.”
“그, 그래도…….”
“아, 미치겠네!”
더는 참을 수 없어진 라에가르는 자신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고 자책하고 있는 잿빛 머리카락의 소녀를 풀숲 위로 쓰러트렸다.
간단하게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부부가 몸을 겹쳤다. 적잖아 당황한 헬레네의 모습이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자신을 쓰러트린 라에가르에 대해서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두 손은 막상 자신의 몸을 깔고 있는 라에가르를 밀어내지 못하고 그의 어깨에 어색하게 올려두고 있었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시선은 결국 라에가르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넌 내 여자야. 그러니까 다른 녀석에게 못 넘겨. 알겠냐?”
“…그으, 아… 알았어요…. 그러니까 좀 비, 비켜 주실래요……?”
“싫어.”
새빨갛게 뺨을 물들이고 있는 헬레네.
그녀는 라에가르의 적극적인 육탄 공세에 두 어깨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주변에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두 명의 남녀가 테살리아 왕궁에 위치한 정원에서 몸을 겹치고 있었다. 설령 근처를 누군가가 지나는 중이라 하더라도 눈치가 있다면 알아서 발걸음을 돌리겠지. 물론 눈부신 미녀가 나체를 드러낸다면 저절로 걸음을 멈추겠지만.
“널 내 여자로 만들고 싶어.”
“으읏! 지, 지금 상황에서 하실 말씀은 아니지 않을까요?”
그녀의 거부에도 라에가르는 입술을 겹치면서 헬레네의 타액을 빨아들였다.
타액 교환과 함께 혀를 이용해 그녀의 촉촉한 입술을 비집고 들어가 입 안을 훑었다. 끈적하게 타액이 교환되는 소리가 들리면서 헬레네의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촉촉하게 빛나는 헬레네의 눈동자는 그것을 보는 남성으로 하여금 강한 가학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녀의 이브닝드레스의 상단부를 찢어내자 형태 좋은 젖가슴이 드러났다.
헤라나 데메테르처럼 커다란 거유는 아니었지만 크기가 적당한 미유는 남성의 성욕을 자극시키고 있었다. 분홍색 유두와 유륜은 다른 남성들의 손을 타지 않은 처녀성을 상징했고, 가슴을 타고 이어지는 겨드랑이와 어깨 라인은 새하얀 피부로 눈부시게 빛났다.
고개를 숙여서 헬레네의 유두를 앞니로 깨물었다. 처음으로 남성에게 범해지는 처녀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짜릿함에 몸을 움찔거렸다.
“아윽!”
유두를 깨물자 단맛이 났다.
모유는 아니다. 헬레네의 피부에서는 달달한 맛이 났고, 체취에서는 남성을 유혹하는 살결 냄새가 풍겼다. 남자를 미치게 하는 냄새였다.
라에가르를 보며 헬레네가 말했다.
“전하의 아내가 되면, 전하에게 처녀를 바치면… 다른 사람들도 포기할까요? 저는 전하의 여자니까.”
“그럴지도. 물론 미쳐버린 놈들은 여전하겠지만.”
“저를 지켜주세요. 다른 사람들에게서… 평생 전하의 여인으로 머물 수 있도록.”
“당연하지.”
말을 마치고서 다시 입술을 겹쳤다.
헬레네 또한 입술을 비집고 들어오는 혀에 반응하여 타액을 츄릅, 핥았다. 서로 입술에 의지해서 혀를 움직였다.
길고 긴 키스 시간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애정 행위가 없었던 부부였기 때문일까. 한 번 흥분을 해버리니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헬레네의 새하얀 배를 쓰다듬었다.
찢어진 드레스 사이로 새하얀 배와 하반신을 감싸고 있는 속옷이 보였다. 그녀의 속옷 밑으로 옅게 자란 수풀이 보였다. 아직 덜 자란 음모는 그녀가 순수한 소녀라는 것을 뜻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헬레네의 여체는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고, 거의 벌거벗겨진
여인은 색기를 뿌리고 있었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헬레네가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며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
남녀의 애정 행위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다. 스파르타 왕국의 왕녀로서 언젠가 남편과 잠자리를 가지게 될 때를 대비해서 기본적인 성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속옷을 헤집으며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끈적한 애액이 속옷을 푹 적시고 있었다. 달아오른 열기가 손가락에서 느껴졌다. 보지 균열을 매만지자 헬레네가 두 다리를 배배 꼬았다. 두 어깨는 계속해서 떨리고 있었고, 입술을 뻐끔거리며 메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저를 사랑하시나요?”
헬레네는 조금 두려운 듯,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에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서는 라에가르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하지만 나한테는 여러 여성들이 많은데.”
“후후훗. 당연하죠, 전하는 제우스 님의 아드님이시니까요. 그저 저를 옆에만 머물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끝까지 저를 지켜 주신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답니다.”
“응.”
헬레네가 두 팔을 펼치면서 라에가르를 받아들였다.
풀 냄새가 풍겼다. 지금 그들은 풀숲 위에서 아무것도 없이 원초적인 상태에서 성욕을 풀어내려 하고 있었다.
헬레네는 진심으로 라에가르에게 몸을 바치고 싶어 했다. 자신의 반려는 오로지 테살리아 왕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노려지고 싶지 않았다. 평범하게 한 남성을 남편으로 맞이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이기적인 감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남자에게 사랑받으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여자로서의 소소한 행복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