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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초전
가장 먼저 신호탄을 터트린 것은 테살리아였다.
테살리아 의회에 소속된 귀족 의원들은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 있는 헬레네 왕비를 빼앗으려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행위를 철저히 규탄했다. 이는 테살리아 왕실을 모욕하는 행위이며, 그리스 최강대국의 지위권을 가지고 있는 테살리아로서는 최악의 모독이라 생각했다. 최강대국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테살리아인들은 오만하고 불손한 그리스인들을 모두 죽여 버리자고 과격한 주장까지 쏟아냈다.
“고작해야 시골 촌놈들 따위가!”
“이건 전쟁입니다! 저쪽에서 먼저 전쟁을 걸었습니다.”
“도발은 정당한 반격으로 받아치는 것이 테살리아의 법칙! 아주 요절을 내버립시다!”
“왕비님을 빼앗길 수는 없소!”
그리스와는 차별화된 민족성을 가지고 있는 테살리아인들은 그리스인들의 도발에 가만히 넘어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식량을 지원해 주면서 먹여 살려줬더니, 그 은혜를 망각하고 아름다운 왕비님을 빼앗으려 한다. 그것은 최강대국을 향한 소국들의 도발 행위였고, 테살리아인들은 이번 기회에 모든 식량 원조를 끊어버리고, 그들을 굶겨 죽이자고 말했다. 식량을 끊어버리는 한편 날카로운 창검으로 저들의 뱃속을 갈라 내장을 끄집어내야 할 것이다.
테살리아가 가장 먼저 취한 정책은 ‘그리스 봉쇄 정책’이었다.
에게해를 이용한 해로와 테살리아에서 남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육로를 모두 폐쇄. 무역 상단들을 모두 봉쇄시키면서 그리스 남부를 지원하던 식량 원조를 끊어버렸다. 물론 무역길이 끊어지면서 테살리아 경제에도 치명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식량이 끊어진 그리스 남부만큼은 아니다.
“그리스 남부로 식량을 유출시키는 놈은 반역죄로 처벌한다!”
“왕비님을 지키기 위해서다.”
“당분간은 무역을 봉쇄한다. 하지만 몇 달 이내로 본국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몇 배에 달하는 보수를 지급하겠다.”
테살리아의 무역 상단들은 당장 일거리가 끊어진 것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했지만, 먼저 싸움을 걸어온 것이 그리스 남부였으니 반박할 수도 없었다. 테살리아 왕실의 정책에 반발한다는 것은 반역죄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상단들은 장사를 접고서 식량을 가득 쌓아두고 있던 창고를 일제히 봉쇄하기에 이르렀다.
상단들은 어차피 최강대국의 지위를 가진 테살리아가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이라 믿었다. 질 수가 없는 전쟁이다. 이미 그리스를 상대로 몇번이고 승리를 가져오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스 동맹을 무릎 꿇리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얻어내겠지.
상단들은 패전국이 될 그리스에서 최대한 많은 비용을 뜯어내고 마리라 이를 갈았다. 결국 무역 폐쇄에 따른 손해는 그리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던가.
“출진하라!”
“뿔나팔을 불어라! 전쟁터로 가자!”
“그리스의 촌구석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리자!”
테살리아는 해안선 방위를 책임지고 있는 병력을 제외한 모든 병력을 진격시켰다.
북쪽에서는 마케도니아 야만인들이 발호하고 있었지만, 그들 부족들은 저번에 아레스에게 혼쭐이 나면서 그 기세가 사그라들었다. 덕분에 북부에 주둔하면서 마케도니아를 막고 있던 주력 부대들이 전쟁에 참전할 수 있었다.
척박하고 황폐한 북부를 책임지고 있던 역전의 용사들이 귀환했다.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마케도니아 부족과 싸우면서 성장한 정예병들은 왕실을 모욕하고 왕비를 찬탈하려 계획한 그리스를 모조리 죽여 버리자고 주장할 만큼 잔인하고 흉악했다. 마케도니아를 상대하면서 그만큼 성격이 일그러진 것이다.
광전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과격하다. 주무장으로써 도끼를 패용한 중장보병의 전사들, 그 중에서도 거센 정병이 선봉에 서서 병력들을 지휘했다.
테살리아의 총병력은 자그마치 십만 대군에 이르렀다. 비록 테살리아가 최강대국이라고는 하나, 십만 대군을 한꺼번에 동원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이번 전쟁에 최대한의 전력을 투입하여 그리스를 박살 내겠다는 의중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의 공세를 막기 위한 전쟁이 아니다. 적 동맹의 공격을 격퇴하고 저들의 영토를 유린하기 위한 토벌전일 뿐이다.
“선봉대는 나를 따른다! 무섭다고 도망치는 머저리는 내 부대에 없기를 바란다!”
선두에 선 것은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황금 전차에 올라탄 아레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아레스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그리스 최강의 보병대라고 불리는 테살리아의 북부군을 지휘하고 있었고, 그들의 훈련도와 사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제련하여 완성한 황금 전차는 눈부시게 빛나는 위광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레스의 기분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쟁의 여신에게 걸맞는 격을 지닌 보구였다.
자신의 위용을 뽐내기를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아레스는 이번 전쟁에서도 자신이 주역으로 남기를 원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격퇴하면서 아레스의 위명은 테살리아에 크게 알려져 있었고, 호사가와 음유시인들은 아레스의 이름이 들어간 노래를 항상 부르며 그 이름을 찬양했다. 전장의 전사들은 여지없이 자신에게 기도했다.
신앙심이 날이 갈수록 증대된다. 신앙심은 곧 그리스 신들의 근원. 신앙심이 오르고 신자들이 늘어날수록 아레스의 신격이 올라갔다.
“이번 전쟁에서도 이름을 올려보도록 할까!”
아레스가 말했다.
이번 전쟁에서도 대승리를 거둔다면 올림포스의 절대신 자리를 노려보는 것도 꿈은 아니다.
아테나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전쟁의 여신은 현 상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테나와 쌍벽을 이룬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한 일이다. 이렇게 된 이상 신격을 계속해서 올려서 아테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고의 자리에 올라설 것이다.
아테나는 이미 테살리아의 왕에게 빠져서 헤롱헤롱거리고 있었으니, 이제 그 여자를 밟아 설 날도 멀지 않았다. 아테나의 상관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제우스의 옥좌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아테나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던 아레스는 적어도 아테나의 위에는 서고 싶어 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잔심부름을 시킨다
면 그 얼마나 유쾌할까.
“아레스 님을 따르겠습니다.”
“전쟁의 화신께서 이끄신다면 분명 적들도 도망칠 겁니다.”
“패배를 모르시는 전쟁의 여신이시여, 저희들을 이끌어 주십시오.”
북부군들 사이에서 아레스는 인기가 많은 아이돌과 같았다. 마케도니아 정벌전에서 아레스가 직접 북부군을 지휘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며, 아레스는 그 괄괄한 성정만큼이나 뜨거운 불과 같은 과격함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북부군과 쿵짝이 잘 맞아떨어졌다.
과거에 마케도니아 국경을 넘어서 저들의 부락을 모조리 불태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레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방어전에 있어서는 아테나를 따르겠지만, 적을 유린하고 모조리 불태우는 토벌전에 있어서는 아레스를 따랐다. 아레스는 약탈전, 토벌전에 있어서 최고의 무명을 가지고 있었고, 적의 생명을 유린하는 과격한 전쟁 또한 아레스가 가장 잘 어울렸다.
‘뭐, 아무래도 좋아.’
아레스는 이번 전쟁이 무슨 이유에 의해서 벌어졌건, 그리고 어떤 결과를 낳건 간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머리 아픈 속사정에 대해서는 테살리아의 왕이 알아서 할 것이라면서 그에게 떠넘겼다. 전장에 선 지휘관은 그저 적을 유린하고 적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빼앗는 약탈에만 신경 쓰면 된다.
살인과 약탈, 방화.
그것이 전쟁의 본질이며, 전쟁의 수단이다.
아레스를 따르는 테살리아 병사들은 적의 폴리스를 함락시키고 그 안에 있는 여자와 많은 재산들을 가로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라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허락되지 않았던 행위들이 허락되는 경우가 있다. 손에 잡히는 여자들을 모두 강간할 수 있었고, 부유한 재산을 가진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황금과 재산들을 약탈할 수 있다.
라에가르는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도 다소의 침탈 행위를 묵인했다. 약탈과 강간을 철저히 금지한다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테니까.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싸우는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욕구를 해소하는 오락거리가 필요한 법이다. 물론 그 행위가 너무 과격해진다면 바로 제지를 해야겠지만.
무자비하고 한계를 모르는 약탈은 그리스인들의 과격한 반발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훗날 그리스를 통일하고 하계의 왕이 되기 위해서라도 격렬한 저항을 일으킬 수 있는 행위는 자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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