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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세요, 합의된 사기 결혼입니다 (84)화 (83/135)

84화

하지만 알렉시온 공작은 여전히 근심 어린 표정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세티아 부인은 공작의 앞으로 달려가 그의 손을 부여잡았다.

“공작님. 니나가 기다리고 있잖아요!”

“다른 곳도 아니고 론데네스 제국이오. 그곳에서 쫓겨난 내가 다시 가는 것 자체가 정치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소. 그러니 조심해야 돼. 당신과 니나를 지키기 위해서요. 자필 감정을 받은 후에 현 황제와 얘기해 보겠소. 그래도 늦지 않아.”

“아, 늦어요! 황제께 편지를 보내면 답장이 오기까지 또 기다려야 되잖아요!”

“어쩔 수가 없소……. 반역은 하지도 않았는데 형님이 황위에 오른 뒤에 내게 죄를 물었지 않소. 그땐 죄를 인정하고 가파테로나로 오는 것이 가장 나은 결정이었소. 아니면 죽었을 테니까.”

“그놈의 황위!”

“그저 결혼식 참석을 위해 친척 자격으로 간다고 미리 말을 해 둬야 하오. 입국을 금지당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안전을 위해 만전을 기해야지요.”

세티아 부인이 발을 동동거렸다.

그때 필적 감정사가 제대로 옷도 입지 못한 채로 달려 들어왔다.

알렉시온 공작이 보낸 시종이 급한 일이라고 어지간히도 닦달한 듯했다.

감정사는 몇 분 동안 진지하게 니나의 평소 필체와 편지를 비교했다.

“……어떤가?”

세티아 부인이 마음을 졸이며 그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감정사는 안경을 고쳐 올린 후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 편지를 쓰신 분은 우리 공녀님이 확실합니다!”

알렉시온 공작의 집무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공작은 손가락에 불이라도 붙은 듯 빠르게 편지를 썼다.

대충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았다.

‘황제 폐하. 안녕, 우리 딸 지금 율리키안 쿤 론데네스 대공저에 머무르고 있는데 친구를 사귀었댄다. 결혼 허락을 부탁하니 나랑 부인이랑 날아가야겠다. 결혼식만 보고 돌아올 예정이니 거창하게 환영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대공 결혼식 때 뵙시다.’

황제에게 편지가 발송되었고, 답장을 기다리던 중에 니나의 편지가 한 통 더 왔다.

<왜 안 오세요?ㅠㅠ>

편지를 읽은 세티아 부인이 절규했다.

“여보오오오! 우리 니나 속 타들어 가요오오오! 옆에 이건 뭐죠? 우는 표정인가? 어디서 배운 거지? 공작니이이임! 우리 니나 울어요오오!!”

세티아 부인은 편지를 손에 쥔 채로 혼절했다.

알렉시온 공작은 황제에게 다시 편지를 써서, 이번에는 직접 사람을 시켜 날렸다.

<먼저 쓴 편지가 이제 도착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부끄럽지만 우리 딸아이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의 결혼식이라 꼭 들러리로 참석하고 싶어 합니다. 부디 론데네스 제국 황제 폐하의 너른 이해로 우리 알렉시온 공작가가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 줄 수 있도록 허락 바랍니다. 제발. 내겐 늘그막에 얻은 하나뿐인 딸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황제 폐하. 이리 간청합니다.>

* * *

연달아 도착한 알렉시온 공작의 편지 두 통을 읽은 황제 라파디트 파라곤의 미간이 구겨졌다.

도대체가 생각대로 굴러가는 게 없었다.

이 와중에 황후도 난리였다.

“매디라는 그 여자가 대공비가 되면 끝날 일입니다, 폐하. 그런 여자가 황후 자리에 걸맞다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 이러는 거 아니오! 온 국민이 율리키안을 칭송하고 있으니!”

“매디가 대공비가 되면 자연히 해결될 겁니다. 사치가 심하고, 행동거지에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출신은 어떻고요. 고민할 일이 아닙니다. 빨리 결혼시켜 대공 자리에 만족시키는 게 최선이에요.”

황후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분명 옳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했다.

율리키안은 살아 있으면 분명 언젠가 반역의 불씨가 될 것이다.

제 아비를 죽인 저를 용서했을 리가 없는데.

복수심을 버리지 못하고 황위를 본래 제자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미엘르 황녀를 황태녀로 책봉시키고 싶었지만 미엘르가 에이슬란 공국 출신 황후의 소생이라는 이유로 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빌어먹을 출생.

그렇다고 황후가 아닌 론데네스 제국의 사람을 새로 황비로 맞아 아이를 가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라파디트 황제는 진심으로 카르딘 하임 황후를 사랑했다.

단 한 번도 그녀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거라곤 오직 미엘르 황녀의 안전뿐이었다.

제가 죽은 뒤 국민과 귀족들의 추대를 받으며 미엘르 황녀가 안정적으로 황제로 즉위하기 위해서는 율리키안의 존재가 사라져야 했다.

귀족들이 미엘르 황녀의 출신을 이유로 책봉을 거부한다면, 매력적인 대안을 손수 없애는 것이 부모로서 이루고 가야 할 과업이었다.

알렉시온 공작의 딸과 결혼시켜 누명을 씌울 계획이었는데. 뜬금없는 우정 놀이에 망그러졌다.

시체와도 다름없이 무감각한 니에트나 공녀를 무슨 수로 친구로 만든 건지.

율리키안이 대체 어떤 여자를 데려왔길래.

“황후.”

“예, 폐하.”

“매디라는 그 여자를 내가 한번 봐야겠소.”

“결혼을 허락하시려고요?”

“……허락을 하든, 쫓아내든 한번은 봐야 명분이 생기지 않겠소.”

황제는 보좌관을 불러 대공이 데리고 있는 여자를 황궁으로 초대하라 일렀다.

황후의 말대로 대공비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야 했다.

갓난아이가 봐도 황후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될 망나니여야 했다.

* * *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황제는 미엘르 황녀, 카르딘 황후와의 짧은 산책 중이었다.

그때 정원 반대편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나도 초대받고 온 손님이라고!”

“그러니까 내일 오라고! 내일 오시라고! 어?! 누가 이 밤에 황제 폐하를 알현합니까!”

“나 몰라?! 대공 전하 약혼녀 매디라고! 내애가! 어?! 시댁 어른을! 뵌다는데 왜 너희가 날 가로막느냐고!”

“황제 폐하가 초대했다는 건 알겠는데, 초대했으니까 여기까지 들어왔겠지! 근데 황궁의 본궁은 지금 출입이 안 된다고요!”

“야! 너네 내 말 안 믿지?!”

여자가 목이 터져라 윽박을 질렀다.

“너희 대공 저기, 캘더리 광장 앞 저택 살지?! 내가 인마! 너희 대공이랑! 어제 오늘 같이 밥도 먹고! 그저께는 같이 목욕도 하고! 어? 다 했어, 인마!”

황제의 머릿속이 충격과 혼돈으로 가득 찼다.

그는 저도 모르게 제 딸 미엘르 황녀를 제 뒤로 숨겼다.

보호 본능이 들불처럼 온몸을 뒤덮었다.

그때 카르딘 황후가 황제의 옷소매를 살짝 잡으며 침통하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저 괴성의 주인이 매디입니다.”

“……저게?!”

“느그 대공 허벅지 안쪽에 점 무슨 모양인지까지 내가 말해 줘?!”

“그걸 말한들 내가 알아?! 본궁 출입 시간이 지났다고! 아씨, 진짜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나 내일은 쇼핑 가야 해서 시간이 없다고! 지금밖에 시간이 안 된다니까! 너야말로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황제의 미간이 여백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겨졌다.

만날 필요도, 가치도 없었다.

황후는커녕 대공비 자리마저도 차고 넘치는 여자였다.

저런 여자는 결혼을 해도 영주민들에게 돌팔매질을 맞고 죽을 것이다.

황제는 미엘르 황녀를 감싸 안다시피 보호하며 몸을 돌렸다.

“황후.”

“예, 폐하.”

“우리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맙시다.”

“폐하……. 그럼 율리키안 대공을 그냥 내버려 두실 겁니까. 설마 조카라고 어여삐 여기시는 건 아니겠지요.”

황후의 간절한 목소리 사이사이 아직도 매디가 행패 부리는 괴성이 들려왔다.

“본궁에 왜 못 가는데! 본궁은 사람 안 살아?! 본궁 사람들은 저녁 7시에 자?! 나 그럼 오늘 어디서 자라고?! 저기 나무 밑에서 자라고?! 아니면 너희랑 같이 보초 설까?!”

“내일 오라고!”

“어쭈? 반말을 해? 내가 대공비 되면 너 해고야!”

황후는 손가락으로 괴성이 들려오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율리키안 대공은 추후에 폐하는 물론이고 황녀에게도 걸림돌이 될 겁니다. 어쩌면 저 정도가 대공에게 알맞은 수준일 수도 있습니다. 저런 짝을 붙여서라도 그의 날개를 꺾어야지요!”

황제는 미엘르 황녀의 양쪽 귀를 막고 빠르게 걸어갔다.

황후가 뒤에서 계속해서 결혼을 허락해야 한다고 그를 설득했다.

황제는 매디의 고함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리 간 후에야 대답했다.

“저 정도로 쓰레기 같은 여자인 줄은 몰랐소! 율리키안의 안목이 고작 저 정도라니! 황실의 체면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군! ……오히려 잘됐소. 황후의 말이 맞아요. 저 정도가 대공에게 알맞은 수준이지!”

“그럼 결혼을 허락하시겠다는 거죠? 그런데 왜 참석은 안 하신다는 거예요?”

“결혼 허락은 하겠지만! 참석은 않을 거요! 황실의 위신을 떨어뜨릴 게 분명한 여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는 오명을 덮어쓸 순 없으니까!”

황제는 곧장 집무실로 가 대공과 매디의 결혼을 허락하는 서류를 작성하고 서명했다.

황후 역시 황제의 이름 아래에 서명했다.

<라파디트 파라곤 론데네스>

<카르딘 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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