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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세요, 합의된 사기 결혼입니다 (88)화 (87/135)

88화

오늘 날씨 맑음.

잠망경으로 봤을 때 하늘이 엄청 파랗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기분이 좋아 보임.

나도 기분이 좋아!

오늘의 일기.

오늘은 어쩌면 이 집에서 쓰는 마지막 일기가 될지도 모른다. 매디가 같이 살자고 말했고, 나는 너무너무 좋았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그렇다고 말한 거였는데매디가 밤에 다락 창문을 열고 지붕 위로 나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리고 하늘로 나를 집어 던졌다.

무서워서 눈물이 찔끔 날 뻔했지만 꾹 참았다.

매디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떨어지는 나를 안자마자 다락으로 다시 들어가 창문을 쿵 닫았다.

진짜 빨랐다. 그리고 진짜 재밌었다.

하늘에서 아래로 떨어져서 매디한테 안기자마자 미끄럼틀 타듯이 지붕을 슝 내려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까 다락방이었다.

나는 개처럼(율리키안 외삼촌 앞에서 개처럼 웃었다라고 말했다가 매디랑 녹스가 두 손을 들고 혼이 났다. 나쁜 말인가 보다. 하긴. 내가 아는 모든 강아지들은 이렇게 웃지 않는다. 강아지는 귀엽다.) 끅끅대며 웃었고 매디도 입을 틀어막고 한참 웃었다.

너무 웃겨서 바닥을 굴렀더니 매디가 갑자기 신기한 걸 보여 주겠다면서 앞구르기랑 뒤구르기를 했다.

짱 신기했다.

앞구르기는 처음 해 봐서 조금 무서웠는데 매디가 허리를 잡고 나를 공중에서 돌렸다.

더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다.

울 뻔했는데 매디가 이제 바닥에서 구르면 잘 구를 거라고 했다.

훨씬 쉬웠다.

매디는 역시 마법사인 것 같다.

앞구르기로 다락방 끝에서 끝까지 경주도 했다.

매디가 계속 이겼다.

그래서 나는 앞구르기로 구르고, 매디는 뒤구르기로 굴렀는데도 매디가 계속 이겼다.

어지러워서 토할 뻔했다.

근데도 너무 재미있었다.

우리는 한참 다락에서 굴러다녔다.

매디 웃음소리가 너무 컸는지 설거지를 끝낸 녹스 삼촌도 올라왔다.

그래서 셋이서 굴러다녔다.

구르기는 매디가 제일 잘한다.

녹스 삼촌 말로는 매디가 인생이 내리막길이라 잘 굴러서 그렇다고 했다.

아무튼 나는 이 집도 좋다.

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재밌고 신난다.

매일 웃기는 일도 많이 생긴다. 그래서 처음엔 매디가 가자고 했을 때 망설였다.

그런데 매디는 자기랑 같이 살지 않아도 이 집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사람이 집 안에서만 살 수는 없다고 말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원하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어디든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자유가 내가 아는 말이랑 다른 걸까? 나는 이 집에서 자유롭다고 써서 보여 줬다.

또 이 집이 너무 좋다고 했는데 녹스 삼촌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안아 줬다.

내가 볼 세상은 훨씬 크다고 말해 줬다.

세상이 큰 건 알고 있지만 나는 이 집이 너무너무 재밌는 건데. 이 집에서보다 더 재밌는 일들이 생긴다는 뜻일까? 정말 여기보다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날까?

나는 녹스 삼촌이 우는 게 싫다.

그래서 나간다고 또 써서 보여 줬다.

(내가 매번 종이에 글을 써서 줘도 매디랑 녹스 삼촌은 답답하다고 화를 내지 않는다)

매디가 아쉬우면 녹스 삼촌도 율리키안 외삼촌 집에서 같이 살 수 있게 한다고 했다.

녹스 삼촌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는데 매디가 여장하고 보모로 들어오라고 했다.

애기도 여장을 하고 몇 년을 살았는데 어른인 네가 왜 못 하냐고 녹스 삼촌을 혼냈다.

그 말을 들은 녹스 삼촌도 개떡같이 화를 냈다.

[여장을 어떻게 몇 년씩이나 해요, 들키면 사망이에요! 이 사람아! 차라리 물건을 떼 내세요!]

이렇게 말했다가 매디랑 치고받고 싸웠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매디가 칼을 들고 직접 떼 주겠다고 했는데 녹스 삼촌이 테이블을 던졌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을 내버려 두고 주방으로 갔다.

삼촌이 컵에 따라 놓은 오렌지 주스가 있어서 벌컥벌컥 마셨다. 맛있었다.

매디랑 녹스 삼촌은 아무리 싸워도 내 빵이랑 주스, 내 책이랑 내 일기장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가 좋다.

일기를 쓰면서 생각해 보니까 나는 이 집이 아니라 매디랑 녹스 삼촌이 좋은 것 같다.

율리키안 외삼촌도 있으면 더 웃기겠지!

오늘은 율리키안 외삼촌이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다.

그래서 외삼촌을 기다리는 중이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외삼촌이랑 매디가 내 아빠랑 엄마가 되기로 했기 때문이다.

매디가 처음 물어봤을 때는 고민이 됐는데 어젯밤 꿈에 엄마랑 아빠가 나왔다.

나를 꼭 안아 주고 뽀뽀도 해 줬다.

그리고 내 등을 토닥이고 앞으로 가라고 밀어 줬다. 아빠도 엄마도 울었지만 웃기도 했다. 나는 슬픈 기분이었다.

엄마랑 아빠가 보고 싶어.

꿈에서 깼을 때는 밖이 깜깜해서 무서웠다.

그때 마침 매디가 방으로 들어와서 노래를 불러 주고 엎드린 내 등을 토닥여 줬다.

꿈속의 엄마 같았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조금 많이 울었다.

매디는 계속 노래를 불러 줬다.

나는 엄청 울다가 잠들었다.

매디는 내가 잠들기 전에 아주 작게 속닥거렸다.

[네가 울 때마다 내가 노래를 불러 줄게. 더 크게 울어도 아무한테도 안 들키게. 그러니까 숨죽여서 울지 마, 아가.]

숨을 죽여서 우는 건 뭘까? 나는 숨을 쉬면서 울었는데. 매디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여러 번 말했다.

배가 간질간질 따뜻해졌다. 엄마가 나를 안아 줬을 때처럼. 우는 건 싫지만 매디 노래는 더 듣고 싶다.

근데 율리키안 외삼촌 왜 안 오지? 나 일기 많이 썼는데.

매디가 금방 데리러 올 거라고 했는데.

외삼촌이 안 온다.

금방 데리러 온다고 해 놓고 안 왔던 우리 엄마처럼.

* * *

일기를 다 쓴 아스트리드는 가만히 침대 위에 앉아 발을 앞뒤로 흔들며 문만 바라봤다.

며칠 전, 아스트리드는 새벽에 찾아온 매디에게 쪽지를 건넸다.

전에 얘기했던 거 괜찮아.

잠깐 동안이면 매디가 내 엄마고, 율리키안 외삼촌이 내 아빠여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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