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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는 조금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
“그런데 이제 어디 가서 찾지?”
잭을 찾기 시작한지 십 분이 지났지만 연금술사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상태였다.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그는 생전 처음 가보는 곳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신출괴몰하는 세기말의 대괴도를 뒤쫓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오랫동안 기거해 온 도서관에서 호박 머리를 뒤집어쓴 덜떨어진 얼간이를 찾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너무 오래 시간이 지체됐다. 연금술사는 이제 슬슬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볼 때라고 생각했다.
“이미 찾아볼 만한 곳은 모두 다 찾아봤어. 그런데도 찾지 못했다는 것은…….”
말끝을 흐린 연금술사는 고개를 돌려 거대 발정 토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바라보았다. 찾아볼 만한 곳은 모두 찾아봤음에도 아직껏 잭을 찾지 못 했다. 그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명확했다. 잭은 정말로 거대 발정 토끼에게 가버린 것이다.
“젠장. 거길 가버리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이미 거대 발정 토끼에게 한 번 당한 적이 있는 연금술사로서는 다시 그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윗층에 있을 때 잭이 레바테인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그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이름만 같은 허접한 무구를 가지고 있을 게 뻔한데 굳이 멍청한 호박 머리와 함께 사지로 뛰어들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연금술사는 이런 경우엔 윗층으로 올라가서 다른 녀석들과 함께 내려오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토끼에게 맞아 죽은 인간 1호가 되기 싫은 그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연금술사는 어서 빨리 윗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자신이 살기 위해서기도 했지만 잭을 위해서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아무런 힘도 없는 무력한 인간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잭을 구하겠답시고 거대 발정 토끼에게 돌진해 봤자 동반 자살하는 꼴이 될 것이다. 어설픈 정의감에 휘둘리기 보다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는 편이 둘 모두의 생존률을 높여주는 길이었다……라고 연금술사는 자기 합리화를 끝냈다.
“거의 다 왔군.”
발걸음을 빨리 한 덕에 금새 계단 근처까지 온 연금술사는 점점 가까워지는 거대 발정 토끼의 울음소리에 긴장하며 쉬지 않고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가 계단 첫 칸에 발을 올리는 순간 쾅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연금술사는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크윽…….”
가까이에 있던 잡동사니 탑 하나가 무너졌고 바닥에 쏟아진 더미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그 자는 괴상한 호박을 뒤집어 쓰고 있었고 손에는 타오르는 불의 검을 들고 있었다.
“호박 머리?”
잡동사니 더미에서 일어난 잭을 알아본 연금술사는 놀라움의 목소리를 냈다. 그것은 잭을 찾았기 때문에 낸 목소리이기도 했지만 잭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 거대 발정 토끼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에 낸 놀라움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일단 잭을 찾는다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한 연금술사는 얼른 잭을 데리고 윗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러나 잭은 연금술사의 손을 뿌리치며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젠장. 벌써 여기까지 밀려났나……. 연금술사 씨, 당장 도망치세요. 곧 거대 발정 토끼가 올 겁니다!”
“……뭐?”
연금술사는 멍한 얼굴이 됐다가 곧 잔뜩 찡그린 얼굴이 되어 소리쳤다.
“도망치라고? 지금 장난하냐? 여긴 내 도서관이야. 그런데 너 같은 놈이 횃불 들고 설치는 꼴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냐!”
잭은 빽 소리를 지르는 연금술사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왜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줘도 제 발로 걷어차는 걸까 싶었다.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려 했으나 이번에는 한숨 대신 피 섞인 침을 뱉어낸 그는 다시 한 번 연금술사에게 말했다.
“저 거대 발정 토끼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해요. 지금 내 꼴을 보면 모르겠어요? 당신도 죽기는 싫을 테니까 제발 좀 도망치라고요!”
잭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연금술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잭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갑자기 몇 개의 잡동사니 탑들이 무너졌다. 잭과 연금술사가 화들짝 놀라며 그쪽을 바라보자 거대 발정 토끼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잭은 칫 하고 혀를 차며 연금술사를 억지로라도 대피시키기 위해 뒤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연금술사는 거기에 없었다. 도망가지 않는다고 소리친 주제에 위험이 닥치니 도망간 건가 싶어 잭은 조그맣게 실소했다. 하지만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을 때 그는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알았다.
“이것 보라고. 호박 머리.”
연금술사는 어느새 잭의 앞쪽으로 가 있었다. 마치 만싱창이가 된 잭을 보호하는 것처럼. 연금술사는 아주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 어디에도 집안일을 손님에게 맡기는 집은 없어. 이건 우리 집의 일이지. 그러니까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해.”
그건 마치 설거지는 내가 할게 라고 말하는 것처럼 가벼운 말이었다. 그럼에도 잭은 왠지 그 목소리가 굉장히 믿음직스럽게 들려서 저도 모르게 레바테인을 쥔 두 손의 힘을 조금 빼버렸다. 하지만 곧 자신이 몸에 힘을 빼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 재빨리 자세를 고쳐잡았다. 연금술사가 뭐라고 하든 이건 그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집안일이니 뭐니 해도 연금술사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뭐가 어떻게 됐든 이건 그가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잭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서 연금술사의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연금술사의 내뻗은 손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집안일이야. 손님은 저리로 가서 쉬고 있어.”
연금술사는 고개를 돌려 표정을 알아볼 수 없는 잭의 호박 머리를 보았다. 그리고 짧게 덧붙였다.
“이게 내 손님 대접이다.”
잭은 무어라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연금술사는 들고 있던 블로우 파이프로 거대 발정 토끼를 공격했다. 그러나 이미 잭만큼이나 만싱창이가 된 주제에 거대 발정 토끼는 블로우 파이프의 침을 맞고도 멀쩡했다. 연금술사는 눈을 부릅 뜬 채로 거대 발정 토끼가 휘두르는 오른발을 피해 뒤로 점프했다. 잭이 보기에 그것은 꽤 나쁘지 않은 움직이었지만 연금술사가 거대 발정 토끼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잭은 두 손으로 쥐고 있는 레바테인을 흘깃 보았다. 무언가 조금 더 강력한 것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