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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서관에는 연금술사가 산다-18화 (1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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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는 조금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

“뭐……. 저 바보 같은 놈이 난입해 들어 왔으니 내 역할은 이제 끝이란 건가.”

거대 발정 토끼에게 단 한 번 얻어맞은 주제에 한심한 꼴로 리타이어된 연금술사는 잽싼 움직임으로 상대를 농락하고 있는 조수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 조수를 발톱에 낀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그지만 이번만큼은 조수에게 감사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마치 히로인을 구하기 위해 나타나는 히어로처럼 딱 알맞은 타이밍에 나타난 조수가 없었다면 그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조수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마음 속에 묻어두고 절대 바깥으로 꺼낼 생각이 없는 그다. 그가 순수하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란 까닭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기고만장해진 조수가 일일이 기어오를 것을 생각하면 순식간에 피로가 쌓이는 탓이다. 죽어도 그런 상황이 오는 것만은 피하고 싶은 연금술사는 조금만 움직여도 비명을 지르는 온 몸의 근육을 어떻게든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것은 남이 보기에는 그저 멀쩡한 허우대를 가진 사내 자식이 바닥에 엎어진 채로 꼴사납게 퍼덕이는 꼴로 보였지만 본인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만일 조수가 흘끔 뒤를 돌아봤다면 거대 발정 토끼의 시선을 끄는 것도 잊고 대폭소하는 것과 동시에 꼴사나운 짓을 반복하는 본인도 깨달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젠 힘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하겠어.”

어항에서 튀어나온 금붕어처럼 퍼덕퍼덕 꼴사납게 버둥거리던 연금술사는 결국 자신이 얼마나 추한 짓을 하고 있었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포기했다. 고개를 들 힘조차 없어서 턱을 바닥에 댄 채로 멍하니 조수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던 그는 뒤쪽에서 들리는 뜀박질 소리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뜀박질 소리는 딱히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이 누구의 것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는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개중에는 아닌 것도 있다―이 살고 있지만 거대 발정 토끼의 소동의 중심지로 뛰어올 만한 사람은 단 두 사람에 불과했다. 레와 모니카. 연금술사는 메마른 목소리로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나 지금 죽을 것 같으니까 건들지 마라.”

한심한 꼴로 바닥에 누워있는 연금술사의 좌우에 각각 선 레와 모니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가 다시 연금술사의 등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래도 거대 발정 토끼에게 한 방 크게 얻어맞은게 아닐까 하고 추측한 둘은 무릎을 접고 연금술사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둘 중에서 먼저 입을 연 건 레였다.

“뭐예요, 이 꼴은?”

“보면 몰라? 쓸데없이 멋있는 척 했다가 왕창 깨진 꼴이잖아.”

“물론 그건 척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네요. 아픈 상처를 건드린 꼴이 돼서 미안하게 됐어요.”

“됐고, 너희들 얼굴 보니까 갑자기 확 짜증이 치솟으니까 저리 가.”

레는 입술을 비죽이면서 발딱 일어섰다. 연금술사가 저항하지 못 한다는 것을 알고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보던 모니카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은 응급 처치를 해둘게. 회복 쪽은 내 전문이 아니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연금술사는 입으로 쯔읍 소리를 내더니 얼른 하라는 듯이 손가락을 까닥까닥했다. 모니카는 다시 한 번 빙긋 웃더니 주머니에서 검은색 마카펜을 꺼냈다. 레는 그걸로 대체 뭘 하나 싶어 모니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혹시 연금술사가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 타 그의 얼굴에 잔뜩 낙서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예상을 깨고서 모니카는 연금술사 등 위에 자그마한 동그라미를 그렸을 뿐이었다. 컴퍼스를 쓰지도 않았는데 무서울 정도로 완벽한 동그라미였다. 그 동그라미 위에 몇 가지 도형이나 알 수 없는 기호 따위를 몇 번 덧그린 모니카는 마커펜을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고는 짝 하고 박수를 쳤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연금술사의 등 위에 그린 도형이나 기호 따위가 희끄무레한 연기를 피어올리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회복 마술’ 임을 알아차린 레는 오 하고 입을 벌린 채로 감탄했다. 그녀는 모니카가 마녀라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술을  쓰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새삼스럽게 모니카가 진짜 ‘마녀’ 라는 것을 깨달은 레로서는 그저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 대단해요! 그게 마술인가요?!”

잡아먹을 듯 몸을 앞으로 쭉 내밀고서 질문하는 레에게 애매한 미소를 지어보인 모니카는 회복 마술 덕에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한 연금술사를 보며 대답했다.

“그래. 하지만 뭐 그렇게 눈을 반짝이고 볼 만큼 대단한 건 아니거든. 게임으로 치자면 HP의 5% 정도를 회복시킨 정도랄까.”

모니카는 별로 대단치 않은 일을 했다는 듯이 말했지만 회복 마술은 커녕 응급 조치조차 할 줄 모르는 레로서는 선망의 빛을 보내는 것이 당연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모니카에게 졸라서 배워볼까 하고 생각하던 그녀는 헉헉 하고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 등을 구부린 채로 앉아 있는 연금술사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잭 씨는 어디로 갔어요? 아까부터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서, 설마 호박 머리가 너무 맛이어 보인 나머지 잡아먹힌 건 아니겠죠?”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잭은 지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서 뭘 좀 하고 있어. 그게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헤에에. 연금술사 씨가 모르는 일도 있군요?”

“물론이지. 나도 가끔씩 내가 왜 너희 같은 것들이랑 같이 살고 있는지 궁금해 질 때가 있거든.”

아무렇지도 않게 폭언을 내뱉은 연금술사는 거대 발정 토끼와 조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까와 다름없이 조수는 거대 발정 토끼의 시선을 끌고 있었지만 그도 무거운 휠체어를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 점점 힘에 부치는지 시간이 갈수록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거대 발정 토끼에게 잡힐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지만 조수는 있는 힘껏 공격을 피해가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연금술사는 문득 손목에 찬 시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잔뜩 찡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제 끝이구만.”

중얼거림을 들은 레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지만 연금술사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레는 부루퉁한 얼굴로 연금술사에게서 멀어지듯이 뒷걸음질했다. 그리고 절묘하게도 레가 연금술사에게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거대 발정 토끼에게 드디어 얻어맞은 조수가 연금술사의 바로 위로 날아왔다. 그것도 휠체어랑 한 세트로.

“……음?”

등을 구부린 채로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고 있던 연금술사는 거대 발정 토끼가 오른발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조수가 사라진 것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지만 설마하니 자신의 바로 위에서 조수가 휠체어랑 한 세트로 떨어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몸을 누르는 육중한 무게와 이쪽을 바라보는 거대 발정 토끼의 시선을 통해 자신이 대체 어떤 일을 당한 건지 알아차린 그는 휠체어에서 몸을 쑥 빼는 조수의 얼굴을 보고서 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끔 생각하는데 네가 국수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가늘고 오래 살라는 뜻에서?”

“그게 아니고 국수는 먹으면 배가 빨리 꺼지잖아.”

“그래서요?”

“너도 빨리 꺼졌으면 좋겠다고.”

“…….”

다리를 다쳤기에 인어공주처럼 팔의 힘으로만 휠체어에서 몸을 빼낸 조수는 조용히 구석에 가서 앉았다. 모니카와 레가 연금술사의 몸을 누르는 휠체어를 옮기자 연금술사는 회복 마술로 간신히 회복한 체력을 모두 소진했는지 다시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대 발정 토끼가 이번에는 모두 끝장을 내주겠다는 듯이 붉은 눈을 번쩍이면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연금술사는 그 거대 발정 토끼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뒤. 익숙한 호박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불가사의한 불꽃의 검을 든 얼간이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제 끝이다아아아아아아아아!”

잭은 우렁찬 고함 소리와 함께 엄청난 기세로 불꽃의 검을 휘둘렀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거대한 불꽃의 검이 거대 발정 토끼의 오른발을 간발의 차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그저 스친 것인데도 거대 발정 토끼는 아픔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오른발을 왼발로 감싸쥐었다. 주위에 압도적인 열기와 불꽃의 조각을 흩뿌리면서 타오르는 레바테인은 어서 적을 잡아먹고 싶다는 듯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자신의 필살을 자랑스러운 듯이 바라보던 잭은 다시금 자세를 바로 잡고 돌진했다. 강력한 찌르기 공격이 거대 발정 토끼의 배를 거의 뚫을 뻔 했지만 아쉽게도 비껴나가고 말았다. 대신에 레바테인은 거대 발정 토끼가 있던 곳의 잡동사니 탑을 태웠다.

“……엉?”

섬광과도 같은 휘두르기가 근소한 차이로 빗나가며 잡동사니 더미들을 태웠다.

“…………아니, 잠깐.”

폭풍과도 같은 연속 찌르기가 빗나가고 플라스틱 통들이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타올랐다.

“………………진짜 잠깐만.”

크게 부풀어 오른 레바테인이 거대 발정 토끼를 노렸지만 애꿎은 잡동사니들만이 타올랐고 그것은 마치 도미노처럼 주위의 물건들을 서서히 태워나가기 시작했다.

“…………………….”

그리고 주위에 치솟는 불길 때문에 더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진 거대 발정 토끼를 목표로 잭이 횡으로 레바테인을 휘둘렀을 때였다.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아?”

약발이 다 떨어진 거대 발정 토끼가 다시금 작은 토끼로 돌아가면서 공격을 피했고,

“아아앗?!”

레바테인은 압도적인 불꽃을 내뿜으며 아랫층의 모든 물건들을 날름날름 태워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금술사는 온통 불꽃 일색으로 변한 주위를 바라보면서,

“……이 빌어먹을 호박 머리 새끼. 지옥행 열차를 탈 준비는 됐겠지?”

불길을 뚫고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악마를 피하기 위해 잭은 도망쳤고 연금술사는 뒤쫓았다. 레와 모니카는 어깨를 으쓱이며 공간 이동 마술로 함께 2층으로 피신했다. 타오르는 불길을 잡을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 채로 거대 발정 토끼 사건은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조수는?

============================ 작품 후기 ============================

에피소드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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