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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샤트에는 입학을 했다
3월 2일. 연금술사는 아침부터 컵라면을 먹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레의 입학식에 참가할 멤버를 뽑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박수. 짝짝짝.”
평화로운 아침을 뒤흔드는 갑작스런 선언에 거실에 모여있던 아랫층 거주자들은 일단 각자가 하던 일을 멈췄다. 심지어 TV를 보고 있던 레조차도 멍청한 얼굴로 연금술사를 바라보았다. 그 틈에 조수는 채널을 바꾸려 했지만 레에게 사타구니를 걷어차이고 쓰러졌다. 뒤이어 도전하던 좀비도 결국 같은 방식으로 리타이어. 묵묵히 바닥을 닦던 잭은 사람이 TV 때문에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보고 전율했다. TV에 대한 빗나간 사랑과 말 못할 아픔이 교차하는 수라장 속에서 연금술사는 덤덤히 말했다.
“레. 사실 넌 ‘레브랑 게움’ 의 중등부에 입학하게 됐어.”
레는 당연히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다고요?”
“말 그대로야. 교복은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잘 다려놨으니까 네 방 옷장에서 꺼내 입고 와.”
“벌써 교복까지 준비해 놨어요?! 아니, 그런데 그걸 지금 내가 왜 입어요?”
“내가 말 안 했나?”
연금술사는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듯이 가볍게 이마를 치더니,
“입학식 오늘이야. 그러니까 빨리 가서 교복 입고 와.”
레는 그 말을 듣자마자 헛웃음을 터트렸다. 마침 그 옆에서 바닥을 닦고 있던 잭은 걸레를 빨러 가는 척하며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던 모니카는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한참을 메마른 목소리로 웃던 레는 갑자기 정색하며 소리쳤다.
“내가 중학교를 왜 가! 학교에 입학하면 늦잠을 못 자잖아! 그리고 난 공부하기 싫다고!”
연금술사는 이런 반응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문제아를 상대하는 선생님처럼 팔짱을 끼고서 말했다.
“너 지금 되게 큰일날 소리를 하는구나? 그래서 중학교 안 가면 평생 여기서 놀고 먹고 할래? 넌 커서 저런 것들처럼 되고 싶냐?”
연금술사는 팔을 척 내뻗어서 ‘저런 것들’ 을 가르켰다. 레의 시선은 연금술사의 팔을 따라 이동했고 그녀는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는 두 명의 잉여들을 보았다.
“…….”
레는 조용히 교복을 입으러 떠났다.
“좋아. 계획대로구만.”
연금술사는 만족스러운 듯이 웃으며 평화로운 아침에 파장을 몰고 왔던 그 말을 다시 한 번 내뱉었다.
“그럼 지금부터 레의 입학식에 참석할 멤버를 뽑도록 하겠습니다.”
타이밍 좋게 레와 연금술사의 갈등이 끝났을 즈음에 다시 돌아온 잭은 걸레로 창문을 닦았다. 흘끗 곁눈질로 그를 본 연금술사는 아직도 바닥에 널부러져서 버둥거리는 두 명의 잉여들을 끌고와서 누가 그와 함께 입학식에 갈 것인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물론 의논이라고 해도 연금술사 외에는 의견을 낼 수 없는 결론까지가 엄청나게 스트레이트한 의논이었다. 가장 먼저 모니카를 본 연금술사는,
“너는 참석하도록 해. 남자들만 가면 칙칙해 보여.”
“마음대로 해.”
“좋아. 그럼 다음은…….”
슬슬 형용할 수 없는 데미지에서 정신을 차려가는 좀비와 조수는 연금술사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귀찮은 일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재밌어 보이는 일이라면 귀찮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참여하겠지만 그들이 보기에 ‘입학식’ 에는 재미란 게 조금만치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필사적으로 연금술사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들이 자신의 시선을 회피한다는 것을 깨달은 연금술사는 일단 그들의 머리통을 한 대씩 쥐어박아주고는 말했다.
“까불지 마라. 너희들은 필히 참석해.”
연금술사의 험악한 시선에 조수는 다급히 외쳤다.
“자, 잠깐만요! 전 오늘 선약이 있어서 말이죠!”
“마, 치사하구로 니만 빠질라카노!”
“아, 왜 이래요! 난 여자 친구가 있는 몸이라 좀비 씨 같은 솔로랑 같이 갈 생각이 없거든요?”
“니는 여자 친구랑 병원에서 만나고 싶은갑지? 글고 니 오늘 여자 친구랑 약속 읍다 아이가?”
시시한 말싸움이 난투극으로 이어지려는 상황에서 연금술사는 저리 가서 싸우라는 듯이 손을 홰홰 내저었다. 그는 레의 교육에 관한 것 외에는 모두 방임주의로 일관하는 사람이었다. 그 방임주의는 결국 블로버스터급 액션 영화를 방불케하는 폭력이 거실을 휩쓸도록 만들었다. 기껏 청소해 놓은 바닥이 더러워지는 것에 절망하던 잭은 걸레를 쥐어들고 위생과 건강을 위협하는 악의 무리들을 처단하기 위해 난투극에 끼어들었다. 냄새나는 걸레로 적의 사기를 꺽고 찰진 주먹질로 전의를 꺽은 잭은 악의 무리들에게 청소의 위대함에 대해 설파했다. 조수와 좀비는 몇 달째 혼자서 묵묵히 청소를 계속해 온 잭에게 감명받아 결국 셋이서 함께 걸레를 들고 청소를 시작했다. 물론 거기에는 청소를 함으로써 입학식에 가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연금술사가 아니었지만 그는 짐짓 모르는 체하며 잭을 불렀다.
“호박 머리. 넌 안 와도 돼.”
“어어? 왜요?”
잭이 예상 외라는 듯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연금술사는 뭘 당연한 걸 묻는냐는 듯한 투로 말했다.
“넌 네가 지금 머리에 쓰고 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그걸 쓰고 입학식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널 어떻게 볼 것 같은데?”
“아, 알겠습니다. 그럼 전 다들 나가고 나면 오랜만에 대청소나 하도록 할게요.”
“잘 생각했어.”
연금술사가 잭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만족스럽게 웃자 조수와 좀비는 걸레를 잘근잘근 씹으며 분해했다. 그들을 보던 연금술사는 한숨을 내쉬며 엉덩이를 한 대씩 걷어차 주었다. 스스로가 깨끗힌 닦은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조수와 좀비는 벌떡 일어나 항의하려 했지만 연금술사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희들은 왜 그렇게 나잇값을 못 하냐? 부끄럽지도 않아?”
그 말에 조수와 좀비는 쓸데없이 자랑스런 어투로,
“안타깝지만 저희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거든요!”
“하모하모!”
“그래, 너희 잘 났다. 그런데 너희들은 입학식에 가는 데 그렇게 입고 갈 거냐? 당장 가서 옷 좀 갈아 입고 와.”
조수와 좀비는 멍청한 얼굴로 자신들이 입은 옷을 보았다. 회색 후드티에 수면 바지를 입은 조수와 늘 그렇듯이 알로하 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좀비는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거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던 모니카는 한숨을 내쉬고서 연금술사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둘의 손을 붙잡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떠났다. 연금술사는 점점 멀어지는 세 명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준비하기 위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