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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막스는 도서관을 방문했다
“주인님. 이 분은?”
후안에게 도서관에 있는 메이드는 신기한 존재였지만 메이드에게도 제복을 갖춰 입은 기사는 신기한 존재였다. 거기에 허리에 두 개나 되는 검을 매고 있고 그걸로 방금 전에 대문까지 잘라냈으니 그녀가 그를 경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후안이 멋쩍게 웃자 미스트 알케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로리콤 기사야. 신경 쓸 필요 없어.”
메이드는 위아래로 후안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사람에게 이상한 이미지로 각인된 후안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미스트 알케는 오해를 풀어줄 생각도 없이 바로 후안을 소파에 앉혔다. 그가 메이드에게 마실 걸 준비해 달라고 말하자 메이드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보며 후안은 헛웃음을 터트렸지만 덕택에 무서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건 피한 것 같다. 그래도 ‘변태’ 로 기억되는 건 좀 그렇지만.
“그런데 넌 오늘 출근 안 하냐? 레는 오늘 학교 갔는데?”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근무 없어. 레에 대한 건 다른 가드한테 부탁했으니까 관심 꺼.”
미스트 알케가 입맛을 쩝 다셨다. 후안이 몸을 바투 앞으로 당기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확실히 내 소원을 들어주는 거겠지?”
“음. 그게 말이지……. 그건 내 관할이 아니라서…….”
반대쪽 소파에 앉은 미스트 알케는 곤란하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후안은 빙긋 웃는 얼굴로,
“네가 무슨 책임 회피 하는 공무원이냐! 이거 담당자 누구야! 담당자 불러와!”
소파와 소파 사이에 있던 나무 테이블이 후안의 무서울 정도의 괴력에 의해 날아갔다. 자신의 머리 위로 테이블이 날아가는 것을 본 미스트 알케는 메마른 웃음 소리를 흘렸다.
“자, 잠깐. 우리 이러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자. 담당자 불러올 테니까.”
타이밍 좋게 마실 것을 준비하러 갔던 메이드가 시원한 아이스티 두 잔을 가지고 돌아왔다. 일단 아이스티 한 모금을 마시고 화를 가라앉힌 후안은 어서 담당자를 부르라는 듯 고개짓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미스트 알케는 메이드에게 귓속말을 했다. 메이드가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지고 나서 삼 분 정도 흘렀을 때 담당자는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그때 그 변태 기사잖아?”
갑작스런 발언에 마시고 있던 아이스티를 모두 뿜어낸 후안은 켈룩켈룩 기침을 해댔다. 맞은편에 있던 미스트 알케의 얼빠진 얼굴에서 아이스티가 뚝뚝 떨어졌다. 담당자는 미스트 알케에게 손수건을 건네 주는 일도 없이 그의 옆에 앉더니 우아하게 웃으며 말했다.
“반가워. 마녀인 모니카 미체라고 한단다. 그쪽은 아마 후안 막스지?”
모니카의 자기 소개를 들은 후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트 알케는 아직도 얼빠진 얼굴 그대로였다. 얼굴에서 아이스티가 뚝뚝 떨어지는 데도 그는 계속해서 가만히 있었다. 모니카가 그를 흘깃 보더니 멋대로 반 이상 남은 아이스티를 집어 들었다. 컵에 들어 있던 빨대를 소파 뒤로 휙 던진 후 아이스티로 입을 적셨다.
“그래서 또 그때 그 일로 온 거야? 음, 곤란하네.”
“이봐. 당신 마녀잖아. 어떻게 좀 안 돼?”
후안은 특히 ‘마녀’ 라는 단어를 힘 주어 말했다. 그것을 들은 모니카는 입술을 움직여 표정을 바꿨다. 그건 꽤나 미묘한 표정이었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이계인 주제에 이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게 있긴 있나 보구나.”
흥. 콧방귀 뀌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후안은 뿜어버리느라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아이스티를 단숨에 마셨다. 그의 시선이 모니카에게 고정됐다.
후안이 이계에 넘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세계에 대한 공부였다. 재수좋게 그가 눈을 뜬 곳은 인심 좋은 시골 마을이었기에 그곳에서 농사일을 도우면서 그는 틈틈이 책을 읽었다. 글자나 언어는 그가 살던 세계와 다를 바 없었기에 고생할 일은 없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책을 읽던 그는 오 개월 동안 수많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마술’ 에 관한 책도 있었다. 마술이란 건 책만 있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그는 하루만에 깨달았지만 딱 한 가지 거기서 얻은 것은 있었다. 그건 바로 ‘마녀’ 에 대한 정보다.
이 세계에서 마녀란 것은 특별한 의미였다. 마술을 배운 자는 보편적으로 마술사라고 불렸다. 그리고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그들은 남성과 여성 마술사를 구분해서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녀는 대체 누구인가? 후안이 읽은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마술의 종주(宗主)’ 라고.
이제는 ‘전설 시대’ 로 기억되는 그 때에 최초의 마녀는 인간들에게 자신의 ‘신비’ 를 전수했고 그 뒤로 인간들은 마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후안이 살던 세계의 창작물과는 다르게 이 세계에서 마녀란 그런 존재였다.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당신한테 매달리는 것 같아? 나도 아는 마술사라면 차고 넘친단 말이야.”
후안이 불만스럽게 말하자 모니카가 조금 웃었다. 그녀가 다 마신 아이스티 컵을 소파 팔걸이 위에 놓자 메이드가 나타났다. 메이드는 후안의 컵과 모니카의 컵을 들고 조용히 떠났다. 모니카가 말했다.
“음. 꽤나 공부한 흔적이 보이네. 좋아. 그 열정을 봐서라도 도와줄게.”
“……그 말 영 신용이 안 가는데.”
“어머. 그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뭐, 어차피 도와주는 건 내가 아니지만.”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모니카가 다시 샐쭉 웃었다. 그녀는 충격으로 완전히 돌처럼 굳어버린 미스트 알케의 관자놀이를 콕 찌르고는 소파 위에서 일어났다. 따라 일어나라는 것처럼 그녀가 손짓하자 후안이 고개를 까닥였다. 모니카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걸었다. 가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서도 착실히 걸어갔다. 그녀 뒤에 바싹 따라붙은 후안이 말했다.
“여기 진짜 도서관 맞아?”
“엄밀히 말해서 1층은 아니지. 2층부터가 진짜 도서관이야, 기대해도 좋단다?”
고개만 돌린 모니카가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후안은 왠지 거북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잠시만에 계단에 도착했다.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1층과는 영 딴 판이었다. 족히 수 백개는 돼 보이는 책장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었다. 거기에 환한 1층과는 달리 2층은 낮인데도 불구하고 대단히 어두웠다. 왠지 으스스함을 느낀 후안이 모니카에게 물었다.
“여기서 대체 누굴 만날 건데? 여기 누가 있긴 있어? 사서가 있나?”
모니카가 홱 돌아섰다. 즐거워 보이는 그녀가 말했다.
“더 대단한 사람을 만날 거야. ‘라하르의 왕’ 이라고 들어봤을려나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