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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샤트에는 강아지를 키운다
레는 조수의 이름을 붉은 혜성 조수라고 짓기를 원했지만 개 이름치고 쓸데없이 거창해서 기각됐다. 물론 레는 반발했다.
“아니, 내 개 이름을 내 마음대로 짓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누가 네 마음대로 이름 짓지 말래? 생각 좀 하고 지으라는 거지. 개 이름이 붉은 혜성이 뭐니?”
“그럼 뭘로 하면 좋겠는데요?”
“용 같은 힘이 솟으라는 의미에서 용개라고 하자.”
“…….”
어차피 도서관의 최고 의사 결정자는 연금술사다. 레가 아무리 말해봤자 결국에는 연금술사가 하고 싶은 대로 된다. 레는 알아서 하라는 듯이 고개만 간단히 끄덕였다. 어느새 강아지 인형탈을 쓰고 있는 조수가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어 댔다. 그런데 저 꼬리는 대체 어떻게 흔드는 걸까.
“멍멍!”
“좋아! 조수도 이 이름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것 같군. 이제부터 천하제일 애견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한 특훈 뿐이다. 자, 일단은 이 목줄을 채우고. 이것도 챙겨.”
연금술사는 조수의 목에 목줄을 채우더니 레에게 모종삽과 비닐봉지를 건넸다. 일단 받아들기는 했지만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거 왜 주는 거예요?”
“조수 산책 좀 시키고 오라고. 공공장소에 똥 싸면 벌금인거 알지? 꼭 비닐봉지에 담아서 쓰레기통에 처리해라.”
“……설마 연금술사 씨는 진심으로 조수 오빠가 바깥에서 똥을 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니, 진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기분이나 내라고 주는 건데. 혹시 다른 개가 싸놓고 간 똥이 있으면 좀 처리해 주든가.”
아무리 그래도 정말로 조수가 바깥에서 똥을 쌀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듯 하다. 지금까지 아무 말없이 조용히 지켜보던 잭과 좀비가 말했다.
“레 씨, 내일 애완동물 콘테스트에서 꼭 우승하세요. 파이팅.”
“잘 좀 해가 부잣집 아들 콧대를 팍 눌러주뿌라.”
“네엡. 한 번 열심히는 해볼게요.”
레는 의욕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조수의 목줄을 손에서 놓았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그만 방에 가볼게요. 조수 오빠, 내일 함께 힘내요.”
말은 힘내자고 했지만 방으로 걸어가는 레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정상적인 애완동물을 데리고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 힘이 빠지는 것이다. 연금술사도 이번에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이 없었다. 강아지 인형탈을 쓰고, 목줄을 차고, 손에는 모종삽과 비닐봉투를 들고 이족보행 중인 조수는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모두들 내일 페스티벌을 보러 오세요. 내일 전 여러분들에게 우승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뭐래, 미친 놈이.”
“…….”
2.
토요일의 버스는 그런대로 한산하다. 주말을 맞아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집에서 편히 쉬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레브랑 게움으로 가는 버스는 지금 절반쯤 승객들로 차 있다. 버스는 정거장에 멈춰섰다. 승차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올라타기 시작한다. 이미 좌석에 앉아 있는 승객들은 저마다 바깥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개 한 마리.”
그런 그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승차문 쪽으로 모여 들었다.
“그리고 학생 한 명이랑 어른 셋.”
승객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금 버스에 올라탄 것은 스스로 목줄끈을 잡고 다른 손에 모종삽과 비닐봉지를 든 이족보행 개였기 때문이다. 의문의 개는 인간 못지 않게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버스 카드를 찍고는 비어있는 자리에 착석했다. 그 뒤로 여학생 한 명과 어른 세 명이 올라탔다. 그 중에는 머리에 호박을 쓴 사람도 하나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자 좌석에 앉은 개는 바깥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페스티벌 하기 딱 좋은 날씨네.”
승객들 중 한 명이 어이없어 하는 얼굴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사진을 찍어 SNS 계정에 올리기 위해서다. 카메라 어플을 실행하고 촬영 버튼을 누르기 바로 직전에 누군가가 손목을 홱 잡아챘다.
“사진 촬영은 금지다.”
손목을 잡아챈 사람은 성격 나빠 보이는 남자였다. 눈매가 워낙 사나웠기에 얼른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버스 안에는 기묘한 정적이 가득했다. 왠지 같이 탄 여학생 한 명이 얼굴을 붉히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을 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번 정거장은 레브랑 게움, 레브랑 게움입니다. 내리실 분들은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드디어 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탄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차문이 열리고 우르르 하차했다. 버스는 부드럽게 정거장을 떠나갔다.
“자, 그러면.”
버스에서 내린 개, 조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입을 열었다.
“가볼까요, 전쟁터로.”
“개폼 잡는 거 밥맛인데 개라서 봐준다.”
조수를 필두로 한 연금술사 일행은 당당하게 레브랑 게움의 정문을 통과했다. 이미 먼저 와서 경비를 서고 있던 후안이 알은체를 하자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줬다. 레브랑 게움의 넓은 잔디밭에는 저마다의 애완동물을 데리고 온 학생들로 가득했다. 곳곳에는 먹을 것과 풍선 따위를 파는 노점이 있었다. 연금술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애완동물 페스티벌이라더니 악어나 곰 같은 거 데리고 온 놈들은 뭐하는 놈들이여?”
“전형적인 졸부식 허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연금술사 씨.”
연금술사는 조수의 모습을 한 번 훑어보더니,
“그래, 너 정도면 그다지 튀지도 않네. 겨우 말하고, 두 발로 걷고, 자기 똥 자기가 치울 줄 아는 개잖아.”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괴상한 동물들이 잔뜩 튀어나왔기에 정말로 조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돼버렸다. 물론 말할 줄 아는 애완동물이라면 구관조를 제외하고 조수 뿐이기는 했지만.
“어머, 너 레 샤트에 아니니?”
크엑. 이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린 여학생의 목소리에 레 샤트에는 미간을 찌푸렸다. 얼른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전형적인 아가씨 캐릭터의 여학생이 서 있었다. 롤빵 머리라니, 정말로 그런 머리를 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연금술사가 중얼거렸다.
“어어……. 안녕, 엘리제.”
반응을 보아하니 레가 껄끄러워 하는 사이임이 분명했다. 하긴 레에게 이런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진짜 아가씨는 상극이었다.
“너도 이 페스티벌에 참가하러 왔을 줄은 몰랐네. 집에 애완동물 하나 없다면서. 난 집에 애완동물이 너무 많아서 데리고 올 애완동물을 고르는데 애를 먹었지 뭐니.”
“어, 그러니…….”
레는 억지로 웃으면서 엘리제와 함께 있는 애완동물을 흘깃 보았다. 처음 보는 새였다. 다만 거의 타조만한 것이 범상치 않은 기품마저 흘렀다. 가만히 있던 조수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서, 설마 저건 카리스마 대빵큰오리!”
“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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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굉장히 안정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