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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는 기묘한 모험을 했다
1.
세상에는 수많은 아이돌들이 있다. 또한 매해 수많은 아이돌들이 데뷔를 한다. 그들 중에서 운 좋은 몇 명은 데뷔하자 마자 인기를 얻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어떤 아이돌들은 몇 년을 고생한 끝에 드디어 인기를 얻는다. 또 다른 아이돌들은 열심히 활동하지만 결국 인기를 얻지 못하고 활동을 접는다. 또한 언제 데뷔했는지, 언제 활동을 그만 뒀는지,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났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아이돌들도 있다.
말하자면 아이돌 업계는 전쟁터다. 그런 전쟁터 속에서 한때 인기절정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인지도가 있던 한 아이돌이 있었다. 달달한 발라드풍 멜로디에 데스 메탈스러운 가사의 언밸런스함으로 매니악한 인기를 끌었던 아이돌이다. 하지만 그 아이돌 역시 인기절정이라든가, 대세 아이돌이라든가,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아이돌은 아니었기에 어느 순간 활동을 접고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이돌은 활동을 접는 순간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아이돌 업계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
스토커를 30등분 내고 절연 테이프로 붙여 준 뒤 매니저 눈을 찌르고 도망친 다음 도서관에서 농성을 벌였을 때, 그 아이돌은 ‘전설’ 이 되었다. 살아있는 전설, 아이돌 업계의 리빙 레전드! 경찰의 수색망을 피해 유유히 사라졌고 아직도 붙잡지 못한 그 전설적인 아이돌은 아직도 아이돌 업계에서 아이돌의 전설로써 회자되고 있다.
그 전설적인 아이돌의 이름은 리치리치. 애칭은 리리다. 아직도 경찰에 붙잡히지 않은 그 아이돌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정말로 그 아이돌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무도 그 진실에 대해서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2.
“헉헉! 젠장! 젠장!”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온 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다. 공사가 중지된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된 폐건물 안으로 들어간 그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이 흐르고 있다. 그는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주위를 살폈다. 폐건물 바깥에는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굴러가는 음료수 캔 하나 뿐이다. 그는 또 한 번 젠장 하고 욕을 내뱉으며 계단으로 뛰어갔다. 숨을 헐떡이며 2층으로 올라가자 손에 쇠파이프를 든 건장한 남자 두 명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계단을 뛰어올라온 남자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비켜, 이 멍청한 것들아! 거래 하러 왔다! 너희들은 거래할 사람 얼굴도 모르냐?”
그 신경질적인 외침에 쇠파이프를 든 남자 두 명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보스께서 3층에서 기다리십니다.”
땀을 흘리는 남자는 손에 든 검은색 가방을 품 안에 꼭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창문 없이 뻥 뚫린 구멍을 보며 말했다.
“젠장. 보스가 기다리고 나발이고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냐. 지금 ‘그 놈’ 이 내 뒤를 쫓아오고 있다고!”
“그 놈······?”
쇠파이프를 든 남자가 움찔하며 말했다.
“그 놈이라면 설마?!”
“그래, 그 놈이다. 지금 거래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 놈이 여기 나타났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겠지?”
“일단 보스가 계신 3층으로 가계십시오. 어이, 애들 연장 챙겨서 다 모이라고 해.”
가방을 든 남자는 3층으로 올라가고 쇠파이프를 든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곧 2층에는 건장한 남자 10명이 모여들었다. 저마다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다. 쇠파이프는 애교고 진짜 검을 든 사람도 있다. 남자 10명이 손에 무기까지 들고 있으니 이곳에 제 발로 걸어들어 올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들은 ‘그 놈’ 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르미아 시를 어둠 속에서 수호하는 침묵의 수호자이자 다크 나이트라 불리는 인물, 그 이름은······.
“스티븐 시걸류 목꺽기!”
우드득! 갑자기 한 남자의 목이 기이한 각도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나머지 남자들이 멍하니 서 있었다. 그것은 실수였다. 그들은 멍해 있을 게 아니라 도망을 갔어야 했다.
“나타났다! 그 놈이 나타났다!”
남자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 폐건물 안에 나타난 의문의 여자에게 덤벼 들었다. 여자는 씩 웃으며 제일 먼저 덤벼드는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주먹을 맞은 남자의 얼굴이 심하게 찌그러지며 멀리 날아갔다. 날아간 남자가 벽에 부딪히자 폐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진동이 생겨났다. 순간 다른 남자들이 움찔하고 말았다. 여자는 적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내 주먹을 주먹맛을 쬐끔만 보거라!”
정말로 주먹맛을 쬐끔만 보여줬을 뿐인데 남자 한 명이 엄청나게 심각하게 얼굴이 찌그러진 채로 날아가버렸다.
“내 주먹에 두 번은 없다! 내 주먹은 하늘도 가를 주먹! 너희들 같은 소인배가 내 주먹에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지!”
“소, 소인배라고? 우리가 소인배라는 거냐?”
“그렇다. 소인배는 대인배를 알아보지 못해서 소인배인 것이지. 얌전히 내 주먹의 제물이 되어라.”
여자는 싱긋 웃으며 남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 가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는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나가떨어졌다기 보다는 건물 벽에 박혀서 옴싹달싹도 못하는 수준이지만. 여자는 남자들을 모두 처리한 뒤 손수건으로 자신의 주먹을 닦았다. 이제 위층으로 올라가 볼까. 그렇게 생각할 때 갑자기 박수 소리가 났다.
“훌륭하군. 과연 보르미아 시를 지키는 침묵의 수호자라 할 만하다. 하지만 넌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회색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쥐며 여자에게 말했다.
“덤벼라. 우리의 거래가 끝날 때까지 너는 여기를 떠날 수 없다.”
“기세는 좋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여자가 땅을 박차고 뛰었다. 순식간에 남자의 지근거리까지 달라붙었다. 휘두른 주먹은 간발의 차로 남자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자신의 공격을 처음으로 피한 남자를 보고 여자는 호오 하고 소리냈다. 남자가 쓸데없는 백덤블링으로 거리를 벌렸다.
“소환! 푸딩몬!”
펑! 남자의 소환술로 거대한 푸딩이 나타났다. 사람 키만한 파란색 푸딩몬은 물컹물컹한 몸을 흔들며 말했다.
“안녕, 난 푸딩몬! 나와 좋은 거 하지 않겠니? 추릅추릅!”
“흥! 무슨 요리킹 조리킹도 아니고 별 쓸데없는 수작을 부리는구나!”
왠지 푸딩몬의 얼굴이 몹시 재수없었기 때문에 여자는 곧장 푸딩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주먹은 푸딩몬을 통과해서 반대쪽으로 튀어나왔다. 여자는 찝찝한 감촉에 얼른 주먹을 빼냈다.
“그렇군. 푸딩이라 물리적인 타격은 안 통한다는 건가.”
남자가 후후 웃었다.
“그렇다. 거기에 푸딩몬은 다른 사람들의 힘을 흡수해서 더욱 강해지지! 푸딩몬! 저기 쓰러진 녀석들의 힘을 흡수해라!”
“푸딩푸딩! 추릅추릅!”
푸딩몬이 여자에게 얻어맞고 나가떨어진 남자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묘사해야 하지만 존나 병신 같은 장면이라 생략한다. 솔직히 남자들 옷 벗겨지는 거에 누가 관심 있겠냐고!
“푸우우우딩!”
남자들의 힘을 흡수한 푸딩몬의 덩치가 훨씬 더 커졌다. 푸른색 안광을 내뿜는 푸딩몬의 얼굴이 몹시 음탕해 보인다. 여자는 으엑 하고 소리치며 뒷걸음질쳤다. 어째서인지 푸딩몬은 더욱 흥분하며 여자에게 덤벼들었다. 거대한 몸뚱이가 여자를 덮치려 했다.
“불꽃 주먹!”
이글이글 타오르는 주먹이 푸딩몬의 정중앙을 꿰뚫었다. 주먹의 불꽃은 곧 푸딩몬 전체로 옮겨붙었다. 푸딩몬은 타오르는 불꽃에 고통스러워하더니 점점 그 크기가 줄어들었다. 이윽고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남자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여자가 씩 웃었다.
“나의 강함에 네가 울었다. 눈물은 이걸로 닦아라.”
남자는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여자는 얼른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으로 올라온 그녀를 보고 3층을 지키던 남자들이 덤벼들었지만 모두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녀는 처음에 쫓던 남자가 있던 곳까지 걸어갔다. 조직의 보스와 검은색 가방을 든 남자가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너! 어떻게 여기까지!”
“내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여자가 주먹을 들었다. 남자 두 명이 침을 꿀걱 삼켰다. 눈치를 보며 도망치려 했지만 주먹은 그것보다 더 빨랐다. 순식간에 남자 두 명을 쓰러뜨린 여자는 검은색 가방을 주워들었다. 검은색 가방을 가지고 왔던 남자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빌어······먹을 리치리치······. 아이돌이나 계속하지 왜 여기 와서 깽판이야······.”
“닥쳐! 누구는 아이돌 하기 싫어서 안 하냐?”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여자의 이름은 리치리치. 스토커를 30등분 내고 절연 테이프로 붙여 준 뒤 매니저 눈을 찌르고 도망친 다음 도서관에서 농성을 벌인 전설적인 아이돌, 이제는 보르미아 시를 어둠 속에서 수호하는 침묵의 수호자다. 그리고 덧붙여서.
취미로 히어로 활동을 하는 언데드다.
============================ 작품 후기 ============================
폐급 아이돌이 좋은 프로듀서를 만나서 다시 아이돌에 도전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