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회: 화산건설 신입사원 설건우
갑자기 불어오는 돌풍, 경사로를 내려오다 흙탕물에 방향을 잃은 덤프가 최 반장을 덮쳤다. 그리고 설 차장은 덤프가 쏟아 낸 자갈에 파묻혔다.
영상을 보는 순간 움찔했지만, 트라우마가 될 만큼 아주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이미 지나간 일인 걸 인지해서인지, 아니면 화면 구도 때문인지, 평소 케이블 방송에서 틀어 주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
‘설 차장까지 다친 것 같은데······.’
“설 차장은 어찌 됐습니까? 이 몸의 주인 말입니다.”
“돌아가시진 않았습니다.”
“혹시······ 설 차장도 나처럼 다른 사람 몸으로 살게 되는 거요?”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진 않습니다.”
“그럼? 왜 나만 이렇게 된 겁니까?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해가 뜨고 지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그거야 우주가······.”
“그 우주의 운동도 넓은 의미에서 운명입니다.”
그저 운명이라니, 단지 운명 때문이라는데 따질 말이 없으니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운명이요. 좋습니다. 근데 하필 내 몸이 아니고, 설 차장 이 친구 몸으로 들어온 겁니까?”
“말씀드렸는데요. 운명이라고,”
“······.”
“영상을 좀 더 보시고 계속하시죠?”
영상은 장례식장으로 이어졌다. 빈소 가운데에 검은 리본을 두른 최 반장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고, 좌우로 업체들이 보낸 조화들이 줄지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조문객의 수는 조화의 수보다 적었다. 접객실에 남아서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은 최 반장의 마지막 소속사 우진토건 직원 넷이 전부였다.
“현장은?”
조금 전 조문을 마친 우진토건 한 상무가 물었다. 최 반장과는 30년 지기로 최 반장에게는 은인과도 같은 동갑내기 친구다.
“아직 징계 수위는 안 나왔는데, 최소 한 달은 현장 문 닫아야 할 거 같습니다.”
사고가 난 현장은 징계를 받는다. 특히 사망 사고라면 공사 중단 명령이 떨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사실 공사 중단은 실제적인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공사가 재개되고 나서부터다. 시공사에서는 공사가 중단된 기간을 어떻게든 만회하려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현장을 더 가혹하게 굴릴 수밖에 없다.
현장을 가혹하게 굴리다 보면 사고가 날 확률은 자연스레 올라갈 터, 그러다가 두 번째 사고가 나기라도 하면 더 가혹한 징계가 내려진다.
두 번째 징계를 얻어맞고 정신을 차리거나, 그게 싫으면 사고를 숨기거나.
출구 없는 악순환의 고리······.
“최 반장, 이 친구. 대한 놈들 욕을 그렇게 해 대더니, 가는 마당에 똥 한번 시원하게 뿌리고 가는구만······ 허허.”
한 상무가 최 반장의 영정사진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상무님 대한만 그런 게 아니라, 저희도 골치 아프게 생겼습니다.”
“최 반장님 초상 치르러 와서 지금 그걸 말이라고!”
옆에서 진미채를 질겅거리던 중년인이 젊은 직원을 쏘아붙였다.
“죄송합니다······.”
말실수를 깨닫고는 머리를 긁적이는 젊은 직원.
“못 할 건 또 뭐야? 이렇게 앉아 있는다고 죽은 최 반장이 살아 돌아오나? 산 사람은 살 걱정해야지.”
직원들의 대꾸가 없자 한 상무가 이어서 말했다.
“그나저나 최 반장 전처라는 여자는 연락됐어? 최 반장 사이에 자식이 있대? 없대?”
“없었습니다.”
“허어······.”
“이렇게 되면 최 반장님 벤츠는 어떻게 되는 거죠?”
직원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깟 벤츠가 문제가 아니라, 나머지 최 반장 재산을 어이할꼬······.”
“최 반장님 재산이 얼마나 되길래요?”
직원들의 이목이 한 상무에게 집중됐다.
“최 반장이 20년 전인가? 옥수에 빌딩을 하나 샀지.”
한 상무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직원들.
“최 반장님 빌딩이 있었어요?”
“옥수에 상가 빌라가 한 채 있는데, 그게 못해도 수십억은 하지?”
“상무님! 옥수면 100억 대는 될걸요?”
“최 반장님은 그 돈을 어떻게 모았대요?”
“젊을 때 최 반장 그 친구도 십장을 잠시 했어. 그때 자기 팀 데리고 한 달에 억을 가져갔으니까.”
“그러셨구나······.”
“아니, 근데 그렇게 재산도 있으면 은퇴하시고 유유자적 사시지, 왜 일을 나와서······.”
중년인의 말에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 부장. 우리 회장님 재산이 많을까? 최 반장 재산이 많을까?”
한 상무가 부장쯤 되어 보이는 중년인을 향해 물었다.
“그야 당연히 회장님 재산이 훨씬 많으시겠죠.”
“회장님 연세는?”
“작년에 회장님 팔순이라고 수건 나왔으니까 여든하나지요?”
“우리 회장님처럼 여든이 넘은 노인네도 돈 더 벌려고 악착같이 일하는데. 최 반장은 회장님보다 20년이나 젊어. 재산은 회장님 재산에 100분의 1도 안 돼. 그런 사람이 일을 해야겠어? 안 해야겠어?”
“그래도 회장님 하시는 일이랑······ 최 반장님 하시는 현장 일이랑 같나요. 최 반장님은 몸 쓰는 일인데······.”
“몸을 쓰든 머릴 쓰든 일이 그럼 다 힘들지. 씨바. 너 우리 회장님 일은 쉬워 보이나 보다?”
“그런 뜻이 아니라······.”
“대단한 친구가 이렇게 가는구먼······ 최 반장 재산이야 남아서 나라님이 가져가겠지만 그 아까운 기술들은 이제 못 쓰게 됐어.”
“그래도 그 기술들 전부 만렙 찍고 가셨으니까요.”
직원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노가다 만레벨 우리 최 반장을 위해 잔들 들지.”
마치 노련한 영상 편집자의 손을 거치기라도 한 듯, 영상은 한 상무가 소주잔을 비우는 것으로 멈췄다.
“······.”
“더한 장례식도 많습니다. 너무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굳이 이렇게 보여 드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산재 인정은 받았습니까?”
의사는 얘기치 못한 물음에 잠시 당황했다. 평생을 모았을 수백억대 재산이 물거품이 되었다. 아니라고 했지만 역대급으로 초라한 장례식까지. 오늘 이 K―신파 한번 제대로 찍겠구나 싶었는데, 느닷없이 산재라니?
“산재요?”
“아니, 됐습니다. 어차피 지난 일인데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한 상무가 그러지 않았나,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산 사람은 살 걱정해야 한다고. 그곳에서 산재를 인정받는다고, 보험금이 지금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산재 처리는 받았습니다. 더 궁금하신 거 없으시면, 저는 이만······.”
“그럼 의사 선생과는 이게 마지막입니까?”
“이 모습으로는 아마 그럴 겁니다.”
“또 만난다는 소립니까?”
“아마도요.”
“그럼 의사 선생. 가시기 전에 하나 물어봅시다.”
“뭐지요?”
“그 사고가 이번 생에도 일어납니까?”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럼 부탁 하나 합시다. 나 퇴원 좀 시켜 주시오.”
온몸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다. 이렇게 며칠만 더 병원에 갇혀 있다간 진짜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았다.
“······.”
“의사 선생도 아시다시피, 저는 환자도 아니잖습니까?”
의사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서 병실을 나가려던 의사가 갑자기 멈춰 섰다.
“더 할 말이라도 남았습니까?”
“더 할 말이라뇨?”
짚어 말할 순 없지만, 이 의사는 조금 전까지 있던 그 의사가 아니다. 어떤 존재가 잠시 이 의사의 몸을 빌렸다고 보는 게 맞다.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설건우는 어느새 꺼져 있는 티비로 시선을 옮겼다.
“설건우 환자분?”
의사가 손에 들고 있던 챠트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퇴원······ 하셔야겠는데요?”
의사도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내려가서 퇴원 수속 밟으시면 되십니다.”
* * *
병원에서 출소한 설건우는 고민에 빠졌다. 먼저 이 몸의 조모를 뵈러 갈지, 이 몸이 근무했던 현장에 먼저 갈 것인지.
집으로 가는 게 순서다. 하지만 아직 적응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몸도 몸이지만, 20여 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왔다.
어차피 한 번 거쳐 온 시대라 곧 적응할 것 같긴 하지만 사실상 오늘이 이 세상에 적응하는 첫날이다.
손자 걱정에 여념이 없는 조모 앞에서 실수라도 저지르면 큰일이다.
‘다시 병원에 수감될 위험도 있고······.’
일단 회사부터 가자. 회사에서 이 시대 적응 기간을 가진 다음 조모를 뵙자. 스스로를 위해서나 조모를 위해서는 나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부터 확인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간, 전화 걸 일이 없었던 설건우는 처음으로 전화기를 열어젖혔다.
―딸깍
오랜만에 느껴보는 플립 폰 감성에 추억에 잠기길 잠시. 연락처를 찾아 번호를 다 눌렀는데, 신호가 가지 않는다.
‘뭐지?’
한 박자 늦게 샌드 버튼을 찾아 눌렀다. 만일 할머니께서 이 장면, 전화기 사용법을 모르는 손자를 봤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역시 회사로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세요?
“할머니 접니다.”
―그래 내 새끼. 무슨 일로?
“아니요.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라. 방금 퇴원했어요”
―퇴원?
“네.”
―일찍 말하지 않고! 집으로 올 거야?
“아니요. 아니요. 아닙니다. 먼저 회사부터 갔다가 주말에 집으로 갈게요.”
―오냐. 오냐. 회사에 폐를 끼쳐선 안 되지.
사고 후 회사의 사후 처리는 깔끔했다. 말단 직원에게 1인 병실에 병원비며 모두 회사에서 처리해 줬으니까.
물론 근무 시간에 현장에서 다쳤으니 산재에 해당하는 일이지만, 조모로서는 칠칠치 못한 자기 손자가 회사에 폐를 끼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설건우 본인의 생각도 할머니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현장에서 혼자 자빠져서 이 사달을 내다니.
“그럼 항시 몸조심하고.”
“네. 걱정 마세요.”
할머니를 안심시킨 설건우는 문병 왔던 직원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며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라.
‘어······ 근데 현장을 어떻게 가더라?’
* * *
인천시 동우동 재건축 화산 아파트 신축 현장.
사무실로 들어서는 연종훈 대리.
“차장님? 건우 출근한다는데요?”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던 고민석 차장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벌써? 병원에서 퇴원시켜 준대?”
“벌써라뇨? 한 달이 넘었는데.”
“괜찮대?”
“괜찮으니까 출근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뭐래? 전화 와서.”
“현장 주소를 물어보더라고요.”
“뭐? 시발. 현장 주소를 물어? 그럼 아직 제정신 아닌 거 아니야?”
“확인차 물어본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고도 당했으니까 안전하게.”
“야. 막말로 시발. 혼자 현장 돌아다니다가 자빠진 게, 지가 사고를 당한 거냐? 지가 사고를 친 거냐?”
설건우의 사고로 현장은 물론, 지금 회사 전체가 발칵 뒤집혀 있었다.
“아무튼요.”
“우리 문병 갔을 때 기억 안 나? 그때, 그 자식이 소장님한테 뉘슈? 라고 하던 거.”
‘누구세요?’도 아니고 ‘뉘슈?’, 뉘슈? 였다. 이 장면이 생생한 고민석 차장으로서는 설건우의 퇴원이 긴장될 수밖에.
“그때가 언젠데. 차장님 그 뒤로 병원 한번 가 보고 안 가 봤죠?”
연종훈 대리의 뼈 있는 한마디에 살짝 움츠러든 고 차장.
“연 대리, 너는 몇 번 갔는데?”
“두 번이요.”
“그, 그러냐?”
살짝 미안해지는 고민석 차장.
“너무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갈 때마다 좋아지더라고요. 사람도 확실히 알아보고.”
“그래? 그래도, 이거 불안불안한데.”
공사 팀장 고민석 차장이 손톱을 깨물었다.
* * *
설건우가 현장 입구에 도착했다. 20년 전 전생의 설 차장과 인연을 맺게 된 사고가 난 현장이다.
사상자가 무려 스무 명이 넘는 사고가 있었던 현장. 그 사고 현장에서 최 반장은 사망자가 될뻔한 설건우를 부상자로 신분을 바꿔 놓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일곱 명의 동료가 전생 최 반장처럼 현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중에는 최 반장의 용접 사수와 이제 막 아빠가 된 용접사도 하나 있었다. 빈소에서 갓난쟁이를 품에 안은 채 울고 있던 새각시의 얼굴은 지금도 생생하다.
연종훈 대리에게 전해 들은 대로, 현장은 아직 사고가 났던 흙막이 공정이 시작되기 전이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한 달간 지켜보니 전생에 있었던 사건 사고가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까 만난 그 의사 선생의 대답도 그러했고.
“······.”
무려 20년 전의 사고다. 안타깝지만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그날 진행되던 공정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흙막이 3단 띠장, 오른쪽, 2,300짜리 2번 스트럿에 24미리 볼트를 채운 다음, 까치발 용접 직전이었다.
공정은 날짜보다 정확하다.
20년 전 최 반장은 일하기 바쁜 현장 인부 1에 불과했다면, 이번엔 미래를 아는 화산건설 신입 사원 설건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