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회: 돌관 공사_인터미션 (4)
“야리끼리라···”
고압 호스를 잡은 임씨 아저씨의 표정이 썩 진지해졌다. 반대로 일꾼들의 얼굴에는 일을 빨리 마치고 집에 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만!”
“우리가 또 야리끼리 전문인 건 또 어떻게 알아보시고. 하하!”
“자네들은 조용히들 해봐!!”
임시 작업팀 반장을 맡은 임 씨 아저씨가 작업팀을 진정시켰다. 일을 빨리 마치고 집에 갈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 때문에 덜컥 야리끼리를 받았다가는 큰 낭패를 보기마련이다.
야리끼리에 대한 선택권은 대부분 일꾼이 쥐기 마련이다. 딜이 들어오면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 작업할 물량과 팀 구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야리끼리를 받을지, 아니면 물릴지.
“임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날도 추운데 후딱 해치우고 퇴근하자고!”
설건우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용역 사무실에서 나온 근로자 중에 이 작업의 난이도를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니!
물론 지금 작업 양상이 썩 좋지는 않다. 그리고 어떤 돌발 변수가 발생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건 힘을 쓰는 작업이 아니다. 추위와 물에 대한 거부감만 이겨내면 된다. 지금도 물은 데워지고 있다. 돌발 변수만 아니라면, 작업이 진행될수록 작업은 점점 수월해진다.
이를 토대로 이들을 설득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야리끼리는 상대를 설득하는 토론이 아니다. 시간당 임금을 두고 다투는 철저한 비즈니스다. 설건우는 이 용병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내버려 둬 보았다.
“임 씨! 바가지 차도 5톤이겠다! 뭐가 문제야! 그럼 임 씨는 빠져 우리끼리 할 테니까! 기사님! 합시다! 야리끼리!”
단체 야리끼리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한 명이라도 거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실상 야리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이 사람들아! 작업이 어디까진 지도 모르고 야리끼리를 받아?!”
“······”
“작업이 어디까지인가?”
임씨 아저씨가 물었다.
“저기 코너까지 펜스 청소. 이후 마지막에 염화칼슘 뿌리는 것 까집니다.”
설건우가 대답했다.
“펜스 청소까지라면 그 야리끼리 받겠네.”
“흐음···”
대부분의 물은 땅에 닿기도 전에 보루로 닦아 내고 있다. 하지만 고압으로 뿌려진 물이 사방으로 튀어 인도를 적시는 양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밤사이 행인이 미끄러져 만에 하나라도 설건우처럼 다치기라도 하면, 일이 매우 커질 수도 있다.
따라서 작업 완료 후, 염화칼슘은 꼭 뿌려야 한다.
“염화칼슘은 저희가 뿌릴게요.”
이현희 실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홍보실 직원들의 표정을 보니 이미 합의가 된 것 같았다.
“그럼, 야리끼리 받도록 하지!”
“그렇게 해요! 건우 씨!”
“예! 설 기사님. 저희가 마무리하겠습니다!”
홍보실 직원들이 의욕을 보였다! 용병들과 본사 직원들의 시선이 설건우에게 모여들었다.
모든 일에는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야리끼리도 마찬가지다.
“야리끼리라고 날림으로 하거나, 위험하게 작업하시면 안 됩니다!”
“기사님이 빤히 보고 있는데 날림으로 한다고? 그냥 넘어가 줄 건가?”
“나도 처가 집에서 기다린단 말이야. 안전하게 할 테니 걱정마슈!”
“저도 젖먹이가 둘입니다. 한 대가리 하자고, 몸을 다쳐요? 어림없습니다. 작업 안 하고 말지.”
설건우의 인복이 이런 곳에서까지 터질 줄이야! 비록 용역 사무실에서 급조된 팀이라고 하나, 멤버들 안전 의식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좋습니다! 작업 시작하시죠!”
“와아! 잘됐다!”
이현희 실장은 뭐가 그리 기쁜지 손뼉까지 쳐댔다. 장갑 때문에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후딱 해치우고 퇴근하자고!”
“내가 말이야, 종남 현장에서 폼(사각형 형틀, 거푸집) 정리 야리끼리를 했는데, 두 시간 만에 끝내고 퇴근했지 뭐야.”
이런 이유로 야리끼리를 함부로 받아서도 안 되지만, 함부로 줘서도 안 된다.
“입 다물고 물이나 잘 닦아! 데나오시 내지 말고!”
“어이! 최 군! 너무 몸 사리지 말라고! 젊은 친구가 이 추위가 무서워서 그렇게 움츠려 있어서 되겠어?”
“죄송합니다!”
“후딱 끝내고! 사우나 가서 몸 좀 지져야겠구만!”
“자! 자! 이러고들 있을 시간 없어! 작업 시작하자고!”
“기사님! 바가지 올려보쇼!”
조금 전까지 움츠려 있던 일꾼들과 같은 일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움직임이 달라졌다.
“얼기 전에 팍팍! 긁어내리라고!”
“얼다니?!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납니다!”
“어? 고무장갑도 필요 없겠어요. 물이 따듯해요!”
당연한 소리다. 지금도 물은 데워지고 있으니까. 거기에 고압호스까지 보양해 열 손실까지 줄였다!
-쏴아아아!!
고압 살수기에서 뜨겁게 데워진 물이 펜스를 향해 사선으로 쇄도했다.
살수기에서 뿜어져 나온 온수를,
-뽀드득! 뽀드득!
스퀴지가 훑어내리면,
-쓱싹! 쓱싹!
보루 중에 수분 흡수에 탁월한 타월 보루가 매조지었다!
‘작업은 이렇게 하는 거지···!’
설건우가 보루를 들고 일손을 거들려 하자,
“어허! 야리끼리 받았으니 작업은 우리가 해야지! 기사님은 물이나 안 떨어지게 봐주쇼!”
“예. 옙!”
설건우는 보루를 내려놓았다.
“어머, 어미! 와아···! 대박! 대박! 건우 씨! 저분들 완전 달라졌어요!”
이현희 실장이 아까와 달라진 펜스 작업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사를 살포하고 있았다.
“퇴근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하하.”
“맞아! 맞아! 하하!”
“그나저나 가만히 계시지 그랬습니까?”
“뭘요?”
“저분들 염화칼슘 뿌렸어도 오케이 했을 텐데.”
“에이! 그거 뿌리는 거 얼마나 걸린다고, 저희들이 하면 10분이면 끝난다면서요?”
“뭐 그렇긴 그렇죠. 하하”
-쏴아아아아
뜨끈하게 데워진 지하수가 RPP(Recycling Plastic Pannel) 펜스를 향해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얼어붙어 있던 얼음 조각을 녹여냈다.
펜스에서 수증기가 하얗게 일었다.
“야리끼리라는 거. 대단하네요.”
“실장님도 야리끼리를 압니까?”
설건우가 물었다.
“그럼요! 저도 건설사 다닌 지가 몇 년짼데! 본사 직원들도 다들 현장 돌다가 오셔셔 그런지 본사에서도 많이들 쓰시거든요.”
“그러시구나.”
“야리끼리. 데나오시! 한 대가리 또···”
“어어! 거기까지만 하세요. 뭐 좋은 말이라고. 그리고 이 실장님 같은 사람이 현장 말 쓰니까···”
말을 얼버무리는 설건우. 누나한테 귀엽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쓰니까 뭐요?”
“뭐. 그냥.”
“그냥 뭐요?”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칫! 언제 밥이나 한 끼 해요? 누나가 살게요!”
“옛?”
“어이! 아삼육! 잘 하고 계신가!”
대흥토건 한 소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 왔다. 고개를 돌리니 한 소장이 엉금엉금 등장했다.
백호 반 대가리 덕분인지 얼굴에 승자의 웃음이 가득했다. 그 표정을 보니 심술이 올라오는 설건우!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물탱크에 구멍 몇 개 뚫어주고 백호 반 대가리 챙기신 분 아닙니까!”
“어허! 구멍 몇 개라니! 그거 뚫는 게 쉬운 줄 아나?”
“예예~! 어련하시겠습니까? 드릴 스위치 당기는 게 참! 대단한 기술입니다! 그쵸?”
“역시 아삼육이라 아는 구만! 엇? 이 분이?”
이현희 실장은 설건우와 한 소장의 대화가 재밌는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아. 인사 하십쇼. 화산 홍보 실장님.”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이 분은 대흥건설 한장수 소장님이십니다.”
“아! 네! 현장 잘 부탁드려요!”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저희 화산 e아파트 1호 현장이거든요!”
“화산 e아파트요? 그게 아파트 이름입니까?”
“네!”
“그거참 있어 보이고 좋습니다. 그려!”
“잘 부탁드려요!”
“우리 대흥토건이 가진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서 지어드리겠습니다!”
“풉!”
설건우의 웃음에 흠칫하는 한 소장.
“실장님!”
홍보실 직원이 이현희 실장을 불렀다.
“그럼 실례할게요!”
“예. 실장님 일 보세요.”
한편, 직원들은 펜스와 맞닿은 인도를 통제하고 있었다. 임 씨 아저씨가 물이 튀지 않게 요령껏 물을 뿌리고 있지만, 고압이다.
언제 갑자기 손잡이를 놓칠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펜스 주변으로 펜스에 부딪힌 미세한 물 알갱이들이 날리기도 했고.
“죄송합니다. 앞이 공사 중이라 그런데 이쪽으로 가 주시겠어요?”
불행 중 다행으로 한파에 거리는 한산했다! 하지만 한파에도 거리를 걸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화산 홍보실 직원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따듯한 캔 커피를 나눠주며 행인들을 펜스 건너편으로 안내했다.
***
-쏴아아아!
“자자! 어서 훑어 내리라고!”
일꾼들이 마치 설건우에게 테이밍이라도 당한 것처럼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조금 추워도 참고 움직이자고! 금방이야!”
“막내야! 물기 얼른 안 닦고 뭐 하고 있어!”
“이씨 아저씨! 그거 밀대 좀 잠깐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보루로 물을 닦던 가장 젊은 일꾼이 물을 훔치는 스퀴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뭐하게?”
“물을 더 아래로 내린 다음에 닦으려고요!”
“그거 좋은 생각이구만! 저기 남는 거 있으니까! 저거 갖다 쓰면 되지! 내 연장 주면 나는 뭐 하고 있으라고?!”
“저거 써도 되나요?”
“저기 화산 기사한테 물어봐!”
“예!”
젊은 일꾼은 한 소장과 기 싸움 중인 설건우에게 다가갔다.
“기사님!”
“예!”
“저 밀대 새것 좀 써도 되나요?”
“뭘 그런 걸 묻습니까! 작업에 쓰자고 준비한 건데!”
“알겠습니다!”
설건우는 저 젊은 일꾼이 뭘 하려는지 호기심을 갖고 바라봤다.
젊은 일꾼이 설건우가 여분으로 준비한 스퀴지를 집어 들었다. 한 손엔 스퀴지 한 손엔 보루를 쥐고 위에서 훑어주는 물을 아래로 한 번 더 쓱! 밀어내고 나머지 수분을 보루로 훅! 하고 훔쳐냈다.
그걸 본 다른 보루 작업자!
“저거 써도 된대?”
“예! 쓰라고 세팅해 놓으셨답니다!”
“그래?”
다른 보루 작업자 1도 양손에 보루와 스퀴지를 움켜쥐고 작업에 돌입했다.
-쏴아아아!
“제법이야?”
재밌다는 듯 작업을 지켜보는 대흥 한 소장.
“그러게요.”
“아니. 저거 말이야. 호스 보양까지 했네? 아주 작정을 했구만?”
“뭐 기본 아닙니까?”
“쓰흡··· 설 기사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하나 묻자.”
“뭘요?”
“일 어디서 배웠어?”
“반 대가리?”
“이, 이!”
-쏴아아아!
-쏴아아아!
어느새 작업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건우 씨!”
“네!”
“식사하러 안 가세요?”
“글쎄요?”
‘역시 그건가···’
용병들로 이루어진 작업팀.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누구보다 빨리 연장을 손에서 놓고 식당으로 이동하는 게 원칙이다.
밥 먹으러 가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말인즉슨, 밥이고 뭐고! 추운데 빨리 집에 가겠다, 이거다!
“실장님 직원들 데리고 식사하고 오세요. 저하고, 여기 대흥 한 소장님이 행인들 유도하고 있을게요.”
“반 대가리?”
“풉!”
방긋 웃는 이 실장.
“저기 작업하시는 분들은요?”
“일 마무리 짓고 좀 늦게 드실 작정 같네요.”
설건우가 봐도 지금 상황에서 연장 놓았다가 다시 잡느니 끝내 버리는 게 현명한 판단이다.
“으음.”
“어서요 드시고 오세요.”
“작업하시는 분들 두고 어떻게 저희만 어떻게 먹으러 가요?”
이현희 실장이 홍보실 직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더니, 직원들도 각자 위치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시마이~~~~!”
라는 외침이 들려 왔다!
“아직 아냐! 연장들 정리하고 마무리들 해!”
“예!”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얼른 호스부터 감자고!”
일꾼들은 연장 정리하기 바빠, 이 실장의 인사는 들리지도 않았다.
“이제 저희가 투입될 차례예요!”
이 실장이 홍보실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건우 씨! 이게 염화칼슘이죠?”
“예.”
설건우가 작업용 장갑으로 갈아끼고 염화칼슘 포대 쪽으로 움직였다.
홍보실 직원 하나가 낑낑거리며 포대를 뜯으려 하는데,
“내버려 두슈!”
“네?”
“옷들 다 버리겠소! 이봐! 이거까지 후딱 마무리해버리자고! 저 양반들 하는 거 답답해서 못 보겠구만!”
그도 그럴 것이 홍보실 직원들이 사복을 버리지 않으려, 엉거주춤한 자세로 염화칼슘 포대 하나를 두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럽시다!”
“비켜들보슈!”
“펜대 굴리는 사람들이 포대를 뜯어나 봤겠어?! 하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건우 씨?”
이현희 실장이 설건우에게 다가왔다.
“뭐 먹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