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설명가 만렙 신입사원-76화 (76/219)

# 76 회: 안전제일 (9) <수정>

감리라도 없었으면 계측 기사와 설건우를 구슬려 보기라도 해 볼 텐데, 감리 귀에까지 들어간 이상 어물쩍 넘어가긴 글러 먹었다.

“설 기사, 어떡할 거야!”

“어떡하긴 뭘 어떡합니까?!”

“설 기사가 설치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난 거 아니냐고!”

“그건 제가 할 소리 같은데요?”

“설 기사가 할 소리라니?”

설건우의 시선이 띠장에 부착된 센서를 가리켰다. 한 소장의 시선이 설건우의 시선을 따라 띠장에 부착된 센서에 닿았다. 이어서 센서에 연결된 케이블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 한 소장, 케이블의 끝이 계측기에 꽂혀 있었다.

“뭐, 뭐야?”

“뭐긴 뭡니까! 내가 이럴 거 같아서 그~으렇게 스트러트에 달자고 했는데, 바득바득 띠장에 달자고 한 사람이 누구냐고요!”

시치미를 뚝 떼고 역공에 들어가는 설건우.

“저, 저 스트러트가 아니라 띠장에서 20톤이 넘었다고?”

한 소장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계측 기사.

“예. 분석해 보면 20톤 넘어갈 수도 있고요.”

계측 기사가 설명을 보탰다.

“······.”

어이가 없는 한 소장.

“한 소장님이 역시! 전문가라 다르시네. 토류판 삐죽! 튀어나온 걸 어떻게 알아보시고 하중이 거기 걸린다며 센서를 거기에 달자고 하더니만. 우리 한 소장님이 큰일을 하나 하셨네. 큰일 하셨어!”

한 소장 덕분에 획득한 데이터다. 이 결과치를 근거로 어떻게 해 보면 반나절 정도는 작업을 중단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설건우.

“이, 이보쇼! 계측 똑바로 한 거 맞아요?”

불똥이 애꿎은 계측 기사에게 튀었다.

“못 믿으시겠으면, 다른 업체 불러다 해 보시든가요.”

이미 이 업종을 뜨기로 마음을 먹은 계측 기사다. 더 이상 눈치 볼 이유는 없다.

“뭐?! 뭐라고?”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계측 기사를 노려보는 한 소장.

“한 소장님!”

감리 서 과장.

“예.”

“대흥에서 선정한 계측 업체 아니에요?”

“······맞습니다.”

“다른 업체 불러서 계측 다시 하는 건 좋아요. 좋은데요. 일단 오늘 계측한 거 분석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20톤 미만이면, 지금보다 계측 주기를 짧게 가져가면 되는 거고요. 만약에 20톤 혹은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죠.”

“다른 방법이라니요?”

“일단 계측 주기를 조정하고, 그래도 안 되면 보강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보, 보강이요?”

“네.”

“그 공사비는 누가 내고요?”

“죄송한데, 그건 대흥이랑 화산이 알아서 할 문제 아닌가요?”

“끄응······.”

한 소장이 자신의 뒷목을 지그시 눌렀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실제 작업한 강 사장을 욕해 봐야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일 뿐이다.

“기사님은 데이터부터 분석해서 결과지 보내 주세요. 언제 받아 볼 수 있을까요?”

설건우가 계측 기사에게 물었다.

“내일 아침에 올 때 가져오겠습니다.”

“예! 그럼 얼른 움직이시죠.”

“알겠습니다.”

서둘러 계측 기기들을 챙기는 계측 기사.

한편 멍한 표정으로 흙막이를 바라보는 한 소장.

“왜? 문제 있대?”

강 반장이 한 소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형님! 작업 똑바로 한 거 맞아요?”

“똑바로 안 했으면 저 화산 기사가 보고만 있었겠어?”

“그런데도 축력이 20톤이 넘어갔다고 하니까 하는 말 아니요.”

“무슨 소리야? 흙막이, 멀쩡하게 잘 서 있구만.”

“땅속을 형님이 어떻게 압니까?”

다시 흙막이를 살피는 강 사장. 그러고 보니 미세하게 토류판이 밀려 들어와 있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사람 속은 알아도 땅속은 모르는 법이다.”

한편 설건우는 흙막이 너머 언덕을 확인하고 있는 안전 김 차장에게 슬그머니 다가갔다.

“차장님.”

“응?”

“이건 순전히 제 느낌인데 말입니다.”

“무슨 느낌?”

“느낌이 좋지 않아요. 꿈자리도 뒤숭숭하고요.”

“꿈까지 들먹이면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사람 불안하게.”

“제가 불안해서 말입니다.”

“뭐가?”

“흙막이 징조가 안 좋은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관리 기준을 넘어갔으니까. 좋은 상황은 아니지.”

“그럼 안정화될 때까지 작업을 중단시키는 건 어떻습니까?”

“작업 중단? 너 진심이냐? 너, 나한테 이런 얘기 한 거, 고 차장님 알면 펄쩍 뛸 텐데?”

“공사도 좋지만 안전부터 확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안전을 위해서 작업을 중단했으면 한다?”

“예.”

“언제부터 언제까지?”

“그건······ 어······ 내일 하루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중단 근거는? 건우 네 느낌?”

“······.”

* * *

회의실.

“그러니까 어디가 문제라는 거야?”

나용남 소장이 물었다.

“우리가 시공을 잘못한 거야? 아니면 설계가 잘못된 거야?”

나용남 소장이 다시 물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 시공에는 문제가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썰이 집중적으로 관리하기도 했고, 한 소장이 데려온 업자도 일은 꼼꼼하게 잘하더라고요.”

“그럼? 계측을 잘못한 거 아니야? 스트러트는 또 괜찮다며?”

“그거야 띠장 쪽으로 편토압을 먹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스트러트 결과와는 별개로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고 차장이 대답했다.

“감리단은 뭐라고 안 해?”

“관리 기준이 넘어섰으니, 일단 향후 관리 대책 세워서 제출하라고 하는데요?”

“다행이네, 작업 중단하자는 소리 안 나와서.”

“예.”

“현장은 어때? 문제 있어?”

나 소장이 안전 김 차장을 향해 물었다.

“큰 문제는 없습니다.”

계측 데이터가 관리 기준을 벗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흙막이가 무너지는 건 아니다. 관리 기준을 준수했다고 해서, 안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근데, 왜 축력이 20톤이나 늘었을까? 편토압이 왜 발생했냐는 말이야.”

나 소장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거에 관해서는 이걸 한 번 봐 주시죠.”

안전 김 차장이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을 집어 드는 나 소장.

“뭐야 이거? 땅이 왜 갈라져?”

“해빙기라서 얼었던 땅이 조금씩 녹아서 그런 거 같습니다.”

“여기가 어딘데?”

“지금 흙막이 쪽 언덕입니다.”

“이렇게 지반이 이완되면 흙막이 배면 상재 하중(上載荷重, Surface Load)이 늘어나긴 하지. 그런데 그거 지반 조사해서 다 반영해서 설계했을 텐데, 뭐.”

공무 최 차장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지반이 일정해야 말이지요.”

고 차장이 말했다.

“고 차장 말도 일리가 있지. 더군다나 우리 현장은 관이 나오지 않았나? 거기다, 옛날에 산사태까지 있었던 지대다 보니까 변수가 좀 많긴 하다.”

공무 최 차장의 말에 각자 생각을 정리하는 직원들.

“그건 그렇고 날씨 풀리면 더 늘어날 거라는 소리 아니야?”

나 소장이 물었다.

“그래서 일단은 계측 주기를 짧게 가져가려고 합니다. 내일도 계속해서 계측할 예정이고요.”

고 차장이 말했다.

“좋아. 만약에 내일 위험 단계로 넘어간다 치면, 감리단에서 대번에 보강하라고 나올 텐데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나 소장이 고 차장에게 물었다.

“어스 앙카 추가가 제일 무난하지 싶습니다. 아직 현장에 드릴도 두 대나 그대로 있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나용남 소장.

“그래. 감리에서 말 나오면, 가타부타하지 말고 바로 보강해 버려. 어쓰 드릴 나가기 전에.”

“예. 그렇게 대비하는 중입니다.”

고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소장님.”

설건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 썰번트.”

이 문제를 찾아낸 건 막내 덕분이다. 칭찬을 하긴 해야 하는데, 계측기 덕분에 문제가 터졌으니 마냥 칭찬이 나오진 않았다.

“관리 기준이 넘어섰는데, 흙막이 작업을 잠시 중단하는 건 어떻습니까?”

설건우가 예측하길, 사고가 났던 2단 스트러트 설치는 내일 점심 이후가 될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사람들 접근을 막아야 한다.

“작업 중단?”

“예.”

“인마! 네가 감리야? 감리 입에서도 안 나오는 작업 중단을 공사 담당이 먼저 내뱉어? 죄송합니다, 소장님.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고 차장이 수습하고 나섰다.

“고 차장, 됐고! 이유나 들어 보자고. 썰번트 덕분에······ 덕분이 맞나? 아무튼, 건우 날뛰는 바람에 이렇게 일찍 알게 된 거 아니냐? 말이나 들어 보자.”

나 소장이 말을 마치자 직원들의 시선이 설건우에게 모였다.

“제가 제일 처음에 끼익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말입니다. 느낌이 쐐! 하더라고요.”

“뭐라고? 느낌?”

어이가 없는 고 차장.

“어허! 고 차장!”

“······죄송합니다.”

“그런 소리가 흙막이 넘어지기 전에 전조 증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셨고요.”

“누가?”

나 소장이 물었다.

“김 차장님이요.”

“김 차장도 그 소리 들었어?”

“예.”

“김 차장 생각은 어때? 안전팀장 관점에서 작업을 중단하는 게 맞아? 아니야?”

“안전 관점에서야 당연히 작업 중단을 하고 싶긴 한데······.”

말끝을 흐리는 안전 김 차장.

“어허! 그거 흙막이가 자리 잡는 소리라니까?”

고 차장이 말했다.

“예. 흙막이가 고 차장님 말씀대로 자리를 잘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문제는 20톤 변형이 생겼다는 사실 아닙니까.”

“그, 그거야, 막말로 관리 기준 넘어갔다고 가시설이 무조건 무너지는 건 아니니까 그러지.”

“그거야 우리끼리 하는 말이고요.”

“흐음.”

턱을 괴는 나 소장.

“내일 계측 들어오기로 했다며?”

“예.”

“내일 결과 보고 판단하자고. 위험 단계가 몇 톤이야?”

“30톤입니다.”

* * *

“어? 어제보다 또 5톤 늘었는데요? 분석해 봐야 알겠지만.”

계측 기사가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그냥 보강해! 보강.”

체념한 한 소장이었다.

“보강을 아무 데나 합니까. 도면이 나와야 하지.”

설건우가 말했다.

“도면은 무슨, 도면대로 시공했는데도 이 사달이 났는데!”

“고 차장님, 어떡합니까?”

설건우가 물었다.

“거참, 희한하네, 가시설 자빠지기 전에 보통 끼익 끼익 소리가 나는데.”

“그런 곳만 있으면 다행이게요? 아무 징조 없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곳이 있으니까 인명사고가 나는 거죠.”

감리 서 과장이 말했다.

“그래서 서 과장님 어떡했으면 좋겠습니까?”

“어제 22톤, 오늘 5톤이면 30톤이 안 되네요. 아직.”

“그렇죠.”

“아직은 경고 단계니까, 보강공법 검토하셔야겠네요.”

다행히 작업 중단은 아니다. 고 차장으로서는 만족할 만한 성과다.

“썰!”

“예?”

“소장님한테 보고 하고 올 테니까, 문제 생기면 바로바로 보고해.”

“예!”

흙막이 작업장을 빠져나가는 고 차장. 설건우가 감리 서 과장에게 다가갔다.

“과장님?”

“네?”

“근데 5톤이 5톤이 아니지 않습니까?”

설건우가 말했다.

“네?”

“기사님, 지금 통밥으로 5톤이라는 거지 이 데이터도 분석해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계측 기사가 대답했다.

“어머. 그러고 보니 그러네! 설 기사님 아니었으면 실수할 뻔했네!”

“어떡하죠?”

“일단은 결과치 기다려 보기로 해요.”

“예. 그렇게 하시죠.”

설건우가 스트러트 계측 중인 계측 기사에게 다가갔다.

“기사님, 결과치는 언제쯤 나올 수 있습니까?”

“내일요?”

“최대한 빠르면요? 오늘 오후?”

이렇게 되면 결과치를 기다릴 게 아니다. 결과치가 어제, 오늘 30톤을 넘어간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면 결국 칼춤을 추는 수밖에 없다.

“······.”

어떤 칼춤? 흙막이 근처로 가는 사람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점심시간에 김 기사의 백호를 탈취해 흙막이 작업장 입구를 막아선다? 그것도 아니면,

‘간이 화장실을 가져다가······.’

방법이야 널리고 널렸다.

“에효! 이 짓거리도 오늘로 끝이다. 끝이야.”

계측 기사가 스트러트에 부착한 센서를 뜯으며 말했다.

“기사님? 마지막이라뇨?”

스트러트 아래에 있던 설건우가 위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퇴사하거든요.”

“퇴사요?”

“예. 이제 데이터 조작 같은 거 그만하고, 정직하게 기술이나 배우려고요.”

이거 잘만하면 칼춤은 안 춰도 되겠는데? 가는 마당에 조작 한 번만 더 하자고 하면 할까? 아니면 돈으로 매수를 해? 기본적으로 양심이 있는 사람이다. 금품으로 매수하려 들었다가 오히려 반감을 살 뿐이다. 일단은 설득이 우선이다.

“그럼, 저하고 일하나 같이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하하. 제가 기사님하고 같이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결과치를 좀 일찍 받을 방법이 없을까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하. 그 짓거리 하기 싫어서······.”

“부탁 좀 드립니다.”

“그러니까 지금 결과치를 오버가 되도록 조작하자는 말씀입니까?”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국에 조작이 문제던가?

“예.”

“왜 그러시는지 이유나 들어보죠.”

“무너질 거 같아서요.”

“······.”

이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일까? 설건우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계측 기사.

“저도 압니다. 알죠. 얼토당토않게 들리는 거. 그래서 이렇게 부탁드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기사님은 흙막이가 무너진다고 확신을 하고 계신 거 같습니다?”

전생에서 겪었다고 하면 미친놈 소릴 듣겠지. 설건우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여기 구조계산서에 나온 지질과 실제 흙막이 구역의 지질은 다릅니다. 여기 흙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풍화토가 아니지 않습니까?”

흙을 한 움큼 집어 들어 보이는 설건우.

“이 위치는 오래전 산사태가 있었던 지대입니다. 그때 떠밀려 온 분묘도 저희가 발견하기도 했고요. 아마 설계에서 그걸 고려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해빙기이기도 하고요.”

“분묘 이야긴 들었습니다. 기사님이 찾으셨다고요?”

“예. 제가 감이 좋습니다.”

감이 아니다, 분명 토질을 보고 찾았다고 들었다.

“······”

여태 이 일을 하면서 계측 값을 낮춰달라는 요구는 있었어도, 흙막이가 무너질 거 같으니, 높여달라는 요구는 처음이다.

계측 기사는 흙막이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당장 멀쩡해 보이지만 배면의 토압과 치열하게 싸우는 중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계측 기사다.

계측 값을 낮추는 건 문제가 될 여지가 있지만, 계측 값을 높이는 건 문제가 없다. 원래 보수적으로 분석하지만, 산사태가 있었던 현장 특성상 더더욱 보수적으로 분석했다 치면 그만이다.

“저는, 기사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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