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설명가 만렙 신입사원-86화 (86/219)

< 기술이 영업이다 (3) >

뉴스는 실제 인명 피해가 일어났던 사고현장의 원인을 집중 분석하며, 마지막으로 화산 동우동 현장의 사례를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안전관리의 중요성과 더불어 현장 엔지니어링의 중요성까지 동시에 부각했다.

“저거, 저거 무너졌어 봐, 큰일 날뻔했네! 정말로 화산이 기술이 좋은가 보네?”

티비 앞, 중년 여성이 사과를 깎으며 말했다.

“아파트 짓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기술이 좋고 말고가 있나?”

무심하게 사과를 입에 넣는 중년 남성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얼마 전에 대전 고모네 아파트 분양받아서 이사 갔잖아요.”

“대한 아파트라고 하지 않았어? 대한이면 확실하지 뭐.”

“대한이면 뭐해요? 층간 소음은 윗집 잘못 만난 탓이라고 쳐. 근데 욕실 물 새지. 안방 벽지에 곰팡이 피지. 이 아파트 분양받아서 들어 오느니 차라리 전세 좀 더 살 걸 그랬지 하면서 후회하지 뭐예요.”

“대한이면 그래도 우리나라 1등 2등 하는 메이커 아냐?”

“메이커가 좋으면 뭐해. 아파트가 하자투성이라는데.”

“화산은 그런 하자가 없나?”

“글쎄 요새 화산 파크 뭐시기라 그러면서, 아파트를 고급으로 짓는다잖아요.”

“그래?”

“우리도 재건축 허가 나면 화산이 지었으면 좋겠는데.”

“그놈의 재건축 이제 포기할 때 되지 않았어?”

“올해는 좀 풀어준다는 소문도 있대요.”

“그 소리는 내가 매년 들은 거 같은데?”

“올해는 경기가 워낙 안 좋으니까 다들 기대하는 눈친데···”

“언제 경기 좋았던 적이 있었나?”

***

화산 본사, 사장실.

화산 이남철 회장과 정호철 사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마주 앉아 있었다.

“수고했어.”

이 회장이 말했다.

“이 실장이 이번에 화산 홍보 하나는 톡톡히 했습니다.”

“그러라고 월급 주는 거 아닌가?”

늦둥이 딸이라 어렸을 때는 애지중지 키웠지만, 머리가 커지고 나서부터는 딸도 별 볼 일 없는 이 회장이었다.

“하하. 회장님도 참. 칭찬할 건 해주셔야지 일하는 직원도 힘이 나지 않겠습니까?”

“칭찬 몇 마디로 직원들이 힘을 내? 정 사장 아직 멀었구만.”

“그건 그렇고 회장님 최근에 출근이 잦으신 거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요새 회사가 재미있게 돌아간단 말이지.”

이 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정 사장.

“회장님 말씀 듣고 보니 진짜 그렇습니다.”

정 사장이 최근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렸다. 대뜸 원록재단 이 사장이 회사를 찾아와서 공사를 맡아달라지 않나, 이번에는 현장에서 사고를 막는 바람에 언론플레이까지 하고 있었다.

둘 다 별개의 사건이지만 파고 들어가 보면, 동우동 현장의 막내 직원, 설건우라는 놈이 관여되어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해. 언론에서 이렇게까지 우리한테 금칠을 해주는데, 어디 현장에서 덜컥 사고라도 나 봐. 나나, 정 사장이나 어디 고개 들고 다닐 수 있겠어?”

“예. 안 그래도 현장에 별도로 지침 내려놨습니다.”

“지침?”

“예.”

“다른 회사는 현장에 사고 내고 아파트 대충 지으라고 지침 내리나?”

“하하.”

“지침. 그 종이 쪼가리로 현장을 움직일 수 있을 거 같아? 천만의 말씀이야.”

“그럼 어떡합니까? 그런 지침은 아무 소용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정 사장의 물음에 소파로 등을 기대는 이 회장.

“현장을 바꾸려면 종이 쪼가리 보다, 돈을 쓰라는 얘기야. 사람도 마찬가지지. 허구한 날 교육이니 규정이니 말로만 떠든다고 현장이 나아지는 줄 알아? 정 사장도 노가다 오래 해서 알겠지만, 공사판에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 나고 하자 나는 이유가 뭐일 거 같아?”

“관리 소홀, 기술력 부족 아닙니까?”

“내가 그동안 정 사장을 잘 못 봤나? 이거 안 되겠구만. 사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고 말이야.”

“하하. 회장님 아직 제 이야기 안 끝났습니다.”

“계속해봐.”

“관리 소홀도 기술 부족도 제일 큰 원인이 돈 아니겠습니까.”

“그래. 잘 알고 있구만. 돈을 써야 현장이든, 사람이든 움직이는 법이야.”

고개를 끄덕이는 정 사장.

“돈을 어떻게 쓸지는 연구를 좀 해보겠습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들어 왔다.

“무슨 일이야?”

“사장님 문이상 전무님 전화 왔습니다.”

“조금 이따 내가 다시 전화 건다고-“

“받아 봐.”

“예.”

정호철 사장은 비서에게 전화를 연결하라고 지시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예. 전무님.”

-사장님 문 전무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송파 시영 아파트 재개발 건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인지?”

-일성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송파 시영 아파트 재개발 건은 무슨 얘깁니까?”

강남 한복판의 무려 6천 세대의 대규모 재건축 단지. 만약 재건축에 들어간다면 추정 공사비는 1조 5천억 원에 이르는 초대형 프로젝트. 일찌감치 일성물산과 금성건설 컨소시엄이 공을 들이고 있었다.

-제가 지금은 못 들어가고 오후에 들어가서 보고드리려고 하는데, 사장님 언제쯤이 편하시겠습니까?

“어... 그게 그러니까”

“전화로 얘기해 봐.”

이 회장이 툭! 끼어들었다.

“회장님이 그냥 전화로 보고 하라고 하시네요. 하하.”

-회장님도 같이 계시군요.

“예.”

-조금 전에 일성 금성 컨소시엄에서 연락이 왔는데,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군요.

“예.”

-그 전에 사장님 먼저 뵙고 단도리를 좀 해야 할 거 같아서 말입니다.

일성과 금성이면 대한과 더불어 건설사 도급순위를 넘어 재개 빅 3에 해당하는 업체들이다. 그 공룡 둘이 손을 잡고 1조 5천억 원짜리 공사를 움켜쥐고 있는 상황에서 화산에 만나자는 제안이 왔다? 흥미가 돋는 화산 정호철 사장이었다.

“다른 하실 말씀은?”

-없습니다.

“그럼 알겠습니다. 들어오시는 대로 제 방에서 뵙죠.”

수화기를 내려놓는 정호철 사장.

“회장님 이거 이번에도 재미있는 일이 생길 거 같습니다.”

정 사장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시영아파트 재건축 그거 우리도 끼워주겠다는 얘기야?”

이 회장이 물었다.

“그쪽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으면 그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우리한테 뭘 내놓으라고 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송파 시영, 조합 만들어서 설치고 다닌 지가 몇 년째인데. 그거 재건축이 되기는 되는 거야?”

“글쎄요. 정부에서는 경기 부양한다고, 규제를 완화 시킬 모양이던데, 서울은 또 정부 의지하고는 별개니까요.”

“정 사장이 알아서 잘 하겠지만, 일성이든 금성이든 그놈들이 우리한테 떡 나눠 먹자고 하는 데에는 분명 뭐가 있을 거야. 그러니까 괜히 숙이고 들어갈 필요 없어. 송파 시영? 내가 볼 땐 아직 멀었으니까.”

“예. 상대가 상대인 만큼 회장님께 족족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됐어. 사장이 알아서 하는 거지. 나는 훈수나 좀 두러 올 테니 사장 방문 걸어 잠그지만 말라고.”

“하하.”

***

소림 산업 사무실로 들어서는 설건우. 형을 발견한 설명우가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형! 씨바! 엄청 있어 보이던데? 저희가 가진 기술로 최고 품질 어쩌고 저쩌고!”

“그만 좀 해라. 인마 쪽팔리게 진짜.”

“길 가면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안 그래?”

“야 인마. 넌 뉴스에 한 번 나온 사람 길에서 알아보냐?”

“한번이 아니지! 다음 날에도 또 잠깐 나오던데 뭐! ”

“아무튼, 됐고! 회사 이름이 소림 산업개발이 뭐냐? 소림 산업개발이.”

“소림이 어때서? 작은 숲이라는 뜻인데 좋잖아?”

“누가 지었는데?”

“설 기사 왔나?”

회사 점퍼 차림의 김 사장이 설건우를 맞이했다.

“김 사장님. 축하드립니다.”

설건우가 김 사장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사무실엔 앉아 있던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설건우에게 다가왔다.

“인사들 하시죠. 이쪽은 우리 회사에 투자하신 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설건우가 단단히 허리를 숙였다. 어찌 됐건 이 사람들이 회사를 키워 나가야 할 사람들이다.

“어이쿠! 우리 설 팀장한테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뵈니 젊은 분이 대단하십니다.”

은퇴를 해도 벌써 했을 일흔이 다 되어 보이는 노인이 설건우의 손을 붙잡았다.

“하하. 아닙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벤처다 뭐다, 그런데 뛰어들기 바쁜데, 어떻게 건설업에 투자 하실 생각을 다 하셨습니까?”

“하하. 김 사장님 기술이야 확실하고, 동생 녀석 하는 걸 보니 잘될 거 같더라고요.”

설건우가 가장 잘 아는 업종이기도 하고.

“인사하지. 이쪽은 김정만 상무님.”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잘 부탁드려야지요.”

“이분은 이은철 부장. 얼마 전까지 두바이에 있다가 한국 왔네.”

“반갑습니다.”

새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는 설건우.

“나머지 분들은요?”

“젊은 직원들은 지금 현장에 나가 있어.”

“아...”

“일단 내 방으로 가지?”

“사장님 방이요?”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명우가 굳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말이네.”

김 사장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럼! 아무리 회사가 작아도 그렇지! 엄연히 건설사 사장인데! 사장이 직원들하고 사무실을 같이 써서야 쓰나!”

김정만 상무가 한마디 했다.

“들어가지.”

“예.”

김 사장 방으로 자리를 옮긴 설건우.

“사장님 근데, 직원들은 어떻게 아시고 데려오셨습니까?”

최소 건축기사 혹은 이에 준하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그런 사람들이 현장 근로자 출신 김 사장 밑으로 들어온다? 물론 갈 곳도 불러주는 곳도 없는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하하. 김 상무님이 나하고 먼 친척 되시네. 그리고 우리 이은철 부장은 우리 상무님이 데려왔고. 나머지 젊은 친구들은 중고 신입이야.”

알음알음으로 기술자 숫자를 맞췄다는 뜻이다. 현장에 있다는 신입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이들을 써먹기는 어려운 상황.

“설 기사 자네만 알고 있게.”

설건우의 근심을 읽었는지, 김 사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뭘 말입니까?”

“김 상무님이 화양 군청 건설교통계 출신이시네.”

군청 건설교통계라면 끗발 좀 날리는 자리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군요.”

“퇴직하신 지 오래돼서 당장 공사를 따오진 못하시지만, 대관업무는 곧잘 보시니까.”

“아... 두바이에서 오셨다는 부장님은요?”

“종남 있을 때, 어찌어찌 알고 지낸 친구였는데, 종남 관두고 두바이에 장비 사업하려고 넘어갔다가, 몽땅 뒤집어쓰고 온 모양이야.”

현장에 있다는 직원들은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이만하면 김 사장이 인재 영입에 공을 꽤 들였다는 것쯤은 알 것 같았다.

“흐음. 그나저나 지금 현장은 몇 군데나 돌아가고 있습니까?”

“아직 세 군데 그대로야. 내일 평택에 하나 철거 들어가는 곳까지 하면 네 군데지.”

“그렇군요.”

“걱정하지 말게. 공사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업자를 고르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니까.”

“업자요? 직영으로 안 하시고?”

공사를 수주해서 업자를 끼면, 관리하기는 편하지만, 아무래도 시공 품질이 저하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수익적인 측면에서도 조금 불리하기도 하고.

“우리도 직영으로 하고 싶은데, 명우가 수주해 온 공사 중에 잔잔한 것들이 좀 있어. 그렇다고 이제 사업 시작하는 마당에 실적을 올려야 하는데, 공사를 가려 할 수도 없지 않나? 공사비가 많든 적든 어떻게든 우리 면허로 쳐내야지.”

“그렇죠.”

“그래서 잔잔한 공사는 업자들한테 넘기려고 하네.”

“그렇군요.”

“무슨 걱정하는지 알고 있네. 내가 믿을만한 업자들을 여럿 알고 있으니 걱정 말게나.”

“예.”

“참! 그리고 자네! 우리 영업팀장한테 차를 사준 건 고맙네만.”

“예?”

“그렇다고 티코가 뭔가! 티코가! 영업하는 사람은 차가 얼굴인데!”

“저 자식 얼굴에 티코면 적당하지 뭘 그러십니까?”

“아니, 자네 동생이라면 적당하지 그런데 우리 소림 영업팀장이 아닌가? 영업팀장 차가 회사 얼굴이란 말이야. 투자하는 김에 조금 더 투자해주지 그랬나.”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지금 동생 놈이 혼자 소속도 없이 나까마 짓을 하는 건 아니니까.

“김 사장님 말씀 듣고 보니 그렇네요. 이거 어떡합니까?”

“아직 우리가 법인 차 뽑아줄 형편은 안되고, 명우가 사람 만나러 갈 때는 상무님 차를 쓰는 중이니까.”

“아이고! 김 사장님!”

“왜?”

“얼른 돈 벌어서 법인 차도 뽑아주고 하십시오! 직원 차를 갖다 쓰면 어떡합니까!”

어쩐지 직원들 면면을 살피니 외인구단이라는 만화가 생각나는 설건우였다.

그때, 사장실 문이 열리고 김정만 상무가 들어섰다.

“사장님.”

“예. 상무님.”

“우리가 다리도 놓을 수 있나?”

“다리요? 어떤 다리 말씀입니까?”

“도로공사 화양 지사에서 2억짜리 다리 공사가 하나 나왔다는구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