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막자 특허 >
“자! 업체별로 줄 좀 서보세요!”
새벽부터 목청을 높이는 안전 김 차장과 홍 대리. 유민 건설의 형틀 철근 작업이 시작되고 현장 출력 인원이 대폭 늘어났다.
“유민 오늘 몇 명입니까?”
설건우를 비롯한 공사팀은 업체별 출력 인원 체크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1공구에 형틀 목수 아홉, 철근공 열하나, 2공구에 형틀 목수 여섯, 용역 셋.”
“유민건설 토탈 스물아홉 명 오케이.”
“대흥은요?”
설건우가 한 소장에게 물었다.
“아침부터 몇 번을 묻는 거야, 이거.”
“설 기사! 내가 대흥이랑 오창은 확인했어.”
신입 이광영 과장이 말했다.
“아. 예! 고맙습니다.”
“고맙긴 내일부터 출력 일보는 내가 취합할게.”
“그, 그래도 될까요?”
원래 공사팀 막내의 업무다. 그 업무를 실질적 막내 이광영 과장이 하겠다고 하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응. 원래 이런 일은 막내가 하는 거잖아.”
“하하.”
“이 나이 먹고 쪽팔리지만, 어쩔 수 없지. 기왕 이 바닥 다시 들어 왔는데, 바닥부터 제대로 배워나가야지.”
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고마울 건 없고 설 기사 나 일 좀 가르쳐 줘.”
“하하. 제가 가르칠 게 있겠습니까?”
용접이나 목수 일을 가르쳐달라면 모를까.
“자! 복장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안전모!”
단상 위에 올라선 김 차장이 외침에 답하는 현장 사람들.
“이상 무!”
“턱끈”
“이상 무!”
“각반!”
“이상 무!”
“안전화!”
“이상 무!”
“안전모는 벗어서 오른쪽 발아래 내려놓으시고 체조 시작하겠습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사람들이 체조로 몸을 풀었다.
“헛둘! 셋넷! 헛둘! 셋넷!”
체조를 마치고,
“그럼 오늘부터 각 업체별 작업 내용 발표가 있겠습니다. 대흥 먼저 하시죠?”
그러자 안 대리가 대흥 한 소장에게 떠밀려 단상 위로 올라섰다.
“오늘 작업 내용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오늘 저희 대흥은 흙막이 작업 할 예정입니다. 이상입니다.”
짧은 발표를 마치고, 김 차장에게 마이크를 건네는 안 대리. 김 차장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은데,
“그게 답니까?”
“예.”
“안 대리님 마치고 저 좀 봅시다.”
“예.”
김 차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다음 오창이요.”
“안전! 반갑습니다. 오창 김철 과장입니다. 요즘 날씨가 슬슬 풀리면서 현장 바닥 상태가 상당히 안 좋은데요. 그래서 그런지 고개 숙이고 바닥만 보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은데! 여러분들 아시다시피 금일 저희 오창은 어제에 이어서 3동 7동에서 말뚝 작업이 계속될 예정입니다. 3동! 7동! 근처 지나치시는 분들은 바닥만 보지 마시고 위에서 떨어지는 건 없는지 머리 위도 주의를 기울여 주시고요! 또 저희 페로다(대형 지게차)가 파일(Pile, 말뚝) 옮기느라 계속 왔다 갔다 하니까 좌우로도 주의를 기울여 주십사 당부드립니다. 이상입니다. 안전!”
김철 과장의 발표가 길어지자, 발표를 듣는 둥 마는 둥 잡담을 늘어놓는 근로자들. 이어서 유민 건설 조정국 소장이 단상에 올랐다.
“어이 거기! 목수, 철근! 입들 안 다물어?”
조정국 소장이 유민 쪽 출력 인원들을 향해 쏘아붙였다.
“아침부터 관리자들이 발표하면 무슨 얘기하나 들어보고 조심할 생각을 해야지. 어영부영 너는 시부려라, 나는 모르겠다 이거여?”
“······”
“하는 말 잘 듣고 현장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일들 하란 말이여! 내일도 오늘처럼 했다간, 전부 집에 보내버릴 줄 알아!”
“······”
“대답들 안 해? 정신들 차리고 일하라고!”
“예!”
김 차장에게 마이크를 건네고 단상에서 내려가는 조 소장. 깡마른 체구의 노구 뒷모습에서 진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하하. 유민 조 소장님 말씀대로 여러분들 내일부터는 저희가 하는 발표를 좀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에 저희 화산 지침이 내려온 게 있는데, 매월 모범 근로자를 표창해서 현금을 주는 안전의 날 행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근로자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예. 보통 5만 원 10만 원은 많이들 받아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저희 화산은 올해부터 통 크게 매달 세분한테 50만 원씩 모범 근로자 격려금이 나갈 예정입니다.”
“50만 원?”
“이거 솔깃한데?”
50만 원이라는 얘기에 흥미를 보이는 근로자들.
“일단은 시험 삼아 시행할 예정인데, 반응 좋으면 예산을 더 늘릴 수도 있다고 하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김 차장이 말했다.
“누가 뽑는 겁니까?”
“저희 안전팀과 공사팀 직원이 뽑습니다. 그러니까 알아서들 잘 보이시기 바라고요. 구호 외치고 각 업체별 공정별 TBM(Tool Box Meeting) 실시하겠습니다. 오늘 구호는 유민 조 소장님 말씀대로 ‘정신을 차리자’로 하겠습니다. 구호 준비!”
“얏!”
“정신을!”
“차리자!”
“좋아! 좋아! 좋아!”
-짝짝짝!
“TBM 실시 하십쇼!”
유민 조 소장으로 인해 얼었던 조회 분위기가 격려금 덕분에 한층 밝아졌다. 조회를 마치고 뿔뿔이 흩어지는 현장 사람들. 화산 직원들이 원을 그리며 둘러섰다.
“50씩 3명이라, 쎈데?”
고 차장이 입을 열었다.
“본사 지침이니까 하긴 하는데, 효과가 있을까 싶네요.”
김 차장이 대답했다.
“그럼 삼진 아웃제인가 뭔가는 이제 안 하는 거야?”
안전 규정을 세 번 어기면 현장에서 퇴출하는 규정이었다. 물론 잘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예.”
“현장이 야구장도 아니고 말이야, 삼진 아웃제 그거 씨알도 안 먹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네.”
“돈값을 하느냐가 문제죠.”
“한 달에 150씩 30개월 치면, 4,500이네? 만만치 않네. 금방 없어지겠구만.”
공무 최 차장이 말했다.
“우리 이든 파크 분양가가 평당 450이라 치면, 아파트 한 채 가격도 아니고 꼴랑 10평 가격입니다. 4,500이면 해 볼 만하지!”
관리 한 과장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직원들.
***
5동 철근 작업을 확인하러 가는 길.
“얘기 들어보니까 현장에 관이 나왔다며?”
이광영 과장이 설건우에게 물었다.
“예.”
“와···”
“현장에 있다 보면 별일이 다 있으니까요.”
“흙막이 무너져서 뉴스에 나오질 않나. 현장 참 버라이어티하다.”
“이제 시작입니다.”
“이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20층까지 올리냐?”
“하하. 지금 토공사 위주라서 좀 그런데, 땅은 파보기 전까지 모르는 거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이광영 과장. 설건우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보이는 흙바닥만 공구리로 덮으면 그때부터는 순식간입니다. 일주일에 한 개 층씩. 총 아홉 개 동이니까, 매일 매일 1.5층씩 올라가기 시작하면 맨날 공구리 치느라 정신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아까, 유민 조 소장님 말씀대로 정신 바짝 차려야죠.”
“휴우. 그때 가서 적응 잘 해야 할 텐데.”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 걱정 마십쇼!”
“설 기사 네 얘기만 들어보면 현장 한 서너 개 뛰어본 사람 같냐.”
서너 개만 뛰었게?
“하하!”
-창! 창! 창!
5동에 도착한 설건우와 이 과장, 철근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제 좀 현장이 돌아가는 것 같네! 과장님, 철근 검측 맡기 전에, 저하고 피치랑 피복 한 번 점검 하시죠?”
“어, 그래.”
줄자를 잡고 철근 피치(철근과 철근 사이의 간격)와 피복(철근과 콘크리트가 채워질 공간의 간격)을 확인하는 설건우와 이 과장.
“조심하세요.”
격자로 엮인 철근 위를 뒤뚱뒤뚱 걷는 설건우와, 이 과장.
“잡으세요.”
“오케이.”
치수를 확인하는 두 사람.
“설 기사. 저기 하부근은 괜찮아?
”어디가요?“
”여기 많이 쏠렸는데? 이거 어떡하냐?”
이 과장이 가리키는 곳을 확인하는 설건우.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어야 할 하부근 한 줄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이 과장 안목으로 보자면 만약 상부근이라면 금방 수정이 가능한데, 하부근이라 수정이 어려워 보일 법도 하다.
“어떡하긴요. 철근 반장님! 어디 계십니까!”
설건우가 주변을 향해 외쳤다.
“무슨 일입니까?”
“예. 반장님, 저기 시다낑(하부근)이 많이 벌어 졌는데요?”
“어디가?”
“저기요. 다시 잡아야겠는데요?”
설건우가 한쪽으로 치우쳐진 하부 철근을 가리켰다.
“그러네?”
“쓰흡···! 아마추어도 아니고 이런 데나오시를 내서야 되겠습니까? 이거 감리가 봤었어 봐요.”
“초반부터 감리한테 찍힐 뻔했구만!”
“그러니까요. 잡을 수 있죠?”
설건우가 물었다.
“이런 거야 금방 잡지! 장 형! 빠루(쇠 지렛대) 들고 이리로 좀 와 봐! 참나! 여기 오비낑 누가 넣은 거야! 쪽팔리게!”
-탁! 탁!
금새 수정작업에 돌입하는 철근 반장.
“설 기사 저거 잡으려면 상부근 다 뜯어내야 하는 거 아니야?”
이 과장이 슬며시 설건우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것도 방법인데, 그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저걸 어느 세월에 뜯어··· 어?”
-철컹! 철컹! 탁! 탁!
빠루를 아래로 넣어 치우친 철근을 잡는 철근 반장.
“와··· 무식하게도 잡는다. 저래도 돼?”
“하하. 무식해도 저게 기술입니다.”
수정작업을 마칠 무렵 감리 서 과장이 5동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쇼!”
“검측 준비는 다 되셨어요?”
“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설건우와 이 과장이 줄자길게 늘어 뜨린다음 서 과장이 치수를 확인했다..
“휴우! 설 기사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뻔했네요.”
서 과장이 숙였던 허리를 펼쳤다.
“뭐가요?”
“철근 피복 말이에요.”
“하하!”
“1전 5리 올렸으면 큰일 날뻔했어요.”
“그러게요.”
“어떻게 치수가 하나같이 아슬아슬하게 나와요? 이거 저 보라고 일부러 버림 두껍게 치신 건 아니죠?”
“하하. 저희도 그렇고, 작업팀도 그렇고 일부러 일을 만들 리가 있습니까?”
“휴우··· 아무튼 다행이에요. 제 말 들었다가 큰일 날뻔했네요.”
“큰일은 무슨··· 서 과장님 말씀대로 했었어도 분명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그랬겠죠?”
“물론이죠. 그럼 철근 검측은 이걸로 마무리?”
설건우가 물었다.
“결속선이 군데군데 빠지긴 했지만, 결속선이 구조에 영향을 주진 않으니까요.”
게다가 22미리 두꺼운 기초 철근이다. 콘크리트 타설 중에 배근(철근을 설계에 따라 배열하는 것)에 변형이 생길 확률도 낮다. 결속선 몇 가닥이 중요한 건 아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당연한 걸 승인했을 뿐인데요.”
“그 당연한 걸 꼬투리 잡는 감리도 많거든요.”
“저도 들은 얘기가 있는데 그것도 모를까 봐요? 결속선 트집 잡을 수 있다는 거 저도 안다구요.”
“하하. 이거, 고맙습니다.”
“결속선 어디가 빠졌습니까? 그거 몇 가닥 묶는 게 무슨 일이라고 그러시고들 계십니까. 하하!”
보통, 결속선을 얘기하면 철근공은 짜증을 내기 마련이다. 앞서 말한 이유와 같이 몇 가닥 빠져도 품질에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이 팀은 짜증은커녕 오히려 적극적이다. 일하는 태도로만 봐서는 실행 소장이 운영하는 작업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반장님! 거기 말고! 저기 야기리(측벽, 외부와 접한 면)쪽이 많이 빠졌더라고요.”
“이거 참! 야기리 쪽은 누가 작업했어! 양 반장! 자꾸 이럴 거야?!”
“내가 한 거 아니여!”
“어느 쪽 야기리?”
철근 반장이 물었다.
“따라오세요.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광영 과장이 철근 반장을 데리고 결속선이 빠진 곳을 향했다.
-탁탁탁. 탁탁탁.
한편 철근 배근이 완료된 곳부터 형틀 거푸집을 설치하기 시작하는 목수들.
“엇?”
설건우가 거푸집을 설치하는 목수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감리 서 과장이 물었다.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목수 작업장을 향해 다가가는 설건우. 목수들이 연결 철근이 삐져나온 곳에 합판을 붙이고 있었다.
‘아직 다막자가 나오기 전인가?’
목수들이 합판과 각재로 와꾸(거푸집)를 짠 다음, 연결 철근이 빠져나갈 구멍을 일일이 뚫고 있었다.
“이거···?”
지금 목수들이 하는 복잡한 작업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제품이 전생 최 반장 시절에는 있었다. 기억을 더듬는 설건우. 그러니까 최 반장이 다막자를 처음 접한 현장이, 인천공항 탑승동을 지을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7년 후에나 다막자가 나온다는 뜻이다.
다막자를 처음 개발했던 사람이 부산, 신항만 근처 어느 철물점 사장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쓰흡!”
입맛을 다시는 설건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