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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명가 만렙 신입사원-98화 (98/219)

< 민원에 대처하는 방법 (2) >

말뚝 최종 타격 횟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9할이 땅발이다. 그게 아니면 지지층에 물이 차거나, 그것도 아니면 천공 홀 지름이 말뚝보다 작거나.

천공 지름이 줄어드는 이유는 단 하나다. 실제 구멍을 뚫는 스크류, 혹은 비트가 마모되어 지름이 줄어서다.

마모가 심할 경우 작업 중에 스크류를 새것으로 교체하거나, 마모된 만큼 보강을 해줘야 한다.

조금 전 공정회의에서 오창 김철 과장이 9미터 심도부터 퇴적층이 분포하고 있다고 했다. 퇴적층은 주로 모래와 자갈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다른 구역에 비해 쇠로 된 스크류 마모가 가속화 될 수밖에.

“열 번씩 치면 되지 왜 스크류 보강이라는 소리가 나와?”

송 반장이 되물었다. 이럴 경우, 백이면 백 땅속을 탓하기 마련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지지층이 약하다고 대충 둘러대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말뚝 타격 횟수가 많아지는 원인을 스크류에서 찾는 시공사 직원이 있다? 일찌감치 보통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화산의 저 신입 직원이 이런 내밀한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송 반장.

그렇다고 공사가 다 끝나가는 마당에 장비 세워두고 스크류 보강이나 하고 앉아있을 수는 없다. 당장 보강할 자재도 없고. 이럴 때는 차라리 10번 치는 게 훨씬 시간을 단축하는 길이다.

“보강은요?”

설건우가 물었다.

“스크류 보강한 지 얼마 안 됐어. 3동 박으면서 한 번 했어.”

“진짜요?”

“그때 설 기사 없었나? 못 믿겠으면 화산에 그 새로 온 과장한테 물어보라니까?!”

“예. 예. 그건 그렇고 치수 한 번 확인해 보시죠?”

“에이! 땅발이 그런 거라니까 그러네?”

“혹시 모르니까, 한 번 확인해 보시자니까요?”

“이거 참!”

“권 기사님! 스크류 한번 올려보시죠?”

설 건우가 1호기 기사에게 말했다.

“왜 그러는겨?”

“스크류 치수 좀 재보게요.”

설건우의 대답에 움찔하는 권 기사.

“그냥 10번 때리고 말어.”

송 반장과 같은 생각을 하는 권 기사였다.

“이거, 이거. 스크류 드는 게 뭐가 어렵다고! 이렇게 나오시는 거 보니까 뭔가 있나 본데!”

누군 말뚝 안 박아 봤나? 송 반장과 권 기사의 속내가 뻔히 보이는 설건우. 사실 스크류 보강은 상당히 성가신 작업이다. 쇳덩이를 마구 덧대어 무조건 직경을 늘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밀리미터 단위의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있긴 뭐가 있다고 그래?”

“그럼 스크류 들어보세요.”

“이거 참!”

설건우의 지시에 될 대로 되라며 스크류를 들어 올리는 권 기사.

-우웅!

“캘리퍼스(물체 표면 사이의 거리를 재는 기구) 없어요?”

“여기.”

설건우가 캘리퍼스를 받아 들고 스크류와 비트의 치수를 확인했다.

“얼마나 나오는디?”

항타 1호기 권 기사가 물었다.

“577미리 나오네요! 이러니 말뚝이 제대로 박힐 리가 있나!”

설건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썰! 무슨 말이야?”

고 차장이 물었다.

“원인을 찾은 거 같습니다.”

“지금 원인이 중요하냐? 대책이 중요하지!”

“그럼 뭐. 대책을 찾은 거 같습니다.”

“뭐야? 원인을 찾은 거야? 대책을 찾은 거야?”

무슨 소린가 싶은 고 차장. 원인이야 땅발 아니던가? 장비를 향해 다가가는 고 차장.

“설 기사! 그러지 말고! 스크류 보강하고 있을 시간에 공사 끝내버리자고! 10타 치면 될 거 아니여?”

1호기 권 기사가 말했다.

“예. 공사, 공사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 스크류 보강을 하자는 뜻입니다!”

“무슨 말이여?”

“무슨 소리야?”

고 차장과 권 기사가 동시에 물었다. 고 차장은 스크류 보강이, 권 기사는 공사를 빨리 끝낸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자! 다들 모여 보세요! 권 기사님도 장비에서 내려오시고요!”

설건우 앞으로 삼삼오오 모여드는 말뚝 공사 관계자들.

“지금 말뚝 때리는 횟수가 많아지는 원인을 찾았습니다.”

“지지층이 약해서 그렇잖아요?”

감리 서 과장이 물었다.

“그게 아닌 거 같아서요.”

“그럼요?”

“지지층이고 뭐고 얼른 박고 끝내자니까! 공사 끝나가는 마당에 스크류를 보강할 시간이 어딨어?”

이 상황을 못내 받아들이기 싫은 송 반장.

“송 반장님. 자꾸 그러지 말고 제 얘기 들어보세요. 공사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 스크류 보강을 해야 한다는 말이니까요.”

“말뚝 박기도 바빠 죽겠는데? 스크류 보강까지 해가면서 어떻게 빨리 끝낸다는 말이여?”

“민원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 민원?”

“저기 보세요. 반장님 말씀대로 10타든 15타든 말뚝 후려치고 있으면 저기 사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지금까지는 3타에 창문까지 닫고 있어서 그렇지. 요즘처럼 날씨 풀려서 창문 열기 시작하고, 거기다 10타씩 말뚝 때리고 있으면 민원이 안 걸리겠냐는 말입니다.”

“크흠!”

말뚝쟁이 인생 20년이다. 이런 조건의 현장에서의 민원이라.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없었던 게 신기할 정도였다.

“민원으로 작업 중단 먹어가면서 작업하는 게 빠를까요? 아니면 깔끔하게 스크류 보강하고 3타만 치면서 작업하는 게 빠를까요?”

“우리야 일하기 바빴지! 민원 같은 거 생각할 시간이나 있었간디.”

그제야, 설건우의 말이 귓가에 들어오는 작업팀이었다.

“그래서 원인이 뭔데?”

작업팀이 얼추 상황을 받아들인 것을 확인하고, 고 차장이 물었다.

“스크류 마모가 심한 것 같습니다.”

“네? 그거랑 말뚝 경타 횟수랑 무슨 상관이에요?”

감리 서 과장이 물었다.

“스크류 직경이 줄어들면 당연히 천공 직경도 줄지 않겠습니까? 거기에다 말뚝을 집어넣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슨 소리 하는 거냐?”

고 차장이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 말뚝 직경이 600인데, 스크류 직경은 577미리가 나왔다는 말입니다.”

“응? 말뚝 지름보다 홀 지름이 더 작다고요? 그럼 아예 말뚝이 안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감리 서 과장이 물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해죠.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설건우가 대꾸했다.

“그게 아니라니?”

“자 여기 보시면, 스크류 전체가 마모되는 게 아니고, 스크류가 마모되는 부분은 땅과 직접 맞닿는 끝부분의 비스크류가 주로 마모되죠.”

설명을 멈추고 사람들을 쳐다보는 설건우. 이미 원인을 알고 있던 송 반장과 권 기사를 제외하고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조금더 자세히 설명하기로 마음먹은 설건우.

“음, 그러니까 우리 말뚝이 기다란 원통 모양이잖습니까? 그럼 구멍도 원통 모양으로 뚫어야 하는데, 끝부분 스크류 직경이 말뚝보다 작다 이 말입니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그러니까 말뚝처럼 원통이 아니라 뒤집힌 원뿔 모양으로 천공 홀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각자 머릿속으로 땅속을 상상하는 사람들.

“원뿔 모양으로 뚫린 구멍에 말뚝을 집어넣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끝부분에 공간이 남겠네요?”

감리 서 과장이 대답했다.

“바로 그겁니다! 말뚝이 그 빈 공간까지 내려가려다 보니 말뚝 때리는 횟수가 많아지는 거고요.”

“와아···. 대박! 고 차장님 알고 계셨어요?”

서 과장이 물었다.

“이런 것까지 저희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전문 업체에 맡기는 건데... 근데 김 과장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고 차장이 오창 김철 과장에게 물었다.

“아, 아니요. 저도 몰랐습니다. 설 기사님은 어떻게 아셨대요?”

“저기 송 반장님이랑 권 기사님은 알고 계시던데요?”

“아니, 그거야 당연한 거고 설 기사님이 어떻게 아셨냐는 말입니다.”

오창 김철 과장의 물음에 사람들의 이목이 설건우에게 모였다.

“그, 그거야. 저는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본 거죠.”

전생에서 말뚝 좀 박아 봤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늘 그랬듯 그럴싸하게 우기고 보려는 설건우였다.

“상식?”

“예. 조금전에 비트에 묻은 흙을 만져보니까 까끌까끌한 것이 이전하고 다른 것 같지가 않더라고요? 그럼 땅발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다가. 아까 회의시간에 김 과장님이 9미터 지점에 퇴적층이 있다는 말이 생각나서. 아! 그럼 퇴적층 모래 자갈에 스크류와 비트가 마모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스크류 지름을 재 보니까! 역시나 600이 안 되더란 말입니다.”

설건우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관계자들.

“짜식. 잔머리 하나는 진짜!”

잔머리가 아니다. 40년 짬밥이지. 설건우는 멋쩍은 척 머리를 긁었다.

“하하.”

“그건 그렇고! 이런 건 오창이 먼저 파악하셨어야지...”

고 차장이 애꿎은 오창 김철 과장 탓을 했다.

“지질 주상도도 그렇게 나와 있길래 다른 동보다 지지층이 약한 줄 알았습니다.”

“그거, 주상도는 우리 현장에서는 보지 마시라니까! 썰!”

“예.”

“보강하고 작업 하는 거로 해.”

“예!”

급한 불이 꺼진 걸 확인하고 현장을 빠져나가는 고 차장.

“송 반장님!”

김철 과장이 송 반장을 불렀다.

“왜 그리여?”

“알고 계셨으면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사람 쪽팔리게!”

“우리야 얼른 말뚝 박고 오사마리(마무리) 하기 바빴지. 민원 생각할 시간이 있었겠어?”

“자! 그럼 스크류 보강부터 합시다. 반장님. 보강하고 작업 시작하는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설건우가 송 반장에게 물었다.

“글쎄··· 그게, 보자, 보자.”

“반장님 설마 스크류 남는 거 없어요?”

김철 과장이 송 반장에게 물었다.

“설마는 뭐가 설마여? 공사 다 끝나 가는 마당에 스크류야 이미 다 썼지!”

“그럼 그렇지! 보강하느라 시간 잡아먹느니, 공사 얼마 안 남았으니까 10타 때리자고 하셨구만!”

이만하면 작업팀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나저나 스크류 교체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희한허네···”

“희한하긴! 얼른 보강부터 하자고!”

“얼른 자재부터 시켜!”

송 반장의 말에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권 기사.

“지금 시켜서 어느세월에 용접하시려고요?”

오창 김 과장이 말했다.

“그럼?”

“제가 얘기해 놓을 테니까 2호기 꺼 가져다 쓰세요.”

같은 현장, 같은 회사, 같은 작업을 하고 있어도 항타 1호기와 2호기는 엄연히 주인이 다른 사업체다.

“2호기?”

송 반장이 되묻는 그때였다.

-경비실입니다. 화산 송신하세요.

-송신.

설건우가 무전을 받았다.

-구청 직원이라는데.

-구청 직원이 무슨 일로요?

-민원 접수가 됐다고 하는구만!

-알겠습니다.

무전을 마친 설건우.

“이거, 그 사이에 민원이 들어간 모양인데요?”

설건우가 미간을 좁혔다.

“이 동네에 성격 급한 사람 한 명 있나 보구만!”

“성격이 급하긴 말뚝을 연달아 때리고 있는데, 안 들어가고 배겨?”

-꽈앙! 꽈앙! 꽈앙!

마침 2호기가 말뚝 머리를 내려치는 소리가 현장에 울렸다.

“자! 스크류 보강을 하시든가, 교체를 하시든가 일단 작업부터 하고 계십쇼!”

설건우가 현장 입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미 고 차장과 안전 김 차장이 구청 직원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를 에워싸고 있었다.

‘민원이라...’

말뚝 작업을 하면서 법적 기준인 65데시벨을 넘기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소음과 관련된 민원은 꼼수를 쓰던가 아니면 명분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흐음.”

일단, 말뚝 때리는 횟수를 줄인다는 명분은 확보했다. 민원인이 어지간히 악성이 아니라면 서로 양보하는 선에서 끝나고 말 일이다.

그건 그렇고 민원이 얼마나 들어갔길래, 구청 직원이 대뜸 현장부터 나와?

‘공무원이 성실하구만.’

설건우는 구청 직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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