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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명가 만렙 신입사원-121화 (121/219)

< 젊은 꼰대 참교육 (4) >

#121화. 젊은 꼰대 참교육 (4)

조 소장의 공사 포기 선언에 현장은 다시, 한겨울 시베리아 한파가 내려온 것처럼 얼어붙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던 박 대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청이 먼저 공사를 포기하겠다고 해? 박 대리는 아직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철근공들은 물론 연 대리와 이 과장의 표정에도 그늘이 짙게 드리웠다. 하지만 현장에서 단 한 명 설건우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사람처럼 덤덤해 보였다.

한편, 고 차장은 생각에 잠겼다. 만약, 조 소장의 선언대로 진짜 공사를 포기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감리도 조 소장도 아닌 바로 고 차장이었다.

‘타절이라······.’

공사 타절, 다시 말해 협력 업체가 공사 도중에 공사를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즉, 이 현장에서는 타절로 인한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공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만약 조 소장이 유민건설의 정직원이었다면 이런 돌발 선언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조 소장은 엄밀히 말해 유민건설 직원이 아니었다.

유민건설로부터 수수료를 제하고 공사 전체를 위임받은 실행 소장. 즉 일종의 사장이었다.

이번 일로 유민건설이 앞으로 화산과 어떤 관계에 놓이든, 조 소장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즉, 공사를 포기 하겠다는 선언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조 소장의 선언은 조건부 선언이었다. 그렇다면 조 소장이 내건 조건을 충족해 주면 될 터.

“조 소장님, 손은 괜찮으십니까?”

고 차장이 조 소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금 내 손 걱정할 거 없소. 손바닥 조금 긁힌 게 뭐라고.”

“조 소장님. 아무리 그렇다고, 철근을 맨손으로 그렇게 만지시면 어떡합니까? 소장님 참······.”

고 차장도 조 소장이 했던 것처럼 맨손으로 이음 철근을 슬쩍 훑어 내렸다.

“우리야말로 어떡하면 좋겠소? 이 현장은 이 정도 녹이 문제가 되는 현장이오?”

자신의 손바닥에 묻은 녹을 바라보는 고 차장. 이게 문제 될 리 없다. 이 정도 녹을 문제 삼으면 대한민국에 지어진 모든 건물을 문제 삼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정도 수준의 적절한 녹은 오히려 골조 품질을 좋게 한다.

새끼 감리라고는 하지만 감리 놈이 이 사실을 모르고 이러진 않았을 터, 만약 몰랐다 하더라도, 연 대리가 설명해 주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다면 새끼 감리라는 놈이 어디서 어설프게 보고 들은 건 있어서, 시공사 직원들과 작업팀 군기를 잡으려고 갑질을 좀 했다는 뜻인데, 갑질치고는 도가 지나치다.

“제가, 보기에는······.”

고 차장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렇다고 감리, 감리단장까지 나와 있는 마당에, 공사팀장이 나서서 이 정도 녹은 문제가 없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단장님께서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고 차장이 최종 결정권자 감리단장을 향해 물었다.

“고 차장,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감리단장은 무척이나 여유 있는 표정으로 물었다. 형틀업체가 공사 포기를 하든 말든 감리단과는 일절 관계가 없는 일이다.

“제가 몇 년 전에 세미나 참석했을 때, 철근 녹 관련한 주제가 나왔던 적이 있는데 말입니다.”

“주제가 뭐였나?”

“오래돼서 정확히 안 나지만 철근의 부식 정도별 부착 강도 연구였나? 아마 그랬던 거 같습니다.”

“그럼, 고 차장도 잘 알겠구먼. 이 정도 녹은 문제가 안 되는 게 맞아.”

현장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감리단장은 마치, 자기가 현장에 대단한 시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말했다.

‘같잖아서 정말······.’

속이 부글거리는 고 차장. 그래도 이 바닥 생활 15년 차다, 속내 감추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다.

“하하. 단장님 보시기에도 그렇죠? 철근에 녹······ 이게 참 애매한 문젠데, 단장님께서 단박에 정리를 해 주시니 제 속이 다 시원하네요!”

“그거 알아보는 게 뭐 대단한 거라고.”

“하하.”

고 차장이 감리단장의 비위를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박 대리가 아직 젊잖아. 젊은 사람이 의욕이 좀 과했어. 고 차장이 이해 좀 하고, 업체에도 이해 좀 시켜 주게.”

“예. 이해하고 말고요. 다, 현장 잘되자고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젊은 놈 의욕 하나 때문에 날려 먹은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저 새끼 감리 모가지를 비틀어 놓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아야 한다.

“역시, 우리 고 차장이 현장을 넓게 볼 줄 알아. 다른 공사 팀장 놈들은 어떻게든 공사만 빨리 끝내려고 한 치 앞만 볼 줄 알지, 현장 전체를 볼 줄 아는 놈이 없단 말이지. 그런 놈들에 비하면 고 차장은 화산에 있기 아까운 인재지.”

“하하, 아닙니다. 아무튼 단장님! 그럼 앞으로도, 이 정도 녹은 괜찮은 거로 판단하고 공사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녹이 철근에서 떨어져 나갈 정도로 심해선 안 되고.”

“물론이죠, 그런 건 제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그건 고 차장 믿고 맡기도록 하지. 그럼 녹 기준은 정해 줬으니, 내 일은 끝난 거 맞나? 다른 게 더 있나?”

“없습니다!”

“그럼, 수고들 하게. 문제 생기거나 애매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나를 부르라고, 나 다른 단장들처럼 엉덩이 무거운 사람 아니라고.”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현장에 문제 생기면 단장님부터 찾아뵙겠습니다!”

고 차장의 아부에 흐뭇한 표정으로 감리단 사무실로 걸음을 옮기는 감리 단장. 박 대리가 그 뒤를 쫓았다.

양 허리에 손을 짚은 고 차장. 허탈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감리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연 대리가 고 차장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은 나한테 할 게 아니라, 저기 조 소장님한테 가서 해라.”

“이미 하고 왔습니다.”

“후, 이제 어떡하냐.”

“박 대리 정도는 제 선에서 커버를 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박 대리 저 새끼가 작정하고 덤빈 거 같은데, 연 대리 너라고 별수 있었겠냐.”

고 차장의 안일함이 불러온 사태다. 고 차장도 박 대리라는 놈이 이렇게까지 안하무인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연 대리에게 일을 맡긴 것도, 결국 고 차장 본인의 불찰이다.

“차장님, 제가 철근 녹에 관한 자료를 이렇게 준비했는데―”

연 대리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가 준비한 녹 관련 자료를 들추었다.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그만해라. 인마.”

고 차장은 연 대리의 안전모를 푸욱! 눌러준 다음, 조 소장을 향해 다가갔다.

“된 거요?”

조 소장이 물었다.

“예, 소장님. 앞으로 녹으로 시비 걸 일은 없을 겁니다.”

“뭣들 하고 있어! 작업 다시 시작하지들 않고! 윤 반장!”

“예!”

“시작해!”

“예!”

멀쩡한 철근을 바라시 했다. 철근공들은 김이 빠져 몸이 무거울 만도 한데, 조 소장의 한마디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런 건 저희 직원이 커버를 했어야 했는데.”

“미친개가 다 죽자고 달려드는데 말로 해서 된다요?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지.”

“약을 너무 비싸게 주고 산 거 같아서요.”

고 차장이 해체 중인 철근을 바라봤다.

“약값이 비싼지 아닌지는 약발이 언제까지 가느냐에 따라 다른 거 아니겄소?”

당분간은 새끼 감리가 시비를 걸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당분간이 어느 정도 되느냐에 따라 약값이 비쌌는지 적당했는지 결론이 날 터.

고개를 끄덕이는 고 차장.

“소장님! 나오셨습니까!”

나 소장이 현장에 불쑥 나타났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내일 타설 아냐?”

나 소장이 고 차장을 향해 물었다.

“그러니까, 이게-”

고 차장으로부터 사건의 경위를 보고받은 나용남 소장.

“그럼 그렇지! 그 박 대린가 빡통 새끼인가, 그 자식 처음 딱 봤을 때부터 맘에 안 들었어! 어디 새파랗게 젊은 새끼가 말이야! 시공사에서 뺑이치면서 일부터 배울 생각을 해야지!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새끼가 감리단에 기어들어 가? 박 대리, 그놈은 애초에 정신 상태부터 글러 먹은 놈이야. 그건 그렇고! 타설은 어떻게 돼?”

“그게, 일단은 미뤄야 할 거 같은데, 일단 조 소장님하고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습니다.”

“거기! 비켜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외침. 나 소장과 고 차장이 서 있는 머리 위로 웬 사각형 철근 구조물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뭐냐? 벽체 철근 제작해서 올리냐?”

나 소장이 뒤로 천천히 물러서며 물었다.

“아니요? 그런 얘긴 못 들었는데요?”

“그럼 저건 뭐냐?”

타워에 매달린 철근 구조물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 나 소장과 고 차장. 철근이 6동 내부로 향했다. 그리고 그 철근 구조물이 도착하는 곳에 설건우가 대기하고 있었다.

“스라게! 스라게! 바닥까지 2미터! 1미터! 스토옵!!”

설건우가 무전기에 대고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고 차장.”

“예?”

“썰번트 저놈 저기서 뭐 하는 거냐?”

“글쎄요? 저 자식이 왜 철근을 받고 있지?”

“가서 알아봐.”

“알아보실 거 없습니다.”

유민 조 소장이 나 소장을 향해 다가왔다.

“조 소장님, 저 철근은 어떻게 된 겁니까?”

고 차장이 물었다.

“철근이야, 철근 가공장에서 제작한 거 아니겠습니까?”

“저걸 가공장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고요? 어떻게요?”

“허허!”

“말씀 좀 해보십쇼!”

“엊그제 설 기사가 갑자기 나한테 찾아와서는 오늘 6동 기초 철근 바라시를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단도리를 하라고 하지 뭡니까.”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허허!”

조 소장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 * *

동우동 화산 이든 파크 현장 소장실.

설건우를 비롯한 공사팀 직원 넷과 나용남 소장이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썰, 네 말은 박 대리가 분명히 트집 잡을 걸 알았다?”

고 차장이 물었다.

“예.”

“너 무슨 점쟁이냐? 아니면 무슨 예지 능력 같은 거 있냐? 아니면 진짜 썰번트야? 아니, 썰번트가 아니고, 그거 뭐냐?”

“써번트요.”

“아무튼, 그런 거냐고.”

“그런 게 아니라요.”

설건우가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니면?”

“고 차장님이 저희한테 절대 녹 터는 꼴 못 본다고 하셨잖습니까?”

“근데?”

“고 차장님한테 그 얘길 들은 연 대리님이나, 이 과장님이 녹을 털라고 시킬 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설건우의 시선이 둘을 향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연 대리와 이 과장.

“그래서?”

나 소장이 물었다.

“근데, 박 대리는 아무리 봐도, 6동에서도 꼬라지를 부릴 거 같더라고요. 제가 예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연 대리님이랑 이 과장님도 알고 계셨잖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연 대리와 이 과장.

“거 봐, 내가 그랬잖아. 박 대리, 그 자식은 애초에 글러 먹은 놈이라고!”

나용남 소장이 맞장구를 쳤다.

“예. 그래서 고 차장님께 철근에 녹은 건들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저희하고, 어떻게든 트집 잡겠다고 작정한 박 대리가 충돌한다? 그럼 이거, 바라시다! 그 결론이 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직원들.

“그래서, 조 소장한테 찾아가서 6동 바라시 할 거 단도리 하라고 한 거야?”

“예.”

“그런데 썰? 네가 하라고 하니까, 조 소장이 아이고, 예! 알겠습니다! 하든?”

철근을 맨손으로 잡아 훑던 조 소장의 성깔을 생각해 보면 그건 어림도 없었다.

“아니요.”

“근데?”

“제가 말하고 간 다음 날, 조 소장님도 알아보셨겠죠.”

사실상 동우동 이든 파크 현장에서 가장 많은 휴민트 자원을 가진 사람은 조 소장이다. 며칠 전 4동 철근 녹에 관한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을 것이고, 설건우에게 화산 사정까지 파악했으니, 조 소장이라고 이 사태를 예측하지 못하진 않았을 터.

“근데 왜 우리한텐 미리 얘기 안 했어?”

“말씀드렸어도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하시지 않았을까요?”

“연 대리. 대답해 봐.”

고 차장이 말했다.

“저는, 저······ 만약에 건우가 그랬으면······ 그러니까.”

“쓰흡! 똑바로 얘기해 봐.”

“쓰,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했을 거 같습니다. 저는 그때까진 제가 준비한 자료로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연 대리의 대답에 이 과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보시라니까요.”

어떻게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설건우를 바라보는 고 차장. 그리고 막내가 마냥 이뻐 죽겠다는 나용남 소장이었다.

“타설은 내일 이상 없는 거지?”

“예. 유민에서 두 시간 정도 야간작업으로 오사마리(마무리) 짓기로 했습니다.”

“그래.”

한편, 설건우는 이렇게 끝내기엔 어쩐지 성이 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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