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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명가 만렙 신입사원-124화 (124/219)

< 불량 콘크리트 (2) >

#124화. 불량 콘크리트 (2)

동우동 화산 이든 파크 현장 사무실. 현장에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무실엔 내업(office work, 內業)으로 바쁜 직원들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후······.”

설건우가 한숨을 길게 뱉어내며, 의자를 뒤로 젖혔다.

“아앗!”

설건우의 의자에 무언가 부딪히는 느낌과 동시에, 정은지의 얕은 비명이 조용하던 사무실에 울렸다. 직원들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엇! 은지 씨 괜찮아요?”

설건우가 자세를 고쳐 잡고 물었다.

“네, 괜찮아요.”

정은지의 대답에 직원들의 이목이 다시 흩어졌다.

가던 길을 멈추고 설건우의 모니터를 슬쩍 보는 정은지. 숫자들이 빼곡한 엑셀 화면이다.

“설 기사님? 무슨 작업 중이세요?”

“노가다요. 진짜배기 노가다는 사무실에서 하고 있었네요.”

“노가다요? 무슨 노가다 중이셨는데요?”

“이게 말뚝 좌표인데, 감리에서 소수점 세 자리 숫자까지 만들어 오라고 하지 뭡니까.”

좌표에서 소수점 세 자리는 밀리미터 단위다. 보통은 생략해도 무방한데, 새로 부임한 백 이사라는 감리가 지시한 업무였다.

이런 일은 오창으로 토스를 해 버리면 그만인데, 이미 오창은 공사를 끝내고 나간 상태다. 어쩔 수 없이 막내인 설건우가 하는 수밖에.

“만들어 오라는 말은······.”

정은지가 말꼬리를 흐렸다.

“가라로 만들어 오라는 얘기죠.”

“그럼, 아무 숫자나 넣으면 되는 거란 말씀이죠?”

“예.”

“그럴 땐 랜드를 쓰면 될 거 같은데?”

“랜드면 땅 아닙니까?”

“랜드가 아니라, 랜덤인데 엑셀에서는 줄여서 렌드라고 쓰거든요.”

“랜덤이면, 무작위?”

숙소에서 조금씩 공부 중이던 영어 실력을 슬그머니 어필해 보는 설건우. 워낙 기초적인 영어에 정은지로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을 수밖에.

“네. 무작위로 숫자를 만들어 주는 함수가 있거든요. 지금 소수점 두 자리에 한 자리를 더 붙여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예.”

“아무 숫자나 상관없이?”

“예.”

“그럼, 잠깐만요.”

정은지가 설건우 자리 옆에 있는 보조 의자를 당겨 왔다.

“설 기사님, 조금만 당겨 보세요.”

“예.”

설건우의 키보드를 차지하고 앉은 정은지.

“이 셀에 RAND 함수 이름을 써 주고, 다음에 범위를 지정해서 소수점 앞에 두 자리는 그대로 두고 마지막 숫자만, 짠!”

“와!”

“이게 끝이 아니에요. 가라라고 하셨죠?”

고개를 끄덕이는 설건우.

“좌푯값에 랜덤 함수가 붙어 있으면 가라인 거 티가 나니까, 이렇게 다시 전체 선택한 다음?”

정은지가 설건우를 빤히 바라봤다.

“값만 복사해서 다시 붙여 넣기?”

“빙고!”

“와! 대박이네! 대박이야.”

설건우가 감탄을 쏟아 냈다. 적어도 반나절 동안 붙잡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 방법이면 5분이면 끝낼 것 같았다.

“와! 설 기사님도 엑셀 많이 늘었는데요? 값 복사도 할 줄 아시고.”

“하하. 독학 좀 했습니다. 아니? 은지 씨한테 배웠나? 아무튼, 은지 씨 덕분에 오늘은 못 해도, 반 대가리는 벌었네요.”

“그럼, 설 기사님 반 대가리는 저 주셔야죠?”

“당연히 줘야지! 가만 보자, 내 반 대가리면 얼마쯤 되려나?”

비록 농담이었지만, 생각난 김에 실제 계산을 해 보는 설건우, 4~5만 원쯤 되려나?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제가 설 기사님한테 배운 게 얼만데요. 그거 갚으려면 아직 멀었어요.”

“역시, 사람은 베풀고 살아야 한다니까, 이렇게 다 돌려받으니까!”

“그쵸!”

설건우를 향해 찡긋 웃어 보이며 자리를 뜨는 정은지.

“썰!”

고 차장이 설건우를 불렀다.

“예?”

“너, 지금 하는 거 마무리 언제 되냐?”

“어, 금방 될 거 같습니다. 은지 씨가 가르쳐 준 대로 하니까 시간이 확 줄었네요.”

“그래, 인마. 배우면 된단 말이야.”

“예! 자동으로 숫자가 써지는 함수인데, 엄청 편합니다.”

“지금 하는 거, 뭔데?”

“말뚝 측량 성과표요.”

“급한 거 아니네?”

“예. 급한 건 아닌데, 은지 씨한테 배운 기술 덕분에 5분이면 끝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고, 너 공장 검수 가 본 적 없지?”

“예. 가 본 적 없는데요?”

공장 검수는 현장에 반입되는 자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점검하는 절차다. 당연히 감리원과 시공사 직원의 업무. 전생 현장 일꾼 1이었던 최 반장이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 너도 거기 좀 따라갔다 와라. 사진도 좀 찍어 주고.”

“심 과장님이 가시는 거 아닙니까?”

“심 과장, 차 퍼져서 센터에 들어갔댄다. 썰, 네가 운전도 좀 해 주고, 가서 맛있는 거나 좀 얻어먹고 와.”

공장 검수를 가는 데 맛있는 거나 얻어먹고 오라니? 고개가 갸웃하는 설건우였다.

“예. 언제 출발합니까?”

“10시라고 하던데?”

“예!”

시계를 보는 설건우, 지금 시각은 9시 반, 30분 전이다.

정은지에게 배운 엑셀 기술을 이용해 금방 가라 서류 작업을 마치고 1층 시험실로 걸음을 옮겼다.

* * *

설건우의 빨간 프라이드를 타고, 40분. 현장에서 30Km 떨어진 레미콘 공장에 도착한 설건우와 심 과장, 그리고 감리 백 이사.

공장 주차장에 도착하자, 공장 직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쇼!”

“안녕하십니까!”

설건우와 일행이 차에서 내리며 인사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심 과장님.”

“예. 박 부장님, 전화만 하다가 처음 뵙습니다.”

“하하. 이제부터 종종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분이 저희 현장 감리단, 건축 담당 백 이사님입니다. 인사하시죠.”

“영업 담당 박영철 부장입니다.”

박 부장이 건네는 명함을 받아 드는 백 이사.

“저희 공장장님이 본사에 회의 들어가시는 바람에, 직접 못 모시게 돼서 죄송하다고 꼭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공장 검수하는데, 공장장님까지 계실 필요 있습니까? 실무자들끼리 알아서 하는 거지.”

감리 백 이사가 말했다.

“여기는 저희 현장 막내. 설 기사.”

심 과장이 설건우를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세요.”

“신입이라, 이것저것 배우는 중입니다.”

“예! 그러시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죠.”

설건우가 대꾸했다.

“백 이사님, 그럼 슬슬 둘러보실까요?”

심 과장이 말했다.

“내가 둘러본다고 뭘 아나?”

“하하.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사진은 남겨야죠.”

“어디 놀러 온 것도 아니고, 그놈의 사진은······. 쯧쯧.”

백 이사가 혀를 찼다.

“따라오시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박 부장이 앞장섰다.

“지금 보이는 저 설비가 시멘트가 들어있는 싸이로고요.”

박 부장의 공장 소개가 이어졌고, 건성으로 듣고 있는 심 과장과 백 이사.

“박 부장님? 저기 골재랑 모래 야적장 비바람 불면 빗물 들이치겠는데요?”

심 과장이 공장 한쪽, 천막 아래에 쌓여 있는 자갈과 모래를 가리켰다.

“천막은 저희가 즉시 보강하겠습니다.”

레미콘 공장 점검표에 무어라 메모를 남기는 심 과장.

“설 기사!”

“예.”

“저기 천막 찢어진 거 사진 찍어 놔.”

“예!”

“박 부장님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십쇼. 저희가 백 이사님까지 모시고 여기까지 왔는데, 뭐 하나 지적은 하고 가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서운할 리가 있습니까? 천막 보수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백 이사님 다른 지적사항 있으십니까?”

“대충 끝냈으면 밥이나 먹으러 가지.”

“예! 그렇게 하시죠! 저희 공장장님이 단골인 장어집 예약해 뒀습니다.”

“장어?”

“예!”

장어? 그것도 근무 시간에? 이래도 월급은 따박따박 꽂힌다. 머슴을 살아도 대감 집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또다시 절실히 느끼는 설건우.

형식적인 공장 검수를 마치고, 공장 인근 호숫가 장어집으로 자리를 옮긴 일행들.

“들어가시죠.”

장어집에 도착하자, 4명 자리가 세팅되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인테리어와 건물.

방 하나를 안내받아 설건우 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반쯤 익은 장어가 세팅되어 나왔다.

“지금부터 드셔도 됩니다.”

종업원이 나가고,

“이사님부터 맛 한번 보시죠? 자연산입니다.”

박 부장이 감리 백 이사에게 장어를 권했다.

“자연산?”

“예.”

자연산이라는 소리에 장어를 한 점 집어먹는 백 이사.

“어떻습니까?”

“좋군, 자네들도 들게.”

“예.”

자연산 장어를 맛보는 설건우.

“크. 좋네! 설 기사 자연산 장어 처음이지? 맛이 어때?”

심 과장이 설건우에게 물었다.

“맛있는데요?”

설건우가 장어를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심 과장. 다 좋은데, 반주 한잔해야 하지 않겠나?”

백 이사가 말했다.

“하하. 해야죠!”

“이 집에서 직접 담근 복분자주가 있는데, 그걸로 하시겠습니까?”

“장어엔 복분자지! 암!”

박 부장이 종업원을 불러 복분자주를 시켰다.

“설 기사, 너도 한 잔만 해.”

“아닙니다. 운전해야죠.”

설건우는 썩 내키지 않았다. 근무 시간에 이러고 있는 것도 어쩐지 불편했고, 남들 일할 시간에 이러고 있는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술잔이 오가는 중에

“난 화장실 좀 다녀오겠네.”

백 이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다, 휘청 발을 헛디뎠다. 백 이사를 부축하는 설건우.

“벌써 취했나? 허허. 자시고들 있게.”

“설 기사! 네가 백 이사님 부축 좀 해 드려.”

심 과장이 말했다.

“예.”

“괜찮아. 괜찮대도.”

“아닙니다. 저도 화장실 가고 싶었거든요. 백 이사님 같이 가시죠.”

설건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그럼 같이 가지.”

설건우와 백 이사가 빠져나간 사이,

“저기 심 과장님. 입맛에 맞으십니까?”

박 부장이 심 과장을 향해 상체를 숙였다.

“아이고, 입맛에 맞다 마다요.”

“그럼 생각날 때, 종종 연락주십시오.”

“하하. 그래도 되겠습니까? 자연산 장어가 좀 비싸야 말이죠.”

“어떻습니까? 저희 회삿돈으로 먹는 건데, 저도 심 과장님 핑계로 좋은 거 먹으러 다니면 좋지 않습니까?”

“하하. 얼마든지요. 장어도 장어지만, 이 복분자주가 맛있습니다. 달지도 않고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한잔하시죠.”

“예.”

술잔이 한 번 오가고, 슬며시 주변을 살피는 박 부장. 그러더니 안 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심 과장에게 내밀었다.

“이거, 약소하지만······.”

“어허. 이거 이러시면 안 되는데.”

“그냥 인사차 드리는 겁니다. 저희가 뭐 잘 봐달라 이런 말씀 드리는 것도 아닌데 뭘 그러십니까?”

엊그제 센터에 들어간 차가 생각나는 심 과장이었다.

그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일었고, 심 과장은 얼른 봉투를 받아 챙겼다.

“하하. 그리고 저희 주유소에 얘기해 놓을 테니, 업무용 기름은 거기서 넣으시면 됩니다. 주유소 명함은 봉투에 들어 있습니다.”

“하하. 뭘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십니까.”

어차피, 레미콘(콘크리트가 굳기 전의 상태) 품질이야 거기서 거기다, 레미콘 품질이 나빠서 쓰러졌다는 건물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가끔, 기준에 미달하는 레미콘이 입고 될 수도 있지만, 레미콘 하자로 건물에 하자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심지어 바닷모래가 들어간 레미콘을 사용했던 1기 신도시 아파트들. 아직 멀쩡하지 않나? 구산 양회에서 작정하고 레미콘에 장난을 치지 않는 이상, 살짝 눈감아 주면 그만인 일이다.

화산이 요즘 브랜드 아파트다 뭐다, 잘 나가고, 기술의 화산이라며 시장에서 평판도 매우 좋은 편이다. 그래 봤자, 화산 직원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게다가 심 과장은 화산 정직원도 아니었다.

그때, 방으로 들어서는 설건우.

“백 이사님은?”

심 과장이 물었다.

“담배 하나 태우고 들어오신답니다.”

“그래?”

“어떻게 장어 추가 좀 할까요?”

“설 기사, 어때?”

“저는 괜찮습니다.”

근무시간에 이러고 있는 게 썩 편하지만은 않은 설건우였다.

“하하. 설 기사님, 현장 관리하려면 많이 드셔야죠. 백 이사님도 아직 덜 드셨고!”

구산양회, 박 부장이 종업원을 불러 장어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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