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설명가 만렙 신입사원-133화 (133/219)

< 나용남 소장의 결심 (2) >

#133화. 나용남 소장의 결심 (2)

화산건설 본사 회의실.

문 전무와 이정식 상무의 시선이 나용남 소장을 향했다. 입을 단단히 다물고 있는 나 소장.

“전무님이 왜 그랬냐고 묻잖아! 나 소장!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저질렀냐고!”

이정식 상무가 나 소장을 다시 한번 다그쳤다.

“생각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합니까.”

나 소장이 이 상무를 멀뚱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뭐라고?”

“전무님도, 방금 그러셨잖습니까? 기술자가 기술로 해결하라고.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 그래서 기술로 해결한 게 이 꼴이야!”

자기가 지시한 대로 했다고 하자, 짐짓 당황한 이정식 상무.

“기술적으로 다른 방법 있으면 저도 좀 알려 주십쇼!”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되받아치는 나 소장.

“레미콘 슬럼프 좀 문제 있다고 대뜸 기초 거푸집을 바라시라고 말이야! 일을 이렇게 해결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 일단 레미콘 양생 강도를 확인하든가!”

“강도 안 나오면요?”

“이 사람아! 그러니까 확인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강도 확인하느라, 일주일 한 달 손가락 빨고 있으라고요? 아니면, 무시하고 벽체 올렸다가 나중에 강도 안 나오면 기초 위에 올린 벽체까지 해체하라는 말씀입니까?”

“그, 그건 그때 가서 보강을 하든가 하면 될 거 아냐?”

“저는 그런 보강 해 본 적도 없고, 보강이 된다 한들! 이 상무님이 보시기엔 어떨지 몰라도, 제가 아는 기술로는 그게 제대로 된 건물 같아 보이진 않을 거 같아서 말입니다.”

“허!”

나 소장의 대꾸에 마땅히 할 말 없는 이 상무.

“거, 참. 사람 안 변한단 말이야. 내가 듣고 있으니, 우리 나용남이가 아예 딴마음을 먹은 거 같은데. 내 말 맞나?”

“······.”

대꾸 없는 나 소장. 문 전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편하게 얘기해 봐.”

잠시 뜸을 들이는 나 소장. 이것저것 할 말이 많았지만, 이 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고, 일단은 심플하게 대답하기로 마음먹었다.

“회사 마진 생각하면 2억은 감수해도 될 거 같았습니다.”

“뭐가 어째? 회사 마진? 현장 소장이 현장 실행 금액을 생각해야지!”

나 소장의 대답에 분통이 터지는 이정식 상무.

“실행도 생각했고요.”

“허!”

말문이 막히는 이 상무.

“레미콘이 그렇게 못 쓸 정도였어?”

문 전무가 묵직하게 물었다.

“제가 직접 본 게 아니라, 말씀드리긴 힘들고요.”

“그럼?”

“저희 직원들 얘기 들어 보니, 자재가 불량이라 쓰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아니, 그럼! 직원들 말만 듣고 그랬다고? 현장 소장이?!”

“그럼, 현장 소장이 자기 직원들 말 안 들으면 누구 말 듣고 현장 운영합니까?”

“나, 나용남이 너······.”

이 상무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뒷목을 붙잡았다.

“이 상무, 이 사람아! 그러다 나 소장이 사람까지 잡겠다는 소문 돌겠다. 진정 좀 하게.”

“전무님!”

물끄러미 나 소장을 바라보는 문 전무. 나 소장이 신입 사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세월이 20년이다.

“······알았네. 현장 가 봐. 사장님한테는 내가 따로, 보고 할 테니까.”

어쩐지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는 나 소장.

“어서 안 일어나고 뭐 해? 이 상무 진짜 잡을 셈이야?”

“전무님.”

나 소장이 무겁게 입을 뗐다.

“왜?”

“사장님께 보고하시기 전에 제가 먼저 종이 쪼가리 한 장 올리겠습니다.”

“무슨 종이?”

“일단 저도 만들어 봐야 알 거 같습니다.”

“사직서는 아니고?”

“아닙니다.”

무언가 결심이라도 선 듯, 나용남 소장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 * *

동우동 화산 이든 파크 현장 사무실. 홀로 적진으로 간 대장이 걱정되는 부하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애꿎은 펜만 돌리고 있었다.

그때, 현장을 둘러본 고 차장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대장의 모가지도 모가지이지만 일단은 현장을 돌리는 게 급선무였다.

레미콘 업체를 다시 선정해야 하는 상황. 당장 나 소장이 지시한 9동 타설이 걱정인 고 차장이었다.

“소장님한테 연락 온건 아직 없고?”

고 차장이 물었다.

“예. 그게······”

관리 한 과장이 다른 직원들 눈치를 살피고는 대답을 마저 했다.

“아직 없었나 본데요.”

“이렇게 되면 내일 타설은 어떻게 해야 되냐? 미뤄?”

“아! 그거, 방금 최 차장님이 한주 레미콘으로 물량 잡았답니다. 소장님한테는 아직 보고 전이고요.”

다행히 현장 걱정은 고 차장만 하는 건 아니었다. 엄연히 현장 넘버2가 제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그래? 최 차장님은 어디 갔어?”

“구청에 갔습니다. 근데 레미콘은 어떡할까요? 소장님한테 전화해서 한주 레미콘 쓴다고 일단 보고부터 할까요?”

시계를 쳐다보는 고 차장. 이 시간까지 연락이 없다면 아직 적진에서 싸우는 중일 터. 고 차장이 입을 열었다.

“한주 말고는 다른 대안 없잖아?”

“그건 그렇죠.”

“그냥 한주에다 내일 물량 띄우라, 그래.”

“예.”

“한주에 얘기는 했지? 구산에서 장난치다가 이렇게 된 거.”

“당연하죠. 안 그래도 한주에서 물어보더라고요. 아직 자기들 물량 들어갈 때도 아닌데, 어떻게 된 거냐고.”

“그래서? 한주 레미콘 애들은 사태의 심각성은 파악한 거 같아?”

“바라시까지 했다고 했는데, 그거 못 알아먹으면 사업 접어야죠.”

“아니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일 한주 레미콘 공장 출하실에······. 보자 보자, 연 대리. 그래 연 대리, 네가 내일 한주 출하실에 상주해.”

“예.”

“그럼, 내일 타설은 해결됐고, 이제부터 이거 어떡하면 좋냐?”

고 차장이 미간을 좁혔다.

“썰 얘기대로 경찰에 신고하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요? 나 소장님도 물러설 기미도 없고, 그렇다고 저희가 2억 그대로 때려 맞을 수도 없고.”

관리 한 과장이 대답했다.

“우리가 왜 때려 맞아? 구산에서 배상해야지.”

고개를 끄덕이는 직원들.

“고 차장님. 그게, 저기.”

품질 심 과장이 입을 열었다.

“뭔데?”

“구산에서 만약에 저희하고 거래를 끊으려고 작정하고 나오면 배상받기 힘들 거 같지 않습니까?”

심 과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고 차장.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자기들은 배합에 착오가 있었고, 그걸 확인해서 사용을 하든, 안 하든 결정하는 건 현장이라는 소리지?”

“예. 왜 굳이 불량품을 썼냐 이거죠. 현장에서 확인했으면 돌려보내면 그만인데.”

“만약에 우리랑 계속 거래하려고 들면?”

“2억에서 네고 좀 치려고 하지 않을까요?”

“······.”

고 차장의 시선이 설건우와 품질 심 과장을 향했다. 그러고는.

“구산에서 어떻게 나올 거 같아?”

“어떻게 나오든, 네고는 좀 그렇죠. 마지막 물량만 그렇게 보낸 거 보면 그 자식들이 아주 계획적으로 장난쳤다는 소린데.

“그렇긴 하지?”

낮게 읊조리는 고 차장.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공장 검수 갔을 때, 구산에서 뭐 받아먹은 거 있어, 없어?”

고 차장의 시선이 다시 심 과장을 향했다. 그러자 심 과장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리 쪽은?”

고 차장이 다시 물었다.

“없습니다.”

“확실해?”

“예.”

입을 삐죽 내미는 고 차장.

“어떡하시려고요?”

심 과장이 물었다.

“정공법으로 가야 하지 싶은데.”

“정공법이라면?”

“경찰에 신고 말이야.”

“본사에서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

“소장님이 지금 그거 막으러 간 거 아냐.”

고개를 끄덕이는 직원들.

“누구 경찰 아는 사람 없냐? 썰? 네가 처음 얘기 꺼냈으니까, 뭐 없어?”

“어······ 제가 아는 경찰이 한 분 있긴 있는데요.”

설건우 역시, 전생에 있었던 것처럼 경찰에 신고를 하려 했던 것이지, 경찰 인맥을 동원할 생각까지 했던 건 아니었다.

“그래? 어떻게 아는 경찰인데? 친구야? 친구면 순경?”

관리 한 과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얼마 전까지 파출소장까지 하시다가 얼마 전에 경찰서로 가신 분입니다.”

“파출소장까지 했으면 높은 양반이구만? 근데, 서에는 어떻게 계신대?”

“그거까진 저도 모르고요”

“이런 사건은 어디다 신고해야 하냐?”

“일단 신고하려는 게 아니라, 이럴 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 건지 알아보라고.”

고 차장이 설건우를 향해 말했다.

“뭐 해?”

“예?”

“네가 안다는 경찰 전화번호 몰라?”

“알죠.”

“그럼 전화해서 물어봐.”

“지금요?”

“그럼? 현장 박살 나고 할래?”

“아, 예.”

설건우가 직원들의 슬쩍 눈치를 살피며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어? 설건우 씨 아닙니까. 오랜만입니다.

“예. 소장님. 오랜만입니다.”

―그래요. 그렇잖아도 내가 따로 연락을 한번 했어야 했는데, 잘됐네.

“소장님이 저한테 연락을요?”

―왜, 우리 표창받을 일 있잖습니까. 연말쯤에 한다, 그러니까 아직 멀었나?

“아! 하하.”

―하하.

둘 사이에 어색한 웃음이 흘렀다.

―그래, 설건우 씨가 나한테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했습니까?

“그게 저······.”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잠시 생각에 잠기는 설건우.

―하하. 설건우 씨가. 실없이 전화했을 리는 없고. 난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경찰서 수사팀장으로 영전했다. 그게 꼭 금괴 발견 덕분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영전을 빨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파출소장에게 설건우는 은인인 셈이다.

“저희 현장에 약간 문제가 있는데, 괜히 부담드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 죄송합니다.”

―현장에 문제라······.

부담보다는 오히려, 기대가 되는 소장이었다.

“예”

―현장에 문제라면······?

건설업에 문제가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단지 명분이 없어 캐내지 못할 뿐이지.

“현장에 레미콘이라고 있는데, 혹시 소장님도 아세요?”

―하하. 알다마다요. 레미콘이 왜요?

직원들이 귀를 쫑긋 세우며 설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지금 신고를 하는 건 아니고요.”

―하하.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일단 말씀해 보십시오.

“그거 납품하는 업체에서 레미콘에 장난을 좀 친 거 같습니다.”

―장난이라면?

설건우의 대답에 이건 큰 건임을 직감한 구 소장이었다.

“예, 그게 깊게 들어가면 어려운데, 간단히 말해서, 표준 배합비라는 게 있거든요. 골재 모래 물 시멘트 이게 주재료인데, 비율이 있단 말입니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요.

“예.”

―그러니까, 레미콘 공장에서 일부러 레미콘 배합을 조작해서, 설건우 씨 현장에 납품했다?

“일단 저희는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설건우가 내뱉은 추정이라는 단어에 고개를 끄덕이는 고 차장.

―그렇군요. 그래서요?

“만약에 저희가 신고를 해서 수사를 시작하면, 그걸 밝힐 수가 있을까요?

―하하, 그거야 수사를 해 봐야 알 수 있는 거고, 그것보다는······.

말꼬리를 흐리는 구순호 서구경찰서 수사팀장.

“예?”

―신고를 하게 되면 설건우 씨도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예?”

―괜히 그런 일에 설건우 씨가 나서서 좋을 게 없을 거 같은데······.

“그, 그러면요?”

―첩보로 접수하겠습니다. 업체가 어딥니까?

“······잠깐만요.”

고 차장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설건우.

―신고자는 비밀에 부치고, 저희가 수사 착수하겠습니다.

실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다. 놓쳐서야 쓰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