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감사는 누구에게? (3) >
인천시 동구 동우동 화산 이든 파크 108동 202호. 바로 앞에 뒷산과 이어진 산책로가 있어 산책을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세대이지만 앞 동 건물과 뒷산 사이에 있는 집이라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유난히 어두컴컴한 세대다.
햇빛이 적게 들어와 한여름 더위에는 조금 시원할지 몰라도, 겨울엔 다른 세대에 비해 유난히 추울 것이 확실시되는 집이다.
202호 바닥에 미스터리 서클, 아니면 페루의 나스카 지상화를 방불케 하는 기하학적 무늬의 난방 파이프가 깔려 있고, 그 파이프를 삼키듯 방통 몰탈이 202호 바닥을 잠식해 가고 있었다.
―차박! 차박!
대걸레질을 하듯 방통용 미장칼로 몰탈을 고르게 펼치는 미장공. 그리고 그 작업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는 잡부 1.
―차박! 차박!
“저기, 김 씨 아저씨.”
작업등을 비추고 있던 잡역부 1이 입을 열었다.
“왜?”
“그거, 제가 한번 해 보면 안 될까요?”
“이게 지금 뭐 하는 작업인 줄은 알고?”
“나라시하는 거잖아요.”
“허허! 최 군이 나라시를 알아?”
“에이! 저도 그 정도는 알죠.”
“나라시가 뭔데?”
“바닥을 평탄화한다는 뜻 아닙니까!”
“어쭈?”
“제가 군대에서 연병장이랑 중대 본부에 화단 나라시는 지겹게 했거든요.”
“그런 흙바닥 나라시하는 거하고, 방통 몰탈 나라시하는 거하고 많이 다를 텐데?”
“평탄화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잖아요. 저기 라인에 맞춰서 평평하게만 만들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야 그런데, 그럼 한번 해 보든가.”
“앗싸!”
미장공 김 씨로부터 미장칼을 넘겨받은 잡부 1. 조금 전까지 봤던 대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밀대 걸레질을 하듯 손잡이를 잡은 다음, 밀대 끝이 출렁일 수 있도록 손목과 팔을 이용해 스냅을 주는 잡부 1.
―차박! 차박!
“제법이구먼!”
연장을 넘겨준 미장공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렇게 하는 거 맞죠?”
“그리여! 내일부터는 자네가 칼 잡아도 되겠는데?!”
“하하! 그럼 저도 일당 올려 주나요?”
“그렇게만 하면, 미장공으로 내가 승진시켜 줄라니까!”
“정말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 아니다. 어지간한 몸치가 아닌 이상, 눈썰미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
숙련된 미장공이 작업한 구간이나, 잡부 1이 작업 중인 구간이나 나라시 품질에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약 10분쯤 작업이 진행되었을 무렵.
“후우.”
미장칼을 잡은 잡부 1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했다고, 벌써부터 헐떡이고 그러는 겨?”
“후우! 이게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가는데요?”
그제서야 미장공의 팔뚝 잔근육이 눈에 들어오는 잡부 1.
“그럼, 노가다를 그만한 힘도 안 쓰고 하려했어?”
“좀 쉬었다 하면 안 될까요?”
“쯧쯧. 칼 잡은 지 얼마나 됐다고 쉬었다 해! 쉬었다 하길!”
“죄, 죄송합니다.”
“칼 이리 내!”
“예.”
잡부 1이 기다란 미장칼을 다시 미장공에게 넘겼다.
“후후. 팔 아파!”
자신의 팔뚝을 주무르며 원래 위치로 자리를 옮기는 잡부 1.
“어억!”
그런데 하필 자리를 옮기던 잡부 1의 발이 작업등과 연결된 전기선에 걸렸다. 이어서 전기선이 끌리며 작업등 스텐드가 바닥으로 넘어졌다.
“죄송합니다!”
“골고루 한다! 골고루 해!”
“죄송합니다!”
당황한 잡부 1이 작업등을 일으켜 세우려 얼른 다가가는데.
―우지끈!
하필 바닥에 깔린 난방 배관을 밟고 미끄러졌다.
“아악!”
그 바람에 바닥에 깔려 있던, 난방 파이프가 헝클어지며 엉망이 되었다.
“이런 니미!”
“으.”
“괜찮은 겨? 다친덴 없어?”
“예. 전 괜찮은데······.”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잡부 1.
“이걸 우째야 쓰까! 이 꼬라지 난 거, 설비에서 보면 지랄 솔찮게 하겄는디?”
미장공이 헝클어진 난방 파이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 제가! 원상 복구 시켜 놓겠습니다.”
“자네가 무슨 수로 원상 복구를 시켜?”
“이, 이렇게! 이거 고정하는 못이랑 망치 어디 없을까요?”
“무슨 일이야?”
몰탈을 치던 미장공이 작업을 멈추고, 사고 현장으로 다가왔다.
“이런 니미!”
널브러진 난방 배관을 확인한 방통 심 반장.
“죄, 죄송합니다.”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잡부 1.
“너 자식아!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이거, 얼른 몰탈로 얼른 덮어 버리면 안 될까요?”
“쓰흡······.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워서!”
미장공 심 반장이 쓰게 입맛을 다셨다.
“덮으면 안 보이잖아요.”
잡부 1이 말끝을 흐렸다.
“김 씨! 연장통에 망치 있어?”
“노가다가 망치가 없을까?”
“그럼 설비가 깔아 놓은 모양대로 우리가 깔아 놓고 덮자고.”
“그거 하고 있을 시간이 어딨어? 몰탈 굳어!”
“몰탈 도착하려면 멀었어!”
“그래? 심 씨가 설비 기술도 있는 줄 몰랐네.”
“기술은 니미! 바닥에 파이프 까는 게, 무슨 기술 축에나 들어? 파이프 바닥에 놓고 고정만 하면 되는 거 아냐! 금방이지 뭐!”
레미콘 공장에서 몰탈이 도착하는 동안 방통 미장을 하다 말고 난방 배관을 만지는 미장팀.
“어? 이거 파이프가 꺾였는데?”
“옛끼, 이 사람아! 엑셀 파이프가 전선관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꺾일······ 이런 니미!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여?!”
난방 배관, 혹은 난방 코일로 사용되는 엑셀 파이프는 휘어질지언정 어지간한 힘으로는 꺾이는 재질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엑셀 파이프가 꺽여 있었다.
“원래 이랬던 거 아니여?”
“이렇게 획 하고 꺾인 걸 내가 못 봤을 리가 있나?”
“어디서 이렇게 꺾인 거여?”
“모서리에 아다리 돼서 꺾인 거 같은데? 심 씨, 어떡할까?”
“그래도 파이프에 구멍은 안 났으니까, 잘 펴서 고정만 단단히 해 놓으라고!”
“그렇게 하자고, 이상 없것지?”
그렇게 미장팀이 은밀한 작전이 완료될 무렵, 인기척이 들려왔다.
“수고 많으십니다! 방통!”
설건우가 거수경례를 하며 들어섰다.
“어쩐 일이슈?”
미장 심 반장이 엑셀 파이프를 쓸쩍 내려놓으며 물었다.
“사람 비명 소리 같은 거 못 들으셨어요?”
“비명 소리?”
“분명히 들었는데······?”
설건우가 202호 내부 이곳저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아! 그거?”
“예! 반장님도 들으셨죠?”
“저 친구한테 물어봐!”
미장공 김 씨가 잡부 1을 가리켰다.
“꼭 일 못하는 놈들이 사고를 쳐요!”
미장공들의 핀잔에 다시금 주눅이 드는 잡부 1.
“다친 데는 없어요?”
설건우가 물었다.
“예, 괜찮습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설건우가 잡부 1에게 다가가 몸 여기저리를 살폈다.
“진짜 괜찮습니다.”
“아저씨들이 뭐라 그럴까 봐, 아파도 괜찮은 척하지 말고! 다친 데 있으면 다쳤다고 해야 나중에 탈이 없는 법입니다.”
순진한 일꾼들은 다치면 현장에서 부르지 않을까 봐, 오히려 부상을 감추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어허! 설 기사요! 우리가 다친 사람한테 뭐라 그러긴 뭘 뭐라 그런다고!”
“저, 진짜 괜찮습니다.”
잡부 1이 자기 몸 여기저기를 두드려 보이며 다치지 않았음을 강하게 어필했다.
“그럼 다행이고요. 근데 뭣들하고 계세요?”
설건우가 방통 심 반장 손에 들린 망치와 배관 고정용 핀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이거?”
“방통 치면서 왜 배관을 만지고 계세요?”
“저 친구가 배관을 밟는 바람에 배관이 살짝 움직였는데, 그렇다고 거기에 방통을 칠 수야 있나? 우리가 보수 좀 해줬지.”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변수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런 변수에 대응하는 게 작업반장의 역할이다.
지금 방통 심 반장의 대응은 매우 적절해 보였다.
“설비 애들도 바쁠 텐데, 이것 때문에 부르기도 뭣하고 해서, 이 정도는 나도 손 볼 수 있으니까.”
방통 심 팀장의 대답에 미간을 좁히는 설건우.
지금 방통 심 반장의 대응은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달의 안전인으로 추천함에 주저함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현장은 작은 전쟁터다. 공정과 공종에 따라 인원과 연장, 물자를 동원해 각자가 맡은 구역을 한 군데, 한 군데씩 점령해 나가는 것과 같다.
전장에서 아군이 적군을 생각해 줄 리가 없듯, 미장팀이 설비팀을 배려해 줄 리는 만무하다.
전생 40년 일꾼 경력의 설건우다. 방통 심 반장의 속내를 모를 리 없다. 이 데나오시를 바로 잡고자 설비팀을 부르면 그만큼 시간을 잡아먹을 거 같으니 자체적으로 처리하려 했을 터.
“그래서 방통 치다 말고 배관 작업을 하고 계셨다고요?”
“마침, 몰탈도 떨어졌고 해서 말이야.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 보려고. 누군 왕년에 난방 설비 안 해 봤나? 어때? 이만하면 설비 애들이 해 놓은 거랑 차이 없지?”
엑셀 파이프 꺾인 부분이 찝찝하긴 하지만, 최대한 곧게 펴놨겠다,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티도 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파이프가 한번 꺾였다고 해서, 당장 누수가 발생하진 않는다.
“대단하신데요?”
배관을 고정하는 U핀 대신 못으로 고정을 해 놓아 금새 구분이 되었다. 방통 팀이 작업한 배관을 찬찬히 살피는 설건우.
그런데 파이프에 백화된 부분이 보였다. 보통은 파이프가 과도하게 굽어지거나 꺾였을 때 발생하는 현상.
백화된 부분을 만져보는 설건우. 홈이 파인 게, 분명 한번 꺾인 파이프다.
“이거 파이프가 한 번 꺾였네요?”
“꺾이다니? 어디가?”
모르는 척 오리발을 내미는 방통 심 반장.
“여기요.”
설건우가 파이프가 꺾인 위치를 보여 줬다.
“에이, 설 기사! 뭐 이런 걸 갖고 그래? 물 흐르는 데는 아무 지장 없어. 괜찮아!”
엑셀 파이프는 기본적으로 내구성이 우수한 자재다. 한번 시공을 해 놓으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하게끔 되어있다.
수명이 반영구적인 만큼 관리가 까다로운 자재이기도 하다. 특히 파이프 배관 당시에 최소 굽힘 거리가 있을 정도로 파이프가 휘는 것에 대해 민감하다.
이건 최소 굽힘 거리를 초과해 굽혀진 것도 모자라, 완전히 한 번 꺾였다. 이렇데 되면 사실상 데나오시다.
“일단 방통 작업 중단하세요. 설비팀 불러서 다시 손보라고 할게요.”
“작업 중단? 곧 몰탈 도착할 건데? 이거 잡는 동안 몰탈 레미콘 차 세워 둬?”
레미콘 역시 관리하기 까다로운 자재다. 공장에서 생산한 지 서너 시간 이내에 현장에 타설이 완료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다. 방법이 없다면 원성을 사더라도 다시 돌려보내야 하지만 전생 40년 경력의 설건우다.
“여기는 일단 이대로 두고, 3층부터 작업하시죠?”
“여기 오늘까지 끝내야 한단 말이여!”
“3층부터 하고 내려오면서 하면 되지 않습니까?”
“설 기사! 자재하고 연장을 3층까지 올렸다가 다시 내리라고?”
순서대로 진행하면 될 걸, 자재를 들고 2, 3층을 오간다는 건, 사실 성가신 일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당장 그게 귀찮다고 반영구적으로 사용될 난방 배관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아니면 몰탈을 돌려보낼까요?”
“그게 아니고, 설 기사요.”
방통 심 반장이 목소리를 한 껏 끌어내렸다.
“예?”
“우리 설 기사님이 아직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나 본데, 우리가 방통 치면서 엑셀 파이프 깔린 거 얼마나 많이 봤겠어?”
“뭐, 많이 보셨겠죠.”
“노가다를 한다는 사람이 말이야! 융통성이란 게 있어야지. 엑셀 파이프 조금 꺾였다고 당장 물이 새는 것도 아닌데, 이거 잡는다고 사람을 괜히 고생을 시켜서 되겠냐는 말이지.”
누군 방통 안 해 봤나? 사실 심 반장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엑셀 파이프가 한번 꺾였다고 당장 물이 새는 건 아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뜨거운 물과 찬물이 반복해서 흐르다 보면, 10년 혹은 20년 뒤 언젠가는 누수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꺾인 배관이 들어간 이 방은 작은 방, 즉 아이들이 지낼 방이다. 한창 자라고 공부해야 할 아이의 방, 그것도 아니면 더 나중에 출가한 자식 방에 물이 새서야 쓰나?
“설 기사, 이번 한 번만 그냥 넘어가자고. 잘못은 설비가 해 놓고 피해는 우리가 봐서야 쓰나?”
“근데 설비가 잘못한 거 맞아요?”
“설비가 파이프 제대로 된 걸 안 써서 이렇게 된 거 아니요?”
두 사람만 입을 다물면 완전 범죄다. 슬그머니 공범의 표정을 살피는 방통 심 반장.
“진짜로 설비가 자재 잘못 쓴 거 맞아요?”
검측 당시 일일이 파이프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설비 팀장의 성격을 생각하면, 설비 쪽에서 착오나 실수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면? 엑셀 파이프가 사람이 밟는다고 이렇게 꺾이겠어?”
“뭐, 그거야 그렇지만.”
“설 기사! 이번만 그냥 넘어가자고.”
설건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앞으로 작업팀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 그냥 넘어가는 시공사 직원들을 얼마나 봐왔던가?
당장 눈앞에서 원망을 듣더라도, 노가다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설건우가 단호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데나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