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마리 토끼 (1) >
동우동 화산 이든 파크 회의실. 화산 직원들과 각 협력사 담당자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상석에 앉아 회의를 주관하는 고 차장은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건지 표정이 매우 밝아 보였다.
“조 소장님, 5동은 어떻게 됩니까?”
“수요일 오전이면 오사마리(마무리) 되지 싶습니다.”
원래 계획보다 하루가 빨라졌다. 고 차장이 연 대리를 바라봤다.
“요새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무리요?”
“타설을 하루나 앞당기셨는데, 무리가 아니면 뭡니까? 뭐, 저희야 고맙지만 말입니다.”
“이틀짜리 공사를 하루 앞당긴 것도 아니고, 8일짜리를 하루 앞당긴 거 갖고 무리라니요.”
“하하! 듣고 보니 그렇네요!”
연신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고 차장이었다.
“레미콘은 가능하겠어?”
고 차장이 연 대리를 향해 물었다.
“확실한 건, 업체에 연락을 해 봐야 알겠지만 가능할 거 같습니다.”
“레미콘 업체에서 안 된다고 하면 타설 안 하게?”
“아, 아닙니다.”
“연 대리!”
“예?”
“레미콘! 무조건 준비시켜!”
“예!”
“그럼, 레미콘은 됐고, 5동은 수요일 타설 하는데, 전기 설비는 문제없으시죠?”
고 차장이 회의 참석자들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설비 담당 박 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섭다, 무서워!”
“또, 뭐가?”
“철근은 제대로 엮고 있는 거 맞습니까?”
“무슨 말인데?”
“일을 이렇게 밀어붙이니까 하는 말 아닙니까! 이러다가 전기 설비 업체들 공사 못 하겠다고 도망가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미안하다! 미안해!”
아파트 뼈대에 해당하는 골조는 철근 콘크리트 외에도, 전기 배선과 설비 배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다시 말해, 타설 하기 전, 전기와 설비 공정도 마무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당초 계획보다 하루가 앞당겨졌다. 즉 전기, 설비 업체 스케줄을 조정해야 한다.
“가능하시겠습니까?”
고 차장이 전기, 설비 업체 소장을 향해 물었다. 사실 묻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라는 지시에 가까웠다.
애석하게도, 전기 설비야, 형틀 공사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처지니까.
“우리가 안 된다고 하면 타설 미루시게요?”
설비 업체 소장이 물었다.
“흐흠! 설비 배관을 마무리 안 하고 공구리 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하.”
“이번에도 작업 일정 바뀌었다고 하면 작업자들 뭐라 할 텐데······.”
“소장님이 근로자들 컨트롤을 못해서 어떡합니까?!”
“일정 바뀌는 것도 한두 번이죠. 이번 달 들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일정이 바뀌니까, 이러는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공정표 싹! 갈아엎을 테니까, 이번 주까지만 고생해 주십시오.”
“에이, 어쩔 수 없지요.”
“장 소장, 미안하게 됐네.”
공사 일정이 뒤엉킨 이유는 100% 조 소장의 형틀 공사 때문이다. 적자를 만회하려는 오야지들이 거세게 작업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아닙니다. 우리가 조 소장님 안 도우면 누가 돕겠습니까?”
“고맙네.”
“고맙긴요. 저희도 조 소장님 덕분에 골조 빨리 끝나면 좋은 거죠.”
“오케이, 전기도 이상 없죠?”
“예, 저희는 이렇게 될 줄 알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래서 내가 전기 소장님을 좋아한다니까! 설비 장 소장님! 전기는 알아서 준비 다 해 놨다는데! 설비는 어떻게 된 겁니까?”
“······참, 나! 공정표대로 작업 준비한 나만 나쁜 놈이네?”
“하하.”
공사 말미까지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유민의 부도로 작업이 중단되었던 기간 정도는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터.
요즘 들어 부쩍 기분이 좋은 고 차장이었다.
“자! 현장은 이 분위기 계속 이어가는 거로 하고, 하실 말씀 더 없으면 공정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고 차장이 서류를 정리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안전 김 차장이 포문을 열었다.
“잠깐만요.”
“왜? 안전도 할 얘기 있어?”
안전팀장 입에서 좋은 이야기가 나올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공사팀장 고 차장.
“공정 이야기는 끝났습니까?”
“어. 우린 끝났으니까, 안전 얘기해.”
“예.”
다시, 착석하는 사람들.
“요새 겉으로는 현장이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제가 볼 땐 이러면 안 될거 같아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홍 대리! 사진대지 나눠 드려!”
안전 홍 대리가 참석자들에게 서류를 나눠 줬다. 서류를 넘겨보는 사람들. 안전 규정을 위반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모습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으음.”
사람들의 침음성이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잘 하시던 분들이, 요즘 들어서 왜 이러실까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참석자들.
“업체별 위반 건수, 저희한테 사진 찍힌 횟수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림 32건, 예원전기 9건, 부창설비 18건.”
“우리는 없습니까?”
조적 조 소장이 물었다.
“다른 업체들은 상대적 잘하고 계시니까, 따로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그러니까 잘들 좀 하시지들 그러셨습니까!”
이번 지적에서 비껴간 조적 조 소장이 거드름을 피웠다.
“조 소장님! 돈 아끼는 것도 좋지만 우마(말비계, 작업 발판)가 이게 뭡니까?”
고 차장이 한 페이지를 펼쳤다. 한쪽이 다리가 휘어진 작업 발판 위에서 작업 중인 목수 사진.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조 소장이 사진을 확인하고 바로 고개를 조아렸다.
“이 우마는 그냥 폐기하세요. 우마 하나 얼마나 한다고! 안전 관리비 뒀다가 뭐합니까?”
“예, 바로 폐기하겠습니다.”
이어서, 사진을 넘겨 보는 고 차장. 그러다가 평범한 거푸집 설치 사진에서 멈췄다.
“근데 이 사진은 뭐가 문제라는 거야?”
안전 김 차장을 향해 사진을 내미는 고 차장.
“여기가 8동. 근로자들 계속 왔다 갔다 하는 통로 쪽인데, 각재에 보면 못 하나가 튀어나와 있잖습니까?”
“어디?”
“여기요.”
사진에서 못을 짚어 주는 김 차장.
“이거 높이 가 딱! 사람 눈 높이 아닙니까? 사람들 오고 가다가 눈 찔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마다 키가 다른데 눈 높이는 무슨.”
“얼굴 긁히면 어떡하냐고요? 조 소장님,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
김 차장이 조 소장을 향해 물었다.
“바쁜 마음에 아무거나 집어 썼나 봅니다.”
“못 아주머니들이 놓쳤나 본데?”
공사팀장 고 차장은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사 잘되어 간다며 덕담만 나누고 마무리했으면 딱 좋았을 텐데.
“아니, 고 차장님! 이건 못 아주머니를 탓할 문제가 아니고, 이 버팀대 설치한 목수는 뻔히 봤을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이거 설치한 목수 불러서 주의시키겠습니다.”
조 소장이 다시 한번 머리를 숙였다.
“조 소장님, 지금 사진 찍힌 것들뿐만 아니라, 요새 유민, 아니지. 소림 분들 좀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
“제가 비록 안전팀장이지만 까놓고 말해서 조 소장님하고, 조 소장님 밑에 작업 반장님들 마음을 모르는 거 아닙니다. 유민한테 얻어맞은 거 만회하셔야죠.”
고개를 끄덕이는 참석자들.
“그렇다고 공사만 빨리 끝내면 뭐 합니까? 이러다가 사고 한 번 나면 그동안 만회했던 거 한순간에 물거품되는데.”
김 차장의 구구절절 옳은 소리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말이 나온 김에 마침 잘 됐다 싶은 설건우.
“근데 김 차장님?”
“여기 건우, 네 담당 구역 아니냐? 8동?”
“8동이면 제 담당 맞는데요.”
“넌 현장을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이런 거 하나 체크 못 하고 뭐 하냐?”
“죄, 죄송합니다.”
“그래, 현장 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에도 신경 좀 써라. 여기 누구 하나 찔렸어 봐라! 난리 난다! 난리 나!”
“그. 그렇죠. 근데 지금은 조치가 됐습니까?”
“응?”
“못 말입니다. 지금은 조치가 됐나 해서요.”
“그, 글쎄?”
김 차장이 안전 홍 대리를 바라봤다.
“조 소장님, 어떻게 됐습니까?”
“제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조치 안 됐으면 당장 조치하라고 하세요.”
조 소장이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근데 김 차장.”
그동안 잠자코 있던 고 차장이 오른손을 들었다.
“예?”
“내가 가만히 듣고 있자니까, 이건 좀 아닌 거 같다?”
“뭐가 말입니까?”
“안전팀은 지적만 하면 되는 거야? 현장 안전 개판이라고, 이렇게 사람들을 갈구면서 말이야. 안전팀은 잘못이 없냐고?”
“예?”
“김 차장, 네가 네 입으로 그랬잖아? 사람들 지나가는 길목이라고.”
“그, 그랬죠.”
“그런데 거기서 사진만 딸랑 찍고 왔냐?”
“그, 그러면요?”
안전 팀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분위기를 감지한 김 차장.
“김 차장, 네 말대로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면 사진 찍는 거까진 오케이, 그럴 수 있어. 근데 사진 찍은 다음에 조치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사진 찍고 지적하는 사이에 누가 다치면 어쩌려고? 위험하다면서?”
고 차장의 날카로운 지적에 적잖이 당황한 김 차장.
“조, 조치는 업체에서 해야죠.”
“안전에 우리 화산 안전, 업체 안전이 따로 있는 거였어? 저 못이 우리 직원들만 피해서 찌른대?”
“그게 아니라, 우리 안전 직원이 몇 명이나 된다고, 어떻게 우리가 일일이 조치까지 해 줍니까? 저런 거 지적만 하고 다녀도 바쁜데.”
“안전 담당이 현장 안전에 미비한 부분 찾아내서 지적하는 건 좋아. 이렇게 보고 다 같이 조심할 수 있으니까. 근데 김 차장 너도 알잖냐? 너희 지적하느라 바쁜 만큼 업체들도 바쁘단 말이야.”
“바쁘다고 안전에 소홀해도 된다고요?”
“내가 설마, 바쁘니까 안전 대충하자는 소릴 하겠냐?”
“······.”
“소림 쪽 근로자들 적자 난 거 메운다고, 현장에서 연장 날아다니다시피 하는데, 거기다 대고 우리가 사진 찍어다가 업체 소장님들한테 신경 쓰세요! 이런다고 씨알이 먹히겠냐?”
“안 그러면 방법이 있습니까?”
“우리 안전팀도 지적만 할 게 아니라! 근로자들 앞에서 솔선수범을 좀 보여야 하지 않겠냐?”
“······.”
“내 말이 틀리냐?”
“······한번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래, 꼭 검토 바란다.”
설건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즘 공사가 잘되는 바람에 고 차장이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욱하는 심정에 한마디 했다가, 결론이 산으로 간 건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고 차장답지 않게 순진한 소릴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공사 직원들의 솔선수범? 현장은 그렇게 순진한 인간들만 모인 곳이 아니다.
“저기······.”
설건우가 입을 열었다.
“썰? 할 얘기 있어?”
“예.”
“해 봐.”
“저희 안전 팀이 솔선수범하는 거에 더해서 하나를 더 해 보면 어떨까요?”
“하나 더? 어떤 거 말이냐?”
“뭐니 뭐니해도, 안전은 돈 아니겠습니까?”
제각각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돈이라면 우리 현장만큼 팍팍 쓰는 현장이 있는 줄 아냐?”
안전 관리비라는 눈먼 돈을 진짜 현장 안전 관리비로 100% 쓰는 현장을 드물었다. 드문 정도가 아니라 김 차장이 겪은 현장에서는 없었다.
“현장에 안전 관리비만 안전에 쓰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또, 무슨 말이냐?”
설건우의 시선이 협력사 소장들을 향했다.
“소장님들.”
“말씀하십쇼. 설 기사님.”
“요즘도 타워 월례비 내고 계십니까?”
과연 이게 무슨 뜻인지, 협력 업체 담당자들과 화산 직원들의 눈빛이 복잡하게 오고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