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설명가 만렙 신입사원-182화 (182/219)

< 두 마리 토끼 (3) >

동우동 화산 이든 파크 109동. 803호와 804호가 마주 보고 있는 계단실. 안 그래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그곳에 먼지가 자욱했다.

―왜애애앵! 왜애애앵!

어둡고 좁기까지 한 그곳에 핸드 그라인더 연마날이 콘크리트 벽체를 긁어내는 소음까지 더해졌다.

―왜애애앵! 왜애애앵!

“휴우.”

작업을 마친 노 씨가 발판에서 내려와서 마스크를 벗었다.

―콜록! 콜록!

작업 발판을 챙겨 들고 다음 층 계단을 오르는 노 씨. 9층에 오른 노 씨는 견출 작업이 필요한 구간을 찾아 벽면을 훑었다. 그러던 중, 노 씨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허어······.”

견출은 벽면을 고르는 작업이다. 그렇다고 벽면 전체를 고르는 것은 아니고, 콘크리트 벽면이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 요철이 생긴 구간을 찾아 작업을 하면 된다. 그런데 하필 벽면 요철이 엘리베이터 개구부(開口部) 바로 위에 있었다.

형식적으로 개구부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긴 했지만 말 그대로 사람의 접근을 가리기만 할 뿐이었다.

만에 하나 노 씨가 발판에 올라 작업을 하다가 개구부 쪽으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저 어설픈 가림막은 노 씨의 체중을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조심스레 개구부 쪽으로 다가가는 노 씨. 비계 파이프로 막아 둔 가림막을 손으로 흔들어 보는데, 어떤 싸구려 일꾼을 썼는지는 몰라도 가림막 설치 상태가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니미.”

가림막 너머로 고개를 삐죽 내미는 노 씨.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지금 작업 중인 9층부터 지하층까지 아득하게 뚫려 있는 공간임을 노 씨는 잘 알고 있던 터였다.

물론, 중간중간 그물망으로 추락 방지 시설을 해 놓았겠지만 누군가 작업에 방해된다고 치웠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그물망을 믿고 작업을 할 수는 없다.

‘이를 어떡해야 하나······.’

개구부 가림막을 가만히 바라보는 노 씨. 분명 ‘개구부 주의’라는 타포린과 함께 분명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가림막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작업을 해도 명분은 있다.

다만, 화산 안전이 보통 안전이던가? 이대로 작업하는 걸 보게 된다면, 노발대발 지랄을 해 댈 게 뻔했다.

‘저들이 가림막을 이따위로 설치해 두고 말이지······.’

그리고 그때,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엘리베이터 개구부를 통해 노 씨의 얼굴에 닿았다.

“······.”

현장 경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한참 어린 화산 직원들한테 잔소리를 듣는 건 딱 질색인 노 씨다.

작업이 지체되더라도 단도리를 하고 작업을 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작업 시간 손해를 감수한 노 씨가, 가림막 단도리를 하려고 보니, 근처에 마땅한 자재가 보이지 않았다.

비계 파이프 두 개는 있어야 저 개구부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비계 파이프를 가지러 가려면 1층까지 내려가야 한다.

“······.”

자재가 옆에 있다면 모를까, 자재까지 준비하려면 작업 시간을 상당히 손해 봐야 한다. 노가다는 시간이 돈인데.

그리고 안전 시설물 설치는 견출공 노 씨의 업무가 아니다. 그냥 이대로 작업을 해 버려?

다시 한번 엘리베이터 개구부 아래를 바라보며, 딜레마에 빠진 견출공 노 씨.

노 씨는 일단 계단에 걸터앉았다. 그런 다음 안전모를 벗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를 피우며 안전모를 바라보는 노 씨. 안전모에는 ‘4월의 안전맨’이라는 스티커가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었다.

견출공 노 씨는 지난 4월 이달의 안전맨으로 선정되었다. 상금으로 현금 50만 원과 더불어 아무짝에 쓸모없는 현장 소장의 표창장까지.

상금은 일찌감치 다 쓰고 사라졌다. 견출공 동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소주 한 잔 산다는 것이 그만 노래방까지 자리가 이어졌다. 결국, 상금도 모자라 노 씨의 개인 돈까지 털었어야 했다.

상금 덕분에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궁핍해졌다.

현장 소장의 표창장은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결국, 남은 건 안전모에 부착된 이달의 안전맨이라는 스티커. 노 씨가 ‘4월의 안전맨’ 스티커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깟 게 뭐라고······!”

노 씨는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다. 안전맨이라는 완장? 혹은 감투? 이런 것들이 원청과 하청 직원들이 일꾼들을 수월하게 부려 먹기 위한 농간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작업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멀찍이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야지가 작업을 감시하러 왔나? 이렇게 죽치고 앉아 있는 걸 들켜 봐야 좋을 건 없다. 일꾼이 좀 쉬고 있다고 해서 오야지가 무어라 말은 안 하겠지만 결코, 일당 상승에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다.

계단에서 일어나는 노 씨. 작업 발판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던가? 단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 노 씨다.

마음의 결정을 마친 노 씨가 작업을 시작하려 발판에 한 발을 올려놓으려는 그때였다.

“안전! 노 반장님! 수고 많으십니다!”

원청 막내 직원이 자신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더니, 그대로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원청의 막내 직원. 설 기사라 그랬던가? 신통방통한 놈이 아니던가.

언젠가 미장 반죽을 제조하고 있을 때, 고장 나서 버리려고 했던 그라인더를 고쳐 줬던 놈이다.

철물점에서도 못 고친다고 버리라고 했던 고물을 고쳐 준 놈이다. 그랬던 놈이 방금 안전 구호를 외치고는 사라졌다.

만약, 이대로 작업을 하다가 안전에 들키면 이 동 담당인 저 막내 기사까지 욕을 먹으려나?

사회생활 초창기엔 욕도 먹고 하는 거지 뭐. 그렇게 다시 발판에 다리를 올린 노 씨. 그러자 다시 한번 서늘한 바람이 까마득한 개구부를 통해 올라왔다.

“찝찝한데.”

지금 화산 막내의 사회생활을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4월의 안전맨이고 어쩌고 다 떠나서, 여기서 떨어지면 노 씨 본인이 죽게 생겼다. 그렇다고 자신의 임무인 견출 작업을 건너뛸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그건 그렇고,

‘아시바 말고 없나?”

견출공 노 씨는 비계 파이프를 대신할 만한 자재가 있나 둘러봤지만 비계 파이프를 대신할 만한 자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1층까지 내려가야 한다. 호이스트 리프트로 걸음을 옮기는 노 씨. 비계 파이프를 가져오는 길에 호이스트 운전원 김 여사 얼굴도 한 번 더 보고.

호이스트 리프트 호출 키를 누르고 호이스트 김 여사를 기다리는 노 씨.

“노 형!”

그때, 견출공 노 씨의 고용주 오 반장이 귀신같이 나타났다.

“오 반장이 어쩐 일이여?”

“오야지가 작업 보러 다니는데, 어쩐 일은 뭐가 어쩐 일이여? 근데? 노 형은 어디가? 벌써 작업 끝난 거여?”

“작업이 끝나긴, 아직 멀었지. 공구리를 대체 어떻게 쳐 놓은 건지, 그라인더 작업이 많이 들어가네.”

“그러니까 작업하다 말고 어디 가는 거냐고? 그라인더 날이 떨어졌어?”

“······1층에.”

“그라인더 날이 떨어졌으면 전화로 가져오라고 하면 되지. 그걸 일일이 가지러 내려가?”

“날은 충분해.”

“그러면? 1층엔 뭐하러 가는데?”

노 씨가, 농땡이를 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아시바 좀 가지러.”

“아시바? 아시바를 어따 쓰게?”

“오 반장, 오다가 엘리베이터 자리 못 봤어?”

노 씨가 말을 빙빙 돌리는 게 어딘가 수상한데.

“엘리베이터 자리가 왜?”

“엘리베이터 자리 위에 곰보가 심하더라고. 거기 작업하려면 단도리를 안 하면 안 되겠더라고.”

“무슨 단도리?”

“거기 개구부 가림막이 부실해서 안 되겠더라고. 내가 손을 봐야 할 거 같아서 말이지.”

“······.”

“용역을 불러다 작업을 시켰는지, 가림막이 헐겁더라고. 아시바 가져다가 보강 좀 하고 작업해야지. 안 하고 작업하면 화산 놈들이 지랄하지 싶어서.”

노 씨의 대답에 견출 오야지 오 반장의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생각 같아서는 노 씨를 향해 욕을 한 사발 퍼붓고 싶지만, 오 반장은 화를 꾹 눌렀다.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는 노 씨다. 오야지로서는 상대적으로 싼값에 부려 먹기 좋은 일꾼이다. 그리고 얼마 전 오야지가 일꾼들을 사주지는 못할망정, 노 씨가 안전맨으로 선정되어 소주부터 노래방까지 얻어먹었다.

견출 오야지 오 반장은 최대한 좋은 말로 노 씨를 설득하기로 했다. 오야지는 아무나 하나? 일꾼을 일에 몰두하게 만드는 것도 오야지가 필수로 갖춰야 할 덕목이다.

“노 형! 안전하게 작업하는 건 좋은데 말이야, 우리가 작업 하루 이틀 하는 게 아니잖아? 견출 단가 얼마나 된다고, 우리가 이런 것까지 우리가 신경 쓰면 우리 밥 먹고 살 수 있겠어?”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몰탈 칠하는 것도 아니고, 그라인더 질을 해야 하잖아? 힘을 써야 되는데, 개구부가 저렇게 떡하니 있으니까, 내가 불안해서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거 단도리를 왜 우리가 하느냔 말이여!”

오 반장은 원래부터 인내심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슬슬 부아가 치미는 오 반장.

“그럼 저거 단도리해 줄 때까지 기다려?”

“됐어! 그라인더 이래 내! 내가 하고 말 테니까!”

“오 반장! 위험하다니까!”

“안전 챙기면서 어떻게 돈을 벌어? 뭐 노 형, 그거 뭐야? 안전맨인가 뭔가 그거 한 번 더 해 먹겠다고, 시방 이러는 거여?”

“무슨 말이야!”

“이번 달부터 안전맨 상금 팍! 늘린다며! 그거 먹자고, 작업은 나 몰라라 하고! 안전 단도리 하는 거냐고!”

“어허! 오 반장!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그때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호이스트가 11층에 멈춰 섰다.

“호이스트 안 타면 내려가요?”

호이스트 운전원 김 여사가 탑승객을 부르고 있었다.

“김 여사, 미안허요. 내가 다시 부를 테니까 내려가쇼.”

“똥개 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맨날 이게 뭐람.”

―철컹! 척척척척척!

소음을 내며 내려가는 호이스트 리프트.

“그래, 노 씨! 진작 그럴 것이지. 후딱 작업해 버리고 말자고!”

“오 반장.”

노 씨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내가 노 씨 작업하는 동안 잡아 주면 되잖아?”

“우리가 아무리 노가다지만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갑자기 무슨 소리 하는 거여?”

“오 반장이 방금 그랬잖아, 안전맨인가 뭔가 상금 늘린다고.”

“그래서?”

“화산에서 오죽하면 그러겠어?”

“뭐?”

“오 반장은 이렇게까지 하는 현장 본 적 있어?”

현장에 들어온 모든 업체, 심지어 함바 식당까지 현장 안전을 위해 상금을 내놓았다.

오 반장과 노 씨, 둘이 합쳐 노가다 경력이 족히 40년이 넘는다. 대한민국에 이런 현장은 사실상 없다. 이 사실은 오 반장과 노 씨를 포함해 현장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런 답답한 친구를 봤나? 화산 놈들이 안전 챙기는 이유를 몰라? 현장에서 사고 나면 저거 놈들도 손해 보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여!”

“그래?”

“여태 몰랐어?”

“사고 나면 누가 제일 손핸데?”

“그, 그거야······.”

“나나, 오 반장, 저기서 떨어져 어디 하나 부러지면 누가 제일 손핸데?”

“······.”

“그런 걸 다 떠나서 말이야, 사람들이 말이야 염치가 있어야지!”

노 반장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 알았어! 노 형, 알았으니까 그만해.”

“니이미! 현장에서 이렇게까지 해 주면 고마운 줄 알고 더 잘할 생각들을 해야지! 나도 노가다지만 말이야! 어디 못 배워 먹은 노가다 아니랄까 봐! 백날, 천 날 떠들어도 들어먹질 않으면, 그게 짐승이지! 사람이여?!”

견출공 노 씨의 사자후가 109동 전체를 뒤흔들었다.

“뭐시여? 짐승?!”

이건 항명이다. 현장은 전쟁터다. 이유야 어찌 됐든, 직속 상관에게 항명하는 부하는 같이 갈 수 없다.

“그래!”

“노 씨! 연장 내려놓고! 당장 짐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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